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창세기 강해(23) 아브라함의 역사(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58

I.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심 - 소명계시(창 12:1-9)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심은 구속사의 무대에 나타내신 모든 믿는 자의 부르심을 알려주는 대표적 소명의 실례가 된다.

1. 신적 계시의 소명이었다.

곧 객관적 소명이요 또한 초자연적 소명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였다.
하나님 편에서 아브람을 찾아 오셔서 부르시는 장면이다. 이 말은 대단한 의미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람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브람의 생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형태는 어떤 것인가?

1)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이다.
창세기 17장 1절에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였다. 22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고 하였다.
창세기 26장 2절에는 이삭에게 나타나셨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24절에도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창세기 35장 9-10절에는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였다.
마치 일상생활 중에 어떤 사람이 찾아오듯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그렇게 나타났다.

2) 이상 중에 나타나기도 하였다.
창세기 15장 1절에는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이상’이란 우리의 육안이 아니고 영안으로 인식될 수 있는 계시 형태이다. 그래서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 내시고 하늘에서 반짝이는 뭇 별들을 보여주면서 무수한 축복의 후손을 약속하셨다(창 15:5). 또한 하나님은 타는 횃불을 통해서도 나타나셨다(창 15:17). 그리고 나중에 야곱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을 만나러 가는 경우에도 야곱의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격려한 바 있다(창 46:2-3).

3)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났다.
창세기 16장에서 하갈에게 나타날 때의 형태이다. 하갈에게 나타나서 하갈의 갈 길을 재조정하여 주었다. 창세기 22장 15절에도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서 제단에 올려진 이삭을 향해 높이 든 아브라함의 칼을 멈추게 하면서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게 해주었다.
창세기 24장 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의 늙은 종을, 이삭을 위한 배필(아브라함의 자부)을 구해오라고 보내면서 하는 말이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영적인 세계를 예감하였다.
여기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누구일까?
그는 하나님 자신이기도 하고,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 보냄 받은 사자의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화육강세 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한 형태였다.

4) 꿈으로 나타내시는 경우이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했을 때, 하나님은 꿈으로 그에게 나타나 그를 질책하고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였다(창 20:3, 6).
야곱이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던 중 벧엘에 이르렀을 때, 꿈에 사닥다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축복을 보장받았다(창 28:10-22).
먼 훗날에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거부가 되었을 때, 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서 가나안으로 되돌아갈 것을 지시하였다고 그의 아내들을 설득하였다.

5) 여러 형태의 계시는 결국 ‘말씀’(가라사대) 전달의 방편이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혹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창세기 1장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의 연속이다. ‘가라사대’(말씀)가 천지창조의 동력이 된 것이다. 근원이 된 것이다. 창세기 6장 13절과 7장 1절에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가라사대…」가 방주 계시를 나타냈다. 창세기 9장 1절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 자손들에게 ‘이르시되’(가라사대) 함으로 저들에게 축복을 명령하셨다.
창세기 12장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말씀’ 곧 ‘가라사대’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여러 형태로 자기를 족장들에게 나타내셨던 목적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가라사대’가 아브람 소명의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벗어나는 초자연주의적 소명 형태였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인격적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아브람을 찾아가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먼저 찾아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그 아들 예수를 통하여 죄인을 찾아온 것이다. 여기에 우선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요일 4:10). 여기에 타율주의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특색이 있고, 구원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특색이 있는 것이다.
삭개오가 주를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 편에서 여리고에 이르러 삭개오를 찾아 부르신 것이다(눅 19:1-10). 베드로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 소명하신 것이다(눅 5:1-11).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하나님 자신이 발하신 ‘가라사대’ 계시에 의하여 소명받은 것이다. 이것은 아브람이 받은 은혜일 뿐이다.
‘가라사대’가 아브라함의 전 생애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가나안으로의 이주나, 조카 롯을 구원해주는 일이나,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확인하는 일에나(창 15, 17장), 모리아 산정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에나, 중요한 계기마다 하나님의 ‘가라사대’가 주장하고 있다. 결코 주관적 산물이 아니었다. 객관적 산물이요, 신적인 초자연주의의 부르심이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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