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61] Ⅱ. 이삭과 아비멜렉 ① 이삭의 하나님 - 언약의 계승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28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 "
Ⅱ. 이삭과 아비멜렉
창세기 26장 1~35절
석원태 목사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창 25:19-27:40)

  I. 이삭의 후예 야곱과에서 ② - 장자의 명분(창 25:27-34)
 Ⅱ. 이삭과 아비멜렉(창 26:1-35)

  이 본문은 이삭이 그랄로 이사한 후 아비멜렉과의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먼저 이삭에게 나타나신 이삭의 하나님을 본다.

  1. 이삭의 하나님 - 언약의 계승(창 26:1-5)

  1) 흉년과 이삭

  창세기 26장 1절에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라고 하였다.
  아브라함도 흉년을 만났는데,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살아갈 때도 흉년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악순환이다.
  이삭은 흉년을 이기기 위하여 그랄이라는 지방으로 이동을 하였다. 여기 ‘그랄’은 헤브론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이삭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은 후 계속해서 브엘세바 들에 있는 하갈의 우물 곁 곧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다(창 25:11).
  그는 거기에서 그랄로 이동하였다. 그랄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자리잡고 살던 땅이었다. 아마 이 아비멜렉은 아버지 아브라함 때 살던 자가 아니라(창 20:2), 그 아들인 아비멜렉이었을 것이다. 시기적으로 약 80년의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창 26:1)라고 한 성경말씀에 유의하자. 바로 불안정한 이 세상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예외 없이 이 세상에서 흉년의 재앙에 시달렸음을 보여 준다. 또한 그로 인해 생활이 불안하기 때문에 살던 곳에서 이동을 해야 하는 인생의 모습이다. 이렇게 인생은 주어진 환경에 연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자주자주 삶의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 없는 나그네적 실존임을 보여 주고 있다.

  2) 이삭의 하나님

  (1) 하나님의 자기 현현 계시(顯現 啓示)이다.
  창세기 26장 2절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라고 하였다.
  이것은 타율주의 종교, 계시종교인 기독교의 특색이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났다고 하였다. 이는 ① 존재(실존)의 하나님을 보여 준다. ② 이삭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이삭이 하나님에게 나타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이삭에게 찾아오셨다. 선택적 자기계시이다. 아비멜렉에게가 아닌 이삭에게 나타났다(요일 4:10). 여기에 구속계시의 특색이 있다(요 3:16). ③ 이것은 이삭에게 소망이다. 흉년 중에 가족적 이동을 단행하는 불확실한 미래의 걸음을 걷던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났다.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심은 언제나 소망이다. 믿음이다. 사랑이다.

  (2) 말씀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의 현현이다(언약적 계시).
  창세기 26장 2절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축복의 하나님이시다. 말씀이 없는 신은 우상이다. 죽은 신이다.

  (3) 그 말씀의 내용은 언약의 재확인, 언약의 계승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허락된 언약의 계승이요 재확인이었다.
  ① 축복의 땅에 대한 약속이다.
  창세기 26장 2절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였다.
  창세기 26장 3절에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라고 하였다.
  창세기 26장 2-3절 말씀 가운데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 ‘이 땅’, ‘이 모든 땅’이라고 반복되고 있다. 아마 이삭은 흉년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계획을 갖고 길을 떠난 모양이다. 그때 하나님은 그랄에 머물고 있는 이삭에게 나타나서 그 이상 애굽으로 더 진행하지 못하도록 그의 걸음을 제지하였다. 여기 그랄 지방도 사실상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영역이었다.
  ‘이 땅에 유하면…’이라고 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비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살게 하신 약속의 땅에 유하라는 말이다.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땅이다. 그러므로 이삭이 이 땅에 유한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유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을 뜻한다.
  약속의 땅에 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 바로 이삭이 계승할 땅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전 생애에 걸쳐 이 땅에 대한 약속을 여러 번 반복한 바 있다(창 12: 1-3, 13:14-17, 15:1-5, 17:1-10, 22:16-18).
  그 약속이 지금 이삭에게도 반복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한 사실이다.
  ② 축복의 자손에 대한 약속이다.
  창세기 26장 4절에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의 내용도 이미 아브라함에게 거듭 거듭 재확인해 준 약속이었다. 바닷가의 모래 같은 자손(창 22:17), 땅의 티끌 같은 자손(창 13:16), 하늘의 별 같은 자손(창 22:17)의 축복이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은 많은 자손, 무수한 자손, 허다한 자손, 창대한 자손, 소망스러운 자손, 머리 되는 자손을 의미하고 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지금도 역사의 한가운데서 진행되고 있다.
  ③ 메시야적 자손의 축복이다.
  창세기 26장 4절 중에 또 말하기를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한 사람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구원의 축복은(창 12:2-3) 이삭과 야곱을 거쳐 이스라엘 전체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로 확산되어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손 가운데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에 이르는 축복을 가리킨다.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가리킨다(마 1:1).
  결론적으로 이삭에게 이러한 축복이 임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창세기 26장 5절에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이고, 또 그 언약에 따른 아브라함의 신종 때문에 이삭이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내 말’, ‘내 명령’, ‘내 계명’, ‘내 율례’, ‘내 법도’이다. 5중으로 반복되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낸 ‘언약의 말씀’이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이기 때문에 이삭도 그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언약의 말씀 자체가 이삭의 이삭 된 전부이다. 그 말씀 속에 이삭의 전 생애가 들어 있다. 축복이 들어 있다.

  3) 이삭의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영적 교훈

  (1)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알게 된다.
  부자(父子)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떠나고 이삭의 시대가 도래한 역사의 변천 속에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2)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보여 준다.
  이삭이 살던 땅에 흉년이 왔다. 그 결과 이삭의 삶에 일대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브엘세바를 떠나 그랄로, 또 그랄에서 애굽으로 환경의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불변부동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에는 흉년이나 이동이나 변동이 없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흉년 때문에 약하여지거나, 이삭의 이동 때문에 언약 자체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아닌가!
  환경이 변하고, 그 환경에 따라 인생이 연약에 싸인다고 해서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이상이 있다고 하면 인류 역사는 그 존재 기능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 특별히 구속 언약의 주권성, 불변성, 동일성, 영원성, 향방성, 목적성, 확실성, 견고성, 소망성 때문에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는 온갖 흔들림 속에도 그 목적적인 궤도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에게 신, 망, 애를 일으켰다.
  흉년 때문에 이삭의 인생 코스가 애굽으로 달려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삭은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태어난 운명적 실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삭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한 언약적 축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다.
  결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고 이미 예정되어 있는 미래였다. 확실하고 축복스러운 미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이삭의 길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약속의 땅에 거하라고 하였다.

  (4) 하나님의 구속경륜은 그 시기까지도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먼 훗날에 집단적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경륜 가운데 들어 있다. 창세기 15장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라고 하였다. 그 후에 다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창 15:14). 그러나 그것이 이삭의 시대에 실현될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더 먼 훗날인 야곱의 아들 요셉 때 이루어질 일이었다. 야곱의 가족 70인이 애굽으로 이주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창세기 46장에 나타나고 있다(출 1:1-5). 이것을 보면 선민들의 역사를 계획하고 이루어가는 주체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5) 하나님이 사람, 특별히 선민을 찾아오실 때는 축복을 가지고 찾아오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땅의 기업과 자손의 행복과 메시야적 구원의 축복을 가지고 이삭을 찾아오셨다. 흉년 정도의 고난 때문에 이삭의 역사가 혼란에 빠질 수는 결코 없는 일이 아닌가?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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