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창세기 강해(41) 아브라함과 브엘세바동맹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13

3) 아브라함의 브엘세바 맹세(창 21:22-34)

창세기 21장에 나타난 세 번째 사건이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브엘세바에서 상호불가침 조약과 화친의 동맹을 맺는 멋진 장면이다.

(1) 언제였던가?
창세기 21장 22절에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축출시킨 이후이다.

(2) 누구와의 동맹인가?
아비멜렉과 아브라함과의 맹세였다.

① 화친의 맹세였다(창 21:22-24).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친히 찾아왔다(창 21:22). 그리고 이르기를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였다. 이방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부유함이나 이삭의 출생으로 인한 아브라함가의 소식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창세기 20장에서 이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그의 꿈에 나타나서 사라를 범하지 못하도록 현몽한 일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소개하였다(창 20:7). 그리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받은 후 그와 그 가족이 받았던 징계의 재앙이 풀려나게 하였다(창 21:17-18). 그때 아비멜렉은 양과 소와 노비를 주고 아브라함이 거할 넓고 좋은 땅도 허락한 일이 있었다(창 20:15).
아비멜렉은 그 이후 아브라함에 대해서 예의 주시하게 되었고, 또 아브라함의 사람됨과 하나님의 축복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에 대한 호의를 계속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할 정도였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하나님이 계시는 줄을 그는 알았다. 꿈을 통하여 알았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받고 알았다. 또 100세나 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권고하심으로 아들을 낳아, 그 소식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웃음이 터지게 만든 일연의 사태를 통해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실존을 체험하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서로 화친하는 동맹을 제의하였다.
창세기 21장 23절에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하며 상호 불가침 평화조약을 제의하였다. 여기 ‘맹세’라는 말 ‘솨바’([b'v; 884)는 일곱을 가리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절대완전함과 불변성을 상징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저들이 제의한 화친동맹은 저들 당대뿐 아니라 저들의 아들들과 손자 대에 이르기를 원하는 동맹을 제의하였다.
아브라함은 저들의 화친 동맹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창세기 21장 24절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고 하였다.

② 브엘세바의 맹세였다(창 21:25-34).
바로 그 시간에 아브라함은 우물의 소유권을 확보하기로 작심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을 따지며 책망하였다. 그 일에 대하여 처음 들은 아비멜렉은 다시는 아브라함의 우물을 손대지 않겠다고 서약하였다.
이때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웠다(창 21:27). 여기 ‘언약’(베리트, tyriB])은 ‘자르다’라는 뜻인데, 산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개어 놓고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의식이었다. 그 의미는 언약을 세운 쌍방의 당사자 중에 어느 편이라도 위반(배약)을 하면 그 짐승처럼 몸을 쪼갤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고대 계약 체결의 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재빨리 일곰 암양 새끼를 따로 구분하여 아비멜렉에게 선물로 주며, 그 우물은 아브라함이 판 것이라는 증거를 삼자고 하였다(창 21:29-30).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두 사람은 거기서 맹세하였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b'v, raeB]) 곧 ‘맹세의 우물’, 혹은 ‘일곱 우물’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그 후 아비멜렉은 그의 종자들과 함께 그랄 곧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되돌아갔다고 하였다(창 21:32).

(3) 아브라함의 브엘세바 맹세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는가?

본문을 유의하여 보면 ‘맹세’라는 말과 ‘언약’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21장 23절에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라’고 하였고, 24절에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맹세하리라’고 하였다. 27절에는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고 하였고 양과 소를 방편으로 삼아 언약하였다. 31절에는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고 하였다. 32절에도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라고 하였다.

① 이것은 평화의 맹세였다.
본문에서 반복된 ‘맹세’와 ‘언약’이란 단어는 모두 상호불가침조약 즉 화친동맹체결에 관계된 것이다. 이른바 화평조약의 표현들이다. 즉 평화롭게 살자는 맹세였다.

②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실현이다(창 12:2-3).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 6:14)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 성취였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사람은 축복의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힘을 실어주신다. 그 결과 이방인들이 자진해서 화친동맹을 제의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참으로 화평의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마므레 형제들과도 동맹관계를 맺고 위기를 돌파한 일이 있었다(창 14:13).

③ 본문의 브엘세바의 언약은 그 내용이 두 가지이다.
첫째 상호 불가침, 즉 화평조약이었다. 그것은 지속적인 평화조약이었다(창 21:23).
둘째 그것은 아브라함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언약(약속)이었다. 곧 아브라함의 우물에 대한 아비멜렉의 불가침조약이었다(창 21:27-30). 사실상 이 우물의 소유권을 확보하겠다는 아브라함의 결단은 대단한 처신이었다.
왜냐하면 고대 유목민들의 사막생활에서 우물은 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금광이나 석유광맥이나 온천을 발견하는 것만큼 귀중하였다. 그래서 우물분쟁이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비멜렉이 제의해온 화평조약을 체결할 때 아브라함이 이 우물의 소유권을 확보한 일은, 자기 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를 내다본 큰 사람의 결단이었다.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그 아들 이삭 때 와서 아비멜렉에게 빼앗겨 버렸다(창 26:12-15).

(4) 브엘세바에서의 아브라함(창 21:32-34)

아브라함 생애에서 참 조용하고 평화로운 한 어간을 보내고 있음을 본다. 그는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21:33)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창 21:34)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 곧 맹세의 우물이라고도 하고 일곱 우물이라고도 하는 블레셋 국경지대인 그랄 왕국의 일부인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 땅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다고 하였다.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쪽 45km, 예루살렘 서남쪽 75km 지점에 현재도 Bir-es-Seba라는 옛 이름으로 유지되어 있고, 일곱 우물 중에 다섯 우물이 사용되고 있는 살아있는 샘이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숨결이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고장이다.
아브라함은 그랄에서 이곳으로 왔다. 아마 이곳에서 이삭을 얻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이스마엘을 추방하였다. 이곳에서 이방인들과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었다. 거기서 100세 때 받은 아들 이삭이 자라는 것을 보며 십 수년을 지낸 것 같다. 34절에 여러 날을 지냈다는 말은 상당한 기간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법이다.
우물이 있는 곳에 사막의 상록수인 에셀나무를 심고, 그 그늘 아래서 아들 이삭과 아내 사라와 함께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엘 올람, !l;/[ 5769 laE 410), 곧 영원하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더라! 정말 조용하고 아름답고 평화스럽고 멋진 아브라함 생애의 한 장면이다.
우물이 있다. 나무 그늘이 있다. 평화가 있다. 100세에 받은 아들 이삭이 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 사라가 있다. 물론 그가 하나님께 받은 풍성한 자원과 종들이 함께 하였다. 더욱이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사람이 있다. 고요함이 있다. 참으로 멋진 축복의 꽃밭이 아닌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을 따라나온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이 아닌가!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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