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28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 (행 13:1-5)
성경본문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얼마 전에 무궁화 김우제 회장 모친의 90세 생신잔치가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그 어머님은 우리 노인대학의 모범생이시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90이시지만 허리만 굽으셨지 얼마나 생각도 반듯하시고 말씀도 바르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여러 교민들이 함께 모여 아주 풍성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그 어머님 성함이 ‘천순복’, 이름이 참 기가 막히게 성경적이고 좋구나. 하늘에 순복한다, 순종하고 복종한다, 그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제가 옆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제 곁에 다가오셔서 저를 툭 치시더라고요. 보니까 코린도 회장님이에요. 한잔 하셨더라고요. 맥주 두 잔을 들고 오셨는데 하나는 가득 채워서 자기를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서는 반 컵만 채워오셨어요. “아, 이렇게 좋은 날 목사님도 한 잔 하셔야죠” 그러시더라고요. 그 반 컵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단 둘이라면 마시겠는데 오늘은 조금 양해해주시고 물잔으로 대신합니다” 하고 건배를 했습니다. 제 옆에 앉으시면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자기는 우리교회가 마음에 든다고요. 그런데 왜 아직 안 나오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서 <한마음의 은혜>를 자기도 간간이 보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 속에 구체적으로 더 가깝게 이야기하는 게 설득력이 있고 마음에 든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회장님, 코린도 그룹도 이미 40년이 넘었는데 이제 더 미루지 마시고 빨리 코린도 40년 역사를 기록하십시오.” 그랬더니 기록할 게 뭐가 있냐고, 한 게 뭐가 있느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아니 왜 그렇지 않습니까? 기록해서 남겨두어야지요.” 그랬더니 “IMF 때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쓰러지고 넘어졌느냐.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이건 첫째도 운이요, 둘째도 운이요, 셋째도 운이다. 물론 교회 식으로 표현한다면 첫째도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도 하나님의 은혜요, 셋째도 하나님의 은혜겠지요.” 저는 그런 짧은 대화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한인사회와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분도 우리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리더인데 맥주를 들고 오기는 했지만 선뜻 다가와서 열린 대화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어느 미국 교회를 방문했다가 아주 인상적인 표어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일치(Unity)를, 비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다양성(Diversity)을, 그리고 모든 섬김과 봉사는 사랑(Charity)으로’ 제 마음에 탁 들어왔어요. ‘그래, 맞아. 저게 바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구나.’ 그 모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출발은 사도행전 11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핍박이 일어나서 스데반이 순교 당합니다. 성도들이 흩어집니다. 그 흩어진 자들이 점점 퍼져나가서 안디옥에까지 가게 됐습니다. 여기서 흩어진 자들을 헬라어로 ‘디아스포라’라고 말해요. 그래서 우리 해외 한인 교회를 ‘디아스포라’ 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한마음교회는 영어로 표기한다면 ‘Hanmaum Korean Diaspora Community’ 이렇게 표기를 합니다. 우리는 ‘디아스포라’예요. 흩어진 자들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위축되지 아니하고 그 곳에서 계속 복음을 전한 거예요. 첫째는 유대인들에게 전했어요. 자기들이 유대인들이니까. 그런데 개중에 유대인이면서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서 자기들과는 다른 헬라 사람들,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마음에 역사하사 그들도 복음을 듣고 돌아왔다. 그래서 유대인과 헬라인들, 또 그 밖에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서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유대교는 철저하게 닫혀있습니다. 절대 전도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오직 자기 민족의 하나님이에요. 다른 자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에요. 구원과는 관계도 없고 구원받을 필요도 없는 존재들이라고 이해해요. 그러나 유대인이었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셨어요.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백성에게 은혜를 펼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의 세계죠. 그리고 그 복음을 따라가는 우리들이 바로 기독교인이 아니겠습니까. 온 세상 모든 민족을 향해 열려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안디옥 교회를 시작한 지도자 바나바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나바가 열려 있는 사람이었어요. 바나바는 유대인이면서도 불구하고 구브로(키프러스, 사이프러스)에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다문화를 경험한 사람이고 다언어를 경험한 사람이죠. 그리고 예루살렘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에 주목한 사람이에요. 알고 보면 바나바는 마가요한의 외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 은혜에 같이 뛰어 들었어요.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지도자예요. 원래 바나바는 본명이 아니에요. 본명은 요셉이에요. 바나바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에요. 얼마나 사람들을 잘 섬기는지, Peace Maker라는 말이죠.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맡으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부탁을 받고 안디옥에 내려가서 그들을 돌보게 됩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기에 사울을 찾아갑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 동참했던 사울,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사울, 고향으로 돌아가 있는 사울, 그 먼 곳까지 찾아가서 사울을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함께 사역한다, 동역하는 거죠. 팀 사역을 하는 거죠. 하나의 팀을 이루어서 사역하는 거죠. 그랬을 때 그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그 때부터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간 신목사님과 4년 동안 동역을 했습니다. 박전도사님과는 2년이 채 못됩니다만 동역을 했습니다. 또 꼭 교역자들만 동역을 하는 게 아니라 알고 보면 제가 여러분과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는 거죠. 우리 교회 안팎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노인대학을 위해 봉사자들이 늘 수고하셔요. 사실 저는 잘 들여다보지 않아요. 제가 한 번 느낀 적이 있어요. 처음에 노인 어르신들하고 점심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분들하고 같이 옆에 앉아서 밥을 먹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지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왜 그 자리에만 앉아서 밥을 먹느냐 이거죠. 내 옆에도 와서 앉아야지. 이렇게 매이면 안 되겠구나 해서 자리를 좀 멀리해서 제 자리를 정해두고 앉았습니다.
때로는 목사가 교회 청소를 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죠.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다 자기 일이 있는 거죠. 자기 일을 똑바로 하는 게 전체적인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거죠. 원래 목사는 선장과 같이 배가 나아갈 방향을 찾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죠. 그게 목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씀이 단순히 내게 주신 은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꿔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는 거죠. 좌표가 있는 거죠. 그것을 제시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일을 저 혼자 다 할 수 없어요. 고루고루 다 나누어서 하는 거예요. 철저하게 분업이 되어서 각자 책임을 지는 그런 구조로 나아가고 있어요. 팀 사역이죠.
또 하나는 안디옥 교회를 보니까 예루살렘에 아주 큰 흉년이 들었어요. 예루살렘 교회가 아주 큰 어려움에 빠졌어요. 그 소식을 듣고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모아서 헌금을 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교회 대표가 되어서 구호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는데, 마침 그때 예루살렘 교회가 헤롯 왕의 핍박을 받게 돼요.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아그립비 1세의 핍박을 받게 돼요. 사도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감옥에 들어가는 어려움 속에, 사도행전 12장을 보니까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베드로가 살아나는 놀라운 일들을 바나바와 사울이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안디옥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 것인가? 이런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셔서 교회를 일으켜 나가시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웃을 도우려고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더 놀라운 지혜를 부어주신 거죠. 사실 교회의 수준은 목사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를 비롯한 리더들은 항상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은 것을 깊이 있게 배우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죠.
저는 민수기 11장에 모세와 70인 장로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너무나 감동을 받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죠.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만나를 먹었는데 이제는 지겹다고. 애굽에서는 그래도 여러 가지 부추도 먹고 오이도 먹고 이것저것 먹었는데 여기는 밤낮 만나만 먹으니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니까 모세도 너무나 지쳤는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원망합니다. ‘하나님, 내가 저들을 낳았습니까?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다 나에게 안겨 주십니까?’ 너무 고통스러워서 모세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차라리 지금 나를 불러가 주십시오’라고 얘기했어요. 지도자의 어려움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발 양보를 하셨어요. 모세가 힘들긴 힘들었나 봐요, 양보를 하셨어요. ‘그러냐? 그러면 이렇게 하라. 너는 백성의 리더가 되는 70인 장로를 성막 앞으로 다 불러 모아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부어주었던 그 놀라운 성령의 은혜를 그들에게 부어주리라.’ 그래서 연락해서 다 불러 모은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같이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셨어요.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맛보는 순간 모두 다 한마음이 됐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두 사람이 안 왔어요. 심사가 뒤틀렸던 것 같아요. 불렀는데도 오지 않고 자기 장막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셨어요. 그래서 막 예언을 하고 난리가 난 거예요.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모세를 옆에서 보좌하던 여호수아가 ‘제가 가서 당장 금하겠습니다. 건방지게 왜 나오지도 않고.’ 그렇게 말할 때에 모세가 말합니다. ‘네가 누구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그게 진정 나를 위하는 것이냐? 아니,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살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같이 듣고 나아가야죠.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 갈 때에 함께 한 지도자들의 구성이 너무너무 다양했어요. 오늘 13장 1절에 보니까 안디옥 교회는 이런 교회라고 말해요. 선지자와 교사들이 있다. 선지자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에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에요. 교사들은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사람이에요. 그럴 때 조화가 이루어지는데 바나바가 있고,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니게르란 말은 사실은 니그로라는 말이에요. 흑인이라는 말이에요. 인종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또 구레네인 루기오, 구레네라고 하는 건 저 아프리카 리비아 북부 해안지역을 말하거든요. 지역을 넘어서서.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아주 신분이 높은 사람이죠. 신분을 넘어서서. 그리고 사울. 스데반을 죽이는 데 동참했던 자, 교회를 핍박했던 자. 과거를 묻지 않는단 말이에요. 교회가 열려 있어요. 간혹 교회가 잘못되면 서로 먼저 왔다, 늦게 왔다, 따지는 경우가 있어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걸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걸 인정하는 교회가 열려 있는 교회에요.
이런 자들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열려 있는 교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말이죠, 그저 다양해서만은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는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그게 뭐냐?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라고 하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죠.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평가 받는 칼 바르트 라고 하는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세 번 오신다. 첫째는 우리를 구원하러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 종말에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주로 오신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지금 교회에 그의 성령으로 오신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성령으로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손, 발, 귀, 입, 코처럼 지체가 되어서 온전히 합력하여 하나를 이루어 가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참 놀라운 표현들이 있습니다. 2절을 보니까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주를 섬겨 금식하기까지 하는 온전한 자세로 주님의 말씀에 집중할 때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도 기도하고 말씀을 들어야 되겠죠. 그랬더니 성령이 말씀하시는데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여러분, 교회는 사람들이 많은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오늘 여기 말씀하시는 것같이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시키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게 무엇인가?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 또 말씀에 집중해서 배우는 것,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가정을 돌보는 것, 우리의 일터를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지혜를 운영하는 것, 이게 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성령이 우리 가운데 응원하시는 일이지만 또 하나는, 우리 전체가 하나 되어서 자카르타의 2010년 오늘 현재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그 방향으로 우리가 초점을 같이 하고 나아가는 것이죠.
이 일을 위하여 일꾼을 구별하여 세우라. 그리고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하며 안수하고 그들을 파송한다. 그랬더니 그들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떠나가게 되었다.
해피 자카르타 팀과 우리 교회가 이제 분리 독립합니다. 해피 자카르타가 이곳 한인사회의 중심에서 교회의 연합활동을 하면서 여러 교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유익하게 하고, 특별히 방송과 문화와 음악과 청소년 신앙교육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우리는 당분간 별거하기로 하는 겁니다. 분리독립 시키는 거죠. 자카르타 복음화를 위하여.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사는데 가장 살기 좋은 데가 자카르타라고 얘기합니다마는 교회 출석률이 10%도 안 돼요. 영적으로 보면 여기는 암흑천지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분리 독립을 하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니까 그 두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 하면 구브로에 가는데, 구브로가 어디냐 하면 바나바의 고향이잖아요. 바나바는 그 지역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잖아요. 필요를 알고 있잖아요. 거기에 복음을 가지고 가는데 어디를 가느냐 하면 유대인의 회당에 먼저 들어가는 거예요. 유대인의 회당이라는 건 뭐예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지만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시고 메시아이심을 모르는 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여기 자카르타에는, 한국에서는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기 와서 방학하고 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는 것입니다. 그게 순서예요.
하나님께서 한마음교회에 시간표를 주셨어요.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어요.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데 아무렇게나 살라고 하실 리가 없죠. 다 시간표가 있어요. 그걸 믿음으로 구하고 찾아야 돼요. 나의 시간표를 찾아야 돼요. 그래서 성경에는 시간의 개념이 두 가지에요. 하나는 ‘크로노스’, 크로노스라는 건 크로니클, 신문, 연대기적인 시간이에요. 1999년, 2000년, 2001년 하듯이 순서대로 움직여 나가는 시간이에요. 그러나 성경은 때때로 결정적인 시간을 얘기해요. 인생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시간을 얘기해요. ‘카이로스’, 때라는 말이에요. 내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간순간이 나에게는 카이로스예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에요. 여러분, 예배에 나올 때마다 기대를 가지고 나와야 돼요. 오늘 내가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를 가지고 나와야 돼요. 그게 그릇이에요.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어요. 더 세세하게 얘기하면 지난 주간에 있었던 중보기도집회도 하나님의 놀라운 시간표 속의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온 교우들에게 은혜를 고루고루 주셔서 얼굴을 밝게 하고 삶에 대한 소망을 주시는 시간이었어요. 이번 주 토요일부터 진행되는 아버지학교는 우리 남선교회와 남편분들을 위한 하나님의 시간표예요. 또 두 주 후 12월 마지막 주간에 있는 자카르타 Youth Kosta, 10대들을 위한 수련회는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시간표예요. 그리고 내년 1월 말에 있을 인도네시아-한인 연합중보기도집회, 인도네시아 교회에서 중보기도하는 사람들300명을 내고 한인교회에서 300명을 내어서 600명이 함께 기도합니다. 한인 선교 40주년, 한인 교회 40주년, 하나님 새 시대를 열어주시고 새 날을 허락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던 그 기도에 하나님이 상상을 초월해서 놀라운 일들을 펼치시는 거예요. 우리가 아시안게임 개막식이라든지 올림픽 개막식이나 월드컵 개막식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끔 아주 은밀하게 준비했다가 터뜨리잖아요. 그것보다 더 놀라운 사건을 하나님의 시간표를 좇아가는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작품을 기대하세요. 그리고 같이 참여하세요. 그래서 우리는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니 우리는 오직 순종하겠노라는 자세에 있어서 만큼은 Unity, 흔들림 없이 한 목소리 한마음으로 나아가야 돼요.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은 서로 달라요. 은사는 다르고, 직분이 달라요. 형편과 처지와 모든 것이 다 달라요. 서로를 존중하고 세워주며 격려하며 Diversity, 다양성을 인정하며 열려 있는 교회로 나아갈 때,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우리 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섬김과 봉사는 오직 사랑으로 Charity, 하나님의 사랑이 고루고루 흘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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