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96] 야곱의 만년(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04

"야곱의 만년(5)"
야곱의 죽음
창세기49장 29절~ 33절
석원태 목사

  제4장 족장 요셉의 역사(창 37:1-50:26)
  X. 이스라엘(야곱)의 애굽 이주(4) (창 46:1-50:14)
  1. 야곱의 가족들의 애굽 이주의 동기(창 46:1-4)
  2.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창 46:5-27)
  3. 애굽 고센 땅에 이른 야곱의 가족(창 46:28-34)
  4. 애굽에서의 야곱(창 47:1-26)

  5. 야곱의 만년(창 47:27-50:14)

  1) 야곱의 만년은 빛나는 축복의 황혼이었다(창 47:27-31).
  2)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향한 야곱의 축복(창 48:1-22)
  3) 야곱의 12지파를 향한 예언적 축복(창 49:1-28)

  4) 야곱의 죽음(창 49:29-33)

  우리는 드디어 본문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일대를 살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저 가나안의 영적 지도자 야곱의 여정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한 극적 장면을 보게 된다. 바로 야곱의 임종이다. 곧 야곱의 끝날이다. 그리고 그가 후일에 그 당할 일을 예언한 아들들에 의하여 새로운 선민의 역사가 시작될 역사적 과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야곱의 죽음을 기록한 영감의 표현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고자 한다.

  (1) 야곱 자신은 열조에게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창세기 49장 29절에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라고 하였다. 33절에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하였다.
  야곱은 자기가 만나는 죽음이 결코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고, 또 다른 실존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돌아가면 앞서간 열조들을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브라함도 그러했고(창 25:8), 이삭도 똑같이 그러했다(창 35:29). 기운이 진하여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하였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은 선조들의 묘에 장사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계속 사용되었다(신 31:16, 왕상 2:10, 16:28, 왕하 21:18). 그러므로 이 말은 야곱의 시체가 단순히 열조들이 묻힌 묘지에 장사됨을 뜻하는 말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말이다. 즉 영적, 육적인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저들이 한평생 믿고 살았던 내세신앙이요, 그 내세신앙의 고백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이기도 하다. 창세기 15장 15절에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저 믿음의 조상들에게 육신이 장사되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또 다른 시작이라고 알려 준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또 그렇게 믿고 인생길을 걷다가 죽음이라고 하는 관문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로 옮겨짐을 믿고 살았다.
  이렇게 야곱은 그의 육신적 죽음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라고 믿었고, 자식들에게 말했다. 말하자면 내세신앙의 새 고백을 남기는 죽음이었다.

  (2) 별세 후에 자기 시신이 묻힐 땅을 유언하였다.
  창세기 49장 29-32절에 보면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고 하였다.
  창세기 25장 9절에는 아브라함이, 23장 19절에는 사라가, 35장 29절에는 이삭이 거기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리브가와 레아도 그곳에 장사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야곱의 말을 통해 처음으로 드러나고 있다.
  중대한 내용은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자기 매장지를 유언했다는 사실이다. ① 그 매장지는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있다고 하였다. ② 그 매장지는 아브라함이 준가를 주고 산 것이라고 반복하였다. 결코 남의 땅이 아닌 자신의 소유지라는 것이다. ③ 그리고 자기의 선조(조부)들이 거기 묻혀 있다고 하였다. 바로 거기에 자신을 매장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매장지에 대한 야곱의 유언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야곱 자신의 확고한 자기 신앙을 알려줌에 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업지로 약속한 것이다(창 15:13, 16). 뿐만 아니라 야곱이 자손들에게 저들의 기업의 땅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임을 상기시켜주는 유언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야곱의 자기 매장지에 대한 유언은 단순한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 신앙과 그 기업을 유산하고 있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3) 평안하고 행복스러운 최후였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 49장 33절에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하였다.
  그는 운명 직전까지 자기 일을 감당한 사람이었다. 밝고 맑은 정신으로 지팡이를 의지하고 앉아서 자식들 하나하나의 장래를 위하여 예언적인 축복을 하였다. 저들이 복 받을 수 있는 분량대로 다 축복하였다(창 49:28). 그리고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할 말을 다 하였다(창 49:28).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창 49:1-2)라고 그 아들들을 향해 마지막 초청을 한 야곱이었다. 그리고 아비로서 그 자식들에게 말하고,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창 49:28).
  ① 르우벤은 탁월치 못하고 물의 끓음 같다고 하였다(창 35:22).
  ② 시므온과 ③ 레위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야곱 중에서 나뉘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리라고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분노와 혈기로써 파괴적인 복수를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④ 유다는 왕국통치권을 위임받은 사자라고 하였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하고, 영적 장자로서의 품격을 소유할 것이라고 하였다.
  ⑤ 단에게는 그 백성을 심판하는 심판권이 위임되나, 그는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라고 하였다. 강한 힘과 강직한 성품을 소유할 것이라고 하였다(수 19:47).
  ⑥ 납달리에게서는 용사(삿 5:1-10)와 음악인이 배출될 것이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암사슴이라고 함으로 웅변과 음악적 기질이 탁월할 것을 예언하였다.
  ⑦ 갓은 용감한 전사라고 하였다.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며 이방인과 접전한다고 하였다.
  ⑧ 아셀은 비옥한 토지를 소유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식물은 기름지고,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라고 하였다. 아셀지파에게는 갈멜 산 북방의 해변의 옥토가 주어졌다(수 19:24-31).
  ⑨ 잇사갈은 힘센 노동력을 상징하는 건장한 나귀로 비유되었다. 느긋한 기질과 강한 힘을 소유할 것이라고 하였다(대상 12:32).
  ⑩ 스불론은 해변에 거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에게는 지중해 연안 해안지역이 주어졌다(수 19:10-16).
  ⑪ 요셉은 가장 탁월한 축복을 받았다. 그는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 담을 넘는 가지로 상징되었다.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지파씩 두 지파 몫의 축복을 얻었다(창 48:8-22).
  ⑫ 베냐민은 호전적인 기질을 가진 물어뜯는 이리로 상징되었다(삿 20:12-48).
  이 사실들을 가리켜서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창 49:33)라고 하였다. 야곱은 자식에게 말하고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는 사실이다(창 49:28).
  야곱은 이 일을 끝냈다. 그리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창 49:33)라고 하였다. 앉아서 말하고 축복하던 야곱이 이제 누워서 두 발을 침대에 올려놓았다는 내용이다. 앉은 자세에서 누운 자세로 옮겨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창 49:33)고 하였다. 그가 별세하는 마지막 순간에 고통이 없이 순조롭고 평안하게 임종했다는 말이다. 그의 별세는 극히 순조로웠음을 보여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임종을 앞에 두고 죽음을 준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죽음이 오기 전에 자신이 끝까지 무엇을 해야 할 사람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거뜬히 감당하였다. 또한 자기 앞에 임하고 있는 죽음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평안하게 감당하였다. 한 많은 이 세상 육신살이를 저렇게도 가볍게 벗어버릴 수가 있었다. 그는 참으로 새로운 것을 덧입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신앙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신앙인은 죽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주의 이름으로 맞이한다. 또한 죽은 후에 자기가 가는 곳을 분명히 알려줄 수 있다. 야곱의 최후는 승리의 최후였다.
  시드니 쿠퍼(S. Cooper)는 "주여! 나는 당신의 속죄를 완전히 믿나이다. 나는 당신의 도움을 믿나이다. 또한 당신의 보혈을 내가 완전히 믿나이다. 당신은 나의 위로의 근원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로는 내가 원치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미국의 큰 부자인 요한 피에르문트 몰간(J. P. Morgan)은 자기 영혼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된 사실을 믿어 그것을 구주님의 손길에 맡긴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의 자손들에게 이 구속의 도리를 어떤 희생을 지불하면서라도 주장(전파)하라고 유서를 남겼다.
  윌리암 피트(William Pit)는 "나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나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 위에 던지나이다."라고 하였다.
  오거스터 토플린(A. Toplady)은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라는 유명한 찬송을 지은 분이다. 그는 임종시에 "나는 나의 영혼 속에 벌써 천당을 맛보고 있다."라고 하였다.
  죠지 워싱톤(J. Washington)은 "의사여! 나는 지금 죽는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소."라고 하였다.
  필립 멜랑톤(P. Melanchthon)은 임종 전에 그의 사위가 옆에서 성경 몇 구절을 읽어준 후에 "또 무엇을 하여 드릴까요?"라고 묻자, "됐어. 이젠 천당밖에는 없다."라고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윌리암 윌버포스(W. Wilberforce)는 "천당에 대한 나의 애착심은 너무 많기 때문에 너희들을 유감없이 여기 버려두고 간다."라고 하였다.
  헨리 해벨독(Sir. H. Havelock) 경은 호열자(콜레라)에 걸려 죽으면서 하는 말이 "나는 이것을 위하여(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40년을 준비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만나는 최후(죽음)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다.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