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23 성전재건(행 3:1-10)
성경본문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여러분 세계의 중심은 어디입니까? 중국사람들은 아예 나라이름을 중국이라고 했어요. 자기네가 중심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자기네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다 오랑캐예요. 오랑캐도 종류별로 많아요. 동이서융(東夷西戎) 남만북적(南蠻北狄) 다 구분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만 있지 않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 그랬어요. 2002년 월드컵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와 명칭이 쓰여졌는데 처음엔 사실 좀 어색했어요. '대한'이라 그건 '나라 한'자 거든요. 사전을 뒤져보니까 그 의미는 말이에요. '징기스칸' 할 때 '칸'은 왕이라는 뜻이거든요. 우리가 왜 오랑캐냐 이거죠. '우리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다' 오히려 중국을 향해서 '오랑캐' 라고 부르는 그런 나라가 된 것이죠. 사실 오늘날 오랑캐는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끼여 있던 여진 만주족으로 쓰여지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니요. "세계중심은 이스라엘이요, 이스라엘 중심은 예루살렘이요,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이다. 그것은 지구의 배꼽이다." 이렇게 말해요. 세계지도를 보면 어느 나라나 다 자기나라를 한복판에 딱 그리고 있어요. 그래서 딱 궁금해요. 저 호주라든지 저 아이슬랜드 이런 나라들은 세계지도를 어떻게 그릴런지 모르겠어요. 예루살렘 성전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야산 바로 거기가 예루살렘이지요. 훗날 다윗이 그 후대에 하나님이 성전을 짓기를 원하고 그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또 그 성전이 무너진 이후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스룹바벨 성전을 더 화려하게 확장하고 개축하고 넓혀서 헤롯이 헤롯성전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2,000년 전 역사 속에 로마에서 유대가 멸망 당하고 흩어지면서 역사가 흘러서 그 자리에는 지금은 이슬람 사람들이 황금사원을 세웠어요. 그래서 오늘 예루살렘이 있던 성전자리는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서로 만나는 교차점이에요. 그래서 '세계의 종말과 집결되어 있는 그런 결정적인 의미를 안고 있는 장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 속에 성전의 진실한 모습이 담겨져 있어요. 성경을 읽어 보았습니까? 노래하며 춤추며 기뻐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그러면서 한결같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구원을 베푸셨다' 이런 고백이 있는 여기가 세계중심 이에요. 어떤 객관적 지리적 그런 중심도 있겠습니다만 그 본래의 의미는 하나님이 구원을 행하시는 자리가 오늘 세계의 중심이고 그 자리에 함께하는 그 사람이 기쁨을 맛보는 것이지요. 성전은 하나님이 인생들을 향하여 베푸시는 구원 역사의 중심입니다. 누가복음만 하더라도 첫 대목을 읽어보니 성전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샤가랴 제사장으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 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제자들이 성전에서 늘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했다' 하면서 사도행전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성전의 의미는 그런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일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보고 있다. 어제 여러분 일 안하고 축구하는 거 보셨어요? 저는 어디서 봐야 될지 찾다 포기하고 자다가 일어 났습니다만 참 잠재의식이 무서워요. 아침에 딱 깨는 순간 '어떻게 됐을까?' 왜 그러냐면 목사로서 중요하거든요. 졌다 하면 기분 나쁘다고 교회에 안 나오시거든요. 그런데 "이겼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축구라는 거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이 주일 새벽에 축구를 했으니 이겼다 하니까 어쩔 수 없어요. '다들 환한 얼굴로 나오겠구나. 그 기쁨을 서로 나누고 싶어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중반의 아들이 주일 아침에 시름을 하고 있어요. 아들이 안 일어나는 거예요. "뭐하는 거야? 아범!빨리 가야지." 꼼짝도 안해요. 참다못해 어머니가 말이지요. 이불을 걷습니다. "뭐하는데? 빨리 일어나야지" 그랬더니 아들이 이불을 뚤뚤 말아가지고 안 일어나면서 못일어난다는 거예요. "아니 왜 못일어난다는 거야. 빨리 교회 가야지." "어머니, 내가 일어날 수 없는 이유 세가지가 있어요. 좀 들어보세요. 첫째는 난 너무 피곤해요. 오늘은 좀 쉬어야겠어요. 두 번째로 교회 가보세요. 장로님 기도하는 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걸 어떻게 듣고 있어요. 세 번째 찬양대의 못하는 찬양을 어떻게 들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야기 합니다. "아범, 내 얘기 좀 들어봐 아범이 교회를 갈 세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는 교회 가서 예배 드려야 하는 건 하나님의 명령이야. 말씀을 지켜야지. 두 번째는 교회를 가서 우리는 그저 사람 만나는 거 아니야. 하나님 바라보고 예배하는 거 아니야.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야. 아범이 담임 목사잖아 빨리 가야지." 이게 현실 이예요 여러분. 여기 성전을 보세요. '기뻐하며 노래하며 춤추며' 원래 예루살렘 성전에 채찍을 드셨잖아요. 왜 그랬어요? 끝없이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가지고 나오고 또 성전세는 반드시 당시에 통용되는 로마화폐를 써선 안되고 유대화폐를 써야 했기 때문에 환전을 해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성전이 장터가 되어 버렸어요. 제사장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이용해서 장사를 했어요. 성전 안에서 파는 그런 희생제물만 합격점을 주었어요. 그리고 수수료를 많이 받고 환전해 주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펼쳐야 할 성전에서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는 통로로 사용했던 거지요.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셨던 그런데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경험하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제자들이 성전에 나아가면서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성전을 시장터로 만들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일으켜 놓은 거예요. 그러므로 말미암아 장터에서 돈바꾸는 것에 눈이 팔려있던 사람들이 모두다 끌려 나와서 "지금 우리 가운데 무너진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러니까 베드로가 말하지 않습니까? "이게 내 권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으로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왕이 46년에 걸쳐서 계속해서 보수하고 개축을 했어요. 원래 헤롯이 유대를 다스리지만 그 사람은 유대 사람이 아니거든요. 애돔사람 이예요. 유대인이 멸시하는 이방인이었어요. 자기의 그런 출생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 성전에 유대사람들이 생명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 성전을 오랫동안 건축해 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모양은 바꾸었지만 그 안에 상한 마음과 시장터 같은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새로운 성전을 일으키리라."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이 말은 그 당시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46년 동안 지어진 성전을 네가 어떻게 사흘 만에 다시 짓는다는 말이냐? 성전을 모독했다." 라고 해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만 성전의 원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서 저에게 감사하고 노래하는 것이죠.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를 가지고 나아 갔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단 한번에 영원한 제사로 다 죄를 해결하시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언제든지 성전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대면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 또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를 힘입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가 이제 발견한 예수 그리스도를 너에게 주노라." 여러분 이게 교회를 가야 하는 이유예요. 결국 구약의 성전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그 사건으로 인해서 교회로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배를 나올 때마다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를 가지고 오지 않아요. 이젠 그렇게 하지 않아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한번에 영원한 제사를 이루사 우리의 희생 제물이 되시고 모든 것을 다 이제는 오직 예수 이름으로 나와서 그를 찬양하고 그의 말씀을 들으며 감사하는 거예요. 물론 예배에 헌금 하지요.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거지요. 그러므로 오늘의 이 놀라운 성전에 기쁨이 넘치는 이유는 무엇이냐? 1절에 보니까 '제 구 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일어난 사건이었어요.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했어요. '삼시, 육시, 구시' 우리시간으로 아침 9시, 낮 12시, 오후 3시에 기도한 거예요. 오후 3시 가장 피곤하고 일로 인해 한참 어려운 시간에도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 했다는 거지요. 이 기도의 일상과 신앙생활은 일상생활이에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잖아요.
제가 며칠 전에 문득 우리나라의 국무총리가 누구인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국무총리가 누구더라?' 얼굴도 안 떠오르는 거예요. '누구지? ' 할 수 없어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쳐보니까 국무총리의 양력이 나오니 '아, 이분이었구나!' 그분에게는 참 죄송한 말이지만은 떠오르지 않는 것 보니까 실세는 아닌 것 같아요. 실세였다면 왜 떠오르지 않았겠어요? 잡지에 실리고 서로 밀고 당기고 한다며 한인잡지에 매일 나올텐데 말이에요. 그런 이야기가 없는 조용한 분인 것 같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실세가 있어요. 교회에서 직분이 높은 사람이 실세 아니에요. 그렇게 알고 있다면 착각이에요. 하나님의 실세는 누구냐?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하는 그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끗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 이예요.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하루의 모든 일상생활 속에 늘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에요. 그게 성경의 증언이에요. 성경은 세상적으로 국무총리가 실세라고 이야기 하지 않아요. 국무총리일수도 있어요. 기도하는 국무총리라면. 기도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실세에요.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부어주시겠다고 모든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 실세에요. 누가 행복한 사람이냐?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고백하고 기도하고 응답 받고 그 힘으로 사는 사람이 실세예요. 그 은혜가 없으면 기업이 운행될 수 없어요. 그 은혜가 없으면 가정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어요. 벌써 사도행전 3장 첫 대목에 제 구 시 기도시간에 나아가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이 맥락을 쭈욱 읽어보면 4장 마지막 절에 많은 교회 성도들이 함께 이 사건을 전해 듣고는 합심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이 체험했던 성경의 내 이야기를 듣고 합심해서 기도할 때 모여있는 모든 무리 가운데 성령의 은혜가 있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꼭 내가 받는 은혜만 은혜가 아니에요. 어떻게 세상 살아가면서 꼭 내가 경험하는 것만 가지고 있겠어요? 눈을 열고 귀를 열어서 모든 사람이 경험하고 모든 사람이 체험했던 것을 나에게 간접경험으로써 유익으로 삼아야죠. 베드로와 요한이 체험했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함께 기도할 때 모두가 다같이 은혜를 받았다. 이게 교회의 은총이요, 교회의 비밀이요. 구역으로 모이는 것은 저 사람의 기도제목을 내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기도했는데 저 사람이 응답 받았다 라고 하는 것은 그 기도에 참여한 나도 같이 응답 받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은 절대 혼자 못합니다. 더불어 같이 하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로 묶어 주신 거예요.
최고의 지혜자였던 솔로몬은 전도서 7장 12절에 '형통할 때에는 기뻐하고 곤고할 때에는 생각하라' 그랬어요. '생각하라' 기도하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기도 외에 또 하나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나를 위하여 여러분 기도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므로." 휴전선에서 싸우는 것만이 싸우는 게 아니에요. 후방에 있는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그걸 가지고 국방비에 세금을 내고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1960년에 이승만 대통령 때 일화를 아세요? 이승만 대통령 때 북한이 재일동포를 북송 시키기 시작했잖아요. 이승만 대통령이 너무나 분노했어요. '우리 국민들을 저 북한으로 끌고 가다니' 그러나 일본하고 한국의 외교관계가 그때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가지고 국방장관을 부르잖아요. 그래가지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임자가 나를 도와주게나. 내가 이렇게 할 것이네. 그리고 반공포로를 석방하듯이 한번 큰 사건을 터뜨려 가지고…" 국방장관이 말리지 않습니까? "각하, 그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제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보고를 드리자면 만약 전쟁이 난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탄약은 단 하루치밖에 없습니다." 하루 전쟁하고 나면 다음날 싸울 수가 없어요. 그게 우리의 현실이었단 말이에요. 받은바 은혜가 있을 때 우리가 현장에 나가는 선교사들을 기도로 응원하는 거예요. 또 우리 각자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그것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한국의 기독교 역사 속에 1907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1907년 고종이 강제로 쫓겨난 해예요.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 당한 해에요. 한국이 일본에 의해서 해체되는 때였어요. 드디어 1910년에 나라 간판을 내리는 거지요. 1907년은 정말 비극적인 해였어요. 의병운동도 있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기독교 역사 속에 보면 평양대부흥 운동이 있었어요. 이 땅에 들어온 복음이 싹을 틔우다가 1907년에 갑자기 꽃을 피우듯이 막 만개했어요. 그 쓰러져가는 나라와 아픔을 감당할 길 없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위로하시고 새로운 회개와 성령의 은혜를 회복하고 비록 나라를 잃어 버릴지라도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일어나는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씨앗은 기록에 의하면 '1903년 하비라고 하는 감리교 의사 선교사의 회개로부터 시작됐다.' 그 하비라고 하는 의사 선교사가 초청을 받았어요. "원산에 있는 여자 선교사들 몇 사람이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데 와서 우리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서 그분이 갔어요. 그리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펴고 말씀을 읽는데 하비 선교사가 지난날 자기의 선교가 얼마나 어그러지고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성령의 감동 속에서 깨닫고 고백하게 되었어요. '내가 이렇게 선교를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이러이러한 실수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노라. 내가 교만했노라.' 회개했어요. 그런데 놀랍게 그 낮아진 하디의 고백과 회개를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셨어요. 여 선교사 전부도 은혜를 받았어요. 거기서부터 시작된 불꽃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그게 평양대부흥 운동이 된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사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살아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일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오늘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함께 일한다.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이 일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므로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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