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강)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 10:24-33)
마10장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불러 택하시고 그들을 전도사역에 파송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8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나가 천국복음을 전하면서' 이 다섯 가지를 명령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⑴고치라! 병든 자를 고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병마가 떠나갑니다. 약5:15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⑵살리라! 죽은 자를 살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립니까? 여기서 살리라는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심어주어 거듭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⑶깨끗케 하라!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문둥이입니까? 죄인들이 바로 문둥이입니다. 영적인 문둥이입니다. 성경에 보면 죄와 문둥병은 동일시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문둥병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이들은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죄에서부터 놓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줍시다. /할/
⑷쫓아내라! 귀신을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지금 성도의 싸움은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지금도 귀신 들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이름 앞에 벌벌 떱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묶으십시다. 그리하면 한길로 왔으나 일곱 길로 혼비백산하여 쫓김을 받고 떠나갑니다. /아멘!/
⑸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도 거저 받았고, 구원도 공짜로 받았습니다. 또 은사도, 능력도, 하나님이 공짜로 주셨습니다. 누가 돈주고,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선물이요, 구원도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도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거저 주어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16절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면서 걱정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시면서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을 보면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할 때에는 환난과 핍박과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면서 제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바로 환난과 핍박과 멸시와 천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사는 모두가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랑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수록 그 대가는 더 큰 것입니다. /할/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전도라는 것은 박수 받고 환영받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참 쓰라린 대가를 치르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너희가 전도대열에서 '두려워 떨며 낙오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입니다. /아멘!/ ◀제목 소개!▶
▶24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여기서 제자는 믿는 사람들이고, 선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종은 믿는 사람들이고, 상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가리키시는 선생이시며 우리는 그분께 배우는 제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즉 주인이시며, 우리는 그의 지체로 종의 신분입니다.
본문의 뜻은 우리의 선생이 되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핍박과 조롱 천대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셨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대우를 받겠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사실 좋은 것을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나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잘못'입니다. 선생이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하고, 주인이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인 되신 예수님이, 우리 선생이 되신 예수님이 많은 환난과 핍박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당연히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하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믿/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24-25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과 동시에 성도에게 특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핍박이 그리고 고난이 왜 특권이 됩니까?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핍박은 바로 우리가 받은 영광에 대한 보증수표입니다.
은행이 발행한 보증수표는 현금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당하고 고난, 멸시, 천대를 당한 때에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영광을 받은 것이라는 확실한 보증수표라는 것입니다. /할/
마5: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행5:40-41절을 보십시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매를 맞으면서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는 핍박을 통해 주의 합당한 일꾼으로 인정받음을 알고 기뻐하면서 공회 앞에 떠나 두려움 없이 더욱 전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할/
▶25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사람들이랴"
'집 주인은 바알세불이라' 물론 여기서도 집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12:24절을 보면, 유대인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악의에 찬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이 빈정거리는 어투를 역이용하셔서 자신을 집주인으로 또 제자들은 그 집 사람으로 비유하시면서 집 주인은 바알세불로 비난한 그들이 제자들에게 더욱 더럽고 악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 사단에 해당하는 명칭인데 흔히 이방 에그린 신인 '파리 대왕'이란 뜻으로서 '똥의 왕, 교만의 왕'이란 말입니다.
▶26절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핍박과 조롱 앞에서도 한마디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죽음 앞에서 '소자야!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세상의 조롱과 핍박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십니다(26, 28, 31).
주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먼저 인간은 자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때로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부족한 저도 내 마음 속에 두려움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기도 안하고 조금 해이해지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환경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이런 저런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는 유한한 동물이기 때문에 자꾸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기필코 승리한다'고 하셨습니다. 요16:33절에서는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우리가 때로는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여러 가지의 어려움을 당하지만 그러나 마음에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믿/
▶옛날 전쟁하는 것을 보면 장군들끼리 싸웁니다. 예를 들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그것입니다. 골리앗은 블레셋을 대표하고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겨루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의 힘을 의지하고 싸웠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워 뭇 맷돌로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진영에서는 골리앗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갔습니다. 이것이 옛날의 전쟁 방법입니다.
폭력영화를 보면 보스 대 보스가 대결해서 지는 보스는 그 부하들까지 다 무릎을 꿇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예수님께 속한 우리의 승리까지 거둔 것입니다. /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후 심판 때에는 감춰진 것이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숨겨진 것이 다 알려지게 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노출될 것이라는 뜻이요, 둘째는 악과 선, 불의와 정의가 바르게 드러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멘!/
여러분, 혹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밝혀질 날이 옵니다. 우리가 구태여 변명을 하지 않아도 진실은 하나님 앞에서 다 밝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
본문의 배경 적인 설명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통과 핍박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설령 너희들을 죽인다 할지라도 너희 영혼까지는 좌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인 것은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또 하나님이 너희를 지키리라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 말씀의 또 다른 해석은 '감추어져 있는 복음의 비밀이 다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복음을 받았고, 너희 속에 진리와 생명의 역사가 감추어져 있다, 그것들이 반드시 드러나고 알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우리 심령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나가서 전파하여 드러내라는 뜻입니다.
▶27절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핍박이 올수록 담대히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종말의 때가옵니다. 우리 인생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마지막 때가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을 때 염려하지 말고 담대히 복음의 행진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은 광명한 대서 말하며' 지금까지 귓속으로 들었던 것은 이제는 집 위에서 모든 사람이 듣도록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입니다. 또한 복음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특별히 핍박을 받으면 그리고 모든 환경이 잘 풀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두려움이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생기는 불안한 생각입니다. 왜 우리에게 불안이 오고 두려움이 올까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요14:1절에서 당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불안이 없습니다. /믿/ 예수님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개인적으로 말하였던 것을 지붕 위에서 큰 소리로 말하라! 공개적으로 하라! 주저하지 말라! 뒤돌아 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멘!/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두 번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두려워하지 말 것과 두려워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혼과 육체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영적이기보다는 육체적이요, 정신적이기보다는 물질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육체를 죽이는 사람들, 나의 삶을 조이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정치 권력자나 경제 권력자를 두려워합니다. 직장 상사를 두려워합니다. 눈치를 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먹을 것을 빼앗을 수는 있고, 육체적인 학대를 가할 수는 있지만 나의 영혼과 신앙은 빼앗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네 육체와 네 몸을 죽이는 자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자들 세상 돈 많은 갑부들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보다 영혼이 더 귀한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합니다. /믿/ 본문은 누구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까? 네 육체와 몸뿐만 아니라 내 영혼까지 지옥에 보낼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할/
▶어느 집에 조상 적부터 섬겨오던 귀신단지가 있었습니다. 벽장 안에 모셔 놓고 아침, 저녁으로 예를 올립니다. 뿐만 아니라 점쟁이 집에서 받아온 부적이 문설주와 안방, 문지방 등 집안 구석구석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던 그 집에 아기가 아프면서 이웃집 권사님이 이 집을 찾아가 기도하며 사랑을 베푸니까 가족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그 집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심방을 오신 목사님이 예배하기 전에 '이 모든 것부터 다 치우고 떼어내자'고 하자, 그 집주인은 부들부들 떨면서 손도 못 대게 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모든 책임을 내가 지고, 모든 화도 내가 받을 터이니 걱정말고 있으라며 손수 귀신단지와 부적들을 모두 떼어서 집 앞 길가에서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아멘!/
본문에 나오는 지옥은 '게안나'인데 심판의 고통을 당하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지옥을 바로 알아야 천국의 귀중함을 알게 됩니다. 지옥은 어떤 곳인가?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 '조지 카레이'는 '성직자들이여 교인들에게 지옥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죄 없는 피를 다 쏟아 죄를 대속하시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목적은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옥 불에 비춰 봐야 십자가의 고마움을 알고 그 뜻을 알게 됩니다. 지옥의 신앙이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도 잘 모릅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인간이 죄짓지 말라고 겁주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성경이 설명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 끔찍한 지옥을 보고 와서 간증합니다.
⑴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입니다. 영원히 꺼지지도 않으며 벌레 한 마리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계20:10절에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한 14-15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고 했습니다.
⑵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일단 지옥 불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가 없고 도망칠 문도 없습니다. 영원히 그 고통을 피할 소망은 없습니다.
⑶끝이 없는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도 영원한 곳이고 지옥도 영원한 곳입니다. 천년만년 후에라도 끝나는 날이 있다면 소망과 기대를 가져볼 수 있지만 지옥의 불은 영원히 계속 되는 것입니다.
흔히 천국이나 지옥은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고 시간 개념도 없는 곳 인줄 아는데 그렇다면 천국이나 지옥은 있으나 마나 입니다. 무 시간상태가 아니라 끝없는 시간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시간을 어디서 보내렵니까?
⑷각계각층의 사람이 뒤섞여 지내는 곳입니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대통령이나 노동자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다 지옥에 들어가 차별 없이 뒤섞여 지내는 곳입니다. 계21: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D, L 무디 목사님은 '만일 지옥이 없다면 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 성경은 다 불태워야 한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예배당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불란서의 무신론자 볼테르는 '기독교가 건설되기까지 수세기가 결렸지만 불란서의 한사람이 50년 안에 기독교를 다 파괴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큰 소리를 치며 무신론에 관한 책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 그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자 온 몸을 흉하게 떨면서 '의사여,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 주시오 그러면 내 보물의 절반을 주겠소'라고 애원했지만, 그 의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6주간도 못 삽니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지옥에 가는데 당신 나와 좀 같이 갑시다.'라고 사정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고, 나는 지옥에 간다'고 고백하면서 죽었답니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지옥을 피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아멘!/ 여러분이 아무리 죄가 많아도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만 믿고 영접하면 누구든지 다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죄가 많아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죄가 적어도 착해 보여도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
▶우리가 이것도 저것도 안될 때 '이판사판'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판은 불교의 교리를 공부하는 승려이고, 사판은 절에서 일하고 재산을 지키는 승려입니다. 이판사판이란 이 두 가지 직, 즉 승려를 의미합니다.
이 말의 유래를 보면 유교가 국교가 되면서 불교가 찬밥 신세가 되고, 심지어 성내에는 중은 들어오지도 못하도록 한 때도 있었습니다. 가장 천한 직, 갈 데와 올 데가 없는 사람의 직업이 된 것입니다.
이조 시대에 중이 된다는 것은 이판사판 즉 갈 데 올 데 없는 사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중을 택하는 사람이란 뜻이 바로 이판사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죽으면 이판사판이 아닙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천국에,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지옥에' /믿으시면 아멘!/
▶29-31절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은 가장 작은 화폐가치의 동전입니다. 참새 한 마리의 가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섬세함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섭리가 있음을 믿는 자가 어떻게 두려워하겠습니까? /아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세 번째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까?
①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②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③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머리칼까지 세신 바 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마6: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본문의 참새 두 마리가 겨우 동전 한 닢에 팔릴 정도로 미물이라고 하지만 참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다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은 친히 모든 것을 아시고 간섭하신다는 뜻입니다.
한 앗사리온에 팔려 가는 두 마리의 참새 중 한 마리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가장 값싼 참새의 생명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성도들의 생명을 보호하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할/
뿐만 아니라 30절에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십니까? 매일 빠지는 머리카락까지도 어떻게 다 계산하고 계실까? 이해가 안 갑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믿/
머리카락은 우리 몸에서 가장 적고 경시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머리카락하나 빠져나갔다고 땅을 치고 우는 사람 보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칼 하나까지도 세밀하게 주관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주관하시지만 가장 작은 것까지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혹 가다가 하나님께서 나 같은 것은 너무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관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 같은 것은 버려졌고 잊어버리셨다고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잊지도 않으십니다.
▶본문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그 하나님이 하물며 너희 일거수일투족 모르는 것이 있겠느냐? 너희 섭섭한 것은 모르는 것이 있겠느냐?' 지금 네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참새보다 귀하니라'는 말씀을 보면, 좀 하나님이 섭섭한 표현을 하신 것같이 생각되지 않습니까? 왜 하필이면 인간의 존재가치를 참새에다 비교하셨을까요?
이왕이면 63B/D 보다 귀하다고 했다든지 평당 1억을 호가한다는 명동 복판의 1만평의 땅 덩이보다 귀하니라했다든지 아니면 달라보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새에 비유한 것은 몇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①둘 다 피조물임을 알아야합니다. 창1:22절에 창조 다섯째 날 공중의 새들을 만드셨고, 27절을 보면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②둘 다 시한부 존재입니다. 물론 참새보다 인간의 수명이 깁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죽는 것은 참새나 인간이나 같습니다.
③둘 다 하나님의 보호로 살아갑니다. 29절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고, 31절에서는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참새 목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인간의 생명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새나 사람이 같은 존재 가치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왜 인간이 참새보다 귀합니까?
①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빗으시고 그 코에 생령을 부어주셨습니다.
②하나님은 예배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귀합니다. 모든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락한 영혼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합니다.
참새가 제 아무리 지능지수가 높아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합니다. 돌고래 얼마나 영리합니까? 원숭이도 재주가 좋습니다. 그러나 예배행위가 없습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왜 이유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영적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소중한 사건입니다. 영적 사건입니다. /믿/
③영생을 얻기 때문에 인간이 귀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삽니다. 참새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니 인간은 영원히 삽니다.
다만 구원을 얻은 사람만 영원히 살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음부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있습니다. 이런 귀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멘!/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핍박과 조롱과 고난을 겪을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2-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①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밝히신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두 번씩이나 반복해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그 아들이신 당신 자신이 '사실상 하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시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내가 시인하면 내 아버지도 시인하실 것이고 내가 부인하면 내 아버지도 부인하실 것'임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주님의 생각과 뜻과 결정에 있어서 완전히 일치하심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반복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는 표현은 성경 곳곳에서 나옵니다.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18:19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18:35절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너희의 아버지'라고 또한 부르셨습니다.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고 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는 은혜입니다. /아멘!/ 예수님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할/
②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바른 신앙의 행위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현재 신앙의 태도가 구원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가게 되면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곧잘 식사 기도를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 식사할 때 기도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떳떳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를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고백입니다.
하기야 수제자인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예수님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입술로 주님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람 앞에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시인하시고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주님을 모른다고 하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모르신다'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우리는 삼십 번, 아니 삼백 번, 삼천 번도 더 부인했는지 모릅니다. 침묵으로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침묵이 금이라고 해서 그러는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해야 될 성도가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행위로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동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두 가지입니다.
⑴우리의 마음으로만 예수 믿고 시인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발 듯이 고백하고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⑵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보자와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14: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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