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8] II. 에덴동산 [창세기 2장8~9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22

"II. 에덴동산(창 2:8-9)"
창세기 2장8~9절
석원태 목사

  제1편 최초의 역사(창 1:1-11:26)

  제1장 천지창조의 역사(창 1:1-2:3)
  제2장 인간창조의 역사(창 1:26-2:25)

  I. 인간창조와 그 목적(창 1:26-2:25)
  II. 에덴동산(창 2:8-9)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서두는 창세기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종결은 요한계시록이다. 인류역사의 처음 페이지에 나타난 여러 내용들은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인 요한계시록에도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창세기 2장에 나타난 에덴과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낙원과 생명나무와 생명수는 요한계시록에도 나타나고 있다(계 21-22장). 보통 우리가 ‘에덴’이란 말을 할 때는 비길 데 없는 인류의 이상향을 말한다. 헬라어에서 ‘에덴’이란 ‘낙원’, 곧 ‘희락의 정원’을 뜻한다. 페르시아어의 ‘에덴’은 ‘향락의 정원’, ‘즐거운 땅’, ‘아름다운 곳’, ‘희락의 꽃밭’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든 에덴은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행복의 고향으로 생각된다. 경탄할 만한 복지의 출발지점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에덴은 격렬한 갈등의 무대로, 또한 비극적 붕괴의 장소로도 생각된다. 분명히 처음 동산 에덴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계시와 구속계시의 상징이 된다.

  1. 에덴동산은 생명을 위한 영원한 처소의 상징이다.

  창세기 2장 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라고 하였다.
  여기의 에덴은 지구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성지(聖旨)가 나타났다. 지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의 거소이다. 하나님은 여러 시대, 여러 모양으로 지구 위에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계시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사 예수께서 지구에 오시고, 지구에 사시고, 지구에서 죽으시고, 지구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러므로 그의 마지막 재림도 지구가 그 대상이다.
  에덴은 영생할 사람의 거소였다. 무죄인(無罪人)의 장소였다. 그러므로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에덴에서 쫓아내셨다. 그 후부터 모든 인류는 지구에서 지나가야 될 나그네요, 행인이요, 거류자가 된 것이다(벧전 2:11).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잠깐 장막을 치셨다.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하였다(요 1:14). 그리고 그는 부활 승천 직전에 새로운 에덴, 곧 새 하늘, 새 땅인 아버지 집을 약속하였다(요 14:1-3). 그러므로 무죄 상태에서의 에덴은 분명히 무죄한 영생인들이 살아가는 새 하늘, 새 땅의 예표가 된 것이다(계 21:3, 22:4). 천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무죄인들의 영원한 거소이다. 지옥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 받지 못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죄인들의 영원한 거소이다.

  2.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생명수는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창세기 2장 9절에 「생명나무」가 있더라고 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마틴 루터는 ‘사람의 생명을 항상 건강하게 하고 젊게 만들어 주는 나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영생성이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하는 영생성이 있다고 생각할 때(딤전 6:16) 이 해석은 부자연스럽다. 루터는, 만약에 아담이 범죄 이전에 이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면 영생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담은 이 나무와 관계없이 영생할 피조물로 지음 받았다.
  칼빈은 생명나무를 상징으로 본다. 생명나무 자체는 외적 상징일 뿐이고, 그 자체 속에 영생의 요소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아담은 그 나무 열매를 먹을 때마다, 쳐다 볼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거스틴도 그렇게 해석했다.
  G. 보스 박사는, 이 생명나무가 동산 가운데 있었다(창 2:9)는 사실에서 에덴동산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타락이전이나 타락이후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강수는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창 2:10-14). 에덴의 강은 사방으로 흘렀다. 이 강은 모든 짐승과 초목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니 생수였다. 거기에 공해의 독소나 사망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시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 보면 새 예루살렘에도 강이 흐르고 있다. 주님은 자신이 생수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였다(요 4:14, 6:35). 에덴의 나무가 생명나무이듯이, 여기에 흐르는 강수가 생명수로 묘사됨은 당연하다.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계약의 상징이었다.

  창세기 2장 9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하였다. 2장 17절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다. 창세기 3장 3절에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였다. 무슨 의미의 나무일까?

  1) 신비적 해석이 있다.
  이는 이방신화로부터 인출된 것이라고 하였다. 신들만의 독점 권한을 인간들이 얻게 될까 시기하여 금하였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 나무는 일종의 마술성이 있는 나무로 간주하는 학설도 있으나 모두 억측이다.

  2) 자유주의적 해석이 있다.
  이는 인간 자신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선과 악을 결정하는 자리에 이르도록 하게 하는 나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선악을 알게 한다’는 말에 기초했다. 즉 ‘선택하다’, ‘정하다’라는 말에 기초한 것이다.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은 인간 자신들의 고유한 선택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인가? 그럴 수 없다.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결정의지이다.

  3) 계약 상징설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나무 자체에 선이 있고 악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과의 약속 관계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설정이다. 생명나무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오직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의지의 산물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의 인격체로 창조하신 아담에게 도덕적 책임을 시험하시는 ‘시련수’(試鍊樹)이다. 결코 하나님은 아담을 기계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아담이 도덕적 인격자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적 말씀에 대한 자의적 순종을 발휘할 수 있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그에게 주어진 도덕적 자유를 주체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함에 있었다.
  말하자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맺은 언약의 상징이란 뜻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행위언약이라 부른다. 호세아서 6장 7절에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고 한 사실을 볼 때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세운 언약의 상징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한 사람 아담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오고, 또 한 사람(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은혜언약) 생명에 이르게 했다고 하였다(롬 5:15).
  ① 행위언약인 이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이고 ② 언약의 약속은 영생이며 ③ 언약의 조건은 순종이고 ④ 언약의 벌칙은 사망이었다. 아담은 이 언약에 실패하였다. 하나님은 아담 대신에 마지막 아담인 예수를 보내어 새 언약을 맺었는데 이른바 은혜언약이었다.

  4. 에덴에서의 아담의 통치는 천국 통치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하셨다. 창세기 2장 15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고 하였다. 창세기 2장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물들과 새들의 이름을 짓는 권세를 주셨다. 이는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었다.
  에덴동산에서 주어진 아담의 과업은 거룩한 문화수행의 통치였다. 생존의 수단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의 수단으로서의 문화적 통치였다. 이것은 바로 새 하늘, 새 땅에서의 거룩한 왕국 통치의 수종자들인 그리스도인의 영화를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죄세계에서의 인류는 무한한 번성과 창대를 이룩하도록 하는 축복을 받았다(창 1:28).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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