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55강) 열두 전도 대원! (마 10:5-1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07

(제55강)           열두 전도 대원! (마 10:5-15)

 

  어느 교회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설교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먼저 '어떤 설교를 듣기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첫째는 '축복에 대한 설교'(46%), 둘째는 '상한 심령과 병 고침에 대한 설교'(28%), 셋째는 '전도에 대한 설교'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으로 '어떤 설교를 들을 때 제일 짜증이 납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회개 설교'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죄를 지었으면 지은 대로 그냥 두지 그것을 꼭 지적해야 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전도 설교', '헌금 설교'가 가장 짜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부담되는 설교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첫 번째가 '전도 설교'였습니다. 사람들은 '전도'에 대한 설교를 하면 벌써 졸기부터 합니다. 그러나 부담스러운 설교라도 들을 것은 들어야 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짜증나고 부담되는 것들이 또한 제일 중요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나만 잘 믿으면 되지 남편까지 전도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화를 당한 아내도 있습니다. 그는 혼자서만 살짝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의 회사에 부도가 나자, 남편이 그만 고민 끝에 옷장에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 아내가 남편을 전도를 했더라면 남편이 부도가 났다고 해서 자살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지 못한 남편은 낙심한 나머지 자살하고 만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전도할 걸. 전도했으면 남편이 금식 기도라도 했을 텐데…'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다급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전도가 부담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도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과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일본의 우치무라간조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 전도하는 것은 진정으로 복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라고 하였습니다.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의 소원도 이루어 주십니다.
  막16:15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전파하라'는 것은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전도를 해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내 민족이 살게 됩니다. /믿/ ◀제목 소개!▶

 

  본문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택하여 전도사역을 감당케 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선교사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12제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12제자들은 그 후에 수많은 종들을 파송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①철야 기도하신 후에 그들을 세웠습니다. 그냥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후에 세우셨습니다.
  눅6:12-13절에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오늘날도 교회의 일꾼들을 세울 때 어떤 인간적인 인물이나, 재산이나, 세상 지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믿음과 충성심을 보고, 기도 후에 세웁니다. /믿/
  ②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1절에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우리 모두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벧전1:2절에서는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고, 고전1:2절에서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목사로, 권사로, 여 집사로, 집사로 평신도로 불러주셨습니다.
  대통령이 불러서 장관자리 주면 평생 목숨 바쳐 충성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불러 귀한 직책을 주신 것은 대통령이 주는 어떤 장관직보다 더 큰 직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③불러주신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십니다. 1절에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 권능을 우리 모두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나 권사님, 구역 장에게만 이 권능을 주시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자에게 이 권능을 주셨습니다. /믿/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은 크게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악을 정복하라'이고, 또 하나는 '세상을 자유케 하라'입니다. 세상은 악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 악을 정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우리가 바로 십자가의 군병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미 사탄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기만 하면 사단을 묶고 이 땅에 자유를 줄 수 있습니다. /아멘!/ 본문은 예수께서 12제자들을 세상에 보낼 때 특별한 지침을 주어서 보내셨습니다. 5-6절이 첫 번째 전도지침입니다.

 

  ▶5-6절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제자들은 보냄을 받기 위한 존재입니다. 주님이 곁에 두고 계시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님으로부터 말씀으로 훈련받은 후 이들은 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진정한 의미의 교회란 보냄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모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교회란 진정한 교회는 아닙니다. 모이는 이유는 흩어지고 보냄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삶의 현장으로 내어 보냄을 받는 자들입니다. 거기서 제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할/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 말을 잘못 들으면 이방인들에게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전도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있는 이방 여인에게 개인 전도하신 일이 사 복음서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감람산에서 500여 성도들 앞에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어떤 명령을 주셨습니까?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모든 족속에게 가서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제자들로 하여금 전도할 때에 먼저 할 곳과 나중에 할 곳을 선택하여 전함으로 복음이 멀리 확대되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너희들이 세상 선교하기 전에 이웃전도하기 전에 네 가정부터 전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네 부모와 형제,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들 전도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 가정에서부터입니다.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할 수 있는 곳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빛이 가까운데서 멀리 비춰 가는 모양으로 구원의 복음을 먼저 가정에서 출발하여 이웃, 동족, 이방의 순서로 가야할 것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가족을 버리고 사회란 존재하지 않으며 민족을 버리고서 세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선교원칙을 롬1:16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첫째가 유대인에게 두 번째 헬라인입니다. /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 말씀은 사마리아나 이방인에게는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선 순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15장은 잃어버린 것을 찾은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을 하나 찾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입니다. 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않는 자가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우리 가정 모두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아직 못 믿는 사람이 잃어버린 자입니다.
  사실 전도는 가족 전도처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내 가족 전부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야만 합니다. /믿/


  ▶가족 전도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몇 가지 전도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①기도전도입니다. 아무리 잘난 형도 못난 동생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굳어지고 딱딱한 마음을 녹여 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전도할 때는 일단 기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②행동전도입니다.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가족전도는 어렵습니다.
  ③지속전도입니다. 가족에게 전도하면서 한번 실패했다고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중단 없이 하는 것입니다. 칠전팔기의 정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가족 전도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행동하고 인내로 참고 그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 엘머 타운즈 박사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처음에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유형별로 연구했습니다. '친구나 친지를 통해서 나오게 된 사람'(86%)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조직적 복음전도를 통해서 나오게 된 사람'(6%), '목회자를 통해서 나오게 된 사람'(6%), '광고를 통해서 나오게 된 사람'(2%) 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친구나 친지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할/

 

  ▶7절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복음의 핵심은 천국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출세입니까? 명예, 재산, 부귀영화, 건강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순간적인 것이요, 찰나적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는 순간의 문제가 아니고 영원의 문제입니다. 지상의 문제가 아니요 천국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입니다.
  인생을 가리켜 안개와 같다고 합니다. 아침 안개는 아무리 자욱히 내렸어도 햇빛만 뜨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또 인생을 가리켜 그림자라고 합니다. 그림자는 햇빛만 없으면 사라집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입니다. 최근에 정치 경제, 사회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노동자가 총 파업을 해서 생산성이 멈추고 수출이 막히고 그래서 경제가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건도 십 년, 이십 년이 지나고 나면 다 역사에 묻힐 것입니다.
  지금 나의 심각한 문제도 10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리고 70-80년 살면 땅에 묻히고 마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없어지고 썩어질 것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것, 천국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제일성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이고, 세례요한의 복음의 제일성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할/
  여기서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은, ⑴예수님이 지금 여기 오셨고,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가까이 계신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건만 그들은 참 메시아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⑵여러분들의 생명이 멀지 않았다는 경각심입니다. 빨리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⑶예수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까?/

 

  ▶8절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이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다섯 가지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⑴고치라! 병든 자를 고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병마가 떠나갑니다. 약5:15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⑵살리라! 죽은 자를 살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립니까? 여기서 살리라는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심어주어 거듭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⑶깨끗케 하라!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문둥이입니까? 죄인들이 바로 문둥이입니다. 영적인 문둥이입니다. 성경에 보면 죄와 문둥병은 동일시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문둥병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이들은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죄에서부터 놓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줍시다. /할/
  ⑷쫓아내라! 귀신을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지금 성도의 싸움은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지금도 귀신 들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이름 앞에 벌벌 떱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묶으십시다. 그리하면 한길로 왔으나 일곱 길로 혼비백산하여 쫓김을 받고 떠나갑니다. /아멘!/
  ⑸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도 거저 받았고, 구원도 공짜로 받았습니다. 또 은사도, 능력도, 하나님이 공짜로 주셨습니다. 누가 돈주고,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선물이요, 구원도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도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거저 주어야 합니다. /아멘!/
  우리들에게 줄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누군가에게 그냥 줄 것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줄 것이 없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줄 것이 있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얼마나 쌓아 놓았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주느냐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주님의 복음입니다. 이것은 정말 거저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들여가면서라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거저 줄 것이 무엇입니까? '평안과 사랑과 용서와 이해' 우리들이 거저 주어야 할 것들입니다. 사랑과 용서, 화해와 이해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음입니다. 사실 사람들을 정말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돈이 드는 것들이 아닙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그래서 행복을 주는 것들은 돈이 들지 않는 마음입니다. /할/
  왜 거저 주어야 합니까?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값없이 받았습니다. 사랑도 용서도 거저 받았습니다. 그것을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우리가 당연히 거저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을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⑴복음은 그 가치가 너무 커서 값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⑵복음은 내 노력으로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⑶복음은 내가 똑똑하고 잘났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⑷복음은 돈이나 대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대의 모든 것에 대가를 치르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은 계산되고, 돈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돈의 가치를 뛰어넘는 것이 신앙의 가치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항상 빚진 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는 돈 받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거저 일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믿/
  8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지금 여기 네 마음속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나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라는 사실을 전파'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 왔는데 너희가 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자녀가 된다.'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분은 문둥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신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끊임없이 그런 일들이 번복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누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까? 현대 과학이나, 의학이 최고도로 발달은 했다고 해도 생명 살리는 일은 못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믿/
  그렇다면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이시라면 우리를 구원하시고도 남을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자라는 뜻입니다.
  8절은 다른 각도에서 한번 조명해 보겠습니다. 전도자의 입장에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쫓아내되'의 '내되'라는 말은 '쫓아내라'는 말입니다. 명령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택하시고 부르셨으면 이미 그러한 권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12제자들에게 주시고 초대교회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셨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에 당시에 하나님께서 김익두 목사에게 신유의 은사와 권능을 주셔서 가지가지의 기사와 이적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또 최권능목사님께서는 말씀에 권세를 주셔서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쳤더니만 무수한 사람들이 꼬꾸라져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이 모든 능력은 주의 종들에게만 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었습니다. 이 권능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

 

  ▶9-10절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먼저 9절을 보겠습니다. 여기 '전대'는 돈주머니를 말하고 '금, 은, 동'은 돈주머니에 '큰돈이나 적은 돈이나' 이런 뜻입니다. 전도할 때 허리춤에 전대, 즉 돈주머니를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전도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돈으로 되지 않으며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돈을 쓰지만 돈을 의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하나님은 합당한 사람들을 준비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 제자들의 사역을 돕게 하셨습니다.
  엘리사를 도운 수넴여인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질로 섬긴 사람들입니다.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직접 복음을 들고 나가는 것일 수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제자로서의 삶의 또 하나의 방편은 물질로 복음 사역을 돕는 것입니다. 열심히 돈을 벌고 그것으로 주의 일에 드려진다면 합당한 자로 여겨질 것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들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41).
  그렇습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그 집에 갈 때, 적은 정성을 선물로 주면 안준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그런 선물에 의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3:6절은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할 때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 바로 이것이 전도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것', 예수의 이름 자체가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전도하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교도소에 전도하러 가면서 처음에는 먹을 것을 많이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재소자들이 복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기다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 전략을 바꾸어서 좀 섭섭하더라도 가능하면 먹을 것을 안 가져갔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복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기도하고 성경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돈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 가지고 전도하면 결국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10절은 전도할 때 전도자가 자기의 생활을 염려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옷, 신, 지팡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러니까 의식주 문제를 맡기라고 했습니다. 여기 '일꾼'은 '노동자'를 뜻합니다.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은 삯, 보상을 받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축복 받을 일을 해야 축복을 받고, 사랑 받을 일을 해야 사랑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25장에 달란트 비유에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멘!/
  딤전5:18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한 것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하는 소를 굶겨서 죽이겠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소는 일하게 하고, 빈둥빈둥 놀고 먹는 소는 잡아서 잔치에 사용합니다. 하나님 앞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일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할/
  그렇습니다. 일꾼이 저 먹는 것, 받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주의 종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면 교회성도들이 내는 헌금에서 생활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전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필요한 모든 것은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시는데 까마귀를 시켜서 떡과 고기를 먹였습니다. 그 다음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말라갈 때 사르밧으로 가 가난하기 그지없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3년 6개월을 먹였습니다.

 

  ▶11절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이 말씀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신세지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아무 집이나 좋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내가 전도하러 왔으니 나를 믿으시오, 잠도 재워주고, 돈도 주시오'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도하러 어떤 성이나 촌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동역 자를 만나라는 뜻입니다.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 반드시 있다. 준비시켜 놓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먼저 만나라'는 메시지입니다.
  여기 '합당한 사람'이란 원어적인 뜻은 '헌신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대에 보내면서 개인전도를 시키지 않고 둘씩 짝을 지어 보냈습니다. 동역 자가 귀한 것입니다. 본문은 '합당한 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라, 누가 나의 영적인 동역 자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눈에 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집을 찾으면 떠날 때까지 거기서 머물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때로는 가난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형편이 넉넉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 집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편하지 않더라도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필요와 이해에 따라 쉽게 거처와 일터를 자주 옮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일수록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자기의 편리만을 추구합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합당한 집들이 있습니다. 행16:14절에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여기 루디아의 집은 바울이 빌립보 성을 전도 때 거처했던 곳이고, 데살로니가의 야손의 집, 고린도의 가이오의 집이 바울의 전도사역에 함께 동참했던 동역 자들입니다. /할/

 

  ▶12절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예수님의 전도 전략 중의 핵심이 바로 합당한 자의 집에 들어가 평안을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헌신한 자에게 보답할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평안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평안은 살롬이라는 단어인데 이 살롬은 세상에서 말하는 땅의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다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돈은 많이 가져보십시오,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물질을 많이 소유해 보십시오,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돈이나 물질이 주는 것은 세상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요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축복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가난해도 얻을 수 있는 평안입니다. 빰을 맞고 코피를 흘리면서도 조용히 가질 수 있는 내적인 평안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은 평안입니다.
  이 평화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우리 모두 받으시기 바랍니다. /할/

 

  ▶13절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평안은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는 임하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평화가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평화가 임할 것이요, 평화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평화가 다시 튀어나올 것입니다.
  롬5: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예수님을 만나야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자가 자기에게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14절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예수 안 믿어도 축복해 주어야 할 텐데 안 믿는 사람에게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침 뱉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아주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습관으로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말은 이방인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이방인들의 먼저까지도 부정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여행을 갔다가 이방에서 돌아올 때는 발의 먼지를 다 떨고 왔다고 합니다.
  특별한 선민의식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 길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대상은 유대인입니다. '당신이 비록 유대인이라도 복음을 거절하면 이방인에게 하는 것 같은 무시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에 대하여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도시입니다. 저주와 심판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소돔과 고모라가 받는 것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도덕적인 타락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 타락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도덕적인 타락자 보다 더 큰 심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심판입니다. 심판은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합니다. 왜? 자기가 지옥 갈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놀라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 없이 도적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깨어 기도하고 전도하라고 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아들 장례식 때도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목사님이 그것을 보고 오늘만은 참으라고 말리니까 '내 아들은 죽어서 지금 천국으로 갔는데 예수를 모르는 저 사람들은 지금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되겠느냐?'며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을 보고 '마치 열차가 달려오는데 철도 위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 같다.'고 통탄을 하더랍니다. 이런 복음의 열정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아멘!/
  어느 교회에 나 홀로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만 조용히 믿으면 되지 남편과 자식까지 전도할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하고서, 혼자서만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설교 말씀을 들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실히 깨닫고 성령의 능력과 권능을 충만히 받고 난 뒤에는 정신이 번쩍 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교회에 구원이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이 있다면, 나 혼자만 교회에 나가서야 되겠는가? 왜 나 혼자만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가?' 그래서 먼저 아이들을 전도하고 남편에게도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거부할 줄 알았던 남편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주일부터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고, 집집마다 다니며 전도하기에 힘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하면 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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