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58] 13. 아브라함의 죽음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25

"13. 아브라함의 죽음 "

창세기 25장 1~18절
석원태 목사


  제1장 족장 아브라함의 역사(창 11:27-25:18)
  Ⅱ. 아브람의 성화(창 12:10-25:18)

  1. 아브람의 연약과 구원(창 12:10-13:4)
  2. 아브람의 성별(창 13:5-18)
  3. 아브람의 승리(창 14:1-24)
  4. 아브람에게 재확인되는 언약(창 15:1-21)

  5. 아브람의 연약(창 16:1-16)
  6. 재확인되는 하나님의 언약과 보증-개명과 할례(창 17:1-27)

  7.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그 사람들(창 18:1-19:38)
  8. 아브라함의 두 번째 연약(창 20:1-18)
  9. 아브라함과 이삭, 이스마엘, 브엘세바 ② (창 21:1-34)
  10. 아브라함과 여호와 이레 ① (창 22:1-24)
  11. 아브라함과 소유 매장지(창 23:1-20)
  12. 이삭의 결혼과 아브라함(창 24:1-67)

  13. 아브라함의 죽음(창 25:1-18)

  창세기 25장 1-18절 중에는 아브라함 생애의 만년(晩年)과 그의 최후와 관계되는 세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창세기 25장 1-4절 중에는,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여 자식을 얻은 내용이다. 그의 후처 그두라의 여섯 소생인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와 그들의 자손들이다. 즉 그두라에게서 출생한 6명의 아들과, 그 아들 중에서 태어난 손자 7명, 증손자 3명 등 모두 16명이다. 그들은 대체로 팔레스타인 동남부에 살았다.
  창세기 25장 5절에는 아브라함이 적자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물려주었고, 6절에는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 동방은 수리아와 아라비아 지방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처사는 사실상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창세기 15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적자가 후사 곧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신 바 있다(창 15:2-4). 이 상속은 사실상 죽기 직전이 아니라 이삭 출생 이후에 이루어진 것 같다(창 24:36). 뿐만 아니라 후일에 있을 수도 있는 형제간의 분쟁을 막기 위해 사전에 그의 서자들을 이삭에게서 떠나도록 하였다. 그의 서자들이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아들들을 가리킨다.
  창세기 25장 12-18절에는 서자 이스마엘의 족보가 나온다. 적자 이삭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아브라함가의 방계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서도 12방백이 나왔다(창 17:20). 그의 영토는 아라비아 광야에서 에돔과 모압을 거쳐 수리아 국경에 이르는 성지의 동남부지역이었다. 그는 이슬람교의 조상으로 선민의 대적이 되었다. 지금은 이삭의 후예인 저 유대인(이스라엘)과 또 기독교의 대적이 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하갈과 같이 메카에 장사되었다고 한다(창 25:12-18). 그는 아브라함보다 짧은 137세를 향유하였다(창 25:17). 성경 창세기 25장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가장 큰 사건은 아브라함의 죽음이다(창 25:7-11).

  1) 그의 향년은 175세라고 하였다.

  창세기 25장 7절에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칠십오 세라」고 하였다.
  여기 ‘향년’이라는 말은 ‘삶의 햇수의 날들’이라는 뜻이다. 인생의 삶이란 하루하루의 날 수로 계산되어 감을 보여 준다. 날(시간)들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다(엡 5:16).
  아브라함이 죽은 때는 사라가 죽은 지 38년 되던 때요, 100세 때 얻은 이삭의 나이가 75세 때였다. 이삭을 낳고 75년을 더 살면서 그두라로 말미암아 여섯 아들을 얻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있었다.
  그의 17대 조상 에벨은 아브라함이 죽은 뒤 4년을 더 살았다(창 11:16-17). 그의 10대 조상이었던 셈은 불과 아브라함이 죽기 25년 전에 죽었다(창 11:10-11).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부 나홀은 148세를 살았고, 아버지 데라는 205세, 아들 이삭은 180세를 살았음을 볼 때, 아브라함의 향년 175세는 그 당시의 평균 연령으로 살만큼 충분히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인생의 연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시간의 한계 속에 있는 피조물임을 보여 준다.

  2) 유한한 인생임을 보여 준다.

  창세기 25장 8절에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고 하였다.
  여기 ‘수가 높고’라는 말은 ‘백발의 나이가 되어’라는 뜻이다. ‘기운이 진하여 죽어’라는 말은 ‘숨이 다하여 끊어진 것’을 뜻한다.
  그렇게도 파란만장했던 아브라함의 삶에도 끝 날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하였고, 전도서 3장 2절에도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다. 그러므로 생(삶)이 만인의 것이듯이 죽음도 만인의 것이다. 본문 25장에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죽음도 기록하고, 아들 이스마엘의 죽음도 기록하고 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천정(天定)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살아있을 때 죽음을 맞이할 것을 예비해야 한다.

  3) 새로운 내세로 입문하였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 25장 8절에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고 하였다.
  여기 ‘열조’(암, ???)는 ‘결합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동질성을 갖는 무리’를 의미했다. 이 말의 일차적 의미는 죽은 조상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영적인 동질성의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브라함의 혈통적 조상들은 메소포타미아(하란)에 묻혔다. 지금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묻혔다. 그렇기 때문에 ‘열조’ 곧 ‘동질의 무리’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은 영적 곧 동일한 신앙의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고 생각해야 한다. 누가복음에 보면 나사로가 죽어 천사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 그와 유사한 동질의 무리들이 있는 음부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하였다(눅 16:19-31). 그렇다고 볼 때 그의 죽음이 단순히 육체적 삶의 끝남이나 무덤에 장사됨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실존의 내세로 입문하였음을 보여 준다. 인간 사후에 실존하는 내세에 들어감을 보여 주고 있다. 단순한 가족 묘지나 공동묘지에 장사됨을 의미하는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성구가 가족(선조)들이 묻히지 않은 곳에 장사될 때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왕상 2:10, 16:28).
  여기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에서 ‘돌아가다’(아세프, ????)라는 말은 출애굽기 3장 16절의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라는 말씀의 ‘모으다’(會集)와 같은 단어이다. 또 레위기 23장 39절의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에서 ‘거두다’라는 말과, 스바냐 3장 8절의 「…나라들을 소집하며…」에서 ‘소집하다’라는 단어와 같다.
  그렇다면 이 말은 회중의 집합이나, 거두어들이는 추수(수확; 출 23:16)나, 심판 날의 소집 등에 사용된 말이다. 농부가 씨를 뿌린 후 수확하는 결실과 관계된 말이다. 구원받은 택자를 한곳에 회집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씨를 부여 받았고, 또 하나님에 의해서 거두어들임(부름)을 받는 존재란 뜻이 된다. 중대한 것은 빈 껍질로서의 거두어들임이 아니라 알곡으로서 거두어들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곧 영생의 열매, 구원의 열매, 선행의 열매를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는 진리이다. 이름 값의 열매, 시간 값의 열매, 땅(자원) 값의 열매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님은 비유했다(마 21:19).
  그러고 보면 아브라함이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은 사실상 허무나 무상이 아니라, 실존이요 실상이요 새로운 시작이 아닌가(롬 11:36)!

  4) 복된 죽음이었다.

  창세기 25장 8절에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라고 하였다.
  여기 ‘나이 많아’라고 번역된 말(사바야, ??????)은 사실 ‘만족히 살고’라고 번역되어야 할 내용이다.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닌가!
  아브라함의 생애는 그 자신의 고백대로 ‘나그네요 우거한 자’였다(창 23:4). 그는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가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그가 결정적인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22장 17절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라고 하였다.
  (1)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의 생애였다(창 12:1).
  그는 죄악 세상에서 부름을 받았다.
  (2) 무수한 축복을 약속받았다(창 12:2).
  그는 복의 근원이 되고 자손의 번성과 땅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평생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부를 누렸다(히 6:14-15).
  (3) 그는 믿음의 축복을 받음으로 풍성한 영(靈)의 삶을 체험하였다. 여호와 이레의 체험이 그 절정이었다.
  (4) 그는 불변하신 하나님의 결정적인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를 ‘나의 벗’이라고 불렀다(사 41:8).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라고 하였다(창 20:7). 그는 여러 경우들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언약을 어기는 연약을 범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연약하거나 변하지 아니하였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은 아브라함을 만족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브라함의 연약과 상관없이 그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삭을 얻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이다.
  (5) 무엇보다도 주 안에서 삶을 끝내는 소망의 최후였다.
  성경 여러 곳에서 아브라함이 천국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천국에서도 구원인의 표본처럼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죽음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 것이다(시 116:15).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의 말씀이 바로 아브라함의 것이었다. ① 주 안에서 죽고 ② 성령이 증거하고 ③ 수고를 그치고 쉬며 ④ 행한 일이 따라오는 죽음이었다.
  (6) 자기 땅에, 자기 자손들에 의해서 안장되었다.
  창세기 25장 9-10절에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고 하였다.
  (7) 자손에게 축복이 계승되었다.
  창세기 25장 11절에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고 하였다.
  참으로 그의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 되었다. 그것은 의로운 길, 곧 믿음의 길에서 얻은 것이다(잠 16:31).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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