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00815 굳게 결심하신 예수(눅 9:49-56)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1. 13:56

 

100815 굳게 결심하신 예수 ( 9:49-56)

성경본문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작가 김영하의 <검은 꽃>이라고 하는 실화소설이 있습니다. 1905년 나라가 일본의 지배하에 점점 들어가게 되고 살기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어려울 때에 멕시코 이민을 떠나는 배가 있었습니다. 어른과 어린이를 합해서 1000여명의 사람들이 배 한 척에 몸을 싣고 멕시코라고 하는 나라에 갔습니다. 그곳의 애니깽(에네켄) 농장에 가서 계약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인장과의 애니깽(에네켄)에서 그 배의 로프로 쓰는 그런 것들을 추출하는 그런 농장인데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웠던지 그 실상을 보고한 내용이 당시 황성신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간 노동자들도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지만 애니깽(에네켄) 농장에 가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거기는 천국이나 다름없다라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은 한동안 지속될 수 있었지만 멕시코로 간 그 이민선은 그 한 척이 전부였어요. 일본의 방해로 더 이상 가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들은 완전히 생전 처음 간 멕시코라고 하는 나라의 이방인이 되어서 섬과 같이 고립된 채로 살아야 했던 거죠.

1910년 이후에 나라는 망하고 그 이국 땅에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그 당시 불어닥친 사회주의 혁명으로 멕시코가 막 혼란에 빠집니다. 이제 겨우 계약은 끝났습니다만 갈 데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 농장에서 일하게 되는 거죠. 너무나 살길이 막막해서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 바로 옆에 있는 과테말라 라고 하는 나라가 내전에 빠졌을 때 40여명이 돈 벌러 용병이 됩니다. 한번 큰돈을 벌어가지고 잘 살아보자고 남의 나라의 용병으로 팔려가요. 그러나 그들이 듣는 소식에 의하면 이제 나라는 망했어요. 이제 고향 돌아갈 길은 완전히 끊어졌어요. 그래서 그들이 생각을 모은 것은 뭐냐면 우리가 그 돈을 벌면 여기서 우리가 좀 같이 살만한 땅을 구입해서 우리끼리 한번 살아보자. 그리고 나라 이름도 정했어요. <신대한>이라고...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다 전사합니다. 가까스로 몇 사람이 목숨을 건져서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게 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저는 이렇게 우리들이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하나님께 언제든지 나와서 예배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에 한없는 감격이 있습니다. 나라를 잃으면 이런 자유가 없는 거예요. 멕시코 이방 땅에서 죽어가고 남의 나라 내전의 용병으로 팔려가서 죽었던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과 한이 맺혀서 오늘 우리의 자유를 이룬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뒤에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히브리서 11장 하면 믿음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믿음을 좇아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죽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있고 이삭도 있고 야곱도 있고 요셉도 있고 모세와 사무엘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 참 기가 막힌 표현을 했어요. 이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믿음을 붙들고 살았는데 이제 마지막에 우리 앞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헌신이 없다면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계획은 아직 미완성이다. 교회 역사가 흐르면서 생명의 역사도 흘러서 오늘은 우리 시대가 된 거예요. 우리 차례가 된 거예요. 여러분 잠깐이에요. 손주 손녀들을 두고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만 잠깐이에요, 이제 책임은 또 우리 다음 세대로 넘어가요. 오늘 우리가 합당한 믿음과 헌신과 주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을 보이지 않는다면 주님의 구원은 미완성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쓸모 없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 5 17절에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병들어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시면서 하시는 말씀 “하나님이 지금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여러분이 어디서 일하거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어요.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이곳에 나와서 한인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인사회의 구성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함께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제가 지난 월요일 밤에 이 필리핀 ‘마드리갈 싱어즈’라고 하는 필리핀의 합창단의 연주를 들었는데요. 여러분 정말 놀랐습니다. 마드리갈이라고 하는 그 합창 형태가 있어요. 르네상스 이후 그리고 유럽의 바로크 음악이 시작되기 그전의 시대를 마드리갈 음악이 나타난 시대라고 해요. 그래서 이분들은 의자를 말이에요 청중을 향해서 반원으로 이렇게 배열해 놓고 앉아서 노래를 불러요. 내내 두 시간을 앉아서 노래를 불러요. 말하자면 그게 수도원 그 카톨릭 교회 양식이죠.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예배찬양을 했는데 그게 이제 르네상스 이후 벗어나면서 개인이 맘대로 춤추는 감히 그런 거는 다음시대 얘기고 그들은 정해진 자리에 두 시간 내내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데 얼마나 기가 막힌 화음을 펼쳐내는지 몰라요. 놀랐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하나 더 놀란 게 있어요. 7시에 음악회가 시작이에요. 부랴부랴 갔는데 사람이 없어요. 어떻게 된 게... 아직들 안 왔어요. 자카르타 교통이 막힌다는 그것 때문에 오질 않았어요. 결국 몇 시에 시작했느냐 하면 8시 반에 시작했어요. 8시 반.... 그래 제가 얘기했어요. 아니 자카르타 차 막히는 건 어제 오늘 얘깁니까? 그러면 일찍 일찍 가야지...그래서 제가 아~이 나라 사람들 제대로 살려면 아직 멀었다. 남의 시간을 뺏는 것은 목숨을 뺏는 거예요. 시간을 지켜야 되는 거예요.

참 감사한 게 우리 남선교회 성경공부가 오늘 베드로팀이 있습니다만 지난주에 바울, 요한팀 하는데 정확하게 7시 전에 다 나타났어요, 딱 한 분은 제외하고. 그 분은 자다가 전화를 받고 그냥 막 뛰어왔으니까, 그것도 참 감사하더라고요. 저 같으면 그 시간에 벌써 늦었는데 그리고 더 잘 것 같은데 그래도 얼굴을 씻고 달려왔어요. 시간 엄수해야 돼요. 이거 문화예요. 문화를 누가 만들어가요. 우리가 만들어 가야 되는 거예요. 상황이 어렵다면 그것에 맞추어서 만들어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서로 일을 해나가지 않겠어요? 문화는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겁니다.

또 하나 우리 한인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를 이렇게 존중하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서로를 칭찬하는 것, 박지성 선수, 김연아 선수는 물론 스타니까 우리가 좋아하기도 합니다만 그들이 한국사회에 미친 그 경제적, 외교적 효과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 덕을 우리가 톡톡히 보고 있는 거예요. 또 그렇지 않더라도 먼저 나와서 이곳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신 분들이 있기에 뒤에 온 사람들이 이런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어요. 참 감사드려요. 존중해야 돼요.

오늘, 그 예수님 제자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요한이 말합니다. 주님, 제가 가다보니까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데 그 사람은 우리와 한 팀이 아니던데요. 그래서 제가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뭐라고 합니까? 금하지 말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다. 여러분, 플러스 사고를 해야 돼요. 우리 교회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다른 교회가 잘 되는 것 또한 중요해요. 다 인정해야 돼요. 긍정해야 돼요. 교회의 어려운 얘기들 그런 얘기들은 여러분 마음에 담아두세요. 다른 교회의 혹시 허물이 있다면 그건 마음에 좀 담아두세요. 그게 생각난다면 기도해주세요. 사실은 남이 어떻고 어떻고 얘기할 때에 자격은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거예요. 한번 제대로 사정도 알지 못하고 기도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말하기 쉽다고 밥 먹으면서 얘기한다, 그 말은 다 마지막 날에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한 거죠. 존중해야 돼요.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많대요. 간혹 이런 재미있는 일들이 있대요. 통행료를 내고 건너가야 되거든요. 근데 한 사람이 톨게이트에서 1달러 통행료를 낼 때 2달러를 내면서 ‘저 뒤차 것도 함께예요’ 그러고 간답니다. 뭐 자기 일행이 아니에요. 그냥 뒤차 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그러면 이제 뒤차가 왔다가 내려고 하는데 ‘앞에서 내셨어요.’ 어이구 얼마나 기분 좋아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런데 그 때 잘해야 돼요. ‘어, 그래요’ 그리고 요걸 접어두는 사람은 참 미련한 사람이에요. 그럴 땐 또 “아, 그래요, 그럼 이거는 또 뒤차요.” 아 이래가지고 줄줄이 뒤차 뒤차 해가지고 어떻게 되겠어요? 억지로 세금같이 내려고 했던 통행료가 그 하루를 아주 시원하게 하고 기분 좋은 선물이 되는 거예요. 1달러를 가지고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참 거 재치 아니겠습니까? 유머 아니겠어요?

여러분, 우리 한인사회를 작은 일부터 만들어야 돼요. 물건을 팔 때나 물건을 살 때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떡을 하나 받아먹어도 “이것 누가 만들었는지 참 맛있네요.” 그 한마디로 뒤에서 땀 흘리고 수고한 모든 사람들이 힘을 얻는 거잖아요. 이제 우리는 한인교회의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요. 특별히 해외 한인사회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해요. 한인사회의 중심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새벽마다 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한인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며 한인사회를 섬기며 한인사회를 이끌어 가게 해 주옵소서.

제가 지난 주간에 칼리만탄 폰티아낙 외곽의 한 현지인 교회 헌당식 그리고 유치원 준공식에 다녀왔습니다. 폰티아낙에서 차로 한 1시간 반 거리인데 말이죠. 가다 보니 길을 새로 만들고 있더라고요. 도로 포장이 된 데도 있지만 또 포장이 되지 않은 길들도 있더라고요. 이게 도로 포장된 데 하고 포장 되지 않은 데는요 눈으로 보면 똑같은 길인 것 같아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요. 시원하게 포장된 데는 그냥 순식간에 쌩하고 갈 수 있는데 포장이 안된 도로는 어림도 없어요. 정신없이 흔들립니다. 이거 이거 이 팔을 잘 붙여야지 잘못하다간 옆 사람 찌릅니다.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길이 있는 것 같지만 길 구실을 못해요. 교회가 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길이 여기 있다 라고 우리가 얘기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길을 깨끗하게 정비하고 포장을 잘해서 길 구실을 제대로 해야 돼요. 교회구실을 제대로 해야 돼요.

그 교회에 가봤어요. 제가 2년 반전에 선교사님을 따라서 그 쪽에 가봤거든요. 길을 만들면서 마을을 억지로 만드느라고 정부에서 그 길옆의 땅들을 사람들에게 주었어요. 그래서 깊이 들어가 살고 있던 사람들을 끌어내 가지고 마을을 만든 거예요. 우리 눈으로 보면 그건 마을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도대체 이런 데서 어떻게 사람이 살려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그런데 선교사님이 그곳에 와서 교회를 세울 비전을 가지고 여기 다 물이 젖어 있는 땅인데 그렇지 않은 땅이 저기 한 3000평 있습니다.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것을 우리가 매입해서 저기에다가 교회와 유치원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2년 반 만에 가보니까 온갖 고생을 다 해가지고 교회를 지었고 유치원을 지었어요. 동네 사람이 다 모였어요. 그 마을의 희망이 되고 있더라고요.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는 그곳에 유치원을 만들어 얼마나 그 부모들이 기뻐하는지 몰라요. 알고 보니 그 길 건너편에 군부대가 들어온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는 거예요. 미처 알지 못했던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교사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그 일을 시작하고 다 이루어 놓고 보니 그것은 마을에 완전히 중심이 되는 거예요. 그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고 복음화를 이루게 되는 거죠.

제가 그날 그 준공식 헌당식에 2시간 참여 하는데요 여러분,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런데 그저 앞에 뒤에 선풍기 딱 두 개밖에 없어요. 땀을 비 오듯 흘려요. 저는 인도네시아 기후에 땀 안 흘리는 사람인데 땀이 나더라고요. 그러니 다른 분들은 얼마나 땀이 나겠어요. 그러나 말이죠, 마음으로는 달랐어요. 하나님께서 이 기회를 통해서 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시는구나. 우리가 이렇게 에어컨이 들어오고 이게 너무 오랫동안 우리에게 이제 습관이 돼서 에어컨이 만약에 안 들어온다면 아마 여러분 중에 기분 나쁘다고 가실 분도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그 정도로 젖어들었어요. 그러나 여러분 편리한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내 마음 속에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하는 교회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에 내 마음과 생각을 모으고 있다고 하는 것, 그거 놓쳐선 안돼요. 우리 교회는 한인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며 한인 사회를 섬기며 한인사회를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겠다고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어요.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로 지나가게 되었는데 원래 사마리아 사람하고 유대인들은 앙숙이에요. 원수예요. 원래는 다 뿌리는 같았는데 살다 보니 자칫 오늘 우리나라 남북한 같이 되어버렸어요. 그래 예수님의 일행이 사마리아 그 마을에 해가 저물어 좀 들어가 쉬려고 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들어오지 말라는 거예요. 제자들이 화가 났어요. 야고보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 사람들이 우리를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데 그럼 우리가 한번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같이 하나님께 기도해 가지고 불이 떨어져서 주님을 거부하는 저들의 마을을 다 불태워버리라고 할까요.”그랬어요. 주님께서 야단하셨어요. 그 악한 생각을 꾸짖으셨어요. 그리고 다른 마을로 가셨다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가 자칫 교회가 우리끼리만의 공동체가 되기 쉬워요. 우리의 한인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비판하기 쉬워요. 절대로 그래선 안돼요. 오늘 공교롭게 8.15가 주일이 되는 바람에 한인회는 한인회 나름대로 아침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8.15 기념행사를 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득이 지금 아마 행사를 맡은 분들이라든지 한인회 중요한 일을 맡은 분들 거기가 계실 것 같아요. 마음이 조금 불편할 것 같아서 제가 지난주에 미리 면죄부를 드린 거예요. 기도하고 편안하게 가서 일하고 다음부터는 우리 교회와 한인회가 이러한 일들을 잘 조정해서 서로가 윈윈(win-win) 할 수 있도록. 또 그러려면 교회가 한인회가 하는 이 교민 모두를 위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기도하고 해야 되겠죠.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섬겨야 한다. 마태복음 10 44절에 보니까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 어디까지 섬기느냐, 내 목숨을 모든 사람을 위한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왔다. 이제 우리 교회가 그렇게 나가기를 날마다 기도하고 소원합니다. 그러려면 저와 여러분 우리 각자가 주도적으로 그 일에 마음을 같이 해야 되는 거죠. 오늘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느냐 말씀을 읽어보니까 승천하실 하나님의 약속이 가까워졌으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마음대로 호령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이적을 베풀 수 있다고 그렇게 자유롭게만 하신 것 아니에요. 여러분 그건 착각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사람의 조건 속에 들어오셨어요. 시간과 공간에 매이셨어요. 배고픔과 목마름과 땀나고 어려운 추위와 더위와 이런 모든 조건에 자기를 다 받아들이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유심히 살피셨어요. 그리고 십자가 사건이 있는 것을 보셨어요. 그 십자가의 고통을 보셨어요. 그러나 그것만 보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넘어서서 부활과 승천의 그 놀라운 약속까지도 믿음으로 붙드셨어요.

여러분, 간혹 부부싸움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한 가지 제가 그저 도움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부싸움이 되면 뭐 방법이 없죠. 싸움이 일어났으니 이겨야 되겠죠. 그러나 말이죠. 내가 이거 십년 후에는 오늘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것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부질없는 거예요. 쓸데없는 짓이에요. 사실은... 여러분, 누구나 다 고통을 두려워합니다. 그러기에 문제를 외면하려고 해요. 문제를 피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맞서야 할 고통보다 밤낮 피하려고 하는 그 고통이 더 우리를 짓누르게 돼요. 잘못했으면 차라리 빨리 잘못했다고 털어 놓는 게, 그리고 야단을 한마디 맞는 게 나아요. 그거 감추려고 하다가 보면 어떻게 돼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아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게 돼요. 우리도 연약한 사람들이라 넘어질 수 있어요. 하나님이 그걸 다 알고 계셔요.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은 넘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넘어졌을 때의 그 뒤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요. 자기를 열어놔야 되는 거예요.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고통이 있다는 뜻이에요. 어떻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고통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그거 모르세요? 사장님들은 마음대로 하는 것 같죠? 사장님은 새가슴이래요. 오히려 직원으로 사는 사람이 뱃속 편한 거예요. 밤낮 이렇게 해야 될까 저렇게 해야 될까 걱정해야 되는 사장님들의 마음은 새가슴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빨리 월급날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사장님의 심장은 멎습니다. 왜 이렇게 월급날이 빨리 오는 거야. 그 고통을 알아야 돼요.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다 고통은 있어요. 어린아이부터 내일 숨을 거둘 사람까지 고통은 있는 거예요. 그것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불해야 할 대가예요. 고통을 외면하려 하지 마세요. 피하려 하지 마세요. 공동묘지 외에는 고통이 없는 곳이 없어요. 당당히 고통에 맞서라는 거예요.

정신과 의사들에 의하면 대부분 환자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답니다. 한 사람은 노이로제 걸린 사람 신경증 환자요. 한 사람은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이에요. 이 두 사람은 비슷한 것 같지만 어떻게 다른가 하면 노이로제 걸린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모든 걸 다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그저 노이로제에 걸려있어요. 일이 잘못되면 그저 다 나 때문이야 라고 하는 사람들 이거 노이로제 걸린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늘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반대로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자기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도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책임이 없다는 거예요. 모든 문제의 잘못은 다 세상이 잘못했다는 거예요. 당신이 잘못했고 남이 잘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괴롭혀요. 특별히 자녀를 괴롭혀요. 정신과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온전한 사람은 없는 법이에요.

모든 사람은 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게 섞여있대요. 때로는 이렇게 나오고 때로는 저렇게 반응한다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 자존감이 바로 서야 돼요. 자아 정체성이 바로 서야 돼요. 그런데 이 자아 정체성은 사실은 부모 손에 있어요. 어려서부터 제대로 부모의 사랑을 공급받은 사람이 건강한 자아 인격을 가지고 자라나는 거예요. 우리가 자녀들에게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자녀들을 고치지 못해요. 자녀들은 우리의 뒷모습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행실이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건강한 인격이 또 자녀들의 건강한 인격을 그 속에서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결국엔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다 내 책임이에요. 내가 정신적으로 바로 서고 내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서면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평안이 와요. 그러면 내 가정이 바르게 되고 그 가정이 연합해서 사회가 건강하게 되고 교회가 바르게 되는 거죠.

오늘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승천하실 하나님의 약속이 가까이 왔으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십자가를 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결심이 중요해요. 여러분, 도대체 교회에서 말하는 헌신이 뭡니까. 목숨을 다해서 주님께 드리는 것 그게 헌신이죠.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예배 늦는 사람이 안 늦는 것 그거 헌신이에요. 제 시간에 오던 사람이 5분전에 와서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것 그거 헌신이에요. 주일만 나오던 사람이 수요일에 나오는 것 그거 헌신이에요. 내가 일터에서 보통 때 기도 안하고 그냥 막 일했는데 눈 한번 감고 기도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 그거 헌신이에요. 늘 시작은 이렇게 자그마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겨자씨가 나무를 이루고 그늘을 이루고 많은 사람을 시원하게 하리라 말씀하셨어요. 너희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하더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이라면 그것이 어마어마한 변화를 일으키리라. 여러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우리 주님이 굳게 결심하시고 나아가셨던 것 같이 우리도 우리에게 준 이 소중한 자유를 내 마음대로의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내어드리는 성숙한 자유인으로 오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