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예수만 보이시더라[그리스도=사람을구원하기위해서오셨다]/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0:35

2009 3 1 주일예배

예수만 보이시더라

( 17:1-8)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얼굴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1.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2.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3.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오래 전에 어느 예배에 참석했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설교하시는 분이 데살로니가전서 1 3절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시는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노라'라는 대목을 설명하시는데 `믿음의 역사'에서 역사라는 단어를 History로 설명하시더라구요. 그게 아니거든요. 거기서 말하는 역사役事라는 것은 일이란 말이에요. Work, 믿음의 행위. 제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럴 수가.' 너무나 바쁘셨나보죠.

   성경에 나온 용어들 가운데 이렇게 자칫 혼동하기 쉬운 단어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구속이라는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속 받았다. 우리가 TV 뉴스를 볼 때 `구속됐다' 라고 하면 그건 감옥에 집어넣는다는 뜻이지요. 꽁꽁 묶어서 집어넣는 걸 구속拘束이라고 하는데요. 성경에 등장하는 구속救贖이라는 표현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정반대예요. 오히려 감옥에 있는 사람을 몸값을 주고 구원해내는 거예요. 꺼내는 거예요. 어쩜 그렇게 정반대일까요. 구속이라는 단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 받았다.' 이건 우리 신앙의 핵심이죠.

   `왕자와 거지'라고 하는 동화 이야기를 아실 거예요. 왕궁에 살던 왕자가 어느 날 자기와 똑같이 생긴 친구를 만났어요. 호기심에 서로 옷을 바꿔 입고“너는 여기 살고 나는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바깥세상을 구경 좀 하자.”그리고 나왔어요. 거지가 됐어요. 동네를 떠돌다가 또래들을 만납니다. 거지 행세를 하지만 왕자로 살던 사람이 아무리 꾸며도 그렇지 뭔가 좀 다르잖아요. 다른 거지들과 친구가 되지만 불쑥불쑥 뱉는 말과 그의 관심은 왕궁에 있거든요. 할 수 없이 자기를 이야기하게 됩니다.“나는 원래 왕자였어.”친구들도 어쩐지 뭔가 좀 다르다고 느끼기는 했지만“왕자가 어떻게 거지가 돼?”구박도 하고 때려주기도 하면서 지냅니다. 왕궁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거지왕자는 걱정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주위의 친구들은“아무래도 저 친구가 이상해. 정말 왕자일지도 몰라.”그래서 그가 하자는 대로 도와줍니다. 어느 날 거지왕자는 왕궁으로 들어갔어요. 사라졌어요. 과연 그가 누구였을까? 어느 날 왕자가 화려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거지 친구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그가 정말 이제까지 누추한 옷을 입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먹고 더불어 잠자던 거지란 말인가? 왕자가 과연 우리와 함께 거지로 살았단 말인가?”이 동화 이야기는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하는 대목이에요. 그 동안 예수님이 많은 말씀을 하시고 이적을 베푸셨어요. 그리고 오붓하게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물었습니다.“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죽었던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다시 온다고 하는 엘리야가 온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또는 예레미야라고 얘기합니다. 또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봤을까요? 세례 요한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불의한 헤롯왕에 맞서 싸운 사람이요, 엘리야는 구약시대에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아합왕과 맞서서 우상 숭배자들과 갈멜산에서 대결을 벌여 저들을 꺾은 사람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기대하는 거예요. 지금 로마의 억압가운데 있어요. 여러 가지 사회적 신분 차별 속에 있어요. 경제적 가난 속에 있어요. 고통당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찾는 메시야와 같은 분.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기대하고 있단 말이죠.

   예수님이 묻습니다.“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베드로가 앞장서서 말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여기 예수님의 반응을 보세요.“바 요나 시몬아,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네게 알게 한 이는 네 아버지도 아니고 어느 선생님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오늘 이 시간 하늘 문을 여시고 너에게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하셨구나.”기뻐하셨어요. 그게 정답이니까. 예수님은 누구시냐?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이 이 땅에 무슨 일을 하러 오셨느냐'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일을 하러 오셨다'는 말이에요.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이에요.

   메시야와 그리스도라는 말이 있어요. `메시야'는 유대사람들이 쓰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그 당시 국제 공용어인 헬라어로 바꾸어 쓰면 `그리스도'예요. 뜻은 똑같아요. 말하자면 한국말과 영어로 표현하듯이 메시야와 그리스도는 뜻이 똑같아요. `기름 부음 받은 자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라.' 그런 말이죠.

   그럼, 그리스도의 일을 하러 오신 분은 누구시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말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하나님이시다' 그런 고백이에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분이시다. 그런 말이에요. 어찌 사람의 생각으로 가능한 일이겠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복이 있도다. 이 비밀을 안 너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말한 것이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여기서 카톨릭하고 기독교가 갈라지는 거예요. 카톨릭에서는 베드로라고 하는 개인 위에 교회를 세운다 라고 해석해서 제 1대 교황이 누구예요? 베드로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라는 개인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는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다른 거예요.

   ,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기뻐하셨어요. 이제까지 감추었던 비밀을 말씀하셔요.“이제 그렇게 신앙 고백을 했으니 이제 잘 들어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박해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깜짝 놀랄만한 말씀을 하셨어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요,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어요. 베드로가 이제까지 꿈꾸고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그러니까 베드로가“주여,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됩니다.”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구나.

   여러분,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교회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은 다 사람의 일입니까?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뜻을 따라서 행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일이에요. 그러나 그 뜻을 모르고 하는 일은 교회 안의 일이나 교회 밖에 있는 일이나 다 사람의 일이에요. 왜 그러냐? 인간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죠.

   아까 메시야나 그리스도는 같은 뜻이라고 했어요. `기름 부음 받은 자. 하나님께 선택 받은 자.' 구약 시대에 어떤 사람이 기름 부음 받느냐? 세 종류의 사람이 기름 부음 받았어요.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구별해서 세웠다는 뜻으로 기름 부음 받았어요. 선지자는 하나님 만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사람이에요. 제사장은 죄지은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나오면 그의 죄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에요. 왕은 그런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나가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선지자 중의 선지자요, 제사장 중의 제사장이요, 왕 중의 왕이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알려 주시는 분이요, 자기 몸을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해결하신 제사장 중의 제사장이에요. 그리고 이제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참 뜻이에요.

   이것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교회 일이건 밖에 일이건, 가정의 일이건 기업의 일이건 모두 다 하나님의 일이에요. 이 고백 속에서 일하는 사람, 다 하나님의 일이에요. 이 고백을 놓친 사람, 다 사람의 일이에요. 베드로 같이 자기 출세할 궁리만 하고 있었어요. 자기가 드러날 일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게 다 사람의 일이에요. 교회 일도 마찬가지예요. 기준은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것이죠. 그러니까 남이 어떻게 하든지 얘기할 필요 없어요. 다 자기가 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다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는 사건은 하나님의 지혜로 비롯된 일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에요. 그리스도가 죽어야 나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가 사셔야 내가 새 생명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돼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가 살아갈 때 다 자기 나름의 십자가가 있어요. 오랜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분들도 십자가를 지고 있고 또 그런 분을 가족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분들에게도 남다른 고통이 있어요. 그것도 십자가예요. 상황이 서로 다 다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도록 그런 짐을 주신 거죠. 이게 자기 십자가예요.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남편이 십자가라구. 맞는 말이에요. 아주 정확한 말이에요. 제일 견디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다른 사람은 꼴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지만 그 좁은 공간 안에 얼굴 맞대고 사는데 안볼 수도 없고. 그게 자기 십자가에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요. 내 의지로는 이길 수 없는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은혜가 넘칠 때에만 남편과 아내를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목사가 됐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장로라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을 때 얻으리라'.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참으려고 하면 할 수 없어요. 나는 이미 죽었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더불어 나는 이미 죽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시 살리라. 이게 우리 신앙의 비밀이에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아무래도 깨닫지 못하는 눈치가 보이기에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 가셔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데리고 올라가셨어요. 올라 가셔서 기도하실 때에 그 모습이 변했는데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빨래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희어졌다.' 그렇게 설명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누가'가 의사인지라 얼마나 세밀하고 꼼꼼하게 기록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기도하시러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시고 기도하실 때 이렇게 변모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산에 올라갑시다. 그게 예배예요. 우리는 지금 이런 제한된 공간 안에 들어와 있지만 사실 영적으로는 변화산에 올라온 거예요. 분주한 일상을 뒤로 하고 이 자리에 나와서 조용히 하나님을 주목하는 거예요. 예배 20분 전에 오르간 연주가 나오는 거는 빨리 강을 건너오라는 뜻이에요. 분주하고 번잡한 모든 일상을 내려놓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라는 거예요.

   제가 잠깐 서울에 가서 주일을 지낼 때에 어느 교회에 갔습니다. 일찍 20분 전에 도착해서 오르간 연주와 더불어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을 정리하고 내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많은 말을 듣는 것보다 조용히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여는 그 시간이 오히려 더 은혜로운 시간이죠. 근데 그만 조금 있으니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앉아서 소곤소곤 인사하고 그러는데 참 안타깝더라구요. 왜 이 시간의 의미를 모를까? 이 놀라운 변화의 하나님의 사건이 열리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세상잡사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서 떠드는 걸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예배드리는 게 변화를 체험하는 시간이에요.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거예요.

   또 우리가 신앙의 책을 읽을 때에 그들이 만났던 하나님을 그들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는 거예요. 이런 것을 활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되죠. 우리 삶이 늘 일상과 세속 속에 파묻혀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때때로 우리는 산에 올라가야 돼요. 하나님께 나와 예배해야 돼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음성을 들어야 하는 거죠.

   예수님께서 놀랍게 변화되는 이 사건 속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 하는데 뭘 이야기하시느냐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얘기하고 있었다라고 말해요. 그 말은 뭡니까?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있어요. 구약성경의 주제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성경의 증언이에요. 베드로가 그걸 깨달았어요.

   누가복음을 보면 산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기도할 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고 했어요. 예수님이 변모되어서 모세와 엘리야와 십자가의 비밀을 논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잠이 깨어서 보니까 이 놀라운 분들이 있는 거예요. 이 분들이 얘기를 끝내고 떠나려는 거예요. 그때 말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원하신다면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하고 있다. 환상을 보았기에 정신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 온전한 뜻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해요.

   이런 우스개가 있어요. 어느 금발의 미인이 비행기를 탔어요. 비즈니스석에 자리가 빈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앉았어요. 여승무원이 점잖게 가서“손님, 여기는 비즈니스석입니다. 제자리로 가시죠.”그런데 뻗대고 안가는 거예요. 승무원이 난처해졌어요. 부기장에게 가서 얘기했어요. 부기장이 와서 신사답게 얘기했는데도 말을 안 듣는 거예요. 둘이 고민에 빠졌어요. `할 수 없다. 이건 기장님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기장님께 말씀 드렸더니 기장이 말하기를“우리 아내도 금발이지. 그래서 금발미인을 다루는 요령을 알고 있지.”그러고는 가서 뭐라고 귓속말로 하니까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간 거예요. 부기장과 여승무원이 깜짝 놀라서 기장에게 묻습니다.“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비즈니스석 이쪽은 뉴욕으로 안 갑니다라고 말했지.”그랬더니 놀라서 갔다는 거예요. 금발의 미녀는 매혹적이지만 머리는 비어있었다는 거죠. 혹시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건 아니에요?

   `베드로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볼 때에 구름이 덮이고'. 원래 유대인의 사고방식 속에 구름이 덮이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예요.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어떤 체험을 하더라도 본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이냐? 그 말씀을 붙드는 게 중요해요. 오늘 그 환상 속에서 하나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무얼 가르쳐 주셨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주인공이시고 십자가의 죽음은 성경의 주제다. 그러므로 `저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그런데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 하면 `산 아래로 내려가자.' 우리가 늘 예배만 드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예배를 마치면 우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이 말을 들었으니 산 아래로 내려가라. 삶의 현장 속으로 내려가라.

   오늘이 3.1 독립만세운동 90주년입니다. 전 서울대 신용하 교수의 칼럼을 읽어보니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 20세기 역사에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3.1운동의 영향으로 같은 해 중국에서 5.4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그 운동은 중국을 건국하는 주체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또 인도의 간디가 비폭력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서 역사는 이렇게 평가하지만 정작 3.1운동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많은 희생이 있었죠. 당시 총인구의 1.5%에 해당하는 기독교인이 3.1독립만세운동에 체포되어 갇힌 사람들의 17.6%였다고 해요. 얼마나 교회가 그 운동의 중심에 있었는가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기독교였지만 3.1운동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우리 민족과 고난을 같이 하는 민족교회가 됐어요. 그래서 교회부흥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죠.

   그러나 3.1운동은 당장 우리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온 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어요. 많은 교회가 무너지고 불타버렸어요. 3.1운동 이후에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나요. 그냥 비폭력 만세운동으로는 안되겠다. 무력으로 투쟁해야 되겠다. 만주 등지에서 무력항쟁하는 그룹이 일어나요.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 민족은 할 수 없다, 허무주의에 빠져서 시와 글로써 허무를 노래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요. 현실과 신앙 가운데 신앙을 포기한 거죠. 또 반대로 현실을 포기한 사람들이 일어나요. 3.1운동 이후에 한국교회 대다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무너져서 종말을 기다리고 신비주의에 빠져들어서 체험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 들어가 버려요.

   그러나 신앙을 바탕으로 냉엄하고 어려운 현실이지만 그 현실을 감당하면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습니다. 그게 계몽운동이죠. 농촌계몽운동, 여성계몽운동, 문맹퇴치운동. 사람들을 깨우고 힘을 길러서 언젠가 하나님이 주실 해방과 독립을 찾자 라는 움직임이 있게 된 거죠. 우리가 기대했던 이적은 맛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때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간 거예요.

   오늘 아침에 신문 칼럼을 보니 어느 분이 그런 얘길 했더군요. 중국을 다 둘러보고 나서 말하기를 `만약에 등소평의 개혁개방이 10년만 앞당겨 졌더라면 지금 중국의 발달하는 추세와 성장속도를 봐서는 한국 사람이 중국 사람의 발마사지를 했을 것이다.' 3.1운동 못지않은 위기죠.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갈까요? 신앙고백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죠.

   지난 주중에 극동방송 김은기 사장님을 비롯한 여러 일행들이 다녀가셨어요. 며칠 전에 사장님과 다시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요, 식사하는 자리에서 날이 더우니까“옷 벗으시죠.”그랬더니 그 분이 찔끔하시면서“그게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입니다.”그 분이 작년 10월에 공군참모총장에서 옷 벗었잖아요. 군에서 옷 벗는다는 말은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첫마디를 뭐라고 고백하느냐 하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눈 뜨고 하는 첫마디가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이라는 겁니다. 그걸 지켜오고 있다는 거예요. 이분이 예수를 늦게 믿었어요. 대위가 돼서 미국유학 가서 거기서 예수 믿었어요. 한인교회에서 예수 믿은 거예요. 30 중반에 예수 믿은 거예요. 늦게 시작했어요. 그러나 제대로 믿기 시작한 거예요. 그 다음 두 번째로 뭐라고 하냐 하면 `오늘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날이다.' ,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셨던 그 음성,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나에게도 말씀하신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내가 오늘 이 일을 너에게 맡겼노라. 이 일을 통해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노라.' 이게 바로 `오직 예수' 의 신앙 아니겠어요? , 감사하더라구요. `이런 분을 공군참모총장으로 세워서 우리나라의 하늘을 지키셨구나. 그리고 오늘 새로운 선교역사의 귀한 일을 맡기셨구나.

   여러분, 일의 크고 작고를 떠나서 우리도 이렇게 하루를 엽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 민족이 참 보잘 것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반만년 역사 속에 처음으로 가난을 떨쳐버리게 하시고 이제는 오히려 세계사의 주역이 되어서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귀한 증인이 되게 하시는 이 놀라운 은총을 감사합니다. 특별히 우리를 이 땅으로 부르시고 이곳에서 세계를 넓게 보게 하시고 오늘 나의 가정과 기업과 교회와 하루하루의 삶 속에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보게 하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올바른 신앙인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일터에서 애국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