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14 행복한 거룩 (아 7:10-13)
성경본문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것 묵은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작년에 삼성전자의 매출은 136조, 영업이익은 11조였답니다. 그래서 100조, 10조 클럽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자와 IT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기업들의 총매출을 다 합해도 삼성전자가 세운 매출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더라고요. 136조는 엄청난 액수지요. 그 분야에서 세계 1 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이제까지의 전략은 미등(尾燈)전략입니다. 앞차의 꼬리등을 보면서 뒤쫓아 가는 전략, 그래서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입니다. 다른 회사의 제품을 분석해서 넣을 것은 더 넣고 뺄 것은 빼고, 그렇게 해서 새 제품을 만들어냈답니다. 뒤따라가기 전략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발 빠르게 현지화 시켜서 어느 한 제품을 그 시장에 내다 팔 때에 전 세계 공통적인 내용은 70%로 하고 그 지역에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춰서 30%를 보완한다, 이게 먹혔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제 1등이 되었으니 앞에는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창의력을 가지고 길을 개척해야 돼요. 이게 과제라는 거에요. 삼성전자는 제조업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제품을 잘 만들어 내지만 유연한 발상과 창의력은 부족하다는 거예요. 결국 애플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애플은 매출은 훨씬 적지만 상대적으로 수익은 훨씬 높다는 거예요.
저는 이 뉴스를 들으면서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똑같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흔히 교인이 많고 헌금이 많고 높은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교회, 이렇게 얘기해요. 또 세련된 이미지가 있으면 좋은 교회, 이렇게 얘기해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얘기 하지 않아요. 그렇게 보는 것은 육신적인 정체성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자본주의적 속성에 너무 깊이 물들어 있어요. 물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잘사는 거지요.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하도 경쟁하는 사회 속에 살다 보니 그런 겉모습으로 서로 견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 나아가려 한다면 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성실과 정직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걸 우리가 잘 알아요. 그야말로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알고, 하늘도 알고, 땅이 아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영적인 패배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해도 해도 안 되는구나' 라고 하는 좌절을 가지게 되고 그게 더 지나치면 자책하고 정죄감을 가지게 돼요. '나는 안돼 다른 사람은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어 나는 안돼' 이게 정죄감이에요. 제가 예전 대학생 시절에 교회에서 일을 맡기 시작했는데, 교회는 크든지 작든지 늘 일꾼이 모자라는 법이에요.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지치게 돼 있어요. 하면 할수록 더 목마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나름대로는 헌신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반쪽 짜리야 나는 위선자야' 라는 자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이게 바로 육신적인 정체성에 매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말 하나님이 내게서 찾으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지요. 근데 그걸 잘 몰라요.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유머가 있어요. 꼬마들은 떼쓰면 다 되는 줄 알아요. 꼬마들의 착각 이에요. 아가씨들, 지들은 절대 아줌마가 안 될 줄 알고 있어요. 남편들,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들은 밤낮 집에서 노는 줄 알고 있어요. 아줌마들, 화장하면 남들이 예쁘게 보는 줄 알고 있어요. 이거 다 착각이에요. 그러나 말이지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착각하면 큰일 나는 거예요. 이렇게 착각한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에요. 율법주의자들이에요. 자기의 노력과 헌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이게 해도 해도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어쩔 수 없이 이중인격자가 돼요.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은 무시해요.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 바로 자기에게 그런 모습이 있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그 앞에서는 그럴듯하게 보이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해도 해도 안되니까 적당히 합리화 해버려요.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 육신적인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영적인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브라함이 발견한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내 인생길을 앞서서 예비하시는 하나님, 대단한 발견이잖아요. 모세가 발견한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그 험한 광야길 속에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다윗이 발견한 하나님은 시편 23편 1절에 나와 있는 대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이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에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신앙은 이 한마디로 결정되는 거예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로 결정됩니다. 바리새인들이 발견한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명령하시니까 옷도 깨끗하게 몸도 정결하게 금식도 하고 구제도 하고 예배도 드리지마는 그들이 생각하는 거룩은 두려운 거룩이에요. 무서운 거룩이에요. 조금만 빗나가도 심판 당하고 진노가 임하는 거룩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얘기하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으로 비유하셨어요. 여러분 우리 삶에 즐거운 날들이 있잖아요. 빼어 놓을 수 없는 날이 결혼식이잖아요. 물론 숨겨놓은 애인을 두고 억지로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비참한 날이겠지만 제대로 결혼하는 사람이라면 그날이 제일 행복하잖아요. 제 결혼식을 돌이켜 보니까 그날은 참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어요. 그런데 결혼식 전날은 왠지 머리가 무거웠어요. 사실은 미안한 말이죠 남자들이 무엇을 준비하겠어요? 다 여자들이 준비하고 전 그때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준비할 것 없어요. 며칠 휴가를 내어서 그날 잠깐 서서 사진 찍고 또 일하러 가면 그만이지만 그것도 머리가 아파요. 내일 결혼한다는 생각에 왠지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퇴근길에 저 혼자 영화관에 가서 영화 한편을 보면서 머리를 식혔습니다. 브루스 브라더스<The Bruce Brothers>라는 코미디 영화를 한편 보고 나오니까 머리가 시원해지더라고요.
신랑, 신부가 결혼하는 날은 가장 행복한 날이잖아요. 예수님은 신앙생활을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는 기쁨으로 비유하셨어요. 예수님의 삶에 어려움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아무도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는 홀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어요. 그런 고난과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약속을 받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이해하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신앙생활은 이 같은 것이라고 소개해주신 거예요.
예수님의 하나님 이해는 어디서 왔느냐? 구약성경을 새롭게 읽으신 거예요. 사실 모든 답은 성경 안에 들어 있어요. 과학과 신앙이 다르지요. 과학이라는 것은 시대에 걸쳐 누적된 바탕 위에 또 하나를 쌓는 것이에요. 그러나 신앙은 달라요. 첫 사람 아담과 우리가 전혀 다르지 않아요. 문화와 사고방식이 달랐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이기에 속사람의 모습은 똑같아요. 욕망은 똑같아요. 갈망은 똑같아요. 아브라함이 발견한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다윗이 만났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새롭게 읽으셨던 성경이 뭐냐? 바로 오늘 이 말씀이에요. 아가(雅歌)의 말씀이에요. 여기 한 여인이 고백하고 있어요. '아,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었구나! 그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솔로몬 왕과 술람미의 여인과의 사랑이야기예요. 처음에 이 여인은 솔로몬 왕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지체 높은 왕이 낮고 보잘것없는 나를 왜 사랑하실까? 그 여인은 양을 치느라고 얼굴이 새까매졌어요. 친구들이 깜둥이라고 놀렸는데 놀랍게도 솔로몬왕은 그 여인을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나를 사랑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예쁜 여자들이 많은데 왜 나를 사랑하겠어 나는 낮고 천한 양치기인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어.' 그런데 솔로몬 왕이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사랑한 거예요. 드디어 이 여인이 왕의 사랑을 받아들여요. 왕이 자기를 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자기를 노리갯감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왕의 순수한 사랑을 발견했어요. 그러면서 오늘 고백하는 거예요. '그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그가 나를 뜨겁게 사랑하는구나!'
여러분 아세요? 1930년대에 세기의 로맨스가 있었잖아요. 영국의 에드워드 8세가 그 많은 여자 중에 한 미국여자를 좋아했어요. 심슨 부인이라는 여인을 좋아했는데 이혼녀였단 말이에요. 왕실에서 반대했어요. 영국왕실의 전통에 따르면 이혼한 여인은 왕비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고민하던 왕은 결국 왕관을 벗어 던지고 그 여인과 결혼했어요. 그런데 그 뒷얘기 아세요. 그 여자가 엄청나게 바가지를 긁었대요. 그러나 그건 결혼 이후의 일이고 둘이 사랑에 빠졌을 때 대영제국의 왕관을 벗어 내리고 그 여인과 사랑했어요. 여러분 그게 사랑이에요. 이 여인이 그걸 발견한 거예요. '왕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이제는 맘을 열어서 그 사랑을 받아들였어요. 그랬더니 왕이 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영적으로 신앙의 비밀을 깨닫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그거예요. 여기 할아버지들 계시잖아요. 물론 젊어서 딸과 아들을 얻었을 때도 얼마나 기뻤습니까? 저도 첫딸을 얻었을 때 일터에서 돌아오면 첫 번째 하는 일이 뭐냐 한참 동안 가만히 자고 있는 애를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하루의 피로가 사라져요. 참 신비한 거예요. 그런데 손주를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도 딸이 두 명인데 기도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시집을 가서 애도 좀 많이 낳아라. 제 삶에 새로운 장이 열릴 거예요. 여러분 이게 신앙이라는 거예요.
오늘이 설날이에요. 멀고 먼 고향 길을 찾느라 고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예전보다 더한 것 같아요. IMF이후 삶이 얼마나 빡빡해졌습니까. 이제는 부모님이 아니라 자기가 힘들어서라도 가는 거예요. 비록 차 안에서는 고생하지만 문제가 아니에요. 찌들리고 시달렸던 마음을 잠깐 풀어놓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유대인들에게도 설날이 있었어요. 그게 바로 유월절 이에요. 유월절이라는 것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한 사건이잖아요. 그들의 힘으로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애굽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인데 하나님이 저들을 구원하신 사건이에요.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명령하셨어요.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다. 내가 너희를 붙들어 주겠다. 오늘의 이 사건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고 기념하라.'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유월절을 지켜요. 무려 적어도 삼천 년 동안 유월절을 지켜온 거예요. 그때 뭘 먹느냐? 어린 양을 잡아서 구워 먹어요. 종살이의 쓰디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 일부러 쓴 나물을 먹어요. 또 맛없는 빵을 먹어요. 그렇게 하면서 유월절을 기억하는 거예요. 가끔 우리도 6.25를 잊어버리니까 주먹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우리가 이것 먹고 고생했다."고 말하면서 기억하라잖아요. 삼천 년 이상을 그렇게 기억하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는 말이 있어요. 지치고 힘들수록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습관이 우리를 지키는 거예요. 유월절에 한 주간 모여가지고 예배를 드려요. 우리는 명절에 흩어져 고향에 가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다 모여요.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유월절 예배를 드릴 때 읽는 성경이 아가예요. 두 남녀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를 유월절 기간에 읽는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불같이 뜨거운 젊은 남녀의 사랑 같은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요. 연애를 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구조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걸 경험해 봤어야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을 알지. 부모가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한사코 이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우기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살잖아요. 그리고 오늘까지 후회하고 있잖아요.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거예요. 그런데도 불평하는 건 철저한 이기주의요, 불신앙, 불순종 이에요. 남편이 십자가라고 말하고, 아내가 십자가라고 말하는 것 정확한 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지워주신 십자가예요. 그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믿음을 구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백 년 전에 영국과 미국에서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서 많은 젊은 사람들이 조선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아프리카로 선교를 나갔어요. 얼마나 불붙는 헌신이에요. 그런데 역시 사람인지라 다 한 번씩 넘어졌어요. 좌절하고 낙담하고 깨어지고 그 때 그런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 책이 있었어요. 선교사들의 수기를 읽다 보니까 한결같이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한나 스미스의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는 책이에요. 그 책의 요점은 이런 거예요. '복된 삶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런데 여러분 선물의 특징은 그걸 선물로 받아야 선물이에요. 저 사람은 선물로 주겠다는데 그걸 내가 왜 받아 하면서 안 받으면 그건 선물이 되지 못해요. 받아야 선물이 돼요. 그걸 받아드리는걸 믿음이라고 해요. 믿음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예요.
어저께 우리 J-엔젤스와 J-키즈 아이들이 명절이라고 저에게 세배를 했어요. 근데 제가 세배를 받아 보니까 세배 받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뭐라고 인사말을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 많은 아이들에게 하려니까 제가 창의력이 모자란다는 걸 느꼈는데 요즘 아이들이 집에서 제대로 못 배운것 같아요. 돈을 받는 것도 두 손으로 받는 법을 잘 몰라요. 제가 일일이 가르쳐 줄 수도 없고 난감하더라고요. 선물은 제대로 받을 때 선물이에요. 이게 믿음이에요. 그런데 흔히 우리가 '나의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믿음이 약해' 하는데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에요. 내 믿음이 크고 작고를 얘기 하지 마세요. 오직 내게 생명을 주시고 나의 삶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그 하나님은 신실하셔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좀 단순하게 믿으세요. 아무리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 이렇게 확인이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단순하게 믿으세요. 하나님은 약속대로 지키시는 거예요. 그분은 성실하신 분이에요. 그분은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에요. 열두 번도 더 변하는 여러분의 감정 위에 신앙을 얹으려고 하지 마세요. 날마다 변하는 환경에다가 신앙을 세우지 마세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위에 믿음을 얹어 놓으세요. 유혹이 오고 실패가 와서 넘어지잖아요. 사람은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럴 때 정당화 하지 마세요. 핑계를 남에게 돌리지 마세요. 그건 자기 책임 이에요. 그러나 그렇다고 또 낙심하고, 정죄하고, 포기하지 마세요. 다시 주님 앞에 일어나세요.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되는 거예요. 실패했으면 다시 한 번 일어나서 주님을 바라보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옛날에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가 유명했잖아요. 한나라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왕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태종 이방원이 권력을 쥐고 나서 셋째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왕권을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우기 위해서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은 다 제거했어요. 왕권을 넘보지 못하도록 처남 넷을 다 죽였어요. 그게 피눈물이잖아요. 이방원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내가 이 모든 악업을 지고 갈 테니 너는 부디 나라를 든든히 세워다오." 그게 왕의 눈물이에요.
다윗도 그래요. 다윗이 항상 승승장구 한 거 아니에요. 피눈물이 있었어요. 아들들끼리 서로 죽이고, 쿠데타가 일어나고, 강간사건이 일어나고, 비교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님만 바라본 거예요. 내가 잘하는 것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려고 하는 사람은 위선자예요.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주님을 부르며 나오는 것, 그게 신앙이에요. 믿음의 성장은 외양을 화려하게 하는데 있지 않아요. 사업은 될 때도 실패할 때도 있는 거예요. 부부는 싸울 때도 있는 거예요. 극단적으로는 깨질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게 신앙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부르셨으니, 이 놀라운 은총을 베풀었으니,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거예요. 거기에 놀라운 주의 은혜가 날마다 공급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절을 일 년에 구정, 추석 두 번만 주신 게 아니에요. 주일마다 명절을 허락해 주셨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깨닫는 사람에게는 날마다, 순간마다 명절이에요. 이런 명절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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