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00725 끝까지 든든하게(고전 1:1-9)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0. 09:27

 

100725 끝까지 든든하게 (고전 1:1-9)

성경본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언젠가 늦은 밤까지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안방에 들어가 자려고 할 때, 먼저 자는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캄캄한 방을 대충 짐작으로 더듬으며 다가갔습니다. 갑자기 이마가 쿵! 하고 무엇엔가 부딪쳤습니다. 알고 보니 벽이었어요. 익숙한 방이어서 아직 벽과 이만큼 거리가 있으려니 했는데 아니었어요. 더 조심하지 않았다면 머리가 깨졌을 거예요. 만약 스위치를 켰다면 아예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스위치를 올렸다면 어둠은 한 순간에 물러가고 대낮같이 환해졌을 거예요.

<스위치>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의 요점은 ‘성공적인 결과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이성이 움직이는 시스템과 감성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다. 감성이 기쁨과 슬픔 같은 본능적 표현이라면 이성은 사물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능이죠. 그래서 이성과 감성의 역할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큰 코끼리와 코끼리 등 위에 올라 앉은 기수와 같다. 기수가 코끼리를 이끌어 간다고 하지만 기수에 비해 코끼리가 너무 커요. 기수가 코끼리를 잘 다루는 듯하지만 종종 둘의 의견이 충돌하면 영락없이 코끼리가 고집하는 대로 가는 게 현실이죠. 그러므로 기수와 코끼리 모두에게 각각 맞는 해결책을 제시할 때 둘은 하나가 되어서 조화를 이루어 간다. 기수의 역할을 하는 이성은 항상 뭔가 뚜렷한 방향을 제시할 때 움직여요. 방향이 모호할 때 사람들은 따르기를 거부하죠. 명확한 비전 제시가 필요한 것이죠. 반면에 코끼리, 즉 우리의 감성은 동기가 부여될 때 끓어오르고 움직이게 되죠.

그런 점에서 성경 말씀은 우리의 이성과 감성을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이에요. 시편 119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는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셨어요.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도 ‘고린도의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해요.

고린도 교회는 뜨거운 교회였지만 문제도 많은 교회였어요.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통해 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허물이 많은 문제투성이 교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하는 고백을 붙들어야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말하는가? 바울 자신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자였어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나를 발견하게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구나 고백을 하는 거예요. 부르심이 있어요. 또 ‘하나님의 교회’라고 표현했어요, 사람들이 모여 일을 계획하고 뜻을 모으고 힘을 모읍니다. 그러나 우리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정도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예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날마다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있다고 하는 것이죠.

<세이브 더 칠드런 Save the Children>이라는 아동구호 단체가 있어요. 1990년 제리 스터닌을 리더로 하는 팀이 베트남 정부의 요청을 받아 베트남에 들어 갑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베트남 빈민 가정의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그들이 도착했을 때 정부 관리들이 그들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오셨는데 과연 이런 인력을 가지고 무엇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6개월 안에 뭔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과제를 받은 거예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베트남 빈민가정의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당시 베트남의 위생시설은 형편없고 깨끗한 물도 구하기 어렵고 재정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상황은 아주 열악해요. 과연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한 다음에 아이들의 건강을 개선하려 한다면 아마 수십 년 세월이 걸려야 할 거예요. 과연 어떻게 할까?

그들은 문제를 이렇게 풀었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한 아이들이 있는가? 건강한 아이들이 있어요. 그들의 식생활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니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들은 다른 가정의 아이들과 똑같은 양을 먹지만 네 번에 나누어서 먹더라는 거예요. 영양실조에 걸려 위 기능이 약해진 아이들에게는 하루 두 번 식사는 무리라는 것이죠. 네 번으로 나누어 먹이니까 소화에 도움이 되더라는 것이죠. 또 그들은 논에서 새우, 게 같은 것을 잡아다가 먹고, 또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구마 잎 같은 것을 따다가 밥에 비벼서 먹더라는 것이죠. 주위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을 먹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죠. 그래서 이들은 이 식생활 모델을 가지고 영양실조 아동 가정을 열 집을 묶어, 같이 모여서 고구마 잎을 따오고 새우, 작은 게를 잡아오게 하고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게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죠. 6개월 만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문제를 들여다 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이성은 그것만 들여다 보려고 해요.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서 열악한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델을 찾아 그것을 추구하라는 것이죠

예수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 담배 다 끊고 난 후에 예수 믿겠습니다.  하는 분들, 순서가 틀린 거예요. 그게 아니네요. 일단 먼저 시작하는 거예요.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앙은 예배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거예요. 듣고 기도하는 거예요. 내 상황과 환경은 지금 내 손으로 다 해결되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는 거에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상황 속에서도 건강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를 모델로 해서 배우고 있느냐 하는 것이에요. 영양실조 아동 가정을 열 집씩 묶어서 같이 식사하게 했다고 하잖았습니까? 바로 그래서 구역예배가 있는 것이죠. 다 연약하고 허물이 있지만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오늘 저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우리가 같이 은혜를 나누는 것이고, 또 어느 한 가정의 문제를 놓고 같이 기도하므로 같이 응답을 받는 것이죠.

2007년도에 미국에서 호텔의 청소원들을 조사했습니다. 그들의 운동 습관을 조사해 보니까 대상자의 67%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다. 1/3은 아예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A그룹에는 운동을 왜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거기에 덧붙여 청소의 운동효과를 가르쳐주었어요. 다른 B그룹은 운동의 필요성만 가르쳐주었어요. 한달 후에 그들의 체중을 달아 보니까 A그룹에서는 체중이 평균 0.8 Kg 감소했어요. 그러나 그저 운동의 효과만 가르쳐준 B그룹은 체중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에요. 뭘 말하는 겁니까? 내가 하는 일에 운동의 효과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생각만으로도 운동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거예요. 자기 일이 운동과 직접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일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하는 거예요.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간혹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 쿠폰을 주고, 또 몇 개를 모으면 사은품을 주지 않습니까? 이런 조사를 했습니다. 빈칸 8개에 도장을 다 받으면 사은품을 주겠다. 그런데 어떤 주유소에서 빈칸 10개를 만들고 도장 2개를 찍어서 나누어 주었더니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빈칸을 다 채워 사은품을 받았다는 것이죠. ‘이미 도장이 2개씩이나 찍혔다’ 이미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오늘 사도바울은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먼저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 주일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돼요. 이미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지난 주일에 나왔는데 이번 주일에 또 나왔다, 이건 엄청난 거예요. 안 나올 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또 나왔다, 이것은 한걸음 발전한 거예요 하나님도 일하셔서 우리에게 그런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사람이 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 원하지만 그거 참 어렵잖아요. 여러분, 수준 높은 유머를 하나 하겠습니다. 잘 알아 맞춰보세요. 어느 회사에서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서 실적이 우수한 사람에게 혼자 가는 하와이 여행 특전을 주겠다.’ 그런데 2등상은 뭐냐 하면 부부가 같이 가는 것이 2등이에요. 혼자 갔다 오는 게 1등이고, 부부동반이 2등이에요. 우리의 현실을 살짝 비틀었어요.

부부가 살다 보면 다툴 때가 있지요. 그런 경우 <인간극장>이라든지 <동행>이라는 프로를 봅니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가 난 채로 묵묵히 보고 있다 보면 ‘아, 내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는가? 얼마나 받은 것이 많은데 이렇게 인생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단 말인가’ 회개하게 됩니다. 이만큼 사는 거 하나님의 은혜예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예요.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길로 나가야 하는 것이죠.

또 이런 실험이 있어요. 영화 구경을 할 때 흔히 팝콘을 사서 먹잖아요. 어떤 경우에 팝콘을 많이 먹는가? 하는 것을 연구했더니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어요. 공짜로 영화를 다 보게 해주고 팝콘을 다 나누어 주었는데 한 그룹은 큰 그릇에 담아 주고 다른 그룹은 그보다 작은 그릇에 담아 주었더니 재밌게도 큰 그릇에 담아준 경우에 팝콘을 많이 먹더라는 것이죠. ‘그가 어떤 사람이냐?’ 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환경도 무시해서는 안되죠. 환경을 고쳐주라. 상황을 바꿔주라. 혹시 여러분, 뚱뚱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조심해야 해요. 뚱뚱한 사람을 친구로 가진 사람들은 더불어 뚱뚱해 질 확률이 일반인보다 3배나 높대요. 사람은 보고 배우게 되어 있어요. 모방하게 되어 있어요. 신앙도 전염이 돼요. 예수 잘 믿는 좋은 방법은 예수 잘 믿는 사람과 친구하는 거예요.

여러분 ‘정순덕’을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18살에 시집간 지리산 기슭의 아낙네예요. 1950년 전쟁 통에 남편이 지리산 빨치산에 이끌려 지리산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기다리다 못해 남편을 찾아서 19살에 지리산으로 들어갔어요.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빨치산이 되어 있었어요. 몇 달 후에 남편이 전사했어요. 남편 대신에 총을 잡았어요. 전쟁은 끝났건만 지리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12번이나 보냈어요. 드디어 1963년 마지막 빨치산으로 붙들렸어요. 다리에 총을 맞아 부상당한 채로 붙들렸어요. 그리고 감옥에서 23년을 살았어요. 몇 해 전에 죽었어요. 그가 지독한 공산주의자여서 그랬을까요? 냉혹한 운명에 휘둘려 그런 참혹한 고난을 겪었어요.

여러분, 우리는 행운아예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거예요.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끝까지 든든하게 지키시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계속 교제해 나가는 거에요. 그럴 때 아름다운 인생을 이루어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 똑똑한 사람들을 부르신 것도 아니고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부른 것도 아니에요. 허물뿐인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바로 그 사실에 큰 은혜를 받아요. 배신하고 떨어져 나간 가룟유다 외에는 어떤 제자라도 한번 부른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거예요.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요.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정말 마음을 탁 때리는 글을 읽었어요. 진정 인생의 성공이 무엇이냐? 성공에 목말라 하는 현대인들에게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날마다 순종하는 것, 그것이 성공이다.’ 요한복음 8 29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날마다 행하므로 나를 버려두지 아니하셨다.’ 여러분, 이게 진정한 성공입니다. 이런 고백으로 오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