가을 편지
가을이 깊어갑니다. 골짜기마다 나무들은 울긋불긋 색동저고리의 가을 옷을 입고 있습니다. 어제는 잠시 낙엽이 진 가을 길을 걸으면서 새삼스레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살다보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때가 있지요.
어제처럼 낙엽진 가을길을 걸으면서,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산다는 게 뭘까 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지요.
가을은 저에게 그런 계절입니다.
세상의 온갖 허세는 혼자 다 부리고 살면서도 가을바람에 나뭇잎 하나 굴러가는 소리에도 가슴이 설레고요. 깊은 가을밤에 처량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에도 가슴이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이 가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건네주고 싶습니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건네주고 싶습니다.
이 다음에 어느 세상 어느 길목에서 우리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서로 서먹서먹하지 않도록 따뜻한 사랑을 건네주고 싶습니다.
이 가을엔 누군가에게 편지도 쓰고 싶습니다. 그 편지에는 가을길에 뒹굴고 있는 낙엽 하나 주워서 함께 보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써주고 싶습니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주저리주저리 긴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 ‘사랑해서 보고 싶다’는 그 말 한마디가 이 가을에 훨씬 울림이 있는 얘기일 테니까요.
한 줄을 써도 그리움의 전달이고 열 줄을 써도 그리움의 전달이라면 차라리 한 줄의 글을 써서 그립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을은 절제의 계절이지요.
옛말에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고, 말은 끝까지 다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리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 부족한 듯한 말, 조금 부족한 듯한 행복, 조금 부족한 듯한 돈, 조금 부족한 듯한 능력, 이러한 것에 참다운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가을에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빌어봅니다.
박완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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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진은
박곡희 님이 담아온
내장산의 단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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