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28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② (마 6:9-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45

(제28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② (마 6:9-13)

 

  우리 찬송가 470장에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을 찬송가의 욥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찬송 시를 쓴 '스패포드' 교수는 시카고 대학에서 법리학을 가르쳤던 분이고 변호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시카고 무디 교회에서 회계 집사로 헌신을 했던 분입니다.
  그런 그가 1871년 시카고 대 화재 때, 그의 집도 몽땅 타 버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 충격으로 몸져누웠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가족들과의 여행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구라파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아내와 네 딸을 배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화재에 대한 뒤처리 문제로 그 다음 배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사랑하는 네 딸을 태우고 가던 배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다른 배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그 사고로 사랑하는 네 딸은 다 죽고, 그의 아내만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에게 영국의 웨일즈에 도착한 아내로부터 짤막하게 전문이 왔습니다.
  '혼자만 구조되었음' 그는 그 전문을 받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즉시 배에 올라탔습니다. 사랑하는 네 딸을 잃고서 혼자 정신 없이 헤매고 있을 그의 아내가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가 선실에 있는데 선장실에서 차나 한잔하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선장은 함께 차를 마시면서 그에게 이제 잠시 뒤면 네 딸을 앗아간 바다 위를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시금 선실로 내려왔습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 딸들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입니까? 새벽 세시쯤 되었을 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평안이 그의 마음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내 영혼 평안해' 그는 배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렇게 해서 찬송가 470장이 탄생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네 딸을 앗아간 바다 위를 지나가면서, 이런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그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그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고 기도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할/ 기도가 능력입니다. /아멘!/ ◀제목 소개!▶

 

  중세 유럽에 있던 어떤 수도원기도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그 글의 제목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너는 나를 주라고 부르면서도, 나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고/너는 나를 진리라고 말하면서도, 내게 배우지 않았고/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너는 나를 능력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도, 내게 기도하지 않았느니라/그러니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우리에게 기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불과 3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매우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녁에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는 또다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셨고, 또 기도로서 하루를 마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앞에 두시고서는 언제나 먼저 기도로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도 먼저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여 세우시기 전에도 산으로 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도 먼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든지 흘러내리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상의 일곱 마디 가운데 세 마디가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십자가상의 첫 마디는 기도였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시22편 첫 절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십자가상의 마지막 마디도 역시 기도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삶으로서 친히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인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그 길잡이가 되는 하나의 기도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주기도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의 서론부분으로 9절 한 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의 서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그 첫 번째 기도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오늘은 10절의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10절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을 보면 세 가지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이고, 또 세 가지는 우리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견지에서 보면 단 두 종류의 나라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또 하나는 사단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있고, 사단이 왕 노릇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사단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1장에 어떤 사람에게 벙어리 귀신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벙어리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서 몹시도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마치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 것처럼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눅11:2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 그 두 번째입니다. '나라에 임하옵시며'
  여기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임하옵시며'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막1:15절을 참고해 보십시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은 4복음 중 제일 먼저 쓰인 복음서입니다. 순서 상으로는 마태복음이 먼저 편집되었으나 쓰인 연대는 마가복음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초 신자 때는 마태복음 보다 마가복음이 먼저 읽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마태복음 1장부터 낳고, 낳고 시작되는데 헷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낳고, 낳고'가 끝나기도 전에 깊이 입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설교가 15절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설교입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 때는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의 때를 맞추어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때를 맞추어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찾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제일 성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①이 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나라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나라에 임하옵시며'로 번역되었지만 본래, 원문의 뜻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인 왕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요18:36절에 보면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세상 적인 정치 지도자를 믿고 영광을 기대하며 따랐습니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 지배 하에 있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직접 그 나라의 왕이 되어 아름다운 조국을 건설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정권을 잡으면 우의정, 좌의정 하나씩 달라고 간청했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세상 적인 나라를 건설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위대한 나라, 이 세상과 차원이 다른 나라를 세우려 오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가롯 유다의 꿈도 야무졌습니다. 예수가 정권을 잡으면 자기는 재무부 장관, 한 자리를 노렸는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자 실망이 컸습니다. 기대가 무너진 가롯 유다는 선생을 배신하고 은 30냥에 팔아 넘겼습니다.
  가롯 유다만 실망한 것이 아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자 제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들의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후 3일 만에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제자들의 마음속에 무너졌던 기대가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행1장을 보면 제자들의 초 관심사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예수님의 왕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이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때와 기한을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다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입니다. /아멘!/
  ②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이명박 대통령이 통치권한이 미치는 곳까지입니다. 이 영역을 가리켜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힘이 세다는 미국도 오바마가 통치하는 곳까지가 그의 나라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는 곳까지입니다. 그럼 어디까지입니까? 이 세상 우주만물 전체입니다. /믿/ 하나님의 통치는 지구 땅 끝,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적인 뜻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천국을 믿습니까? 그런데 천국은 어떤 지명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나라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⑴세상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상 나라는 미움, 분노, 투쟁의 원리, 곧 약육강식으로 움직여져 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용서의 원리, 서로 섬김과 봉사, 협력과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⑵하나님이 다스려 주시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주시면 내 마음이 천국이 임합니다. /믿/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을 다스려 주시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할/ 우리 모두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십시다.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축복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인도가 끊긴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은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비록 다니엘의 세 친구가 뜨거운 풀무 불 속에 있어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유명한 부흥사이신 이성봉목사님이 6.25 동란 무렵 전남 목포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다가 공산당들에게 붙잡혔습니다. 많은 고문과 조롱과 심문을 받은 것을 두말 할 것이 없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을 밖으로 끌어내어 고문하고 조롱합니다. '어이 영감! 어디 천국을 보여 봐라!'하면서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천국은 보여줄 수 있다.'고 하자 그들이 '아니 죽어서 말고 지금 보여 보란 말이야!'
  목사님은 네 눈앞에 당장 보여 달라는 그 공산 당원에게 '천국 본점이야 하늘나라지만 지점이야 보여줄 수 있다. 그곳은 바로 내 마음이 천국'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문화종교, 도덕종교 운운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 분의 인도를 받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유대의 모든 높은 사람들 앞에서 죄수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여러분이여 여러분 모두는 내가 쇠사슬에 매인 것 말고는 다 나처럼 예수 믿고 천국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할/
  고문당하는 이성봉 목사님이나 재판을 받고 있는 바울 사도에게 왜 이런 외침이 나옵니까? 바로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고해와 같습니다. 어려운 일도, 억울한 일도 슬픈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절대로 슬퍼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 네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십니다. /믿/아멘!/
  ③이 나라는 회개하는 심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제일 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신학자는 '회개란 정권교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나를 다스려왔습니다. 내가 내 속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다스렸는데도 밤낮, 짜증이 나고 실망할 일이 터져 나오고 허물과 불안 속에 빠져 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내 왕국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나를 지배하던 삶에서 내가 떠나가고 예수가 남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할/
  ④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 롬14: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할/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지배할 때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삶에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⑤'나라에 임하옵시며' 또한 이 기도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날은 지금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알리는 역사의 징조는 세상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라는 시간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합니다.
  ⑴오늘 본문의 '나라이 임하옵시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기도입니다. 계시록의 저자 사도요한은 그 날은 사모하며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대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는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이 오시는 날,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신랑이 신부를 마지하기 위한 설렘보다 고시합격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우리 주님 만날 그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할/
  ▶상록수를 쓴 작가 심훈은 일본 제국에서 해방되는 그 날은 사모하면서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그 날이 오면 내 껍데기를 벗겨 북을 만들고 종로행진의 맨 앞에 서서 북을 두드리리라!' 조국의 해방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런 애국 시를 썼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심훈씨의 해방을 사모함같이 주님 다시 오실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아멘!/
  ⑵오늘 본문의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기도는 단순한 기도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책임을 다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전도운동입니다. 행1:8절에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은 '주님의 모습으로 살면서 주님을 증거하라'는 명령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기도의 내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피부로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굉장히 값있는 기도입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까? 마7:21절을 보세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러분, 주님의 뜻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 그 세 번째 부분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른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어다.'
  본문의 기도는 먼저 마6:33절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신 교훈의 요약이요, 주기도문의 중심사상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라는 교훈입니다. /할/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산권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단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신학생도 만났습니다. 물론 선교사로 나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바울은 살전5:16-18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어떤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아주 구체적이고도 아주 쉬운 표현입니다. 공산권에 가서 설교하기 전에 지금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많은 헌금을 드려 하나님 앞에 봉사하기 전에 지금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모든 봉사는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또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열심히 기도하는 것, 주님이 기뻐하신 뜻입니다. '기도 이외에 이런 유가 없습니다.' /아멘!/
  기도하는 자는 시험에서 이깁니다. 기도하는 자는 변화를 받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마귀가 벌벌 떱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할/ 그리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한 농촌교회에 감사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집사님의 남편이 불신자였는데 그 해 무 농사를 많이 했는데 그 해 따라 무값이 폭락해서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 남편은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이 장례식을 집도하는데 그날따라 감사집사가 대표로 기도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대표 첫마디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옆구리를 치면서 '남이 들으면 오해하지 않았겠습니까? 남편이 농약 먹고 죽었는데 감사하다니 그러면 잘 죽었다는 얘기밖에 더 됩니까?'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 기도할 때는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목사님이 사인을 주었건만 감사 집사는 더 큰 소리로 '그래도 감사합니다. 어쨌든 다 안 죽고 안쪽만 죽었으니 감사할 일 아닙니까? 가족들한테 약 먹이고 다 죽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하면서 좌우지간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집사님의 믿음이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인지도 모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 가운데 감사하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잘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집사는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조건이 될 것을 믿고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할/
  우리 주님은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셨습니다. 마26:39절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주님이 깊은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원은 쓴잔을 물리쳐 달라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죽음을 면케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그 밤에 철야기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싶지 않지만 예수님의 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원이 그것을 원하시면 나는 그대로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이런 기도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원본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내 소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부터 기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믿/
  '키엘 게골'은 말하기를 '기도란 하나님이 내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야 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오히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아멘!/
  ▶기도를 많이 했고 기도의 비밀을 알았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이 시작되면서 많은 병사가 죽을 때마다 아픈 마음으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당시 링컨이 이끄는 북국은 오히려 병력도 많고 여러 가지 최신무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유리한데도 남군의 용장 '로버트 리' 장군 때문에 늘 패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북군의 교회 목사님들이 모여서 대통령을 위로합니다. '각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온 교회가 모여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우리 북군편이 되어주셔서 남군을 이기게 해 달라'고 날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링컨 대통령이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거기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다음 말이 유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할/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내 축복의 창고를 채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보다 더 하나님이 뜻이 우리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뜻은 늘 선한 것은 아닙니다.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의 뜻은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언제나 최선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시겠습니까? /믿으십니까?/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막힘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한 번도 충돌이 없이 운행되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의 기도는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를 찬양했던 벤자민 목사님은 항가리의 목사님이십니다. 그때 구교가 신교를 핍박을 가할 때, 이 목사님은 썩어진 구교의 교리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목회하던 중 몸에 아홉 가지 합병증이 생겨 병든 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쓴 곡이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입니다.
  이 찬송은 체념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은 반드시 이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는 나를 능히 정복해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라는 찬송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6:38-39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목적이요, 기쁨이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히6:17절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또 롬9:19-20절에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로 말미암아 실현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는 것,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누가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날마다 십자가 아래 죽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15:2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뜻이 죽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사도바울의 위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큰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잠시 뿐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평안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할/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아이가 대표기도를 하는데 좀 지나칠 정도로 길게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는 기도를 너무 오래 해서 지루해 죽겠어요. 다음부터는 좀 짧게 기도하라고 일러주세요' 그러자 선생님은 지혜롭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예수님보다도 더 오래 기도했나요?'
  선생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또 한 번은 다른 아이가 반대로 아주 짧게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불평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는 너무 짧게 기도해요. 기도가 시작하는 듯하더니 금방 끝나버렸어요'
  선생님은 또다시 예수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이라고 기도했지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친구의 기도가 예수님보다도 더 짧았나요?'
  아이들은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때로는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큰 소리로 하느냐 작은 소리로 하느냐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유창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떠듬거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서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길지 않습니다. 헬라 원어로 72단어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49단어입니다. 기도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더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따라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의 주기도문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해져서 그분의 이름을 빛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또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소망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옥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언 적인 명령도 전도입니다. 마28:18-20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전도를 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막9:23절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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