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성전의 빛과 그림자[교회는 주님을 만나는 곳, 4D]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0:12

성전의 빛과 그림자 (예레미야 7:1-7)

2009 3 8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최근에 <듀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듀이’란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의 이름이에요. 미국 아이오와주 스펜서라고 하는 읍 규모의 자그마한 도시의 공공도서관에 사는 고양이 입니다. 이 고양이가 1987년 추운 겨울 어느 날 도서 반납함 속에서 발견됩니다. 새끼 고양이가 얼어 죽을 뻔 했어요. 도서관 사서가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와 더불어 19년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고양이 이름도 가장 유명한 도서 분류법이‘듀이 십진분류법’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름을 ‘듀이’라고 붙여준 것입니다. 그를 발견한 ‘비키 마일런’이라는 사서가 25년간 자기 고향의 도서관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19년을 고양이와 더불어 살았던 기록이죠.

   고양이가 얼마나 깜찍하고 예쁘고 지혜로운지 도서관에 찾아오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부모들의 마음도 사로잡습니다. 스펜서라고 하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그마한 읍 도시, 미국의 경제공황을 비롯해서 1980년대 미국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등등의 칼 바람에 힘없이 무너져가던 그 도시에 자그마한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거예요. 그 고양이로 말미암아 도시가 활기를 얻기 시작한 거예요. 통계에 의하면 연간 도서관 이용객 수가 63천이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서 10만 명을 돌파해요. 그러면서 도시 나름대로 새로운 생기를 얻고 도서관은 그 지역의 중심이 됩니다.

   2006년 고양이가 드디어 19살을 일기로 숨졌어요. 암으로 죽었어요. 이때 이미 고양이는 월드스타가 되었어요. 얼마나 알려졌는지 고양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미국 270개 신문에 다 알려집니다. 한달 만에 전세계에서 천 통 이상의 죽음을 애도하는 편지가 날아오고 한 주간 만에 600통 이상의 이메일이 날아오고 그 도서관의 웹사이트가 한 달에 2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 고양이보다 잘 죽기는 다 틀렸어요. 우리가 죽는다고 이렇게 조전이 오고 조문이 오고 이메일이 오고 편지가 오겠어요? 참 기가 막힌 노릇이죠.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럴만하다. 이름도 없는 동네를 전세계에 다 알려 버렸어요. 지금은 관광지가 됐다는 거예요. 저도 이 책을 읽다 보니 아이오와 옥수수 농장으로 뒤 덮인 그 촌구석에 가고 싶더라고요. 그 풍경이 그려지더라고요. 미국의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안 가봐도 그만일 것 같은 평범한 소도시를 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으로 바꾸어 놓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이것은 고양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책을 쓴 비키 마이런이라고 하는 사람의 인생 스토리예요. 그것을 고양이와의 만남을 빌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열어놓은 거예요. 그녀는 올해 62세입니다. 그녀는 미국 중서부 농촌에서 여러 남매 중에 태어났어요. 그 집안에서 대학 간 사람은 그녀 한 사람이에요. 그 정도예요. 자기가 대학을 가려고 했을 때 “너는 그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돼. 너는 이제 결혼하고 시집 가서 잘 살면 돼.”이게 그들의 의식이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부모의 조언을 따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다가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살아갑니다. 딸 하나를 낳는데 출산 과정에 문제가 생겼어요. 출산 직후에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못 돼서 자궁을 다 들어내게 됐어요. 얼마 있지 않아 알코올 중독에 빠진 남편과 삼십 대 초반에 이혼을 하게 됩니다. 경제적 위기 속에 어린 딸과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칩니다. 주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아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 사서로 취직을 하게 되는 거죠. 또 싱글맘으로 딸을 키우면서 살면서 십대가 된 딸과의 갈등 속에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러던 중에 고양이를 만납니다. 또 연이어 닥친 유방암과 유방 절제를 통해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몸부림치고 홀로 고통 당할 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의 아픔을 다 들어 주지 못했어요. 그런데 유독 이 고양이와 더불어 아픔을 나누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나간 것이죠. 정작 고양이가 죽었을 때에는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일주일간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올 정도였습니다. 고양이를 통해서 삶의 위로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이 책에 흐르는 이야기예요.

   여러분, 누군들 인생이 행복하다 평안하다 말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깨진 유리잔 같아요. 한 번 금이 간 것을 가까스로 붙여 놓은 거예요. 이제 한번만 더 건드리면 이제는 바닥에 떨어져서 산산 조각나고 더 이상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위태위태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에요. 이만한 거 나 잘나서 된 거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기마다 붙들어 주신 거예요. 또 이혼하지 않았다고 큰 수술을 겪지 않았다고 그게 다 내가 잘나서 된 거 아니에요. 늘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고 상황은 불안해요. 그걸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 거예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야, 도서관에서 자라는 고양이와 더불어 산 19년 인생을 통해서 한 여인이 사람에게 얻을 수 없는 위로를 얻었다고 토로하고 이것이 전세계에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과연 교회는 어떠한가’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어요.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우리 역시 이 사람 인생과 다를 것 없는 풍랑 속을 헤치고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는가?

   교회는 깨어진 인생이 회복되는 곳이에요. 본질적으로 교회는 구제기관도 아니에요. 서로서로 잘 살아보자고 친교하는 기관도 아니에요. 지식을 더 나누는 교육 기관도 아니에요. 본질을 말하면 깨어진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고 지혜를 얻는 곳, 예배하는 곳이에요. 그걸 알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건물을 교회라고 부릅니다마는 본질적으로 얘기하면 그 건물 안에 담겨 있는 내용, 즉 하나님과의 만남, 그게 교회의 본질이죠.

   예수님께서 교회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을 네 가지로 말씀하셨어요. 마가복음에 잘 나와있어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고 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다고 선포하시고 이것이 진실임을 네 가지 형태의 이적으로 설명하셨어요. 그걸 요약을 하자면 4D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첫째는 Danger, 위험이에요. 위기예요. 위기 속에서 우리를 건지셔요.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 늘 풍랑 속에 휘둘리는 우리의 삶을 지키시는 예수님이에요.

   두 번째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 Demon, 사단의 역사가 있어요. 에베소서에 보면 아침에 화를 냈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화를 풀라고 했어요. , 그렇지 못하면 사단의 노리개가 되기 때문에. 꼭 귀신 들려 미친 것만 사단의 역사가 아니에요. 분노하고 있다면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그 문제를 내어놓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나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잖아요. 비록 뼈아프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야죠.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분에 사로잡혀서 몸을 떨고 있다면 사단에게 속고 있는 거예요.

   세 번째는 질병이에요. 열 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치는 예수님. Disease, 꼭 고침 받는 것만이 주님의 구원은 아니에요. 오늘 주님이 고치시는 이적을 이야기했습니다마는 반드시 병에서 고침 받고 일어나야 한다면 예수님은 부지런히 3년 동안 유대 온 땅을 다니면서 모든 병자를 일으키셨어야 할 거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여기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요. 그 질병을 통해서 주님을 발견하는 것, 그게 질병을 치유하시는 주님의 궁극적인 목적이에요. 설령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 제가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에 큰 회사의 회장님이 암에 걸리셨어요. 그 분은 아주 지혜롭고 똑똑한 분이요, 리더십이 있는 분이요, 건강관리를 잘 하신 분이었습니다마는 어느 날 덜커덕 암에 걸렸어요. 아무리 치료하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어요. 그 분을 마지막 몇 달간 매주 한두 번 병상에 찾아 갔어요. 그 분이 어느 날 생각을 바꿨어요.‘나를 부르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로구나’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가‘나를 고쳐주십시오’하는 기도를 바꿨어요.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분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제가 찾아갔을 때 ‘이 모든 것 다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여러분, 건강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게 마지막 고백이어야 해요. 하나님이 이걸 들으시고 그 분을 부르셨어요. 여러분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앞에 뭐라고 고백하시겠어요?

   예수님께서 또 보여주시는 것이 죽음이에요. 회당장 ‘야이로’의 열 두 살 난 딸을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Death, 죽음을 해결하신 분이에요. 그러나 죽어야 할 사람들이 다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때가 되면 다 죽는 거예요. 죽어야 되는 거예요. 고침 받았다 하더라도 그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한 방편이에요. 언젠가는 죽을 거예요. 죽음까지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베푸시는 은총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 이 신앙이 중요한 것이죠.

   교회는 주님을 만나는 곳이죠. 풍랑에 휘둘리는 인생, 귀신의 역사 속에서 고통 당하는 인생, 질병과 죽음에 노출된 인생을 그리스도께서 보호하시고 붙들어 주시고 함께 하시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를 똑바로 믿는 것뿐이에요.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고 주님을 찾아 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어요.“여러분이 나를 찾아 온 것은 진리를 알아서가 아니라 떡 먹고 배 불러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썩어질 떡만 구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구하십시오.”그랬더니 사람들이“그러면 그 양식을 우리에게 주십시오.”“그 양식은 하늘로부터 내려 온 양식인데 바로 내가 생명의 떡입니다.”사람들이 말합니다.“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예수님이 말씀하셔요.“하나님이 보내신 자,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팎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셔요. 자발적으로 너무 잘하셔요. 너무 감사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주목하고 그분을 깨끗하게 믿는 것, 그것은 절대 양보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은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먼저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하죠. 

   한 시간 예배이지만 마음을 모으고 기도를 모으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생각을 열고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각 사람의 마음을 만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하는 것이죠. 예배가 살아 있어야 돼요.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예레미야 시대예요.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너희 성전 문을 들어오는 유다인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을 보면서‘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다’하는 말을 믿지 말라.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건 하나님이 굉장히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왜 그게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겠어요? 하나님의 성전이죠. 솔로몬의 성전에 화려한 찬양이 있고 예배가 있고 제사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 매몰되고 도취되면 안 된다, 그 말이에요. ,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은 성전 안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만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에요. , 그 시대가 어떤 시대냐 하면 바벨론 강대국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의 위기를 맞고 있는 너무나 엄청난 시대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시대의 변화를 모르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하고 찬양하는 데만 빠져있고 만족한다면 이 사회의 멸망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이 교회에 물으시겠다는 엄중한 말씀이에요.

   신문 칼럼에서‘막스 갈로’라고 하는 프랑스 석학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역사가이면서 나폴레옹을 비롯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전기를 많이 쓴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 미국 경제위기를 비롯해서 오늘날의 시대를 이렇게 진단합니다.‘이거는 단순히 경제적인 위기가 아닙니다. 마치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되고 또 중세가 멸망하고 새로운 근대사회가 시작된 사건에 비견될 만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입니다.’지금이 격변기라는 말이에요.

   이 시대를 두 단어로 정의한다면‘세계화와 카오스, 즉 혼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하고 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옛날에는 나폴레옹 같은 세계적인 리더들이 나타나서 역사를 이끌었지만 지금 이 민주사회라고 하는 사회 구조와 개인화된 문화 속에서는 어떤 사람이 리더십을 발휘할 때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지만 전자통신과 이메일의 발달로 인해서 사람들이 기다려주지 못해요. 당장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더더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비관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도 리더가 필요한데 그 리더의 자격은 뭐냐, 멀리 내다보고 빨리 판단할 수 있어야 된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자유, 신중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내리는 결단, 이 결단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된다. 전세계적이고 전지구적인 위기 앞에서 서로 연대해서 뜻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인내를 가지고 이 문제를 대처해 나가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유럽을 여행할 때 바티칸 성당과 스위스 제네바의 ‘칼빈’이 목회했던 교회를 가본 경험이 있어요. 충격이었어요. 바티칸 성당이 세상에 그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정말 어마어마 했어요. 중세 말에 바티칸 성당의 건축자금이 모자라자 면죄부를 남발하고 그것으로 그 엄청난 건물을 백 년 가까이 지었습니다만 그것은 천년 중세시대의 멸망을 재촉하는 상징적 건물이 됐단 말이에요. 전혀 시대를 잘못 이끈 거예요.

   거기에 대항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칼빈의 제네바 교회를 가보면 그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던 칼빈의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것을 잘 볼 수 있어요. 그것도 참 큰 교회이긴 하지만 바티칸 성당에 비하면 자그만 하죠. 들어가 보니 더 인상적인 것은 유품이 아무것도 없어요. 무슨 그림이니 조각상이니 아무것도 없어요. 소박한 장의자들 밖에 없어요. 칼빈이 유언을 했어요.‘내가 죽거든 절대로 나의 유품을 하나도 남겨두지 말아라.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또 이것으로 우상을 만들 터이니 다 치워버려라.’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 그런데 사람이 참 고집스러워요. 하나 남은 게 있더라구요. 칼빈이 앉았다는 의자 하나가 남겨져 있더라구요. 그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칼빈의 의도는 뭐냐, 오직 예수만 바라보라. 화려한 장식과 현란한 것들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오직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건만 바라보라. 이게 칼빈의 의도였죠.

   근대사회 초기에 새롭게 일어나는 상공인들을 지저분한 돈을 버는 죄인들이다 이렇게 내치지 아니하고 성경을 가지고 다시 해석했어요. 하나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믿으면서 주님이 주시는 건강과 지혜를 가지고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그 번 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귀하게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새롭게 일어나는 상공계층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아갈 길을 제시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자카르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교회는 자카르타 교민을 향한 책임이 있어요. 그걸 기억해야 돼요. 이번에 미국이 경제위기에 휘둘리다 보니까 공적자금을 막 쏟아 붓잖아요. 그러면서‘Buy America’라는 조항을 두었어요. Buy America라는 것은 미국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공공사업의 경우에 철강제라든지 하는 것들은 반드시 미국제품을 써야 된다. 이건 일종의 보호무역이죠.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걸 비판합니다. 1920년대 말 대공황의 교훈을 잊어버렸다고 비판하는 거예요.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서로 살기 어렵다고 보호무역으로 돌아서서 관세를 높이고 다른 나라 물건이 못 들어오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느냐, 세계무역의 총량이 줄어들면서 전세계가 함께 침체 구덩이에 빠지고 결국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거예요. 그걸 잊어 버린 거예요. 사는 게 어려워지면 다 자기 집안 식구부터 챙기는 게 인간의 본성이죠. 그러나 리더들은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예요. 그럼 그 공동체가 모두 다 죽어버린다는 거예요. 어렵지만 나누고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보잘것없습니다. 교회건물도 없지만 우리의 눈은 멀리 내다 봅니다. 극동방송을 맡겨주신 지난 2년 동안 그 모든 것을 다 후원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것만 챙기지 아니하고 한인사회를 위해서 우리의 물질과 관심도 넓히고 전체가 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예요.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고 하나님을 만난 감격과 은혜를 가지고 우리 일터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는 거예요. 전체 공동체를 살리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내 것을 나누고 베풀 때 하나님께서 마치 오병이어, 소년의 도시락과 같이 작은 헌신에 축사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역사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교회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만의 교회가, 내 가정만의 교회가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는 비전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