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62]Ⅱ. 이삭과 아비멜렉 ② - 이삭과 우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29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 "
Ⅱ.이삭과 아비멜렉 ② - 이삭과 우물
창세기 26장 6~25절
석원태 목사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창 25:19-27:40)
  I. 이삭의 후예 야곱과 에서(창 25:19-34)
  1. 야곱과 에서의 출생(창 25:19-26)
  2. 장자의 명분(창 25:27-34)

  Ⅱ. 이삭과 아비멜렉(창 26:1-35)

  1. 이삭의 하나님 - 언약의 계승(창 26:1-5)

  2. 이삭과 우물(창 26:6-25)

  본문에는 그랄에 거한 이삭의 연약(창 26:1-10)과 받은 축복(창 26:11-14)과 우물사건(창 26:15-25)이 나타나고 있다.

  1) 이삭의 연약과 하나님의 보호(창 26:7-11).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았던 브엘세바 땅에 아들 이삭이 살았다. 또 아버지 아브라함 때 일어났던 흉년이 이삭이 살던 때에도 일어났다.
  이삭은 이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가려고 브엘세바를 떠나 그랄까지 자리를 옮겼을 때였다. 그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르기를 ①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였다. ②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약속받은 땅(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을 재확인하여 주었다.
  이삭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창 26:1-5). 여기 그랄은 아직 가나안 영역이었고, 애굽은 아니었다.
  이삭은 애굽으로 가려고 했던 처음의 계획을 중지하고 그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연약성을 보이고 말았다. 그는 그랄인들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였다. 그 이유는 리브가가 사람들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랄 사람들에게 이삭이 리브가로 인하여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창 26:7).
  나중에 리브가를 누이라고 앴던 이삭의 말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은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이 그랄 왕(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창 26:8). 여기 ‘껴안다’라는 말은 ‘웃다’, ‘애무한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로 ‘짙은 포옹’을 가리킨다. 아비멜렉은 이 사실을 보고 저들이 부부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이삭은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게 되었고, 자신이 거짓말을 하게 된 부끄러운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게 되었다(창 26:9). 그 후 아비멜렉은 모든 백성에게 리브가는 이삭의 누이가 아니라 아내라는 사실을 알리고, 누구든지 리브가를 범하는 자는 죽일 것이라고 공포하기에 이르렀다(창 26:10-11).
  이렇게 이삭은 생존을 위한 환경적응에 연약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그의 연약성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연약성과 비슷하였다. 마치 연약함이 부전자전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삭편에 서서 그를 보호하고 축복하셨다(창 12:10-20, 20:1-18).

  2) 그랄에서 받은 이삭의 축복(창 26:12-14a)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창 26:12-14a)라고 하였다.
  이삭은 그랄에 머물면서 농사를 하였다. 그는 그 해에 100배나 수확을 하여 그랄의 거부가 되었다. 이것은 이미 그곳에 정착하여 살던 그랄 지방의 사람들의 수확에 비교하여 표현한 축복의 내용이기도 하고, 파종한 종자의 분량에 비하여 100배가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최대의 추수를 의미한다. 중대한 것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수확량이 많아졌다(창 26:12).
  (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창 26:13).

  ‘창대와 왕성’의 복은 ‘계속적인 복’, ‘복에 복을 더하는 복’을 뜻한다.
  (3) 가축의 축복도 따랐다(창 26:14a).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창 26:14a)라고 하였다.
  이삭은 농사의 수확뿐 아니라 사실상 그의 본업이었던 목축업에 있어서도 창대하고 왕성하였다.
  (4) 노복이 심히 많았다(창 26:14).
  노복은 당시 이삭 집안에 딸린 종들을 위시해서,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이삭에게 붙어 있던 모든 종들을 의미한다. 당시 족장사회에서는 가축의 수와 노복의 수가 부를 나타내는 재산의 척도가 되었다. 이삭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상속한 재산이 있었다. 거기에다 그랄에서 여러 해 동안 농사하여 얻은 100배의 수확과, 가축의 복과, 노복들로 말미암아 거부가 되었다고 하였다(창 26:13). 이른바 그랄에서의 신흥재벌(新興財閥)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실현이었다.

  3) 이삭과 우물(창 26:14b-22)

  축복받은 그랄의 신흥재벌(新興財閥)이 된 이삭에게 시험이 일어났다. 그것은 그곳 블레셋(그랄) 사람들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1) 그 시기의 결과 그랄 사람들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팠던 우물을 막고 덮어 버렸다(창 26:15).
  사막 고온지대에 있어 우물은 생존과 직결하였다. 그런 우물을 막아버린 것은 바로 전쟁선포와 같은 행위였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이곳 그랄에 우물을 파고 선왕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고 우물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역사가 있었다(창 21:30). 그러나 8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이삭 시대에는 그 사건이 이미 흘러간 옛노래처럼 되어버렸다.
  (2) 뿐만 아니라 그랄 왕 아비멜렉은 이삭을 그곳에서 떠나라고 하였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창 26:16)고 하였다.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일종의 강제 추방령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옮겨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였다(창 26:17). 여기 ‘우거’란 장기거주를 뜻한다. 실제로 이삭은 이 지역에서 15년 간 머물렀다.
  이삭은 그곳에서 그 아버지 때 팠던 우물을 다시 팠다(창 26:18). 그리고 그 우물의 이름을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대로 불렀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함일 것이다(창 26:18).
  그때 그랄 목자들이 와서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쟁변하기를 ‘이 물은 우리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다툼을 인하여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ק󰚆󰘠)’ 곧 ‘다툼’이라고 하였다.
 ‘강탈하다’라는 의미의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삭은 그 다툼의 우물을 깨끗이 포기하였다.
  이삭은 다시 우물을 팠다(창 26:21). 그런데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ה󰗺ט󰚄)’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탄(טן󰚃)’에서 유래한 말로 ‘원수’, ‘공격’, ‘대적’이란 의미이다. 이 지역은 브엘세바로부터 서남 32km 지점의 현재 ‘와디 에스 슈테인’(Wady-es-Shutein)으로 짐작된다.
  이삭은 또 다시 거처를 옮겨 다른 우물을 또 팠다(창 26:22). 그곳에서는 다시 다투지 않았다. 그래서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בוֹת󰖓󰙣)이라고 하였다. 곧 ‘넓은 공간’이라는 의미였다. 브엘세바에서 서남쪽으로 30km에 위치한 ‘와디 엘 루바이베’(Wady er Rubaibeh)로 짐작된다.

  4) 이삭의 전환 -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옴(창 26:23-25)

  흉년 때문에 브엘세바를 떠나서 애굽으로 가려던 이삭이 그랄에 머물 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 더 이상의 애굽행진을 제지하였다. 이삭은 그랄 지방에 머물면서 거부가 되었으나, 생존의 필연적 수단인 우물 때문에 그랄 지방 사람들과 오랫동안 다툼의 어간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팠던 우물을 양보하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팠다. 마침내 이삭은 ‘르호봇’ 우물곁에서 평온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세기 26장 23절을 보면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다고 하였다. 27절에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라고 한 것을 보면 아마도 이삭은 블레셋 주민들의 후환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의 지시 때문이었던 것 같다(창 26:2). 그는 사실상 하나님이 본래 지시하시던 곳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삭 생애의 중대한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흉년 때문에 브엘세바를 떠났다가(창 26:1), 그랄에서 오랜 투쟁의 삶을 치르고 다시 브엘세바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에서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생각된다(창 35:27).
  이삭은 다시 되돌아온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게 된다. 이른바 이삭의 ‘브엘세바 제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삭의 브엘세바 제단은 몇 가지 경우에서 의미가 있다.
  (1) 첫째는 그동안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이다.
  그랄에서 나타나신 하나님, 이삭의 애굽 길을 막으신 하나님, 그랄에서 연약해졌을 때 지켜주신 하나님, 그랄에서 거부가 되게 해 주신 하나님, 우물의 경쟁에서 양보하고도 더 넓은 우물 ‘르호봇’을 주셔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다.
  (2) 둘째는 브엘세바에 다시 나타나 자신에게 축복을 재확인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다.
  창세기 26장 24절에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①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②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③ 내 종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 때문에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삭에게 있어서 결코 처음 있는 일이거나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일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쌓았던 제단을 계승하는 익숙한 예배행위였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삭은 그곳에 장막을 치고, 그의 종들이 다시 우물을 팠다고 하였다(창 26:25).

  5) 이삭의 우물에서 받는 결론적 교훈

  (1) 우리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브엘세바에서 그랄로, 그랄에서 다시 브엘세바로 인도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2) 인생에게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강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본다.
  (3) 축복받은 거부의 여유 있는 양보의 삶을 본다.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심이 이삭을 추방하고 다툼(에섹)과 대적(싯나)을 일으켜도, 모두 양보하고 더 넓은 ‘르호봇’을 향하는 이삭이었다.
  (4) 축복받은 사람의 본질적인 본분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예배를 통하여 나타남을 본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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