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2010년 3월 21일
성경본문(개역개정)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너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 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18-25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지난 2006년에 <부의 미래>라고 하는 책을 쓰면서 새로운 시대의 전망을 펼쳐놓았습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인간 삶의 기초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거예요. 많은 게 변한 것 같지만 불변하는 기초가 있다는 거예요. ‘심층기반’, 즉 시간과 공간과 지식인데 시간과 공간과 지식을 새롭게 이해하는 사람이 부를 차지한다는 거지요. 오늘날의 시간문제는 속도 싸움이죠. 여기에서 한국의 과제를 이야기합니다. 남한은 글로벌시대를 맞아서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가장 앞선 속도로 발전하는 나라예요. 반면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뒤떨어진 나라예요.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을 하려면 과연 이 시간의 격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한국인의 과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탈북자의 수기를 읽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책은 그의 간증이지요. 북한에 1호 배우가 있습니다. 1호라는 것은 김일성•김정일을 가리키는 은어지요. 주순영이라고 하는 사람이, 김일성의 첫 부인이었던 김정숙을 닮은 여인으로 뽑혔어요. 이미지도 얼굴도 몸매도 비슷한 여인으로 열일곱 살에 뽑혀서 평양의 호화로운 궁전 안에서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 역할을 맡는 배우로 살았습니다. 18년 동안 그렇게 살았어요. 그 어려운 북한에서 가장 호화로운 생활을 했어요. 김정일의 어머니 역을 맡는 배우라 누구도 함부로 그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는 거지요.
그러다가 1994년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죽지 않습니까? 난리가 났지요. 그 소식에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36명이고 자살한 사람이 수십 명이에요. 어버이 수령이 죽었으니 우리에게 무슨 낙이 있느냐고 죽은 거예요. 김일성이 죽으면서 체제가 흔들리고 오랫동안 누적되어왔던 문제가 막 터져나옵니다. 설상가상 기근이 덮쳤어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거예요. 그거를 버티려고 소위 ‘고난의 행군’ 이라는 걸 부르짖었어요. 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경제를 봉쇄해서 인민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고 자기들의 허물을 감추는 선전전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견디다 못해서 1호 배우마저도 중국에 내보내서 무역을 도우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2000년에 사흘 동안 중국 출장을 나오게 되었어요. 연변으로 출장을 나와 중국 사람 거래처의 외상값을 받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몇 사람과 함께 나왔습니다. 그날 저녁에 식당에 갔습니다. 이 사람이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노래 한 곡 좀 부탁한다고 해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랬더니 그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환호를 하고 박수를 치면서 꽃다발을 전해주는 거예요. 그날 호텔에 돌아와서 받은 돈을 헤아려보니까 2,700 위안이었는데, 당시 호텔 종업원의 5개월 치 월급이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중국의 사회주의가 변질되어 자본주의로 간다고 하더니만 이런 것이로구나!’ 그런데 말이지요. 그날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많은 손님 중에 저쪽 테이블애 있는 손님이 목 좀 축이고 하라면서 잠깐 불러 포장된 선물을 하나 주는 거예요. 팁도 듬뿍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마디 했어요. “오늘 당신이 번 돈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배로 갚아주신다.” 그 말이 기억나는 거예요. 선물을 뜯어봤더니 금박을 한 성경이에요. 성경을 처음 봤어요. ‘이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금덩어리를 줬는가?’ 그런데 금이 아니고 책이에요. 읽어봤어요. 성경찬송 합본된 거예요. 주기도문이 나와요. 처음 보는 거예요. 한 번 읽어봤어요. 사도신경도 있어요. 또 읽어봤어요. 뒤에 보니까 십계명이 있어요. 또 읽어봤어요.
그 다음날 낮에 시내를 지나가다 보니 십자가가 걸린 집이 있는데 그때 ‘십자가 걸린 집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하나님 만나러 왔어요. 하나님한테 십일조를 바치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교회를 지키시는 분이 예배실 뒤 헌금함으로 안내해 “여기다 넣으시면 됩니다.” “아니에요. 내가 직접 하나님 좀 만나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다 넣으면 됩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냥 거기다 넣으면서 “하나님, 오늘은 그냥 갑니다만 제가 이걸 드리니 배로 갚아주십시오.” 그리고 나왔어요. 그날 저녁에 “우리 식사하러 어디로 갈까요?” 하니 내심 돈 벌 생각에 “어저께 그 식당으로 다시 갑시다.” 했어요. 갔더니 그새 소문이 퍼졌는지 사람들이 어제보다 훨씬 많이 모인 거예요. 또 노래를 불렀어요. 또 손님들이 막 팁을 주는 거예요. 그날 밤에 헤아려보니까 4,800위안을 받은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제 받은 거에 대략 두 배로구나! 이게 바로 그 말이었구나!’ 그래서 500위안을 십일조로 떼어놓았습니다. 다음날 낮에 돌아다니다가 다시 그 십자가 달린 집에 들어갔습니다. 또 하나님 만나겠다고 하다가 헌금함에 돈을 넣으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로 좀 갚아주세요.’ 내일 북한으로 들어가는데 마지막 날 밤에 그 식당에 다시 갔더니 호텔로비까지 사람이 꽉 찼어요. 신나게 노래 불렀어요. 심지어는 어떤 손님들이 남한 노래도 좀 부르라 그래서 왕년에 연습했던 조미미의 <단골손님>까지 불렀어요. 그날 계산을 해보니까 36,000위안을 받은 거예요. 같이 있던 사람들이 눈들이 휘둥그래졌어요. “이 돈이면 지금 연변에서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당장 두 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니까 우리 북한에 들어가지 말고 이 돈 가지고 식당 차려서 여기서 계속 돈을 벌어봅시다.” 그렇지만 가족이 다 북한에 있는데 어쩔 수 없죠. 돌아가야죠. 그 다음날 두만강만 건너가면 되는데 누군가 귀띔을 해주는 거예요. “당신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 저기 보위부에서 당신을 잡으려고 나왔다.” 자기가 남한사람들 만나고 성경 받고 교회 간 거 다 그날로 보위부에 고발이 들어간 거죠.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도망가는 거예요. 3일 출장 길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그 길로 고향에 들어갈 수 없게 되고 3년 동안 중국을 헤매게 되는 거예요. 연변으로 들어가 성형수술부터 해요. 자기 얼굴이 널리 알려졌으니까, 조선족의 신분증을 하나 사서는 “이 얼굴 같이 고쳐주세요.”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을 하는 게 아니라 약간 밉상으로 얼굴을 바꾸었어요. 식당을 차리고 눌러 사는 거예요. 그러다가 네 번이나 붙들렸어요. 중국 공안들에게 붙들립니다. 몽골 쪽으로 탈출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붙들리고 베트남 국경으로 탈출하려다 또 붙들려요. 두 번이나 북한으로 압송돼요. 북한에 붙들려가면 맞아 죽는다고 하는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데 참 놀랍지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었어요. 북한에 두 번씩이나 붙들려갔는데도 기적의 연속이에요. 살려주시는 거예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막에 강을 내리라 그리고 내 백성에게 생수를 마시게 하리라’ 하나님이 이적을 베푸시는 거예요. 도저히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을 베푸시는 거예요.
자기와 같이 탈북한 젊은 여인 세 사람을 불러 넷이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누구 하나 신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저 얼결에 들은 몇 마디 말 가지고 그냥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야, 우리 기도하자.” “도대체 기도가 뭡니까?” “기도? 그거 하나님에게 부탁하는 거지.” “할렐루야.” 그러니까 또 물어요. “할렐루야는 도대체 뭡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때마다 하나님에게 기도해요. ‘하나님, 도대체 할렐루야가 뭡니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직접 얘기하셔요. ‘그건 하나님 만세라는 뜻이다.’ “할렐루야란 하나님 만세라는 뜻이야.” “아멘은 뭡니까?” ‘이건 외국말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외국사람이라 이 말을 쓰는가?’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대체 아멘은 뭡니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셔요. “아멘은 암 그렇고말고 그러면 된다.” “하나님이 아멘은 암 그렇고말고 라고 하신다.” 배운 대로 기도를 끝내면서 다같이 “암 그렇고말고.” 이거 너무 순박한 신앙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다 응답하셔요. 십일조를 하면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식당에서 날마다 버는 돈에서 십일조를 떼어 놨다가 낮에 몰래 교회 가서 헌금을 합니다. 주일에는 길목을 지키고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주일에는 감히 교회에 못 가고 평일에 모래 가서 집어넣고 와요. 그런데 한 친구가 “그건 뭐 하러 합니까? 우리가 기껏 애써 벌었는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한테 뭐 하러 합니까?” 가만히 듣고 보니 그래요. 그래서 안 했어요. 그랬는데 참 희한하지요. 그 다음날 낮에 공안에게 붙들렸어요. 공안부대 대장에게 심문을 받게 되었어요. “벌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돈 많이 벌었나 보구만 얼마나 벌었는데? 얼마나 낼 건데?” “말씀만 해주십시오. 내겠습니다.” 5,000위안 낼 수 있어?” 깜짝 놀랐어요. 자기는 50,000위안 달라할 줄 알았는데 5,000위안을 달라는 거예요. “전화 한 통화만 하게 해주신다면 내겠습니다.” 그래서 식당 건물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돈 좀 보내주세요.” 그래서 풀려 나왔어요. 정신없이 풀려 나와 차를 타고 오다 보니 교회가 보이는 거예요. “나 좀 내려주세요.” 교회에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했더니 하나님이 뭐라 하신지 아셔요? “너는 왜 십일조를 떼먹었느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어제 매상의 십일조가 5,000위안이었어요.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셔요.
북한에 다시 끌려가는 생지옥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주셔요. 극적으로 3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2003년 1월이에요. 드디어 자유대한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중국에서의 3년은 피눈물의 3년이었는데 남한에서의 지난 6년은 곱빼기로 피눈물을 흘리는 세월이었다고 고백을 해요. 정착금을 모아서 ‘대동강’식당을 열었어요. 소문이 퍼져서 탈북자가 성공한 모델이라고 TV프로그램에서도 몇 번씩 소개가 되었어요. 그러나 그렇지 않았어요. 자본주의 생리를 몰랐기 때문에 결국 사업에 실패했어요. 사기도 당한 거예요. 견디다 못해 사채를 끌어 쓰게 되었어요. 나중에는 빚에 몰리게 되었어요. 어느 날 험악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오늘 당장 돈 안 해놓으면 깍두기를 보낼 거야.” 드디어 험악한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준비됐지?” “아니 뭐가 준비됐다는 말입니까? 아니 깍두기를 보낸다더니 왜 빈 손으로 왔습니까?” 저쪽 구석자리에 있는 손님이 하도 답답해서 귀띔을 해요. “깡패들을 깍두기라는 거예요.” 두 번이나 자살하려고 해요. 나중에는 빚에 몰려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아는 사람에게 얘기를 했어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기발한 제안을 했어요. “당신은 소위 김정일의 어머니 1호 배우였으니까 누드를 찍으면, 그거 3억은 일도 아니다.” 그만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드사진을 찍은 거예요.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사람을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순간순간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했는데 남한에 오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줄 것 같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는 거예요. 사람을 의지할 때마다 번번이 사기 당하고 일이 어그러져요. 회개하면서 다시 하나님을 붙듭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을 세워 간증을 하게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교회에서 간증을 했는데 목사님들과 식사를 하는 중에 한 목사님이 하도 답답해서 한마디 했어요. “간증은 잘하셨고 은혜는 받았는데 아니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모르십니까?” 너무 부끄러워 집에 돌아와서 “하나님! 나도 말씀 좀 알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7장 7절을 마음에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얼른 마태복음 7장 7절을 찾았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러면 성경을 읽어야 되는데 그 다음에 또 “하나님, 다시 말씀을 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도 화가 나셨나 봐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은 네가 직접 찾아라.” 이 말씀을 그날 밤에 여기저기 뒤지면서 찾는데 도저히 못 찾는 거지요. 한참 찾고 찾다가 지쳐서 “아이고 하나님 난 못 찾겠습니다.”하고 눈을 뜨는 순간 거실에 걸려 있는 액자 안에 있는 말씀이에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 그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이 모든 말씀을 성경에 담아두셨는데 나는 성경을 이렇게 덮어놓고 그저 내가 받은 은혜와 체험만 이야기했구나. 그게 아니로구나 하나님의 뜻을 공부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그분이 집중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가 발견합니다. 이제까지 고난을 겪게 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신 거예요. 지금 한국에 2만 명의 탈북자가 들어와 있어요. 지금 중국을 비롯해서 30만 명이 길을 헤매고 있어요. 남한과 북한이 지구상에서 가장 서로 다른 나라로 벌어져 있어요. 여기에 다리를 놓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 탈북자들이 예수를 믿고 돌아서서 사명을 발견하고 은혜를 발견할 때에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나를 부르셨구나. 자기의 사명을 발견한 거예요.
누구는 북한에서 태어나서 그렇게 고생을 하다가 죽어가는데 나는 이런 자유로운 땅에 태어나서 큰 어려움을 모르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렇게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살게 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더구나 인도네시아에 불러들인 뜻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어요. 사명을 붙드는 사람, 그 사람이 승리자예요. 앨빈 토플러는 ‘시간과 공간과 지식을 새롭게 해석하는 사람이 이 모든 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이것을 신앙으로 해석하면 뭔지 아세요?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게 가장 정확한 시간 이해예요. 하나님이 지금 오늘 이 자리에 이 일터에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게 가장 분명한 공간 해석이에요.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사명을 주셔서 그 사명을 붙들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영광 돌리게 하신다. 이게 가장 고귀한 지식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우리 삶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얼마 전에 법정 스님께서 돌아가셨잖아요. 뉴스에 나오잖아요. 그렇게 한평생을 깨끗하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모든 소유를 내려놓고 나눠주면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귀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셔야 돼요. 그는 아주 모범적으로 살았지만 구원하고는 관계가 없는 거예요.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고 의지하고 응답을 받고 살아가는 거예요. 믿음이란 도덕적으로 온전하고 깨끗한 것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에요. 혼동하면 안 돼요. 그 사실을 혼동하는 사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이에요. 맷돌의 손잡이가 ‘어처구니’에요. 어처구니가 없으면 맷돌을 어떻게 갈겠어요. 손잡이가 있어야 돌릴 거 아니에요. 법정 스님의 뒷이야기를 읽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분이 손님들을 맞이해서 직접 밥을 지어놓기도 했대요. 손님이 왔기에 부엌에 나가서 뭘 하다가 “아이고 어처구니가 없네.”했대요. 손님들이 깜짝 놀랐대요. 느닷없이 와가지고 스님한테 밥 달란다고 그런 소리를 하시나 하고 놀랬더니 그게 아니라 맷돌의 손잡이, 어처구니가 없더란 말이에요. 인생의 목적과 사명이 없는 사람,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이에요. 헛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셔요. ‘너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고 나의 찬송을 부르도록 지었노라 내가 너를 영원히 지켜주리라’ 바벨론 포로가 된 백성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없는 백성들을 불러내시기로 약속을 하시고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탈북한 이 여인에게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오늘 이 나라에 와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그 뜻을 주신 거예요. 19세기 유명한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 중국 선교사였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일은 분명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있어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일터에 있어요. 지금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올바로 열심히 하는 것, 이게 하나님의 비전이에요.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십일조도 드려야죠.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하나님 그분이 사람인지 하나님인지도 구분 못하는 여인에게도 십일조를 통해서 만나게 해주셨는데 우리가 예수 믿고 10년, 20년 되고 직분자가 되어서 십일조의 은혜를 모르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언제 우리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겠어요?
사명을 발견해야 돼요.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도 않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는구나’ 우리가 하나님 믿는다면서 하나님을 괴로워해요. 하나님 믿는 것을 괴로워해요. ‘예수를 안 믿었으면 내가 세상에 나가서 맘대로 살 텐데 내 부모 때문에 내 아내 때문에 이렇게 얽혀가지고 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구나’ 하나님이 탄식하셔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삶 속에 사명을 발견하는 사람,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요. 이 자리는 시은소 施恩所예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예요. 말씀을 똑바로 들어야 돼요. 들었으면 순종해야 돼요. 한마디라도 온전히 순종하면 당장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터인데 교회를 10년 나오면서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의 마음을 찢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주었건만 너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면서 나를 괴로워하는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 건강, 가정, 일터, 오늘 이 자리에 부르셔서 예배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게 하시는 뜻을 알아야 해요. 저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있는데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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