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① (마 6:9-13)
우리 기독교는 세 가지 귀중한 보배가 있습니다.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바른 신앙의 고백이며, 십계명은 믿음의 사람이 무엇을 행할 것인가? 윤리의 문제를 다룬 것이고,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본문을 가리켜 주기도문, 주의 기도, 주 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명칭은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한 표본입니다. 지난주간에 '참된 기도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만 알고 나만 아는 골방에서 문을 닫고 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를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잘못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예를 들어 주셨는데 하나는 자기를 들어내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기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언부언하는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오늘 본문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의 한 모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암송하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루터는 '주기도문은 최고의 순교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믿지도 않으면서 마치 무슨 주문을 외우듯이 달달 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외우기만 하면 안 됩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주기도문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예배의 끝맺음으로 하는 순서로 남용하는 예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기도를 참마음으로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면서 올바로 이해해야 기도의 능력이 붙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해야 할까요?
①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해야 됩니다.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 항상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은 '쉬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속 그분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비결입니다. /할/
②기도는 배우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먼저 기도란 스스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하라고 하면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것은 기도를 바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 잘하는 것과 기도 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덧셈, 뺄셈, 곱셈, 나눌 셈을 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려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구구단을 외워야 하고 원리와 공식을 배워야 합니다.
또 이것을 완전히 습득한 다음 차원 높은 미분, 적분까지 풀게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원리와 요령과 내용과 순서를 배우기만하면 그 후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성령의 지시도 받으면 능력 있는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논문도 쓰고 기도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혀 기도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기도는 기도하기 전까지는 배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기도할 때 배워집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에게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는 기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이 인간은 살수가 없습니다. '죤스'라는 학자는 '사람은 왜 기도하는가?' 이런 질문을 마치 '뻐꾸기는 왜 밤에만 우는가?'하는 질문과 같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신앙인의 중요한 무기입니다.
▶먼저 주기도문의 구성을 한번 보겠습니다.
맨 처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할 때는 반드시 대상을 먼저 불러야 합니다.
그 다음에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섯 가지를 간구하는데, 먼저 세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이고, 다음 세 가지는 우리 자신에 대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맨 끝에 가서 송영이 나오고 '아멘!'으로 끝이 납니다.
▶9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여기서 '그러므로'는 앞 절에서 바리새인의 기도와 이방인의 잘못된 기도를 제시했습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니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는 접속사입니다.
여기 '너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바리새인들과 이방인들과 대조되는 주님의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내놓고 보고하고 상의하고 호소하고 간구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속에 쌓여 있는 것들이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고 호소하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 일들이 많습니까? 이것들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큰 병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들이 기도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요,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이 말씀 속에 몇 가지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①세상을 생각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면서 살면 실수나 사고가 적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들 생각 없이 살기 때문에 자꾸만 사고가 일어나고 사건이 일어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래도 생각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농사를 짓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또 비가 너무 많이 와 피해가 나면 사람들은 먼저 하늘을 바라보고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런 생각들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늘과 무관한 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되면 모두 내 공로로 돌려버립니다. 모두 내가 잘해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잘된 줄로 알고 우쭐합니다. 그리고 일이 잘 안 되면 모두 남의 탓이고 환경 탓입니다. 그래서 원망을 하고 불평부터 합니다. 모두 생각 없이 살아서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인생을 살면서 잘 생각해 보고 행동하라는 명령입니다. 생각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의 옷으로 나타납니다. 생각은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인생을 바꿉니다.
신앙생활도 생각하는 삶입니다. '이 일이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 슬프게 하는 것인가? 이 말이, 이 행동이 하나님이 보시고, 부모님이 보시고, 이웃이 보고 기쁘게 하는 것인가? 슬프게 하는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성숙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양심 없이 행동합니까? 불법을 행합니까? 범죄를 저지릅니까? 생각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생각에 대하여 많이 교훈하고 있습니다.
시77:12절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잠15:28절 '의인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잠23:7절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전7: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할/
②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살라!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하늘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합니다. 이 하늘의 소리는 조용히 엎드려야만 들립니다. 엎드려서 깊이 묵상을 하면 내 속에서 이 음성이 들려옵니다.
양심을 통해서 들리고 마음을 통해서 들리고 생각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살아야 그 사람이 올바른 신앙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조용히 엎드리는 시간이 없으면 하루 종일 세속의 소리만 듣게 됩니다. 세속의 소리만 듣다 보면 생활이 짜증스럽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고 TV를 보십시오. 전부 짜증나는 소리만 들리지 않습니까? 매일같이 부정부패 뉴스만 들리고, 누가 뇌물을 받고 구속되었다느니, 무슨 사고가 터지고, 강도 당하고, 교통사고로 죽고, 집이 무너지고 그런 소리만 듣게 됩니다.
이제는 뉴스를 듣기도 싫고 신문도 보기가 싫어집니다. 거기 어디에 신앙적인 소리 한마디라도 나오고 소망 적인 말 한마디라도 있습니까?
사람이 이런 소리만 자꾸 듣고 살다보면 인성이 파괴되어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고 맙니다. 그만큼 인성이 파괴되었다는 말이요, 자포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이 삐뚤어져서 싸우고 파괴하고 사고를 치고 막 살아가는 막가파가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2억을 받았다, 5억을 받았다 하니까 몇 천만 원 받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야'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뇌물에 대해 무디어지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까 이 나라가 뇌물 천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엎드리면 인간의 소리가 아니고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렇게 묵상 생활을 하다 보면, 먼저 자기를 보게 되고 자신을 살피게 됩니다. 그러다가 회개가 터져 나오게 되고, 내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 거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받게 됩니다. 이 힘을 능력이라고도 말하고, 은혜라고도 말합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이 힘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아멘!/
'존 웨슬리'는 그런 삶을 가리켜서 '성화의 삶'이라고 했고, '루터'는 그런 삶을 가리켜서 '영성의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③하나님과 화목을 위해 기도하라!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욥22:21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화목이 복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 화목을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정도, 부부 사이도, 형제간에도, 성도간에도 이 화목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런데 화목을 유지하려면 자주 찾아가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합니다. 부모도 자주 찾아가지 않으면 멀어지기 쉽습니다. 자주 찾아가야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형제도 멀리 떨어져 살면 남만도 못합니다.
어떤 때는 친구가 형제보다 훨씬 좋을 때가 있습니다. 이웃이 사촌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것은 가까이 자주 만나고 친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자주 찾아가지 않으면 멀어지기 쉽습니다. 여기서 접촉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주 접촉하여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자주 찾아가서 만나야 합니다.
자주 만나면 가까워지고 정들고 이해가 깊어지고 사랑을 입게 됩니다. 이것이 접촉이 주는 축복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실수를 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어린아이도 같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잘 자라더랍니다. 그곳은 어머니가 생각할 때 감옥이지 아이에게는 그곳에 어머니의 품이 있는 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체온을 느끼고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당부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관계를 이루면서 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①기도의 대상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즉, 내가 누구 앞에 기도하느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기도의 대상이 뚜렷한 인격을 가지신 절대자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이것은 돌부처 앞에 천지신명 앞에 심지어는 냉수 한 그릇 떠놓고 하는 기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양심을 향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심을 향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64:8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했으며, 말2:10절에서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했고, 다윗 왕도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출4:22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부자관계의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의 백성이 된 우리와 하나님과의 언약도 부자관계입니다.
요11:41절에 보면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죽어 사흘이 지나 냄새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했습니다.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할/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이 꼭 들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아멘!/
▶여기서 '하늘에 계신'이란 말에는 몇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⑴어디든지 계시다는 편재 성입니다.
⑵완전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란 전능 성입니다.
⑶영원히 계신 영원성입니다.
하나님은 얼마 있다가 사라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알파와 오메가라! 처음이요, 나중이라' /아멘!/ 여러분, 세상 권력도 정권도 지나갑니다. 어떤 사상도 지나갑니다. 유형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또 그분의 날개 안에 안식이 있습니다.
시139:7-10절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36:7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미군 병사가 월남전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소식을 듣고 아들을 부둥켜 않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어린 아들이 어머니를 위로합니다. '어머니! 그 포도수용소에도 우리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자기의 신앙이 어린 아들보다 못함을 깨닫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내 남편은 온전하게 보호해 주셨다가 우리의 가족 품으로 돌려주시옵소서!' 그 남편은 그 후에 무사하게 돌아왔답니다. /할/
또 성경은 '너희가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불이 너를 사르지 못하고 물 위를 걸을 때는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를 지극히 보배롭게 여기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디나 계셔서 우리는 보배처럼 아껴주십니다. 먼 외국 길에 여행 할 때도 하나님은 동행해 주시고 우리가 부엌에서 설거지 할 때도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엇이 염려가 됩니까?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 아버지'에서 '우리'라는 말은 울타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공동체와 연결이 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구속받은 형제자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하나님을 남성적으로 표현했습니까? 많은 여성들이 '왜 하나님을 남성으로 표현했느냐? 하나님이 남성이냐? 차라리 중성으로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성을 가지신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표현은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고 또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서부터 모든 인류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창조주의 하나님이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 개인 각자에게는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분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믿/ 이 믿음이 확실할 때 기도하면 응답이 옵니다. /할/
오늘 본문의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은 '땅에 계신 아버지'와는 구별되는 의미입니다. 땅에 계신 아버지가 아무리 존경스럽고 훌륭해도 자식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땅에 있는 아버지는 여러 면에서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모든 것에 완전하신 분입니다.
②'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 주신 다음 우리가 기도해야 할 기도의 내용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이것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⑴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인격과 신분을 대표하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몇 가지로 나타납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엘로힘의 하나님은 '전능자, 다스리는 자, 강한 자, 무에서 유를 창출해 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엘로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지존 자이십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 속에는 사람과 더불어 약속하시며 계약을 맺으시며 또 그 약속을 이루시고 우리 생활 속에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하나님의 속성과 활동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여호와 이레: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랍바: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그곳에 계심이라! 우리의 사건 속에, 상황 속에 삶 속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
㈄여호와 살롬: 평안의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치두케누: 우리의 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 라파: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부로 '야훼, 여호와'라는 단어를 입술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이름을 부르기 위해 목욕을 했으며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단지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씩 거룩한 옷을 입고 양의 피를 받아 뿌리며 지성소에 들어가 여호와를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다가도 야훼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 단어를 그대로 발음하지 않고 묵음으로 그냥 지난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제 3계명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마음속에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가볍게 경솔하게 불리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란 말 대신에 '아도나이'라는 말을 대신 했는데, 아도나이는 '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 내 삶 속에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눅5:8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요13:13절에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행2:16절에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설교할 때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믿/
▶여기서 '주'라는 말은 무슨 뜻이 있는가?
⑴가장 높이는 뜻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이가 어디 있습니까? 나라에서도 임금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고 성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 부르는 것도 가장 높이는 뜻입니다.
빌2: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⑵주인이라는 뜻으로 주권자, 소유권자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소유권은 이야기입니다. 자기 남편 아닌 다른 사람을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주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내 주권자라는 의미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으로서 절대 순종, 절대 충성을 맹세하는 말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이 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멘!/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무슨 뜻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거룩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이 기도의 참 뜻이 무엇입니까?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고 그대로 거룩하게 되도록 내가 거룩한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거룩해 질 수 있습니까? 소속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한 병사가 나폴레옹 군대에 붙잡혀 왔습니다. 불란서 병사가 심문을 합니다. 러시아의 군대 되기를 포기하고 나폴레옹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면 너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러시아 병사는 사늘한 눈으로 불란서 군사를 노려보면서 '나는 영원히 러시아의 황제! 즉 나의 황제에게만 충성을 다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불란서 병사가 러시아병사의 팔다리에 나폴레옹의 첫 자인 N자를 인두로 짖어 나폴레옹 소속이라는 표를 했습니다. 그러자 러시아 병사는 옆에 있는 불란서 병사의 칼을 뽑아 자기 팔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외치기를 '나는 나의 영원한 황제, 러시아의 백성이라'고 외쳤답니다. /할/
소속감이 철저합니다. 러시아의 군대를 통하여 러시아 황제는 자연히 거룩해졌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믿/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겨야 하며 우리의 생활도 거룩한 생활로 바꿔져야 합니다.
여러분, 명백한 소속감을 가지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할/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소속감이 없는 성도는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행복한 성도임을 분명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⑵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원래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첫째는 예배요, 둘째도 예배요, 셋째도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큰 봉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 임재하십니다. /할/
하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임재 하셔서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시고 온유한 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꿀을 먹이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를 받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고 거룩이 여김을 받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깨어지고 부셔져 거룩하게 되어 집니다. 예배에 우리 모두 빠지지 말고 참석하십시다. /할/
⑶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며 우리도 거룩해집니다. 지금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이 있습니다. /할/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했더니 그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은 의지할 것입니다. /믿/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에게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질병에서 일어나고, 사망에서 일어나고, 영적인 앉은뱅이 신앙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
위대한 사상가 '파스칼'은 본문의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의 위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믿지 못하는 것이 오늘 날 신앙의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전의식'이라고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 부인의 유혹 앞에서 고백한 고백을 의미합니다. 창39:9절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아멘!/
⑷우리의 귀중한 것을 드리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거룩이 여기심을 받으십니다.
시96: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생명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영생의 축복이 있습니다. 재능 바쳐 하나님께 충성하십시오, 우리들의 재능이 더하여집니다. 시간을 드려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건강 책임져 주십니다. 물질 바쳐 봉사하십시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 따라 흔들어 넘쳐 안겨주십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아멘!/
⑸우리의 믿음의 본을 보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그의 이름이 존귀해지십니다.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말이 달라야 하고 행동이 달라야 합니다. 남을 흉보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칭찬하십시오, 적극으로 듣기 좋은 아름다운 말만 하고 품위있는 행동으로 세상사람들로 '예수 믿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평을 들어야 합니다. /아멘!/
▶알렉산더 대왕이 하루는 부하들의 막사를 순시했습니다. 몇 군대 들려 마지막 막사로 지나가는데 큰소리로 '알렉산더 그놈은 사기꾼이고,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다.'라는 소리가 들여오는 것입니다.
대왕이 분노해서 막사 안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막사 안에 병사들이 기절초풍하고 놀랄 줄 알았는데 부하들은 늠름하게 대왕의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가증스럽게 여긴 대왕이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이놈들! 내가 없는 자리라고 나를 욕할 수 있는가?' 그러자 당황한 병사들이 '아니 우리가 감히 어떻게 대왕을 욕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대왕이 '아까 알렉산더를 사기꾼, 나쁜 놈, 죽일 놈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그때 부하 하나가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그 소리에 대왕의 이름과 똑같은 아주 질 나쁜 병사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대왕이 그를 불러놓고 '네 이놈! 너는 둘 중에 하나를 고쳐라! 네 이름은 고치든지 아니면 네 행실을 고치든지 하라!'고 엄하게 명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행실이 진정 신앙 인다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의 가르침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불러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가르쳐주셨고, 그 첫 번째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됨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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