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91] 이스라엘(야곱)의 애굽 이주(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58

"이스라엘(야곱)의 애굽 이주(2)"
애굽에서의 야곱
창세기46장 1절~ 26절
석원태 목사

  제4장 족장 요셉의 역사(창 37:1-50:26)
  I. 꿈꾸는 자 요셉 - 꿈을 받은 요셉(창 37:1-36)
  II. 유다의 아들들(창 38:1-30)
  III. 꿈과 현실(창 39:1-23)
  IV. 해몽자 요셉 - 두 장관의 꿈(창 40:1-23)
  V. 애굽 총리가 된 요셉(창 41:1-57)
  VI. 곡물을 사기 위하여 애굽으로 간 야곱의 아들들(창 42:1-38)
  VII. 두 번째 곡물을 사기 위하여 애굽으로 간 야곱의 아들들(창 43:1-34)
  VIII. 요셉의 시험과 그 형제들(창 44:1-34)
  IX. 하나님과 요셉 그리고 가족들 - 섭리적 만남(창 45:1-28)

  X. 이스라엘(야곱)의 애굽 이주(2) (창 46:1-50:14)
  1. 야곱의 가족들의 애굽 이주의 동기(창 46:1-4)
  2.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창 46:5-27)
  3. 애굽 고센 땅에 이른 야곱의 가족(창 46:28-34)

  4. 애굽에서의 야곱(창 47:1-26)

  1) 애굽 왕 바로를 만난 야곱(창 47:1-12)
  이제 성민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인생여로 중 마지막 장면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옮겨졌다. 실로 대 가족(민족)적 이동이었다. 하나님의 구속사적 역사의 흐름이 새로운 장면으로 전개되는 내용이다.
  애굽에 도착하여 22년 만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난 야곱의 감회는 실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족하도다!"라고 토해낸 야곱의 경탄에서 그의 행복감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야곱은 애굽의 최고 통치자 바로를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애굽 이주 후에 처음으로 있는 야곱의 공식 행보이다.
  (1)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의 바로를 만나는 일은 아들 요셉의 안내로 이루어졌다.
  먼저 요셉은 바로에게 가서 가나안 땅에서 온가족이 애굽에 내려온 소식을 알리고, 형제들 중 5인을 대표로 선정하여 바로 왕을 알현하게 했다(창 47:1-2). 바로는 저들을 만나자 생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들은 바로에게 목축업이 생업임을 고하였다. 그리고 형제들을 대표한 요셉의 형들은 고센 땅을 자신들의 거주지로 삼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창 47:3-4). 바로는 이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로 바로 왕 궁실의 짐승들을 주관하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애굽 궁실의 목자장을 허락한 것인데, 당시 이 목자장은 상당한 고관의 위치였다.
  지금도 애굽 카이로 남방 275km 지점인 베니하산에는 유명한 무덤 벽화가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야곱의 애굽 이주'로 전해지는데, 37명이 채색옷을 입고, 샌들을 신고, 아이들은 나귀에 태우고, 손에 선물을 가지고 바로에게 애굽 거주를 청원하는 모습의 그림이라고 한다.
  요셉의 형들이 바로를 알현하는 가운데 저들이 고센 땅에 거할 것을 허락받은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여기 고센 땅은 나일강 삼각주 동쪽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목축지로서 최적지였다(창 45:10, 46:28, 29, 34, 출 8:22, 9:26). 뿐만 아니라 이곳은 애굽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목축업을 싫어하는 애굽인들에게 혐오를 살만한 우려도 없었다. 또한 애굽인과의 접촉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나안인이 애굽에 급속히 동화될 위험성도 적었다. 더욱이 장차 출애굽이라고 하는 구원사의 대 사건이 일어날 때 이스라엘의 탈출이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곳이었다. 어쨌든 야곱의 가족을 이곳 고센 땅에 정착시키는 일에는 요셉의 사전계획이 작용했음이 확실하다.
  (2) 야곱은 애굽 왕 바로를 대면하게 된다(창 47:7-10).
  물론 요셉이 이 일을 주선하고 있다. 창세기 47장 7절에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라고 하였다.
  당시 세계적인 통치자 바로를, 세계의 정신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야곱이 만나고 있다. 바로와 야곱의 만남이다. 이 만남에서 몇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기도를 올렸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47장 7절 하반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라고 하였다.
  혹자는, 이것은 야곱이 바로에게 단순한 인사말로 전한 축복의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머피(Murphy)나 칼빈(Calvin)이나 랑게(Lange)는, 이것은 인간적인 인사 이상의 것으로서 야곱이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바로에게 하늘의 축복을 기원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야곱이 비록 육적으로는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해온 일개 목민들의 장이었으나, 영적으로는 바로보다 몇 배나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야곱은 영적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을 전달해 주는 기관이었다. 바로 오늘날 성도(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축복하고 하나님의 복을 전달해주는 기관이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② 야곱은 바로에게 나그네 인생을 고백하고 있다.
  바로는 야곱에게 「네 연세가 얼마뇨」(창 47:8)라고 질문하였다. 이는 참으로 인사치레의 질문 이상이다. 인생이 나이를 묻는 것은 사실상 인간의 실존 그 자체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생의 과거를 묻고, 현재를 살피게 하고,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질문이 된다.
  이때 바로에게 던진 야곱의 대답은 실로 놀랍고 놀라운 인생독백 그 자체이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하였다.
  이때 총리 요셉의 나이는 39세였다. 30세에 총리가 된 후 7년 풍년과 2년 흉년을 지난 때였다. 그러므로 야곱이 91세 때 요셉을 낳았는데, 그것은 그가 외삼촌 라반이 살던 저 밧단 아람으로 간 지 14년이 되었을 때이다(창 30:25). 그렇다면 야곱이 집을 떠나 밧단 아람으로 갔을 때 그의 나이는 77세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현재 바로 앞에 서있는 야곱의 나이는 130세라고 했다.
  야곱은 바로에게 「내 나그네 길」이라고 하였다. 나는 애굽에 영주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잠시 머물다가 떠날 나그네라는 사실이다. 애굽은 나의 영원한 영주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야곱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조상들도 나그네였다고 하였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창 47:9)이라고 하였다. 그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나그네였고, 그 아버지 이삭이 나그네였고, 또 자기 자신도 나그네라고 한 것이다. 부전자전의 인생임을 말해주고 있다. 결코 일정한 곳에 영주할 수가 없는 자신의 나그네 존재를 독백하고 있다. 쉬지 않고, 머물지 않고,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라고 하였다. 자기 조상과 자기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세계로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자기의 나그네 길은 조상들의 나그네 길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창 47:9)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다(창 25:7). 이삭은 180세를 살았다(창 35:28). 지금 야곱 자신은 130세인데,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 것을 합해도 역시 그 조상들의 수(壽)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자신은 조상들보다 이 세상에 머무름이 짧다는 뜻이다.
  또한 야곱은 그의 나그네 길이 무수한 인생고의 연속이었다고 독백하고 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하였다. 야곱은 처음 만나는 애굽의 바로에게 자신의 인간 실존의 생애를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험악한 세월 130년이라고 하였다. 앞으로 애굽에 체류할 17년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는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밧단 아람으로 도망한 것을 시작으로(창 27:41-45), 외삼촌 라반 밑에서 20년간의 고된 종살이(31장)나 얍복강 나루에서 형의 복수 앞에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씨름했던 고투(창 32:22-32), 세겜에서 그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그로 인한 아들들의 피의 복수와 그 복수로 인한 후환의 두려움(34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행방불명으로 인한 20년이 넘는 야곱의 탄식(창 42:36)이 야곱의 나그네 길을 인고의 세월로 수놓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나그네 된 인간 야곱의 생애는 험악한 세월이었다. 욥기의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 14:1)라는 말씀 그대로였다.
  그는 바로 앞에서 나그네 된 자신의 인생은 ① 유한의 피조물임을 알려주고 있다. ②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천당이 아닌 여기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③ 그가 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은 자이지만 인생 된 실수와 연약을 반복하고 있는 죄인으로서 험악한 나그네 인생여로를 걷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④ 그럼에도 그는 목적이 없는, 의미가 없는, 정처없는 나그네가 아니고, 그 조상들이 이른 영원한 성을 향하고 있는, 목적 있고, 내용 있고, 의미 있는 나그네임을 알려 주고 있다.
  야곱은 바로를 떠나 나오면서 다시 축복하였다. 47장 10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고 하였다. 그는 바로를 처음 만났을 때도 축복하고, 바로를 떠날 때에도 축복해 주었다. 철두철미한 여호와 신앙의 야곱임을 다시 볼 수 있다. 사실상 인생 야곱의 전 인격 전 생애가 언제나 하나님 의식으로 충만했다. 그래서 그는 애굽의 바로 앞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만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떠날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다. 알고 보면 이런 경우 야곱의 정신세계는 전 애굽을 주도하고, 장악하고,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로 앞에 있는 야곱은 바로와 전 애굽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 된 것이다.
  (3) 야곱은 고센 지역의 라암세스를 기업으로 받아 요셉의 공궤를 받으면서 애굽생활을 시작하고 있다고 하였다.
  창세기 47장 11-12절에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고 하였다.
  이제 하나님은 험한 나그네 세월 130년을 지나며 야곱을 이스라엘로 성화시켜 가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맺은 언약(창 15:12-21)을 성취시킴으로 구속사의 대계를 이루기 위하여 그와 그의 자손들을 여기 애굽 땅 고센 지역인 라암세스에 자리 잡게 하였다.
  애굽에서의 야곱은 바로를 만나 축복하고, 고센 지역의 라암세스에서 자리를 잡고 선민 백성으로서의 새 출발을 하게 된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효성 넘치는 공궤를 받으면서 애굽이라고 하는 나그네성의 현주소에서 잠시나마 평안을 누리게 된다.

  2) 생육하고 번성하는 야곱(창 47:13-27)
  사실상 이 부분의 요절은 47장 27절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고 하였다.
  이는 애굽에서의 야곱 생활을 나타내고 있는 장면이다.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다고 하였다.
  (1) 이러한 축복은 먼저 저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의 성취였다(창 12:2, 15:13-17, 17:6).
  하나님은 약속 실행에 있어서 전지하고 신실하다.
  (2) 생육과 번성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허락하신 약속이었다(창 1:28).
  인생은 축복의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다.
  (3) 이 산업과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은 아들 요셉으로 말미암은 축복의 혜택이었다.
  지금 야곱이 이주해온 애굽은 7년 흉년 중 아직 5년 동안의 흉년이 더 계속될 재앙의 연속이었다. 백성들은 돈과 짐승(가축)뿐 아니고 저들의 몸과 전지(땅)까지 요셉에게 가지고 와서 식물(곡물)과 바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애굽의 바로는 극에 달하는 부(富)를 적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흉년의 재앙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
  이 어간에 요셉은 특별한 기근 정책을 수립하였다. 일종의 비상 양곡 정책으로 새로운 토지법이다. 그 내용은 ① 흉년이 끝날 무렵에 다시 파종할 종자를 주어 추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창 47:23). ② 흉년이 끝날 때 시행될 토지개혁법이었다. 즉 추수의 1/5을 바로에게 상납하도록 한 농지(농세)법이다. 이것은 이미 7년 풍년이 있었을 때 시행했던 것이었다(창 41:34). 이제 그것을 입법화 한 것이다(창 47:24-26).
  백성들은 요셉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창세기 47장 25절에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문제의 중심은 요셉이 전 애굽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47장 내용 안에 요셉이란 이름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 이름이 바로와 관계를 하고, 그 이름이 야곱과 관계를 하고, 그 이름이 형제들과 관계를 하고, 그 이름이 전 애굽의 백성들과 관계를 하고, 그 이름이 풍년과 흉년과도 관계를 하고, 그 이름이 새로운 농지법과 관계를 하고 있다.
  그 큰 이유는 하나님이 전 애굽의 통치를 요셉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를 세워 선민구원 역사를 전개해 나가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했던 야곱과 그 자손들은 고센 땅에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다.
  확실히 교회 운동에 있어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여러 곳에 관계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사 사용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말하자면 유용한 그릇인 것이다. 우리 속담에 '약방의 감초'란 말이 있다. 이는 약을 조제함에 있어 감초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는 의미이다. 유용한 사람을 두고 비유한 말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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