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00404 말씀대로 되리라(누가복음 24:41-49)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2. 17:24

말씀대로 되리라

201044

성경본문(개역개정)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41-49

 

얼마 전에 이메일로 동영상을 하나 받았습니다. 제목이 <극소와 극대>입니다. 시카고 해변 잔디밭에 소풍 나온 한 남녀가 자리를 깔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을 1m 상공에서 촬영합니다. 카메라 렌즈가 그의 손등을 파고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10cm, 손등이 보입니다. 1cm, 주름이 보입니다. 더 좁혀 들어가니까 혈관이 보이고 더 들어가니 림프구 세포가 보이고 더 파고 들어가니 핵이 보입니다. DNA가 보이고 분자가 보이고 원자가 보이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보여요. 거기까지 파고 들어가요. 몸의 구조가 얼마나 신비한지 순식간에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1m에서 10m, 100m로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그랬더니 잔디밭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100m, 옆에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부두가 보입니다. 1km, 그 주위의 도시가 보입니다. 10km, 시카고의 중심이 보입니다. 100km, 시카고 전역이 보입니다. 1,000km, 시카고를 둘러싸고 있는 일리노이 주의 1천만 거주지가 보입니다. 10,000km, 드디어 지구가 보입니다. 그리고 계속 올라가요. 어디까지 가느냐. 10억 광년까지 가요. 빛의 속도로 1년 가는 것을 1광년이라고 얘기해요. 상상할 수 없는 거리지요. 현대과학기술이 10억 광년까지 가요.

짧은 동영상이지만 다 보고 나서 탄성이 나왔어요. 그런데 의심하지는 않았어요. 이상하게도 의심이 안 들어요. ‘나는 과학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구나!’하는 것을 인정하고 과학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조금도 의심이 안 들고 놀랍구나! 신비스럽구나! 내 몸 속에 소우주가 있고 이 몸밖에는 대우주가 있구나!’하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만약에 부활하신 주님을 이 자리에서 만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4복음서에 부활에 관한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 무덤에 시름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돌문을 열어줄 사람이 없을 텐데걱정을 하며 갔는데 가보니까 돌문이 열려 있어요. “아니, 이게 웬일이지? 무슨 일이지?” 그때 천사들을 만나요. “왜 너희가 여기서 예수님을 찾느냐? 그는 이미 살아나셨다. 그는 이미 갈릴리로 가셨다. 제자들에게 가서 빨리 갈릴리로 가라고 얘기해라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니 여자들의 반응은 심히 놀라 떨며 도망갔다.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 여자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용기를 내어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한 것 같아요. 제자들이 듣고는 그럴 리가 있나?” 그중에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이 그래도 여자들이 저렇게 얘기하는 걸 보니까 혹시나 뭘 잘못 봐서 문제라도 생겼을까 하고 달려갑니다. 가서 보니 무덤문이 열렸어요. 요한이 젊으니까 더 먼저 갔지만 무덤에 들어가기가 겁이 나 멈춰 섰어요. 베드로가 먼저 뛰어들어갔습니다. 가보니 모든 것이 다 정돈되어 있어요.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던 거지요. 그래서 아 이게 무슨 일이지?’ 기이히 여기면서 돌아갔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그곳에 찾아와서 눈물을 흘립니다. ‘누가 우리 주님의 시체를 가져갔는가?’ 울고 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잖아요. 마리아는 그만 예수님인 줄 모르고 묘지를 지키는 동산지기인 줄 알고 혹시 어젯밤에 누가 와 가지고 우리 주님을 데려갔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지요. 너무나 놀랍니다. 그 막달라 마리아가 다시 제자들에게 뛰어가서 내가 만난 주님을 또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25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두 제자가 걸어가고 있었어요.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였다고 했어요. 둘이서 이야기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셔요. 길동무가 되어 같이 가셔요. 그러면서 짐짓 묻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지금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혀졌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른단 말이요?” 하고 쭉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무덤에 들어가셨는데 글쎄 어떤 여자들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거예요. 그러나 제자 중에 두 사람이 가서 보았는데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천사는 보았으나 예수님은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게 그들의 결론이었어요.

예수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합니까? “구약성경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살아난다고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가르쳐줘요. 그제서야 두 제자가 아 그렇구나!’하고 깨닫게 됐어요. 저녁이 되어서 여관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계속 떠나시려 하니까 그러지 마시고 오늘 저녁 우리와 같이 여기서 식사하고 지내시죠?” 간구해서 붙들지 않습니까? 식탁을 베풀고 식사를 하려고 하는 순간에 제자들의 눈이 열리면서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 순간 예수님께서 홀연히 떠나가셔요. 제자들이 그 길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다른 제자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고, 혹 유대인으로부터 어떤 핍박이 있을까 두려워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다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해서 두려워했고 의심했다’. 예수님께서 손과 발을 보이시면서 , 내 손을 보고 발을 보라. 유령이라면 살과 뼈가 없지 않느냐?” 보여주셨어요. 제자들은 너무 기뻐하면서도 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겼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먹을 것이 있느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어요. 그것을 드셨어요. , 이게 뭐예요? 유령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시연해 보이신 거예요. 변화된 몸으로 먹고 마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거예요.

요한복음에 보면 도마가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을 내가 만져보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기 전에는 내가 믿을 수 없다.” 다시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여기를 만져보라그때 도마가 어떻게 합니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백합니다. “너는 이제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보여주셨어요.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직 절반이에요. 저들의 마음을 여셨다 그랬어요. 저들이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마음의 문을 여셨어요. 오늘 말씀에 너희가 이제까지 성경을 읽지 않았느냐?” 여기서 말한 성경은 구약성경이지요. “모세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이 있지 않느냐?” 여러분, 어떤 말씀이 있을까요? 신명기 18 15절에 모세의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훗날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시리라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오죽했으면 율법을 모세 율법이라고 얘기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공동체가 이루어진 유월절 사건을 인도한 인물이 모세란 말이죠.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지요. 또 민수기 21 4절에서 9절에 보면 광야에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됩니다. 사람들이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구리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높이 들어라. 그리고 이 놋뱀을보라고 말하라. 너희를 물어 죽이는 뱀을 하나님이 이렇게 죽였다고 하는 것을 보여라. 그것을 보는 자는 살리라”. 참 희한한 방법이지만 그것을 보는 자는 살았어요. 이것 또한 십자가에 달리실 메시야를 예언하는 대표적인 말씀이에요. 선지자 중 대표적인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우리가 ㄷ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 메시야에게 대신 죄짐을 지게 하시고 채찍으로 맞음으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죄를 해결하셨다고 하는 말씀이 잇지 않습니까? 또 요엘서에 보면 말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을 부어주시리니 그들의 하나님의 신비한 사건을 보게 될 것이고 주님을 찾게 될 터인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게 모두 다 메시야를 예언하는 말씀이에요. 시편 16 8절에서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음부, 지옥의 죽음 가운데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저를 일으키실 것이다’. 부활이 예고되어 있어요.

이런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에 그리스도가 이렇게 고난을 받고 살아날 수밖에 없는 당위성, 이유를 설명해주셨어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 이게 구약에 나와 있는 대표적인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에요. 네 번씩이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해주셨어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을 받으신 다음에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셨어요. 그리고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 유월절 만찬을 베풀어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내 몸이다.” 잔을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는 나의 피다.” 예고해주셨어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셔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말씀에 기록되어 있으며 기록된 대로 되리라 이제 너희는 보았고 들었고 알았으니 부활의 증인이다. 이제 곧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리니 너희는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이 부활의 증인이 되라말씀하셔요.

사실은 우리는 구약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지요. 신약도 있고 2천년 교회 역사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부활의 증언을 듣고 있어요. 우린 너무나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야말로 부활의 증인들이에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날마다 잠들었다가 일어나는 것, 그거 죽었다 살아나는 거예요. 의학적으로야 호흡이 안 끊어진 거지만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죽은 거예요. 그래서 새벽기도 때마다 죽은 자같이 잠들었던 우리를 지켜주시고 이렇게 새 날을 맞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건 죽었다 살아나는 거예요.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인간의 손등을 파고 들어가니 그 안에 오묘한 우주가 있어요. 우주를 만드신 분의 섭리가 있었고 계획이 있었고 뜻이 있어서 이루어진 일이에요. 생각해보세요. 과학자는 믿는데 하나님은 못 믿는다니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어요.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말은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그 하나 때문에 믿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어요. 생각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이런 장면을 보았어요. 마라톤대회에서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달려오던 선수가 바로 눈앞에서 넘어졌어요. 갑자기 정신을 잃고 넘어졌어요. 비칠비칠하며 넘어진 거예요. 수많은 관중들이 그를 보고 탄식하고 안타까워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사건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수천 년 전의 사건이에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부활의 사건이에요. 그것이 이루어졌어요.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에게까지 왔어요. 그런데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마라톤 열심히 잘하고 결승선 눈앞에서 비칠비칠하다가 쓰러지는 것과 같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놀라운 사건이지만 오늘 나에게서 멈춰버린다면 이 이상의 불행은 없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사람이에요. 오늘도 세례 받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로마서 6장에 보면 세례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도 그와 함께 죽는 것이에요. 옛사람에 대해서 죽는 것이에요.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믿으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새롭게 사는 거예요. 그게 세례예요. 물속에 들어가면 사람이 죽잖아요. 살리려면 물 밖으로 끄집어내야 되잖아요. 간단히 머리에다 물을 뿌리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큰 거예요.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예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고백하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남은 것은 우리의 의지예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자신을 지에 대하여 죽은 자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이게 제일 중요해요. 여기 자카르타에 호텔 같은데 들어가면 종업원들이 저한테 뭐라고 인사하느냐면 이랏샤이마세이렇게 인사하더라고요. 일본사람 같이 보이는 모양이지요. 한국사람인데 말이에요. ‘여길지어다한국사람이라는 거는 이미 타고난 거예요. 그걸 놓쳐서는 안 돼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잘 믿든지 못 믿든지 난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예요. ‘죄에 대하여 죽은 자,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두 번째로, 이제는 자신을 죄에게 드려 죄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내 몸을 드려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것이다. 의지예요. 사람은 알고 보면 대단할 것이 없어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꿈꾸는 그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악한 것을 보고 더러운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 끌려 다니면 더러워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덧입는 사람, 그게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너희는 부활의 증인이 되라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께서 너희를 인도하실 것이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 성령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세요. 이건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눈물이 나고 안 나오고는 두 번째 문제예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걸고 하신 약속이에요.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 우리 안에 영적 변화가 일어나요. 우리가 늘 사죄의 기도를 한 후에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느니라우리가 날마다 듣잖아요. 성령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어요.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하느냐?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 내 삶의 주도권을 드리는 거예요.

이제 마지막 남은 게 하나 있습니다. 내가 사업하고 내가 공부하고 내가 살아가는데 성령이 나를 도우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만 맞은 거예요. 물론 성령이 도우시지요. 그러나 온전한 생각은 아니에요. ? 잘못 생각했어요. 그게 아니고 내 안에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뜻대로 나를 이끌어가시는 거예요. 성령이 이끌어가시고 나는 따라가는 거예요. 그에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주도권을 내 주인 되신 성령께 내어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일어날 때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새 날을 주셨으니 나를 인도해주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회사에서는 하나님, 이 회사의 사장과 회장은 제가 아니고 하나님 아닙니까? 성령님 아닙니까? 오늘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좋은 거래처를 만나게 하시고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잘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사업이 잘 일어나서 돈도 많이 벌게 해주시고 같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줄 수 있게 하시고 이 회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과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제가 지난 성금요일에 설교를 하는 중에 김진홍 목사님 이야기를 잠깐 드렸어요. 그분이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 70년대 유신 시절에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간척지로 들어가 공동체를 시작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가난을 못 이겨 몰려온 사람들, 배우지 못한 그 사람들,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 쉽겠어요? 그 사람들을 잘 살게 하려고 몸부림치면서 호주에서 젖소를 들여오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일어나면서 온민들이 같이 돈을 투자해 젖소를 분양 받기로 했는데 받지 못한 사람들이 생긴 거예요. 그러자 어제까지는 목사님 하고 따랐던 사람들이 돈을 잃게 되니까 눈이 다 뒤집혀버렸어요. 빚쟁이들이 되어서 예배를 방해하는 거예요. 막 괴롭히는 거예요. 드디어 목사님을 동네 한복판에 끌고 나와 가지고 옷을 벗기는 거예요. 막 조롱을 하는 거예요. 하나씩 하나씩 다 벗겼어요. 이제 팬티만 남았어요. 그걸 막 사정 없이 끌어내리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하도 오래 전에 그 얘기를 읽어가지고 거기서 헷갈렸어요. 제가 지난 금요일에는 벗겼다그랬는데 얘기해놓고 나서 진짜 벗겼던가 싶어 도서실에서 책을 찾아 다시 읽었어요. ‘그게 어느 대목에 있더라? 그걸 찾으려니 아예 처음부터 다시 읽자이틀 동안 그걸 꼬박 읽었어요. ‘벗기지 않았어요’. 정정합니다. 막 벗기려 그랬더니 그 옆에 있던 사람이 형님, 그건 좀 너무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팬티는 남겨놨어요.

그러나 말이지요. 그게 뭡니까? 김 목사님이 자살하려고 그랬어요. 하도 기가 막혀서. 내가 당신들을 위하여 10여 년 젊음을 다 바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거 손해 봤다고 눈이 다 뒤집혀 가지고 이런 수치와 모욕을 주니 그 사람들에게도 화가 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간척지 제방 둑에 올라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죽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그거는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간 거예요. 방에 들어가 담요를 가지고 창문도 막고 방문도 막고 집사님한테 나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여기서 죽든지 살든지 할 테니까 절대로 나를 부르지 말라고 당부해놓고서는 통곡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 이게 뭡니까?’ 1주일이 흘렀어요. 그런데 집사님이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을 꼭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이 왔습니다.” “아무도 만날 수 없어요. 날 부르지 말아요.” “아니요, 서울에서 어떤 여자분이 왔는데 꼭 목사님을 만나서 전할 말씀이 있답니다.” 지금 나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웬 여자가 나타나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필요 없어요. 다음에 오시라고 그래요.” “아니요, 꼭 만나야 된답니다.” 밖에서 소곤소곤하더니 어떤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목사님, 하나님이 저에게 목사님에게 꼭 이 말씀을 전하라고 했는데요. 로마서 8 12, 13절을 꼭 읽으시래요.” 화가 나는 거예요. 귀신 앞에서 머리를 푸나? 목사한테 와서 성경 어느 대목을 읽으라니 무슨 이런 기분 나쁜 일이 있나? 그러면서도 읽으라는데 안 읽을 순 없어서 컴컴한데 불을 밝혀 읽었어요. 로마서 8 12, 13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이 말씀을 듣고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내가 농민들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젖소 사들이고 뭐하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소홀히 했구나! 수요예배 때도 너무 바쁘면 연락해서 모인 사람들끼리 기도하고 마치고 가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 내가 저들의 육신의 배를 채워주려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지 못했구나!’

그때 1 4천만 원의 빚이 있었거든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니 , 이 모든 것 다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는구나!’ 담요 다 걷어 내리고 문을 활짝 열고 나왔어요. 그 다음 주 예배가 어떻게 되었겠어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환한 얼굴로 예배를 드리니까 뒷자리에 모여 있던 빚쟁이들이 얼굴이 밝아진 걸 보니까 일이 잘되는 모양이네. 목사님이 잘된다면 우리도 잘되겠지. 그 동안 괴롭힌 거 미안합니다.” 하고 다 물러갔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주셨어요.

여러분, 70년대에 청계천 빈민들이 어떤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뜻을 모아서 이런 변화를 이루었다면 우리 교회 식구들이 마음만 모으고 뜻만 모은다면 도대체 못할 일이 무엇이냐? 이 책임은 나에게 있구나! 내가 눈이 멀었구나! 내가 너무나 어리석었구나! 내가 너무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살았구나! 우리가 이곳에 와서 일하고 사는 것은 다 하나님이 부르신 거예요.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그걸 놓쳐선 안 돼요. 은사를 체험하는 것도 성령의 은혜지만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한인사회 속에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보고 나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셔요. 부활은 다른 거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이 놀라운 약속을 붙들고 새로운 맘으로 성령을 인정하고 순종하고 따라 나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 자신과 가정과 기업과 자녀와 한인사회에 놀랍게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