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64]Ⅲ. 복과 저주 - 족장권 상속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30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 "
복과 저주 - 족장권 상속
창세기 27장 1~40절
석원태 목사

  제2장 족장 이삭의 역사(창 25:19-27:40)
  I. 이삭의 후예 야곱과 에서(창 25:19-34)
  1. 야곱과 에서의 출생(창 25:19-26)
  2. 장자의 명분(창 25:27-34)

  Ⅱ. 이삭과 아비멜렉(창 26:1-35)
  1. 이삭의 하나님 - 언약의 계승(창 26:1-5)
  2. 이삭과 우물(창 26:5-25)
  3. 이삭과 아비멜렉의 맹세 - 브엘세바의 맹세(창 26:26-33)

  Ⅲ. 복과 저주 - 족장권 상속(창 27:1-40)

  창세기 27장에는 이삭의 축복과 저주가 나타나고 있다. 즉 아들 야곱을 향한 이삭의 축복과 에서를 향한 일종의 저주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족장권의 상속으로 구속사의 한 세대가 또 교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축복의 정통적 계승권의 시비이다. 27장을 보면 '복'이라는 말과 '저주'라는 말이 반복된다. 모든 사건의 중심이 이 복과 저주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1. 야곱이 받은 축복(창 27:1-29)

  이삭이 나이가 많아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큰아들 에서를 불러 사냥을 명하고, 자신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하였다. 그 별미를 먹고 마음껏 에서를 축복해 주겠다고 하였다(창 27:1-4).
  이 말을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들었다. 그녀는 둘째 아들 야곱을 급히 불렀다. 그리고 이삭의 축복을 아들 야곱이 받게 하기 위하여 계략을 꾸몄다. 그녀는 가축 중에서 염소를 잡아 급히 요리를 하였다. 그것은 에서가 사냥하여 만든 요리를 대신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맏아들 에서의 옷을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새끼의 가죽으로 야곱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부분을 꾸미게 했다. 에서의 몸에 많이 난 털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다(창 27:5-17).
  야곱은 에서로 위장하고 어머니 리브가가 만든 별미를 이삭에게 갖다 준다. 그리고는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창 27:18-19)라고 요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삭은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창 27:20)라고 거짓말로 대답하였다.
  야곱의 목소리를 들은 이삭은 의심쩍어졌다. 그래서 야곱에게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창 27:21)고 하였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야곱의 손을 만지며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라고 하며,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라고 물었다. 물론 야곱은 「그러하니이다」라고 거짓말로 대답하였다. 그 후 이삭은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더불어 준비한 염소고기로 만든 별미를 실컷 먹고 또 가져간 포도주를 마셨다. 식사에 만족한 이삭은 아들을 다시 가까이 오게 하고 그에게 입맞추기를 원했다(창 27:20-26).
  아버지 이삭 곁으로 다가간 야곱이 그에게 입맞추자 마침내 이삭은 아들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이삭이 에서로 위장한 야곱에게 토했던 축복은 일종의 유언적 축복이요, 예언적 축복이요, 언약적 축복이었다.
  그 축복의 내용은 이러하다.

  1) 자연적 소산의 축복이다.

  창세기 27장 28절에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풍요한 토지와 농산물(곡물)의 축복 곧 물질적 축복이다. 가나안 땅에 임하는 현세적 축복이다.

  2) 특별한 축복 곧 영적 축복이다.

  창세기 27장 29절에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라는 말에서 '만민'은 '열국', '형제들', '어미의 아들들'이라는 말인데, 실제로 이방나라, 이방백성을 뜻함이다. 이스라엘(야곱)이 정치적 군사적인 축복으로 가나안과 이웃 국가들을 지배할 것을 가리킨다. 이 예언은 다윗 왕국 시대에 성취되었다(삼하 8장).
  또한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한다」는 말은 좀더 가까운 근친들인 에돔, 모압, 암몬인들인데 이는 에서의 자손들이다.

  3) 메시야적 축복이다.

  창세기 27장 29절 하반절에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이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던 축복이다(창 12:3). 이것은 사실상 야곱의 후손 중에서 일어날 메시야가 인류 축복의 기관이 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시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곧 그 축복하는 자이다. 그를 믿지 않는 자는 그를 저주하는 자가 되어 그것이 정죄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요 3:16-18). 이삭은 자신의 축복기도가 그대로 성취된다고 굳게 믿었다(창 27:33).

  2. 에서가 받은 저주(창 27:30-4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쳤을 때 에서가 사냥을 해가지고 돌아왔다. 에서는 부지런히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져간 뒤, 맛있게 드시고 마음껏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때 아버지 이삭은 놀라고 크게 떨며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33)고 하였다.
  에서가 그 아비 이삭의 말을 듣고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창 27:34)라고 방성대곡하였다고 하였다. 이삭이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라고 하자, 에서는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라고 하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 27:35-36)라고 소리치며 통곡하였다. 에서는 계속해서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창 27:38)라고 하며 소리를 높여 울었다고 하였다.
  실로 가련한 애원이다. 그러는 에서에게 이삭이 다시 말을 하고 있으나 그것은 사실상 일종의 저주이다. 27장 39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라고 하였다. 40절에서는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고 하였다. 39절의 '뜨다'라는 말은 '떠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에서가 거처하는 곳에는 땅의 비옥함이 없고,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가나안의 기름짐이 박토로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자연계에 대한 저주이다.
  40절에 '칼을 믿고 생활한다'라고 함은 전쟁과 약탈로 살아가는 사나운 민족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우를 섬긴다'는 말은 아우의 종이 된다는 말로 머리가 아닌 꼬리가 되는 저주이다.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고 함은 에서 자손(에돔)의 반역적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저들은 실제적으로 유다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자주 반역하였다. 사울 왕 때 유다를 반역하다가 패배를 당했다(삼상 14:47). 다윗 왕 때는 반역하다가 오히려 유다에 복속되고 말았다(삼하 8:13-14). 솔로몬 왕 때는 반역하려 했으나(왕상 11:14) 계속 유다에 복속되었다가 요람 왕 때 반역하였다. 그러나 아마샤 왕 때 다시 유다에 정복되었다. 그리고 에돔(에서)은 아하스 왕 때 완전히 유다의 지배를 벗어나 이탈하였다(대하 28:16-17).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요한 하이카너스(Hyrcanus)로 말미암아 유다에 정복이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에서의 자손은 상습적인 반역자 노릇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속역사의 무대에서 반역자, 반란자가 되었다.

  3. 축복과 저주에 대한 구속사적 교훈

  1) 구속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 축복은 예정된 불변부동의 것이었다.

  이미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가운데,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기로 작정하셨다고 하였다(말 1:2-3). 그 둘이 태중에 있을 때에도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이미 말씀하셨다(창 25:23). 하나님은 이 사실을 그 부모된 이삭과 리브가에게 알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에서는 야곱에게 축복의 장자권을 팔아버렸다(창 25:31-34). 에서는 그의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고 하였다(창 25:32, 34). 또한 에서의 결혼은 그의 부모들에게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하였다. 즉 에서가 40세에 헷족속의 여인을 아내로 삼은 일이 있는데, 이 일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하였다(창 26:34-35). 이삭은 지금 자기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직시해야만 했다.

  2) 인간편에서의 연약한 불신앙적 실수를 본다.

  그러한 인간편의 불신앙적 소행은 인간의 연약성이다.
  (1) 먼저 이삭의 연약(실수)이다.
  그는 육적 분별력이 둔하였다. 즉 육적 시력이 약했다. 그리고 별미를 탐하는 육적 탐욕이 있었다. 또한 그는 영적 분별력도 둔했다. 그는 별미를 먹고 에서를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하였다. 이는 그의 영적인 암매였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야곱에게 있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삭은 어찌하여 에서를 축복하겠다고 하였을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불신앙적 사고요 행동이었다.
  (2) 리브가와 야곱의 실수이다.
  이들의 실수는 편애에서 비롯되었다. 리브가는 장자의 축복이 야곱에게로 돌아갈 것을 믿었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기만책을 사용한 것은 부덕이요 죄악이다.
  더욱이 야곱은 그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아버지를 속였다. 실로 간사하고 간교한 잘못된 방법이다. 이 모자는 이삭에게 일종의 사기를 친 셈이다.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계승의 뜻(목적)을 알았다면, 그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도록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렸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가정에는 예기치 못한 파란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3) 그럼에도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은 야곱에게로 진행되었다.

  야곱이 장자의 기업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한 것이다(롬 9:12-13, 창 25:23).
  혹 우리가 오해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인간의 거짓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1) 오히려 이런 성경기록을 통하여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거짓되고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바로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하고야 말게 한 사실이다. 이삭의 뜻대로 되었다면 에서가 복을 받고 말지 않겠는가? 사람은 부족해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우리의 구원은 성취되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2) 뿐만 아니라 이삭의 어리석음과, 리브가와 야곱의 간계마저도 하나님의 주권적, 허용적 섭리의 신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배척한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오히려 이방인의 부요가 되게 하는 구속사의 섭리적 신비도 그러하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랬음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요구대로 왕정을 허락하였다. 그렇다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속경륜에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3)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가운데 인간의 죄 자체를 인정하거나, 그 죄가 구속사 진행에 영향을 끼치도록 방치하지는 않으시는 하나님을 본다.
  전 성경에서 인간의 연약과 범죄는 그대로 드러나고, 그 일로 말미암아 인간은 징치를 받고 말았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다만 인간의 연약과 범죄 때문에 그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이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종교인 것이다.

  4) 축복은 선택받은 구원인의 것이고, 저주는 유기된 자의 것이다.

  로마서 9장 13절에 「기록된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은 야곱에게로 진행되고 있음을 본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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