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항상살아있는 말씀[김수환추기경선종,마틴루터킹,순례자의노래]/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0:43

항상 살아있는 말씀 (베드로전서 1:18-25)

2009 2 22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시오노 나나미’의 <신의 대리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종교개혁 전에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읽어보면 종교권력도 정치권력 못지않게 복잡해요. 그런 점에서 지난 한 주간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장례는 종교와 교리적인 차이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달리 천주교의 일사불란한 조직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그 권력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아니하고 불의한 정권에 대하여 비판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보살피는데 쓴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런 점에서 그는 참으로 위대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자기의 묘비에 남긴 성경구절이 눈길을 끕니다. 시편 23 1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그 얼마나 자유한 신앙인입니까?

   오늘 말씀에도 보니‘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시인이었던 다윗이 한 평생 붙들었던 말씀인데 알고 보니 김수환 추기경도 그 말씀을 평생 붙들었어요. 그가 붙들었지만 알고 보면 그 말씀이 그의 인생을 붙든 것이지요. 여러분, 어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 신앙에 있어서 말씀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어떤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은‘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이 만물을 만드셨다’고 선언합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달라요. 창조의 말씀이에요.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었던 말씀이고 종래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을 입고 인격화되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셨다. 말씀을 인격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초대교인들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예수의 비밀을 선포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그리스도다. 이것을‘케뤼그마’라고 해요. 증거된 말씀이에요. 그리고 시대가 지나가면서 기록된 말씀, 즉 성경, 그리고 강단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 즉 설교,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제가 젊었을 때‘이왕 태어날 거 2천 년 전 유대 땅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좇아다니면서 과자도 얻어먹고 했으면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을 텐데’했습니다만 그게 사람의 생각이에요. 시간과 공간에 갇혀있는 사람의 생각이에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언제든지 우리에게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은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거예요.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깨달으므로 그것이 우리 삶에 힘이 되는 거예요. 아주 불이 번쩍하는 체험을 했다고 할지라도 말씀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그거는 우리를 미혹케 하는 거예요. 스스로 갇히는 거예요.

   오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역사적 예수예요. 우리 신앙의 객관적 사실이에요. 객관적 기초예요. 말씀을 읽을 때 그것이 내 속에서 경험되고 체험된다. 주관적 사실이에요. 또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교회를 통한 집단적인 증언이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있어요. 이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신앙의 객관적 사실이 있고 내게서 경험되어지는 주관적 사실이 있고 우리 모두에게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교회의 집단적 증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돼요. 이게 마치 전도서 4 12절에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세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라고 하는 거죠. 연약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예요.

   ‘빌리 그레엄’목사님을 20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자라고 이야기합니다. 1973년에‘빌리 그레엄 전도대회’때 오셔서 백만 인파를 놓고 말씀을 전하셨죠. 그때 김장환 목사님이 통역하셨잖아요. 얼마나 하나가 되어서 통역을 했는지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우스개를 했죠.“제가 그때까지 김장환 목사님을 잘 몰랐는데 TV에서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얼핏 보고 김장환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걸 빌리 그레엄 목사님이 통역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부인 루스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사모님 댁도 부부싸움을 하나요?”“당연하죠. 우리도 부부싸움을 하죠”“그러면 사모님도 혹시 이혼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아니요. 나는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살인은 여러 번 생각해 봤습니다.”우리 모두는 연약하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붙들어 주시려고 이런 안전장치를 두신 거예요.

   여러분의 신앙은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야 돼요. 흔히 실존주의 철학이나 신학에서는 오늘 나에게 부딪혀오는 사건을 중요시 하면서 의미를 강조해요. 이게 극단화 되면 어떻게 되느냐?‘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내게 주시는 의미다.’여기에는 함정이 있어요.‘역사적 사실이 잘못 될 수도 있다’이런 말이에요. 그러나 이건 잘못 된 거예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교훈만 믿는 것이 아니에요. 그 분의 인격과 역사적 사실을 믿는 거예요.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결정적 차이점을 아셔야 돼요. 영생의 이야기는 어느 종교나 다 있어요. 부활 얘기도 다 있어요. 승천 얘기도 다 있어요. 다만 다른 종교는 그러한 말이 그저 말로 머물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말씀이 인격화 되고 구체적 사실이 되고 객관적 사실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은이나 금이 아니라 어린 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사실은 대충 듣고 사는 거죠.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우리가 차를 운전할 때도 누구나 면허를 따고 조금 연습하면 운전 할 수 있죠. 그러나 고장 나면 그때는 문제예요. 차를 아는 사람은 얼른 손보고 갈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꼼짝 못하는 거예요. 다 예수를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꼼짝 못하는 거예요. 피상적으로만 듣는 신앙이 아니라 한걸음 더 깊이 과연 어떠한 말씀인가 하는 구체적 사실에까지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거죠.

   두 번째는 신앙의 주관성이에요. 그 사건이 내게 체험 되어야 돼요.‘마틴 루터 킹 주니어’,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낸 분 아닙니까? 그런데 이 분은 4대 목사 집안이었어요. 그는 설교에서 이렇게 고백했어요.‘나는 인생을 크리스마스 선물같이 여겼다.’그 당시 흑인들이 차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 있는 집안이요, 학식을 갖춘 집안이요, 목사로 섬기는 집안이요, 따뜻한 집이어서 그런 어려움을 몰랐던 거예요. 26살에 목사가 되고 앨라바마 몽고매리라고 하는 도시의 담임목사가 됐어요.

   그런데 그만 그가 그곳에서 약관의 나이로 목회를 할 때 사건이 터졌어요. 몽고메리사건이에요.‘로저 파커스’라고 하는 흑인여자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그때까지의 관습을 거부하고‘나는 양보할 수 없다’고 하면서 흑인 인권운동이 시작된 거예요. 앨라바마에 있는 많은 흑인들이 연합해서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 모임의 대변인으로 마틴 루터 킹에게 일을 맡긴 거예요. 그 일이 얼마나 엄청나게 커질 것인가를 미처 알지 못하고 수락했어요.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낮밤을 가리지 아니하고 수십 통의 협박 전화가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꿋꿋하게 잘 이기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늦은 밤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그만 그는 무너집니다.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아요.‘과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너를 죽여 버리겠다”라고 하는 위협에 두려움에 사로잡혔어요.‘내 사랑하는 아내는 어떻게 되고 잠들고 있는 어린 딸은 어떻게 될까?’장래가 너무 어두워졌어요.‘이걸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제 나이 드신 아버님에게 이 일을 떠넘길까? 어머님에게 떠넘길까?’그럴 수 없어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요.

   그때 그가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그토록 부모님이“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그 문제를 맡길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주님이시다.”그때 비로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하나님, 나에게 지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는 지금 너무 지치고 힘들고 연약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 일을 맡기고 제대로 해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일 아침 내가 밝은 얼굴로 나설 수 있도록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확신을 주셨어요.‘마틴 루터 킹, 정의를 위해 일어나라. 진리를 위해 일어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영원히 너와 함께 하리라.’그 밤에 응답을 받았어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은혜를 받은 거예요. 그의 설교 속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박태환이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그건 박태환의 일이에요. 그 사람이 수영을 잘한다고 내가 풀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저절로 뜨는 거 아니에요. 나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돼요. 내 신앙, 내 고백이 돼야 하는 거예요.

   , 이제 교회의 증언이 있어요.‘스탠리 존스’라고 하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24살에 인도에 선교사로 갔어요. 한평생 인도를 섬긴 분이에요. 1938년 타임지에서 스탠리 존스를 뭐라고 얘기했냐 하면‘사도 바울 이후 최고의 선교사다.’그런 명예로운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그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하는 자서전에서 그의 신앙 일대기를 서술합니다. 그가 젊어서 그리스도를 만났어요. 너무 기뻤어요. 너무 감사했어요.‘회심이 이런 거로구나.’그런데 한 일년 지나니까 새로운 갈등이 일어났어요.‘분명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고 고백했고 분명 기뻐한 게 사실인데 오늘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이 갈등의 실체는 무엇인가.’성경은 그것을 옛사람이라고 말하고 육신이라고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름대로 정의 합니다.‘나의 의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하나님을 받아들였지만 나의 잠재의식은 아직 회심하지 않았구나. 내 무의식 속에 들어있는 실체는 무엇인가? 첫째는 자아, 두 번째는 Sex, 세 번째는 단체로구나. 자아라고 하는 것은 나의 본능이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아니하고 나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하고 신이 되려고 하는 몸부림이 아직 내 안에 있구나. Sex라고 하는 것은 내 삶의 모든 일을 통해서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있구나. 집단이라고 하는 것은 남들은 다 저렇게 하는데 하고 그 속에 숨어 들어가서 책임을 회피하고 보호받으려고 하는 본능이 있구나. 내 의식은 하나님 앞에 충성을 서약했건만 내 잠재된 무의식은 지금 바람이 지나가기를 납작 엎드려서 기다리다가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모의하고 있구나.

  ‘충성’이라니까 생각이 나네요. 제가 군에 입대해서 특기교육을 받기 시작한지 며칠 안됐을 때 아직 얼떨떨한 상태에서 경례훈련을 새롭게 받았습니다.‘지휘관을 향해서 경례’하면‘충성’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국기에 대하여 경례’하면 그때는 침묵으로 경례를 해야 하는데 너무 집중하다가‘국기에 대하여 경례’하는데 저 혼자서 큰 소리로‘충성’했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완전히 벌게지도록 얻어맞았죠. 마음으로는 뜨겁게 충성하려고 했는데 글쎄 내 잠재의식의 두려움이 반란을 일으킨 거죠.

   스탠리 존스가‘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까?’하고 몸부림치다가 놀랍게도‘한나 스미스’라고 하는 퀘이커 교도의 책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자기 문제의 해답이 그 안에 있는 걸 발견해요. 책에 막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어요. 그 분의 표현에 의하면‘책을 먹어버렸다’고 했어요. 자기 문제의 해답이 그 안에 있기에 책을 막‘먹어버렸어요.’그 순간 하나님이 말씀하셔요.‘지금이 바로 그때다.’‘아니요, 하나님 나는 더 읽고 싶은데요.’‘아니야, 지금이 바로 그때다.’‘하나님 제가 어떻게 할까요?’‘너는 너 자신을 나에게 내어 놓겠느냐?’하나님이 물으셨어요. 그때 그가 대답합니다.‘예, 하나님. 제가 아직 하나님을 다 알지 못하지만 알든지 모르든지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그래. 네가 너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다니 나도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노라. 성령을 주겠노라.’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드러내시는 분이에요. 성령께서 인격으로 그에게 오셨어요. 방언을 한 게 아니에요. 어떤 특별한 다른 증거가 있는 게 아니에요. 인격 대 인격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깨끗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이 잘 아시는지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과 내게 주시는 경험과 체험과 은혜와 그리고 교회를 통해 수많은 신앙선배들, 또 더불어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를 지켜주셔요. 인생은 잠깐이에요.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제가 예전에‘버나드 쇼’의 얘기를 드렸습니다. 유명한 극작가요, 위트가 넘치는 그가 자기 묘비명을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가 93세나 살았지만 그의 묘비를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마지막 한마디 독설을 던졌어요.‘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여러분, 말씀을 붙드세요. 인생은 잠깐이에요. 그러나 말씀은 영원해요.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