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33) 주 안에 있는 위대한 삶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24

" Ⅲ. 아름다운 덕목들에 대한 권면(빌 4:1-9)"
주 안에 있는 위대한 삶 ②
빌립보서 4장 1~9절
석원태 목사


1. 주 안에 있는 위대한 생활(빌 4:1-9)

1) 주 안에 굳게 서는 것이라고 했다(빌 4:1).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다(빌 4:2-3).

빌립보 교회는 전도자 바울에게 있어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요’,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자들’이었다.
사도는 그러한 빌립보 교회가 주 안에서 가져야 될 아름다운 덕목들이 있다고 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주 안에 굳게 서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두 번째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라고 하였다.
빌립보서 4장 2절에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다.
여기 ‘권하다’, ‘파라칼레오’(parakale,w)는 명령조가 아닌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진 호소를 뜻하는 말이다. 「같은 마음」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염두에 두고 쓴 말이겠다.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한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가리킨다(빌 2:2-5).
문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여러 학설이 있을 뿐 단정할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들은 빌립보 교회 안에서 지도자급에 있는 여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저들은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약간의 의견 차이로 불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들은 ‘복음에 사도와 같이 힘쓰던 부녀들’이라고 했다. 비록 지금은 서로 불화하여 교회와 사도에게 근심꺼리가 되어 있으나 적어도 빌립보 교회 성장에 많은 헌신의 공을 세운 자들이었음이 확실하다.
초대교회 때에는 부인들이 교회 설립과 부흥에 지도적 역할을 한 사실들이 많이 있다. 헬라계 부인들은 대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박혀 있었다. 헬라인의 경우 존경받는 부인이란 대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말하고, 적게 활동하는 자라고 생각했다. 신분이 높은 부인은 결코 혼자 출입하지 않았고, 한 집안에서도 방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식사 때에도 남자와 혼석하지 않았다. 그래서 헬라계 부인들은 사회적 활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부인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런가 하면 유럽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빌립보는 유럽의 지경이었다. 마게도니아 지방이었다. 마게도니아 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행사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 일행이 안식일에 빌립보 강변에서 처음으로 만난 일단의 무리들이 자주장사 그룹인 여자들이었다(행 16:13). 최초의 강변 집회에 서로 모르는 남녀가 한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 중에 루디아라는 그 그룹의 지도적 인물이 있었다(행 16:14). 데살로니가에서는 귀부인들이 많이 그리스도교로 귀의했다(17:4). 베뢰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행 17:12). 사후에는 죽은 유공자 된 부인을 위하여 비문을 세우는 경우들도 많았다.
이런 경우를 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빌립보 교회에서 지도적, 선도적 활동을 한 여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행스러운 일은 저들의 불화, 불일치가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혹설에는 이 두 사람의 집이 모이는 집회 장소가 되었는데, 그로 인하여 일어난 불행스러운 다툼이나 불화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을 하기도 한다. 사도는 저들에게 꾸중이나 책망을 하지 않고,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라고 함으로 저들을 향한 사도의 예의성을 드러내고 있다. 저들의 불일치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고 간절히 권하고 있다.
또 한편 저들의 화목을 위하여 익명의 사람을 지목해서 그 두 여인의 불화를 해결할 것을 말하고 있다.
빌립보서 4장 3절에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라고 했다.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란, 십자가를 같이 짊어진 자, 십자가를 같이 잡은 자, 같이 생각하고, 같이 말하고, 같이 행동하는 자를 뜻함이다. 바울은 이 사람에게 저 두 부인을 도와주어서 불화를 화목으로 일치시키라고 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으나, 빌립보 교회 안에 사도의 이러한 부탁을 받은 자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저 부인들을 도와주어야 할 이유는 저들이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썼던 여인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함께 힘썼다’는 말은 복음을 위해 함께 싸우고, 함께 달리던 자란 뜻이다. 바울은 그 두 부인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초점을 맞추고 화목케 하는 해결책을 시도했다.
뿐 아니라 이 익명의 사람에게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부탁하고 있다.
「나의 동역자」란 바울과 함께 일하고, 수고하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자들을 가리킨다.
어쨌든 바울은 이 익명의 사람, 바울과 멍에를 같이 한 자에게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불화를 해결하고 또 글레멘드와 바울의 동역자들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그 큰 이유는 저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빌립보서 4장 3절 하반절에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했다.
참으로 빛나고 멋진 이유이다. 불화하는 사람들이 화목해야 하고, 복음 전선에서 수고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될 결정적인 이유가 저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 ‘생명책’, ‘비블로오 조에스’는 하나님께서 죄인들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로 예정하고, 선택한 사람들의 이름들을 기록해 놓은 책을 가리킨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심판의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생명책이 펼쳐 있다고 했다. 심판의 책들은 불신자의 명단이고, 생명의 책은 구원인의 명단이다. 심판의 책들은 불신자들이 그 행위대로 받은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생명책에는 결코 죄의 행위가 기록되지 아니했다. 이미 어린양 예수의 피로 깨끗한 속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 27절 마지막에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열린 성문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받은 교회론적 교훈은 지상 전투 교회의 불완전성을 볼 수 있다. 바울과 함께 두 여인이 서로 불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불화는 반드시 해결해야 된다는 사도의 간곡한 권면이다. 그 해결의 방법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곧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뿐 아니라 여러 유형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평화의 해결사가 교회 안에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사도와 멍에를 같이 하는 자’라고 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실로 하나님 교회의 충성된 종들이요, 청지기요, 기둥이다. 실로 이런 종류의 사람은 평화의 사자이다.
더 나아가 교회의 여러 사역자들을 돕고 섬기는 자들이 있어야 된다고 하였다.
그 커다란 이유는 저들의 이름이 구원의 책, 생명의 책에 기록된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지상교회는 여러 류의 연약들 가운데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서 성화의 전진을 계속하는 진리의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사랑과 소망과 믿음의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주 안에 있는 교회들의 아름다운 덕목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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