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30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④ (마 6:13-1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47

(제30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④ (마 6:13-15)

 

  6.25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앙심 깊은 어느 부모가 아들을 최전선으로 보내며 당부했습니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어느 곳에 있든지 새벽 5시가 되면 우리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전쟁터는 험한 곳입니다. 많은 위험이 있고 잘못될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부모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그 기도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도 자기를 지켜 경건하게 살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보초를 서고 있을 때 새벽 다섯 시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의 부모님이 아들을 위해 기도하마고 약속한 시간 아닙니까? '지금쯤 어머니 아버지께서 새벽 기도를 시작하셨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젊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그도 하나님께 기도드릴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음과 동시에 머리 위로 '타-앙!' 하고 총알이 날아갔습니다. 무릎을 꿇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서 있었다면 그는 영락없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할/ ◀제목 소개!▶

 

  주기도문 초반부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 마음의 초점이 하나님께로 모아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인지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려야 마땅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요14:13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아멘!/할/
  그 다음 주기도문 후반부에서 우리 자신들을 위한 기도에서 예수님은 ⑴우리의 육신을 위해서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⑵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용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⑶우리들이 악한 이 세상에서 천국에 갈 때까지 '악에 물들지 않도록 두 가지를 기도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본문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기도와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보호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아멘!/

 

  ▶13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눅22: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은 마치 유혹과 시험의 지뢰밭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가득 차 있으므로 가는 곳마다 온갖 종류의 시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영안을 열어서 그것을 다 볼 수 있다면 정말 우리는 몸서리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험에는 '육신의 시험과 마음의 시험과 영적인 시험'이 있습니다. 즉 '외적인 것과 내적인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정리하고 지나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또 그러한 시험과 시련은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고 고난과 역경도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오늘 본문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가 모순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험에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①하나님은 성도들의 신앙을 훈련시키려는 훈련용 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참고 견디며 통과해야 합니다. 약1:2-3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란 죄에 빠지게 하는 유혹이 아니라 신앙의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훈련용 시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상에서 자란 꽃이 아닙니다. 모든 풍상을 겪고 자라난 소나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련들은 그것이 환경 적으로 오는 것이든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든 우리의 믿음을 새롭고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신명기에 보면 성도들의 훈련을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는 것으로 비유해서 가르쳐줍니다.
  신32:9-12절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하시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9절에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사람에게 있어 기업이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기업이 없는 사람은 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생명 다음으로 소중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자기 기업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일환으로 율례와 법도를 지키도록 명했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수련이고 훈련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불행은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내 보내셔서 40년 간의 수련을 쌓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신약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40일 동안 금식과 기도의 기간 세례요한의 광야생활 제자들의 3년 반 동안의 말씀과 기도와 전도훈련 그리고 바울의 아라비아 3년 동안의 수련 등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어쩌면 신앙인에게 있어 수련의 기간은 짧게는 40일, 길게는 3년에서 40년이 걸리는가 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수련의 기간을 축복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훈련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기업이 된 이스라엘을 양육하시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간을 지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단시일 내에 그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그 기간을 연장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수많은 시련 중에서 신앙의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더 큰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방치해 두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장차 주실 축복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눈동자 같이 신속하게 지켜주십니다.
  이제 우리 신앙 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육적 수련을 통하여 영적인 위대한 신앙 인으로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육적 수련이 영적 수련으로 발전하고 생활의 변화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닮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이러므로 살맛이 납니다. 하나님이 눈동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백 번들어도 좋고 천 번들어도 좋습니다. /할/
  '우리를 독수리 같이 훈련시키는 하나님!' 날마다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것만으로 전부를 다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때로는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다루듯이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어떻게 훈련합니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보금자리에 있는 새끼들을 못살게 굽니다. 조류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폭신폭신한 깃털 침대를 전부 다 밖으로 물어 던져 버리고 가시나무를 보금자리에 집어넣어 새끼들이 찔리도록 한답니다.
  결국 새끼들이 그 보금자리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오게 만든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일한 그 자리에서 밀어내실 때가 있습니다. 이제 이미 독수리는 기어 나온 새끼들은 10피트나 되는 긴 날개 위에다가 앉아 높은 고궁으로 올라갑니다.
  새끼는 잔뜩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미가 새끼를 사정없이 떨어뜨려 버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나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땅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어미 독수리는 창공에서 새끼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땅바닥에 부딪칠 정도 되면 잽싸게 와서 날개에 받아 또 하는 창공으로 올라가 그 훈련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훈련 중 독수리 새끼가 땅바닥에 곤두박질 쳐 깨쳐죽은 독수리 새끼는 한 마리도 없답니다. /할/
  이 훈련이 계속되는 동안 새끼 날개가 힘을 받아 어미 새처럼 항공을 날아가게 된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킬 때 절대 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욥을 시험하셨습니다. 시험도 엄청난 시험입니다. 그 시험이 통과한 후에 욥은 두 배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은 시험하셨습니다. 독자 이삭은 바치라는 시험에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시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그래서 약1: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셨고, 벧전1:6-7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할/
  욥은 고백합니다.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시험해 보십니다. 이 시험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성적 시험과 같고 진급시험과 같고, 면허 시험, 자격시험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복을 주려고 하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에 우리 모두 이기고 승리합시다. /아멘/할/

 

  ②본문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의 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 시켜주는 그런 시험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는 유혹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인간의 욕심에서 좌우됩니다. 약1:14-15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빠지게 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욕심 때문입니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탐심, 탐욕, 이것이 인간을 유혹과 죄에 빠지게 하는 가장 무서운 원인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참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참 뜻은 무엇입니까?
  ⑴죄에 빠지게 된 사단의 모든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⑵한 걸음 더 나아가 유혹의 근원인 욕심에서 해방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사랑이 욕심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얻습니다.
  ⑶'감당할 만한 시련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도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잘 받는 유혹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인류의 첫 아담이 받았던 유혹의 모습이며 그 방식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요일2: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⑴정욕과 쾌락으로 오는 유혹입니다. 여기에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으로 오는 육신의 문제로 오는 시험입니다.
  ⑵안목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오는 유혹인데 우리의 눈을 만족시켜 주는 모든 것들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 때문에 얼마나 사람들이 유혹을 받습니까?
  ⑶이생의 자랑입니다. 명예욕, 자랑입니다. 즉 자기만이 최고이고, 자기도 판단의 옳다고 하는 생각에 빠지는 유혹입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서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 이깁니까?
  벧전5: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또한 고전10:12절에서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또 한 가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악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기도는 소극적인 기도라고 한다면 이 기도는 본질적으로 더 적극적인 기도입니다.
  ▶여기서 악이라고 말할 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⑴악한 공중권세 잡은 사단에서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원수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한길로 왔으나 일곱 길로 저주 받고 떠나갈 줄 믿습니다. /아멘!/
  ⑵악한 자 신앙을 방해하는 자들에게서 구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며 죄를 짓게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못 가도록 유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신앙 인들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죄를 짓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핍박하고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사사건건 부정적인 소리를 신앙은 흐리게 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악한 자들에게서 이기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시험에 빠질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단호히 거부합시다.
  시1: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렇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마십시다. 죄악의 자리에 앉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를 선택합시다. /할/
  ▶플라톤의 제자 중에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뱃놀이를 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뱃놀이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있는 자기 집 창문을 모두 막아 버렸습니다. 친구가 와서 왜 그렇게 창문을 막았느냐고 물을 때 바다를 바라보면 뱃놀이 생각이 나서 유혹의 창문을 막아 버렸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유혹의 창문이 있습니다. 막아야 합니다. 이제 악에서 구원받은 길은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된 권세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갈5:1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할/
  다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에서 '구하옵소서!'는 '풀어 버리다, 해방하다.'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평화는 사단의 결박을 풀어버리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참된 자유란 성령 안에서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할/
  여기서 본문에는 빠졌지만 우리는 '대개'를 넣고 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개'는 헬라어 '호티'를 번역한 말로, '왜냐하면, 그 이유는'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께 이런저런 여섯 가지 간구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할/ 이런 뜻으로 우리는 '대개'라는 단어를 덧붙여서 암송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인 송영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했는데 끝맺음에도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입니다.
  이 말은 곧 기도란 시작도 하나님이요, 끝도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도의 주제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기보다는 자기의 뜻을 좀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예를 들면 '주님! 내가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인 좀 해 주십시오, 이것을 위해 금식하겠습니다. 40일 작정 기도하겠습니다.' 매달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기도를 철저하게 시작도 끝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관심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나를 위해서'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외로우니까, 내가 고통스러우니까, 내가 병들었으니까, 내가 불안하니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주제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이론이나 철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주의 근본이시며 우리를 실제로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든 하나님을 모르고 과학을 알 수가 없고, 인체의 신비를 알 수가 없고, 예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과학의 주인이시오, 우리 인체의 주인이시며 또 대자연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 하나님의 깨닫고 그분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의 끝은 그분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하나님이신 그분께 영원히 있다는 감격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⑴여기서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국어사전에 국가, 세상, 세계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나라는 세상나라, 세상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본문의 '나라'의 헬라어원의 뜻은 '통치, 주권'이란 말로, 곧 다스림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통치하는 나라이며 주님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권에 있으며,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분이 나를 다스려주시면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믿/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신앙대로 살아가는 기도 중요하지만 날마다 내 삶 속에 주님의 다스림을 얼마나 받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런 찬송을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돌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땅에서 우리 주님의 다스림을 받다가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갈 축복 받은 존재입니다. 요14:2-3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이십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확신하며 찬양하는 것이 기도의 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고전4: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6:9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롬14: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눅18:16절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할/
  ⑵누구의 권세입니까? 하나님의 권세를 말합니다. 이 권세라는 말은 권능이라고 이해하면 더 쉽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힘입니다.
  이 권세로 하나님은 인류문명의 5대 발산지 중의 하나인 그 애굽 바로 왕의 거대한 세력을 제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광야 40년 세월!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를 내게 하시고 하늘에서 맛나 메추라기를 내리시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합니다. 세우기도 하시고, 부수기도 합니다. 주시기도 하고 빼앗기도 합니다. 치시기도 하시고 싸매기도 하십니다.
  한마디로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을 하나님은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마28:18-20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
  예수님은 하늘의 권능은 그대로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소경을 눈뜨게 하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무엇보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권능이 그분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하늘의 권능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아멘!/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그 권능을 가지고 사망도 죽음도 꾸짖으셨습니다. '사망아! 네가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용서하는 능력도 원수를 사랑하는 능력도 자기를 헌신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당신의 나라에 권세와 권능이 있음을 찬양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⑶영광은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가?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요,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본질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영광스러운 경험보다는 비참한 경험들이 더 많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영광도 재벌의 호화로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 적인 영광은 풀에 꽃과 같고 안개와 같고 나그네와 같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한 영광이요, 다함이 없는 영광입니다.
  그분만이 오직 영광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꽃 한 송이를 보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계절을 보면서 인간의 신비한 생명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사6:3절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참된 기도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권능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⑷마지막으로 '아멘'입니다. 아멘은 무슨 뜻입니까?
  ㈀'진실로'란 의미입니다. 진실은 참을 의미합니다. '옳습니다. 그대로 믿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확증할 때 아멘을 사용하셨습니다. 계3:14절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은 아멘 자체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강단에서 떨어지는 축복의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순종의 의미가 아멘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눅1장에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하자 그때 마리아의 태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어다.'하고 순종하는 아멘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할/
  ㈃'동의, 동감'의 표시입니다. '아멘'이라고 할 때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말씀이 주어질 때 아멘하며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대표기도를 드릴 때도 아멘하며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계22: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시자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했습니다. 또 다윗이 솔로몬을 자기의 후계자로 결정한 다음에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불러서 이 일을 차질 없이 잘 시행하도록 당부를 했습니다.
  그 때에 아도니야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일부 추종자들과 모의하고 있어서 어수선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특히 충신 브나야는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합니다.'(왕상1:26)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멘은 동의, 동감을 표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행위에 있어서 회중이 한 목소리로 화답하는 말이 곧 아멘입니다. 기도, 축도, 송영, 후에 모든 것이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라는 동의, 동감의 표시입니다.
  ㈄아멘은 성도의 최후에 소망이기도 합니다. 계22:20절에서 예수께서 재림을 약속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시자 요한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화답했습니다. 이 말은 아람어로 '마라나타'입니다. 이 말씀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었고, 요한계시록의 결론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오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 속에 사시기 바랍니다.
  계1:7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매 순간, 순간마다 아멘의 역사가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아멘!/
  ㈅아멘은 그리스도인의 축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멘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성취의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의 아멘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 받는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아멘!'으로 받는데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주시지 안달하시는 분이십니다. 롬8: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에 '아멘!'하십시다. 아들을 주신 이가 그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주실 이에게 '아멘!' 하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격도 그 믿음 안에 있고, 능력도 그 믿음 안에 있고, 축복도 그 믿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겠습니까?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은 믿음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아멘으로 복을 받습니다. /할/

 

  ▶14-15절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12절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문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용서가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없으면 결코 기도가 안 됩니다. 형제와 다투고 원수를 맺고 나서 기도하면 기도가 안 됩니다.
  적대감을 가지고 혈기를 가지고 분을 가지고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부싸움 했으면 빨리 푸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손해 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이웃의 과실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용서해 주시지만 우리가 이웃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입니다. 주기도문을 마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루에 세 번씩 꼭 주기도문을 외웠다고 합니다. 우리도 하루에 세 번씩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주제들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기도가 염불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또 어떤 예배모임이 끝날 때 장식품으로 쓰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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