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34) 주 안에 있는 위대한 삶③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25

" Ⅲ. 아름다운 덕목들에 대한 권면(빌 4:1-9)"
주 안에 있는 위대한 삶 ③
빌립보서 4장 1~9절
석원태 목사

1. 주 안에 있는 위대한 생활(빌 4:1-9)

1) 주 안에 굳게 서는 것이라고 했다(빌 4:1).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다(빌 4:2-3).

3)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7)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다. 빌립보서 3장 1절에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다.
‘기뻐하라’고 하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바울에게는 수고로움이 아니고, 또 이 말을 듣는 빌립보 교우들은 안전하다고 했다.
「기뻐하라」는 말 앞에 ‘항상’이라고 하는 말이 붙어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때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노니’라고 함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거듭거듭 이 말을 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는 바울의 마음이다.
단, 그것은 ‘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주 안에서 일어나는 간단없는 기쁨, 쉴 줄 모르는 기쁨, 멈출 줄 모르는 기쁨을 의미한다.
왜 그럴까?

① 그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사죄의 즐거움을 언제나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 번연(J. Bunyan)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는 성경에서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그는 이 성경에서 큰 용기와 기쁨을 찾았다고 한다.

② 또 하나의 이유는 주님의 사랑을 항상 감지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고 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고 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날 때에도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이 사랑의 확신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 기쁨이 일어나는 것이다.

③ 그 세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전 삶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다. 「모든 것」(all things)은 우리 전 생애에 관계하고 있는 인생사를 가리킨다. 그것은 나를 위하여, 나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라고 했다. ‘만물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있다’(고전 3:21-23)고 했다.

④ 그 네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를 향한 미래적 소망 때문이다.
이사야 45장 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사람은 피조 세계의 그 어떤 것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동서남북 그 어디에도 또 그 어떤 사람에게도 궁극적 소망을 걸 수가 없다. 죄로 인해 모든 세계는 함께 탄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미래의 소망이다. 금세의 소망이고, 내세의 소망이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흩어진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의 미래적 소망에 대하여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 하는 하늘의 산 소망’이라고 했다. 이것을 ‘하늘의 기업’이라고 했다(벧전 1:4-5). 그리고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 1:6)라고 했다. 그것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고 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고 했다.
이 기쁨은 주 안에서의 기쁨이요(빌 4:6), 항상 기뻐하는, 계속되는 기쁨이요(빌 4:4), 충만의 기쁨이요(요 15:11), 불멸의 기쁨인 것이다. 금세와 내세를 관통하고 있는 행복의 기쁨인 것이다.
골동품 경매장에서 생긴 일이었다. 그곳에는 모인 많은 사람들은 여러 유의 값진 물건들이 높은 가격에 경매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 어떤 경매인이 부서지고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높이 들고 “얼마요!”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킥킥대고 웃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아주 비꼬는 어조로 1 실링이라고 부르니 또 한 번 그 자리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때 그 경매인은 “좋소. 1실링 내고 가져 가시오.”라고 했다.
바로 그때 어떤 노인이 그 단 위에 올라가서 그 바이올린을 잡고 몇 번 활을 시험해 본 후에 그 낡은 악기를 가지고 절묘한 선율을 만들어 냈다. 그때 그 연주되는 악기 소리에 감동을 받은 청중들은 고요해졌고, 어떤 사람은 눈물까지 흘렸다.
드디어 그 아름다운 연주가 끝나자 경매장이 터져나가라고 격찬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경매인은 다시 그 악기를 들고 값을 물었다. 5파운드에서 10파운드, 50파운드, 나중에는 마침내 100파운드에 그 값이 낙찰되었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전과 다름없는 악기였으나 그 악기가 대가의 손에 들려졌을 때 악기에서 나오는 감동적인 연주를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러하지 않은가? 우리의 본래는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정말 쓸모가 없었다. 낡은 악기와 같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늙은 대가의 손에 낡은 악기가 들려 연주되었을 때, 그 악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소리 때문에 값이 오르게 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그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주 안에, 주의 손에 붙잡혀 주님이 우리 삶을 연주 해 주실 때, 우리에게는 불멸의 기쁨이 터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죄가 우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이 다시 살아 우리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했다. 여기 병기 ‘호플라’(o[pla)는 ‘병기’, ‘무기’, ‘그릇’, ‘악기’ 등을 의미한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연주할 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다. 그것은 권면이 아니고 명령이다. 빌립보 교인들이 어떠한 환경에 처했을지라도 ‘기뻐하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 말을 하고 있던 바울 자신이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는 감옥에서 그 자신이 기뻐했고, 또 자기 때문에 염려하는 교우들에게 기쁨을 명한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17절로 18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다. 그는 저 빌립보 성에서 전도하다가 투옥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저들은 그 감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행 16:25). 그것은 빌립보 전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크신 섭리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함은 그리스도인이 받은 생명의 부요이다. 순경 중에도,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 뜻대로 되리라고 하는 확신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날마다 받은 용서와 사죄의 즐거움 때문에 나를 강권하시는 나를 위한 주님의 사랑 때문에, 나를 강권하시는 나를 위한 주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가 아닌 저기, 오늘이 아닌 내일,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을 약속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소망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기쁨은 불사조적 생명의 힘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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