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60] I. 이삭의 후예 야곱과에서 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27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 "
I. 이삭의 후예 야곱과에서 ② - 장자의 명분
창세기 25장 37~34절
석원태 목사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창 25:19-27:40)

  I. 이삭의 후예 야곱과에서 ② - 장자의 명분(창 25:27-34)

  1. 야곱과 에서의 출생(창 25:19-26)

  2. 장자의 명분(창 25:27-34)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권을 넘겨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얼른 보면 무슨 고대소설에 나타나는 이야기의 한 토막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향유함에 실로 중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1) 개성 있는 두 사람(들사람과 장막의 사람)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창 25:27)라고 하였다.
  에서는 사냥꾼이라고 하였다. 들판의 사람이었다. 그 몸을 덮고 있는 붉은 털과 들판이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그는 야성적인 사냥을 좋아하게 되어 직업도 사냥꾼이 되었다. 반면에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 ‘종용’이란 말은 ‘순전한’, ‘경건한’, ‘온전한’, ‘의로운’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 야곱은 차분하고 평화스러운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장막에 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2) 부모의 편애

  창세기 25장 28절에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다른 개성과 갈 길은 이미 작정된 것이었는데, 거기에 부모들의 편애가 그것들을 더욱 부채질한 셈이다. 두 부모의 편애는 이기적인 자아 중심에서 일어났다. 에서의 남성적 개성은 아버지에게 맞았고, 야곱의 가정적 취미는 어머니 리브가에게 맞았다. 특히 에서가 사냥한 짐승으로 만든 별미가 아버지 이삭의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실상 비교육적인 편애였다.

  3) 장자권(장자의 명분)

  어느 날 야곱이 집에서 팥죽을 쑤었는데, 때마침 들에서 돌아온 에서는 몹시 곤비하였다. 그는 동생에게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창 25:30)고 강청하였다. 그때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창 25:31)고 요구하였다. ‘팔라’는 말은 ‘양도하라’는 뜻이다. 그러자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 25:32-33)라고 하면서 야곱이 시키는 대로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다(양도).
  그리고 그는 야곱에게서 떡과 팥죽을 얻어먹고 나갔다. 이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 25:34)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장자권에 대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1) 이것은 축복 계승권이고, 또 축복권이다.
  고대에 있어서 이 장자의 명분은 여러 형제 중 첫째 아들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우월권, 곧 축복 계승권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하면 그에게 아버지의 유산 중 두 몫이 상속되고, 온 가족을 다스릴 모든 권한이 부여된다.
  신명기 21장 15-17절 중에 보면 이 사실이 율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하였다. 장자가 재산의 두 몫을 가진다는 것은 사실상 부권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권(父權)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이며(창 12:3, 22:17-18), ② 아버지가 가진 권위와 명예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이고(창 27:29, 49:8), ③ 아버지의 유산도 차자보다 배를 차지하게 된다는 뜻이다(신 21:15-17). 그러므로 장자의 특권은 신성시 되어 왔던 것이다.

  (2) 사실상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에 속한 영역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적자 이삭을 통해서 이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이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서 계승되도록 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거듭거듭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주장하고 있다(말 1:2-3).

  (3) 에서는 이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12장 16절에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라고 하였다.
  여기 ‘망령된 자’(베베로스, βέβηλος)라는 말은 ‘하늘의 것을 존숭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딤전 1:9, 4:7, 딤후 2:16).
  ‘한 그릇 식물’과 ‘장자의 권’이 비교되고 있다. 에서는 ‘한 그릇 식물’ 때문에 ‘장자의 권’을 팔아버렸다. 양도해 버렸다.
  ① 그 이유는 현재 배가 고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창세기 25장 29-30절에 「…내가 곤비하니…」라고 하였다. 32절에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라고 하였다.
  ② 장자권을 경시하였다.
  창세기 25장 32절에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였다.
  ③ 맹세까지 하며 경시하였다.
  창세기 25장 33절에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고 하였다. 여기 ‘맹세’란 말은 ‘일곱 번’이란 말에서 나온 ‘일곱 번 말하다’라는 뜻이 있다. 히브리인들의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짐하는 성스러운 서약이었다(출 22:11, 민 5:19). 에서는 맹세하며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

  4) 에서의 장자권 양도에서 받는 영적 교훈

  (1) 에서는 자신이 받은 축복권 자체의 본질을 알지 못했다.
  신적인 축복, 영예로운 축복, 머리 되는 축복의 존귀함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실을 깊이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 ‘신자’, ‘성도’란 말은 실로 죄인인 우리에게 비교할 수 없는 무상한 축복이요 영예가 아닌가! 그래서 성경은 「장자의 명분」(창 25:31), 「장자의 명분」(창 25:32), 「장자의 명분」(창 25:33), 「장자의 명분」(창 25:34)라고 네 번이나 거듭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또 자녀 되는 권세는 ① 신분의 고귀함 ② 지위의 고귀함 ③ 기업의 고귀함을 알려 준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요 1:12-13, 롬 8:13-16). 그러므로 우리는 신자 된 신분이나 또 교회 직분의 고귀함, 존귀함을 언제나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열국의 아비요 열국의 어미 된 축복의 이름을 가진 자이며,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2) 에서는 철두철미하게 현실주의자의 표본이었다.
  「…내가 곤비하니…」(창 25:30),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 25:32)라고 하였다.
  그는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였다. 내세보다는 금세제일주의자였다. 내일보다 오늘, 영보다 육을 중시하였다.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는 자였다. 이 죄는 죽기까지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사 22:13-14).
  쾌락주의인 에피큐리안(Epicurean)파는 말하기를 ‘오늘을 먹고 마시자. 내일은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에서는 순간을 택하고 영원을 내버렸다.

  (3) 야곱의 인간적 방법론의 실수를 본다.
  야곱은 장자권의 우월성이나 존귀성을 잘 알고 있던 자이다. 그래서 형의 순간적 연약을 이용하여 맹세를 하게하고 그 장자권을 빼앗아 버렸다.
  사실상 하나님의 먼 계획 속에는 에서가 아닌 야곱이 장자권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야곱은 인내함으로 이 축복을 받을 것을 대망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 축복을 자기 것으로 만듦에 있어서 간사한 인간적 방법을 감행하였다. 그것은 야곱의 실수였다. 그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였고, 그 결과 고통스러운 파란의 생애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야곱의 연약과 관계없이 그를 향하여 약속된 기업은 계승되었다. 하나님의 축복 언약은 사람에 의해서 고안되거나, 사람과 함께 계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 언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계승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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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경향의 강단 "석원태(昔元太) 목사의 창세기강해(60)"
(2010년 6월 17일)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 "
I. 이삭의 후예 야곱과에서 ②
창세기 25장 37~34절
석원태 목사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창 25:19-27:40)

  I. 이삭의 후예 야곱과에서 ② - 장자의 명분(창 25:27-34)

  1. 야곱과 에서의 출생(창 25:19-26)

  2. 장자의 명분(창 25:27-34)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권을 넘겨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얼른 보면 무슨 고대소설에 나타나는 이야기의 한 토막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향유함에 실로 중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1) 개성 있는 두 사람(들사람과 장막의 사람)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창 25:27)라고 하였다.
  에서는 사냥꾼이라고 하였다. 들판의 사람이었다. 그 몸을 덮고 있는 붉은 털과 들판이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그는 야성적인 사냥을 좋아하게 되어 직업도 사냥꾼이 되었다. 반면에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 ‘종용’이란 말은 ‘순전한’, ‘경건한’, ‘온전한’, ‘의로운’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 야곱은 차분하고 평화스러운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장막에 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2) 부모의 편애

  창세기 25장 28절에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다른 개성과 갈 길은 이미 작정된 것이었는데, 거기에 부모들의 편애가 그것들을 더욱 부채질한 셈이다. 두 부모의 편애는 이기적인 자아 중심에서 일어났다. 에서의 남성적 개성은 아버지에게 맞았고, 야곱의 가정적 취미는 어머니 리브가에게 맞았다. 특히 에서가 사냥한 짐승으로 만든 별미가 아버지 이삭의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실상 비교육적인 편애였다.

  3) 장자권(장자의 명분)

  어느 날 야곱이 집에서 팥죽을 쑤었는데, 때마침 들에서 돌아온 에서는 몹시 곤비하였다. 그는 동생에게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창 25:30)고 강청하였다. 그때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창 25:31)고 요구하였다. ‘팔라’는 말은 ‘양도하라’는 뜻이다. 그러자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 25:32-33)라고 하면서 야곱이 시키는 대로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다(양도).
  그리고 그는 야곱에게서 떡과 팥죽을 얻어먹고 나갔다. 이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 25:34)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장자권에 대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1) 이것은 축복 계승권이고, 또 축복권이다.
  고대에 있어서 이 장자의 명분은 여러 형제 중 첫째 아들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우월권, 곧 축복 계승권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하면 그에게 아버지의 유산 중 두 몫이 상속되고, 온 가족을 다스릴 모든 권한이 부여된다.
  신명기 21장 15-17절 중에 보면 이 사실이 율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하였다. 장자가 재산의 두 몫을 가진다는 것은 사실상 부권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권(父權)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이며(창 12:3, 22:17-18), ② 아버지가 가진 권위와 명예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이고(창 27:29, 49:8), ③ 아버지의 유산도 차자보다 배를 차지하게 된다는 뜻이다(신 21:15-17). 그러므로 장자의 특권은 신성시 되어 왔던 것이다.

  (2) 사실상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에 속한 영역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적자 이삭을 통해서 이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이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서 계승되도록 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거듭거듭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주장하고 있다(말 1:2-3).

  (3) 에서는 이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12장 16절에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라고 하였다.
  여기 ‘망령된 자’(베베로스, βέβηλος)라는 말은 ‘하늘의 것을 존숭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딤전 1:9, 4:7, 딤후 2:16).
  ‘한 그릇 식물’과 ‘장자의 권’이 비교되고 있다. 에서는 ‘한 그릇 식물’ 때문에 ‘장자의 권’을 팔아버렸다. 양도해 버렸다.
  ① 그 이유는 현재 배가 고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창세기 25장 29-30절에 「…내가 곤비하니…」라고 하였다. 32절에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라고 하였다.
  ② 장자권을 경시하였다.
  창세기 25장 32절에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였다.
  ③ 맹세까지 하며 경시하였다.
  창세기 25장 33절에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고 하였다. 여기 ‘맹세’란 말은 ‘일곱 번’이란 말에서 나온 ‘일곱 번 말하다’라는 뜻이 있다. 히브리인들의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짐하는 성스러운 서약이었다(출 22:11, 민 5:19). 에서는 맹세하며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

  4) 에서의 장자권 양도에서 받는 영적 교훈

  (1) 에서는 자신이 받은 축복권 자체의 본질을 알지 못했다.
  신적인 축복, 영예로운 축복, 머리 되는 축복의 존귀함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실을 깊이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 ‘신자’, ‘성도’란 말은 실로 죄인인 우리에게 비교할 수 없는 무상한 축복이요 영예가 아닌가! 그래서 성경은 「장자의 명분」(창 25:31), 「장자의 명분」(창 25:32), 「장자의 명분」(창 25:33), 「장자의 명분」(창 25:34)라고 네 번이나 거듭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또 자녀 되는 권세는 ① 신분의 고귀함 ② 지위의 고귀함 ③ 기업의 고귀함을 알려 준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요 1:12-13, 롬 8:13-16). 그러므로 우리는 신자 된 신분이나 또 교회 직분의 고귀함, 존귀함을 언제나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열국의 아비요 열국의 어미 된 축복의 이름을 가진 자이며,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2) 에서는 철두철미하게 현실주의자의 표본이었다.
  「…내가 곤비하니…」(창 25:30),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 25:32)라고 하였다.
  그는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였다. 내세보다는 금세제일주의자였다. 내일보다 오늘, 영보다 육을 중시하였다.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는 자였다. 이 죄는 죽기까지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사 22:13-14).
  쾌락주의인 에피큐리안(Epicurean)파는 말하기를 ‘오늘을 먹고 마시자. 내일은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에서는 순간을 택하고 영원을 내버렸다.

  (3) 야곱의 인간적 방법론의 실수를 본다.
  야곱은 장자권의 우월성이나 존귀성을 잘 알고 있던 자이다. 그래서 형의 순간적 연약을 이용하여 맹세를 하게하고 그 장자권을 빼앗아 버렸다.
  사실상 하나님의 먼 계획 속에는 에서가 아닌 야곱이 장자권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야곱은 인내함으로 이 축복을 받을 것을 대망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 축복을 자기 것으로 만듦에 있어서 간사한 인간적 방법을 감행하였다. 그것은 야곱의 실수였다. 그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였고, 그 결과 고통스러운 파란의 생애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야곱의 연약과 관계없이 그를 향하여 약속된 기업은 계승되었다. 하나님의 축복 언약은 사람에 의해서 고안되거나, 사람과 함께 계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 언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계승되고 있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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