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창세기 강해(24) 아브라함의 역사(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59

5. 축복의 소명이었다.

아브람을 부르심은 여호와께서 부르신 신적 소명이요, 아브람을 지명하여 부르신 개인적이요 인격적인 소명이요, 많은 사람 중에 아브람만을 택해주신 선택적 소명이라고 하였다.
또한 아브람을 부르심은 축복의 소명이다.
창세기 12장 2-3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창세기 12장 2-3절에 ‘복’이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복’이라는 말 ‘바라크’(&r'B; 1288')는 원인 동사로 ‘무릎을 꿇게 하다’ 혹은 ‘찬양하게 하다’라는 내용이다. 이 말은 사실상 인생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그를 경배하고, 섬기고, 사랑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깊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1) 축복의 신적 필연성을 보여준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내가 복을 내리고…’라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6장 14절에는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의 맹세로 보증을 했다고 하였다(히 6:17).
그렇다면 그것은 아브람이 복 받는 것이 하나님 자신 편에서 필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브람이 복받는 것이 아브람 편에서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편에서 그에게 복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선수적 축복이요, 주권적 축복이요, 무조건적 축복이었다.
하나님 자신 편에서 아브람을 무릎꿇게 하여 당신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배 받으시고 찬양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신적 축복의 필연성이 아닌가!

2) 축복의 선택성이다.
「내가 너를…」이라고 하였다. 「네 이름을…」, 「내가 너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고 하였다.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은 「너」 곧 「아브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축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너’ 곧 ‘아브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축복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보여줄 땅)으로 가게 한 것이다(창 12:1). 선택적 축복이 아닌가?

3) 축복의 내용이다.
(1) 큰 민족의 축복이다.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하였다.
여기 ‘큰 민족’이란 단지 물리적인 힘이나 숫자적인 힘뿐이 아니고 영적, 정신적 문화 영역까지를 나타내는 총체적 축복을 가리킨다. 으뜸 되는 복, 머리되는 복, 첫째 되는 복을 가리킨다.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전 세계에 반영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오늘날 세계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2) 명예의 축복이다.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라고 하였다.
이는 그 이름을 크게 떨치는 탁월한 존재가 될 것을 선언함이다. 성경은 그의 이름이 창대케 되는 내용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① 창세기 17장 5절의 「많은 무리의 아비」 곧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가 되는 것이다.
② 창세기 23장 6절에는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왕’이란 뜻이다. 이는 그의 이름이 이방 백성(헷족속)에게도 크게 떨쳤음을 말한다.
③ 창세기 20장 7절에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였다. 용출하는 가슴을 가진 자, 그리고 먼저 보는 자를 뜻한다.
④ 시편 105편 5절에는 「그 종 아브라함」이라고 하였다. ‘섬기는 자’를 뜻함이다.
⑤ 야고보서 2장 23절, 역대하 20장 7절에는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였다.
⑥ 그보다 큰 명예는 택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 그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심으로 그의 이름이 크게 떨칠 사실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다(갈 3:8, 행 3:25).
⑦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영원한 표상이 되었다. 예수님은 천국의 구원받은 자를 대표하여 아브라함을 말씀하고 있다(눅 16:19-31). 확실히 이 축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가 세상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지 40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챤들의 마음과 입에서 아브라함을 부르며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그 이유는 저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다.
(3)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창세기 12장 3절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이 말을 직역하면 ‘너는 복이 되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자체가 복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 곧 그의 후손 가운데서 출생할 인류의 메시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구원의 복을 가리킨다. 그것은 만민에게 미칠 복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민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그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은 그의 모든 영적 후손들에게 똑같이 미치는 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 믿는 부모 그 자체가 자손들에게는 복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는 그 저주가 저주하는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고, 반대로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알려주신 이러한 축복의 내용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허락하실 축복을 언약(약속)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언약적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생애에 이러한 축복을 반복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① 가나안으로 가도록 지시(소명)하실 때였다(창 12:1-3). ② 조카 롯과 작별한 후였다(창 13:10-17). 그 때에도 동서남북의 땅과 땅의 티끌 같은 셀 수 없는 자손을 약속하셨다. ③ 조카 롯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쟁을 치른 후, 그 전리품을 취하라는 소돔 왕의 호의를 거절했을 때였다. 그 때에도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상속자)과(창 15:5), 넓은 땅(창 15:18)을 약속하셨다. ④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였다(창 17:1-10). 아브람이 죽은 자와 방불하였을 때였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칭하고, 낳을 언약의 아들의 이름까지 이삭이라고 지어주시면서 그에게 언약 성취의 희망을 주었다(창 17:19). ⑤ 그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 여호와 이레를 체험한 후였다(창 22장). 그 때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복’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축복을 약속하셨다. 씨에 대한 복(별과 바닷가의 모래 같게 하실 것임), 승리의 복(그 대적의 문을 얻음), 메시야에 대한 복(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심)이었다.
이 모든 언약적 축복을 종합하면 ① 물질적 축복-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경제, 직업) ② 자손의 복-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티끌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무수한 자손의 복 ③ 복의 근원이 됨이다(영적 축복). 즉 그의 후손 가운데서 출생할 메시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구원의 복을 받게 됨으로 명실공히 그는 복의 아버지로서 만세토록 그 이름이 빛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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