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80] 족장 요셉의 역사(2) 꿈과 현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45

"족장 요셉의 역사(2) "
- 꿈과 현실 -
창세기39장 1절~ 23절
석원태 목사

  제4장 족장 요셉의 역사(창 37:1-50:26)

  I. 꿈꾸는 자 요셉 - 꿈을 받은 요셉(창 37:1-36)

  Ⅱ. 꿈과 현실(창 39:1-23)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 속에는 실로 불가사이한 일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왜 의인이 고난을 겪는가, 왜 악인이 형통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 실례 중의 하나가 본문 창세기 39장의 요셉의 경우에서 보여지고 있다.
  창세기 37장 서두에 나타난 요셉의 꿈은 실로 찬란하였다. 형들의 곡식단들이 요셉을 둘러서서 절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을 향하여 절하는 꿈이었다. 하나님이 요셉의 장래를 보장하고, 아니 야곱 가문의 영광스런 장래를 예고해 주는 푸른 신호등이었다.
  그럼에도 나타난 요셉의 현실은 그 꿈과 정반대였다.

  1. 은 이십에 팔린 요셉(창 37:28)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상품처럼 은 이십에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는 몸이 되었다. 그는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그의 꿈에 비해 그때의 그의 현실은 실로 참담하였다. 채색옷이 벗김을 당하고, 아버지가 멀어지고, 가족들이 있는 정든 가나안 땅이 멀어져 버리는 것이 요셉의 현실이었다. 참으로 꿈과 대조를 이루는 현실이 아닌가?

  2. 종살이를 하는 요셉(창 39:1-6)

  그는 애굽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 장관의 집에 팔렸다. 이스마엘 상인들에 의하여 두 번째 흥정을 당하여 보디발 장관 집에 팔리게 된 것이다.
  창세기 39장 1절에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고 하였다. 2절에는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하였다. 4절에는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라고 하였다.
  요셉은 그 새로 만난 주인을 섬겼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종 요셉이 받은 복은 모조리 그 주인의 복이 되고 말았다(창 39:5).
  하나님은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전 소유물에 복을 주셨다고 하였다. 요셉 때문에 그 장관이 복을 받고, 애굽이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 때문에 이 세상과 나라가 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셉의 것이 되지는 않고 그 주인의 것이 되어 버렸다.

  3. 애매히 고난을 받는 요셉(창 39:7-20)

  창세기 39장 20절에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고 하였다.
  요셉은 왕실 감옥에 갇히고야 말았다.

  1) 요셉은 죄의 유혹에서 양심을 지키다가 옥에 갇혔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다고 했다(창 39:6). 그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성적인 유혹을 받았다. ① 눈짓으로 유혹하며 동침하기를 청했다고 하였다(창 39:7). ② 날마다 요셉은 유혹을 당했다(창 39:10). ③ 마침내 습격해오는 유혹을 당했다(창 39:12).

  2)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다가 옥에 갇혔다.
  창세기 39장 9절에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였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을 당했을 때나,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나, 보디발 장관 집에 팔렸을 때에 하나님을 불렀다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 죄의 유혹이 극심했을 때 보디발의 아내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신앙을 나타냈다.

  3) 요셉은 죄를 피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그는 날마다 유혹을 거절하였다(창 39:10). 나중에 보디발의 아내는 행동적으로 유혹해왔다. 그때 요셉은 자기 겉옷을 벗김 당한 채 그 자리에서 도망하였다(창 39:12). 그러나 그 겉옷이 오히려 증거물로 악용되어 요셉의 범죄(?)가 성립되고, 마침내 잡혀 옥에까지 가게 되었다(창 39:13-18, 20).
  실로 이 세상은 모순과 부조리와 역설과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아직까지 이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장은 아니다. 아니 이 세상은 결코 공의로운 심판장이 못된다. 그 이유는 죄인을 가두어야 할 장소에 종종 의인을 가두기 때문이다. 39장 20절에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고 하였다.

  4.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요셉(창 39:21-23)

  창세기 39장 20절 하반절에서 21절에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라고 하였다.
  창세기 39장 전부는 사실상 요셉의 캄캄하고 암담한 비극 충만의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 칠흑 같은 캄캄함 속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길을 잃지 않는 것과 같은 재미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심'이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여기 '인자', '은혜'를 뜻하는 단어는 '헤세드'(ד󰘑󰖕)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푼 인자(창 19:19), 은혜(창 24:12), 긍휼(느 1:5)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된다. 창세기 6장 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호의를 입었다는 뜻이다. 많은 경우에는 이 말이 인간이 인간에게 나타낸 친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세기 33장 10절의 경우,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났을 때 나타난 친절(호의)이 이것이다.
  그러나 더 확실히 말하면 이 헤세드란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 곧 선택받은 백성에게 나타내는 하나님의 많은 자비와 사랑을 말함이다. 그 많은 자비와 사랑인 헤세드가 무엇인가?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구원의 선물이다(엡 2:8).
  요셉의 경우에는 하나님 자신의 헤세드가 어떻게 나타났는가?
  창세기 39장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게 함에서 나타났다. 신약시대에는 임마누엘 하신 예수, 보혜사, 말씀, 재림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심으로 헤세드가 나타났다.
  요셉의 경우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창 39:2, 3, 2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표징을 그가 형통했다는 사실로 나타냈다. 하나님이 함께 했다는 말 뒤에는 반드시 형통이란 단어가 따라와 붙어있다. 요셉이 형통했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했다고 반복하고 있다.
  여기 '형통하다'라는 말은 '돌진하다'라는 기본의미에서 번성하다(겔 17:9), 승리를 얻다(왕상 22:12) 등의 뜻으로 확대되었다. 곧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장애가 없는 순조로움을 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요셉의 경우는 이 말이 모순된 것처럼 느껴진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리에서 형들의 미움을 받는 자리로, 아버지가 있던 자리에서 아버지를 잃는 자리로, 고국에서 타국으로, 자유인에서 종으로 그리고 애굽에서는 일종의 국사범으로 왕실의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란 단어는 ① 비극의 현실 가운데서도 승리와 번성의 동인(動因)이 잠재해 있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 그 동인의 실체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그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② 그 형통은 목적적이고, 전체적이고, 계획적이고, 필연적이고, 궁극적이기 때문이다. 결코 부분적인 형통을 말함이 아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고난이란 현실은 요셉이 받은 축복의 꿈을 실현하고 성취하는 수단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형통의 증거가 무엇이었던가?
  창세기 39장 21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하였다.
  ① 애굽의 보디발 장관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함을 보게 된 것이다(창 39:3). ② 보디발 장관의 신임을 받고 가정 총무를 삼게 한 것이다(창 39:4). ③ 요셉 때문에 그 장관집이 복을 받게 된 것이다(창 39:5). ④ 전옥이 감동을 받고, 옥살이를 하는 요셉에게 옥중 죄수를 다 맡기고, 제반사무도 맡기게 된 것이다(창 39:22).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다시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어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기 때문이었다.
  꿈과 현실! 그것은 참으로 모순투성이의 모습이다. 너무나도 거리가 멀고 차이가 있다. 문제는 그 꿈이 무슨 꿈이냐 하는 데 있다. 그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이라면 그 꿈과 정반대의 참혹한 현실이 올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꿈과 현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손에서 자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자아의 끝은 바로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무가내하(無可奈何)의 환경이 바로 하나님이 간섭하는 기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참된 꿈에 반대되는 모든 현실은 그 참된 꿈을 성취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이 보낸 전령사로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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