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86] 요셉의 시험(test)과 그 형제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54

"요셉의 시험(test)과 그 형제들"

창세기43장 1절~ 34절
석원태 목사

  제4장 족장 요셉의 역사(창 37:1-50:26)

  I. 꿈꾸는 자 요셉 - 꿈을 받은 요셉(창 37:1-36)
  II. 유다의 아들들(창 38:1-30)
  III. 꿈과 현실(창 39:1-23)
  IV. 해몽자 요셉 - 두 장관의 꿈(창 40:1-23)
  V. 애굽 총리가 된 요셉(창 41:1-57)
  VI. 곡물을 사기 위하여 애굽으로 간 야곱의 아들들(창 42:1-38)
  VII. 두 번째 곡물을 사기 위하여 애굽으로 간 야곱의 아들들(창 43:1-34)

  VIII. 요셉의 시험(test)과 그 형제들(창 44:1-34)

  두 번째 애굽으로 곡물을 사러 갔던 야곱의 아들들 곧 요셉의 형제들은 극적인 요셉의 영접을 받았다. 그리고 곡물을 사서 가나안에 있는 아비에게로 되돌아가는 데서부터 창세기 44장이 시작된다.

  1. 형들을 향한 요셉의 시험(창 44:1-13)

  요셉은 청지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나안 땅에서 곡식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되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도 그 자루에 도로 넣으라고 하였다(창 44:1). 그리고 요셉 자신이 쓰는 은잔을 몰래 동생 베냐민의 자루 아구에 양식 값으로 지불한 돈과 함께 넣으라고 하였다(창 44:2). 마침내 「개동시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창 44:3)고 하였다.
  저들은 참으로 금의환향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곡식을 사러 갔던 일개 목민들이 세계제국인 애굽의 총리의 특별한 영접을 받고, 함께 식사(파티)를 하는 특권을 누렸다. 게다가 그 사람의 약속대로 억류되어 있던 시므온도 다시 만났으며, 그토록 아비가 염려했던 베냐민의 신병도 안전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넘치는 총리의 후대를 받고 곡식을 가득 채운 자루를 나귀에 가득 싣고 아비 야곱이 있는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저들이 애굽을 떠난 지 얼마 못되어, 요셉이 보낸 청지기들이 저들에게 들이닥쳤다. 청지기들은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창 44:4-5)라고 하며 자기 주인이 은잔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저들은 졸지에 도적질을 한 도둑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자루를 풀어 보이며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창 44:9)라고 하였다. 마침내 나이가 많은 자부터 차례대로 검색이 시작되었는데, 제일 마지막인 베냐민의 자루에서 총리 요셉의 은잔이 발견되고 말았다. 이때 저들은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실은 채 다시 총리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창 44:4-13).
  이것은 형들을 향한 요셉 자신의 선한 책략이었다. 형들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저들에게 문제가 된 은잔은 요셉이 점치는데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당시 애굽 제국에 널리 행해졌던 일종의 풍습을 들어 말했을 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요셉은 결코 이 같은 점성술의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들이 처음에 애굽에 왔을 때 요셉이 저들을 정탐꾼이라고 우긴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될 것이다.

  2. 베냐민을 위한 유다의 변호와 강청(창 44:14-34)

  유다와 그 형제들이 총리 요셉의 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요셉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땅에 엎드러져 버렸다. 다시 요셉의 꿈이 실현되는 장면이었다(창 44:14). 이때 유다는 베냐민을 위하여 변호하고 강청하며 절규하였다.

  1) 우리 모두가 당신의 종이 되겠다고 했다(창 44:16).
  그러나 총리 요셉은 은잔이 발견된 자만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창 44:17).

  2) 우리가 베냐민을 애굽에 데리고 온 것은 순전히 총리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였다(창 44:18-24).
  이때 유다는 총리 앞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 때문에 노하지 말기를 먼저 간구했다(창 44:18). 유다는 자신들이 곡물을 사러 애굽에 처음 내려왔을 때 총리와 주고받은 말들을 요셉에게 연상시키고 있다.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을 정탐꾼으로 여기시면서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며 우리 가족의 내막을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나안의 독실한 한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기를 그 동생을 직접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우리의 진실을 증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인질로 우리 형제 시므온이 이곳 애굽에 남게 되었고, 우리는 가나안에 있는 아비에게로 돌아갔습니다."라고 하였다(창 44:19-24).
  그러면서 그들은 아비가 그를 보내기를 죽음처럼 원치 않으면서도 기근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이 보냈다고 하였다.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고하였나이다. 그 후에 우리 아비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고 하시기로, 우리와 막내아우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우리는 내려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막내아우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정탐꾼으로 몰릴 것이니 반드시 막내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아비에게 강청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아비는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간 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베냐민마저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고 하였나이다. 그렇게 아비가 보내기를 원치 않았던 아들이 이 베냐민입니다."라고 하였다(창 44:25-29).

  3) 만약에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창 44:30-31).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어 있어,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해버리는 불효자가 되고 만다고 하였다.

  4) 유다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될 터이니 동생 베냐민만은 아비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강청하였다(창 44:32-34).
  창세기 44장 32-34절에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라고 하였다.   3. 이 사건에서 받는 영적 교훈

  1) 하나님이 선의로 우리의 삶을 시험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요셉은 은잔을 가지고 형들의 진실 여부를 시험하고, 또 자신의 사랑을 알리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 결과 형들이 ① 자신들의 과거 죄를 깨닫게 되고, ② 우애가 일어나고, ③ 부모를 향한 효성이 일어나게 하고 말았다.
  시험받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아브라함도, 욥도 시험을 받았다. 그러나 그 시험에 빠져 하나님을 등지게 되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2) 동생 베냐민을 향한 유다의 변호와 강청은 요셉에게 감동을 주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요셉은 방성대곡하기에 이르렀고, 자기의 정체를 형들에게 실토하는 자리에 이르고 말았다(창 45:2-3).
  유다의 변호와 강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스키너(Skinner)는 이 사실을 가리켜 '이는 구약성서 중 가장 장엄하고 설득력 있는 웅변이다.'라고 하였다. 랑게(Langer)는 '이는 구약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장엄하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라고 하였다. 라오슨(Lawson)은 '어떤 웅변가의 말보다 더욱 감동적인 장면이다.'라고 하였다. 잉글리스(Inglis)는 '여기 유다의 모습은 대속자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라고 하였다.
  (1) 유다의 변호는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위함이 아니고 동생 베냐민을 위함이었다.
  창세기 44장 18-34절 중에 유다는 무려 스물 두 차례나 '아우', '소년', '그', '말째 아우', '이', '아이' 등등의 표현으로 베냐민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이복동생에 대한 유다의 변호는 눈물이 날 지경이다.
  (2) 유다는 자기 부친의 가련한 정지(情地)를 여러 번 반복하여 아버지를 생각하는 요셉의 마음을 노크하고 있다.
  예컨대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창 44:22),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창 44:30),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창 44:31)라고 한 말이다.
  (3) 유다의 눈물겹고 효성스러운 변호였다.
  창세기 44장 34절에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라고 하였다. 31절과 32절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도 유다는 아비 야곱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모든 자식을 다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특별히 노년에 얻은 아들 베냐민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4) 유다의 변호는 가히 대신 희생적이었다.
  유다는 아비 앞에서 동생을 위하여 자기 자신이 담보가 되었다고 하였다(창 44:32). 그러니 청컨대 자기를 베냐민을 대신하여 총리의 종이 되게 하고, 베냐민을 형제들과 함께 아비에게 도로 돌려 보내달라고 강청하였다(창 44:33).

  3) 유다의 대신 변호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보여 주는 그림자였다.
  요셉 앞에서 동생 베냐민을 위해 변호하고 강청하는 유다의 마음은 진실과 열정과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위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 아비와 동생의 생명을 위하여 그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더 나아가 아버지와 동생을 위한 길이라고 하면 자신이 종이 되어 섬기겠다고 하는 대신 희생의 결심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신의에 입각한 생각이요 행동이었다. 예수는 우리의 대변자요 우리의 대속자이시다(롬 8:34, 히 7:24).
  '유다'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다. 그는 야곱의 넷째 아들로 레아의 소생이었다(창 29:35, 마 1:2). 밧단아람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도 죽이지 말자고 제의하여 요셉을 죽음에서 살려낸 자이다(창 37:26-28). 결국 유다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유다지파로부터 다윗의 뿌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창 4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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