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89] 하나님과 요셉 그리고 가족들(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56

"하나님과 요셉 그리고 가족들(3)"
야곱을 애굽으로 초청하는 요셉
창세기45장 9절~ 28절
석원태 목사


  제4장 족장 요셉의 역사(창 37:1-50:26)

  I. 꿈꾸는 자 요셉 - 꿈을 받은 요셉(창 37:1-36)
  II. 유다의 아들들(창 38:1-30)
  III. 꿈과 현실(창 39:1-23)
  IV. 해몽자 요셉 - 두 장관의 꿈(창 40:1-23)
  V. 애굽 총리가 된 요셉(창 41:1-57)
  VI. 곡물을 사기 위하여 애굽으로 간 야곱의 아들들(창 42:1-38)
  VII. 두 번째 곡물을 사기 위하여 애굽으로 간 야곱의 아들들(창 43:1-34)
  VIII. 요셉의 시험과 그 형제들(창 44:1-34)

  IX. 하나님과 요셉 그리고 가족들 - 섭리적 만남(3)(창 45:1-28)

  1. 형제들에게 자신을 공개하는 요셉(창 45:1-4)
  2.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알려 주는 요셉(창 45:5-8)

  3. 야곱을 애굽으로 초청하는 요셉(창 45:9-28)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만난 극적인 상봉은 애굽에 온 지 22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제 요셉은 형들 앞에서 아버지 야곱과 그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초청하는 즐거움을 형들에게 토하고 있다.

  1) 속히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초청하였다(창 45:9-15).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라고 하였다(창 45:9). 가서 고하기를 하나님이 아버지의 아들 요셉을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 말고 내려오라고 하였다(창 45:9).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 요셉과 가깝게 하라고 하였다(창 45:10).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요셉이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겠다고 하였다(창 45:11).
  이렇게 요셉은 미래를 알고 대처하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될 일을 모르고 절망하는 사람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신자는 앞일을 알고 있다. 특히 궁극적인 미래에 대하여 신자들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였다.
  또한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이 직접 목도한 요셉의 애굽에서의 영화와 모든 것을 다 아버지께 고하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라고 하였다(창 45:13). 이렇게 당신들에게 말하는 것은 바로 애굽의 총리 요셉의 입이라고 하였다(창 45:12). 그리고 나서 요셉은 동생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다.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울었다. 그리고 모든 형들과 입맞추며 이야기하였다(창 45:14-15).

  2) 애굽의 바로는 이 일에 동의하였다(창 45:16-20).
  바로는 요셉과 형들의 상봉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형제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 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창 45:16-20)고 하였다.

  3) 요셉의 형제들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갔다(창 45:21-24).
  이제 요셉의 형제들에게 뜻밖의 교통수단인 수레가 주어졌다. 길양식과 입을 옷들이 주어졌고, 특별히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이 주어졌다(창 45:21-22). 또한 수나귀 열 필에 그 아비 야곱에게 보낼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비에게 길에서 공궤할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렸다(창 45:23). 이렇게 하여 형들을 돌려보내며 요셉은 그들에게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창 45:24). 이는 이복형제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세밀한 부탁이었다. 실로 꿈만 같은 현실이었다.

  4) 야곱의 환호를 본다(창 45:25-28).
  무엇이 야곱으로 하여금 환호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생명의 소식이었다(창 45:26). 실로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의 부활의 소식이었다. 22년 만에 듣는 충격적인 쾌보였다.
  더욱이 요셉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애굽 땅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창 45:26). 살아 있는 것만도 너무 충격적인데, 거기에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는 영예의 소식까지 뒤따랐다.
  아들들과 함께 온 물증들이 그 소식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켰다. 창세기 45장 27절에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고 하였다.
  22년 전 염소의 피를 묻힌 요셉의 채색옷을 아비에게 내놓던 것과는 얼마나 대조적인 장면인가? 꿈에도 잊지 못하던 사랑하는 아들이 노쇠한 아버지를 다시 살려주는 순간이 아닌가? 살아있는 아들 요셉이 아버지를 소생하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를 소생하게 하고 있다.

  5) 야곱의 개가이다(창 45:28).
  창세기 45장 28절에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고 하였다.
  그 당시 야곱의 나이가 130세였다(창 47:9). 야곱은 그 해에 애굽에 내려가 17년 간 아들 요셉 곁에서 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1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창 47:28).
  우리는 지금 저 가나안의 정신적인 지도자 야곱이 발한 "족하도다!"라고 하는 쾌성을 듣고 있다. 이 쾌성은 어디서 나왔는가?
  (1)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였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라는 사실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이 22년 동안 안 죽고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결코 내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22년 만에 듣는 생명의 쾌보이기에 그는 쾌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2) 자신이 살아서 죽기 전에 아들 요셉을 볼 수 있다는 소망 때문이다.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고 하였다.
  이런 말은 야곱이 되어보고, 요셉이 되어보기 전에는 다 이해하기 힘든 야곱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이다. 지금 가나안 땅에 있는 노인 야곱은 애굽에 있는 아들 요셉을 향하여 그 마음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이 환희의 불이 "족하도다!"라는 쾌성을 토하게 한 것이다.
  (3) 요셉의 출세 소식 때문이다.
  아들들이 애굽에서 돌아와 아버지 야곱에게 고하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창 45:26)라고 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어 기색하였다. 그러나 이내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하였다(창 45:27).
  지금 야곱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그 소식만으로도 만족하고 또 만족했다. 거기에다 당시 세계의 패권제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요셉의 출세 소식은 야곱의 환희 위에 환희를 더한 것이다. 그래서 "족하도다!"라고 쾌성을 발한 것이다.
  (4)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인도 때문이다.
  창세기 45장 28절에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라고 하였다.
  '지금까지'라고 하는 시간적 표현은 지나간 고통 속의 22년을 가리킨다. 22년간의 야곱의 인생여로도, 요셉의 인생여로도 하나님 자신의 인도였다는 사실에 감사가 폭발한 말이 바로 "족하도다!"라는 말이다.

  6) 요셉을 통하여 인생을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1) 그것은 언제나 제1원인자를 발견하는 일이다.
  곧 존재의 근원을 아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게서 인생이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진행(존재)되고, 하나님께로 인생이 되돌아가는 위대한 하나님 사상이다.
  (2) 존재의 의미를 아는 지혜이다.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최선의 삶이다.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버지 집에서나 노예생활에서나 감옥에서나 총리가 되었을 때에나 요셉의 삶의 의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최선이었다. 주어진 삶의 환경 앞에 '최선'만이 그의 의미였다.
  (3) 존재적 목적을 아는 지혜이다.
  요셉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었다(창 45:7-8).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궁극적 목적의 삶이었다. 성경은 요셉의 삶의 풍성을 우리에게 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실로 '풍성한 삶'이다. 구원의 삶, 은혜의 삶, 복음의 삶으로 풍성하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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