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78강) 누룩에 대한 경고! (마 16:1-1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25

(제78강)      누룩에 대한 경고! (마 16:1-12)

 

  어떤 청년이 년 초에 결심을 했답니다. 금년 새해부터는 '매일 15장씩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15장씩 성경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하루에 매일 15장씩 읽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 성경을 1시간 이상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과하게 목표를 세운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하루에 5장씩은 꼭 읽겠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5장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지나고 나니 그것도 지루해졌습니다. 그래서 한 장으로 줄였습니다. 그것도 세월이 지나고 나니 시들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제는 더 이상 결심을 변하지 않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 성경을 펴겠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말씀을 짚겠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그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 성경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마27:5절이 나왔습니다. '그가 스스로 물러가 목메어 죽으니라' 누구 이야기입니까? 스승을 배신한 가롯 유다에 이야기입니다. 깜짝 놀란 그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좋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늘 자살하라고 그러시겠느냐? 하나님!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시 펼쳤습니다.
  이번에는 눅10:37절이 나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러자 그 청년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뽑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다시 성경을 펼치고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이번에는 요2:5절이 보였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래서 그 청년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처음 약속대로 지켰답니다. /믿거나 말거나/할/ ◀제목 소개!▶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1-4절은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 그리고 5-12절은 '누룩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누룩에 대한 경고를 하시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여기 '예수를 시험하여'는 '조사하다, 입증하다, 유혹하다'라는 뜻으로, 이것은 사단이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했던 말과 같은 말입니다(4:1).
  바리세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좀 더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들의 기존 신앙 체계만 고집하는 선입관을 가졌던 동시에, 예수를 무조건 음해 하려는 저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12:38절 이하에서도 역시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약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또 표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굉장히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1:22절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열광적인 종교성이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표적을 좋아하고, 헬라인은 철학적인 민족이기 때문에 지혜를 아주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은 성경에 기록된 표적만도 37가지나 됩니다. 요21:25절을 보세요!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무슨 말씀인가? 요한은 예수님의 행하신 것을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베풀어 주셨는데 이들은 또 다른 표적을 예수님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써 오늘 표적을 보이시기를 청하니' 지금까지 예수님은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병이어 12바구니, 칠 병이어 7광주리' 그리고 소경의 눈을 고쳐주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귀머거리의 귀를 듣게 해 주시는 등,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셨고, 바다의 풍랑은 잔잔케 하는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과 사도개인들에 또 다시 하늘로부터 오늘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이 표적을 요구한 것은 '당신을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하는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대표적인 세 인물들에게 표적을 주셨습니다.
  먼저 모세를 통하여 '반석에서 생수를, 또 홍해를 가르고, 또한 바로 앞에 가서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를 보낸 증거입니다.
  또한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야입니다. 왕상 18장의 그 유명한 호렙산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싸우고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제단을 살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낸 증거입니다.
  또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목전에서 하나님께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해와 달이 머무르기를 간구했습니다. 왜냐하면 해가 지면 아모리 사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했을 때, 태양과 달이 머물렀던 사건이 여호수아10: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누가 봐도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구체적인 증거로 위의 사람들에게 보여준 또 다른 표적을 예수님께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그 동기가 불순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고소의 조건을 찾기 위하여 이처럼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12장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왔었는데 본문에서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왔습니다. 이들은 연구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는 양대 종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그들은 정반대의 신앙의 노선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 이념 속에서도 공공연하게 대립관계입니다.

 

  ▶먼저 이들의 신앙노선을 살펴봐야 합니다.
  ①바리새인들은 종교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엄격하고 철저했으며 아주 보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의 규범으로서 장로들의 구전과 서기관들에 의한 세밀한 율법조항들을 내세워 그에 따른 철저한 신앙을 가졌고, 또 천사숭배나 영물을 믿었으며, 육체의 부활도 믿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철두철미하게 지켰고 소득의 11조를 내며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구전이나 천사나 영이나 부활이나 율법의 세목 등은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모세 오경'만을 믿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들이고 합리주의자들이며 세속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그 동안 이들은 예수님을 끊임없이 찾아왔었지만,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꺾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입니다.
  또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기 위해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손을 잡을 수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은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진보적인 집단이고, 반면에 바리새인은 보수적인 집단입니다. 이들은 어떤 면에서도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경멸하고 반목하는 사이였는데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하기 위해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할 때 요구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천박하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론으로, 성경 적인 근거를 가지고 세련되고 지성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행했던 모든 기적과 능력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행한 것은 이방인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최면이나 마술을 통해 온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예수께 이런 것말고 진짜 하늘로서 오는 기적을 보여달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반대로 사두개인들의 입장은 더 재미있습니다. 이들은 기적과 성령과 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없다. 그러니 예수는 이 표적을 보여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만난 것입니다.
  ②정치에 대한 두 종파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정치에는 그리 큰 관심은 없었고, 종교적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파는 그 구성원이 그 사회의 기득권 층으로 부유한 귀족계층이었으며 자신들의 재산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존 정부와 그 노선을 지지하고 그들과 야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당시 로마 정부를 섬기며 협력하는 이기적인 세력입니다.
  이렇게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려고 응모할 때는 서로 연합을 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은 서로 원수지간이었지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일에는 뜻이 맞아 상호협조를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산헤드린'이란 말이 나오고 그냥 '공회원'이라고 하는데 바로 '산헤드린 공회원'은 대부분이 바로 사두개파입니다. 그 나라의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모이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그를 공모했고, 재판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의 법에 보면 '만장일치는 무효다'라는 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절대 다수가 찬성을 한다 해도 한 두 사람의 반대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찬성했다는 말은 권력으로 억압했던지 독재를 했던지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진정한 의미의 만장일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만장일치로 통화시켰습니다. 자기들이 정해놓은 법을 어긴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악한 세력들은 저희들끼리 싸우다가도 의인을 핍박하고 주님의 교회를 핍박할 때는 두말없이 연합하고 합칩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원수지간이지만 예수님을 음모하고 죽이려고 하는 데는 뜻이 하나가 되어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 번 말씀드립니다. 사두개파들의 신학과 신앙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는 집단입니다. 그들은 기적과 성령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예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이런 악의에 찬 도전 앞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2-3절을 보겠습니다.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무슨 말씀인가? '너희들이 자연의 이치를 잘 깨달아 농사를 어떻게 짓는 줄도 알고 있으며, 바다의 고기를 어떻게 잡는 줄도 알고 있으며, 배를 항해할 때 바람을 이용하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종교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해 전문가라고 자청하는 너희들이 놀랍게도 하나님에 대해 너무 무식함으로 그들의 무식함을 지적한 것'입니다. /할/
  사실 이 말씀은 당시 그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너희가 세상일에는 그렇게 밝으면서, 돈 버는 일에는 그렇게 눈이 밝으면서, 영적인 일에는 그렇게 무지하고 무관심 하느냐?'는 책망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들처럼 천기 즉, 기상변화를 과학적으로는 예측할 수는 없었으나.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내일은 날이 맑을 것임을 알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그 날은 좋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속담 가운데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항해 자들은 기뻐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항해 자들은 조심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연의 이치를 잘 체득했던 것입니다. 농사를 어떻게 짓는 줄 알았으며, 고기는 어떻게 잡는 줄을 알았으며, 항해를 어떻게 하는 줄도 알았습니다.
  그들은 삶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라고 자칭하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신앙을 독점했다는 그 사람들이 놀랍게도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할/
  시대의 표적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말은 구약의 약속한 그리스도가 메시아로 오신 표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임한 것과 구원에 때가 임한 것을 보여 주는 시대의 표징입니다.
  '메시아가 올 때는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봉사가 눈을 뜨며 여러 가지 기적과 이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메시아가 올 때의 이런 모든 시대적인 징조들은 구약에서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대로 창조주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찾아오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취시고 진리의 빛을 비취시고 있는데 그들은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 '누구나 오라'고 부르는 시대인데 그들은 그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시험이나 하고 또 하늘에서 오는 표적이나 요구하는 무지한 종교지도자들은 지금 책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도 그때나 비슷합니다. 현대인들은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모든 분야에서 다 전문가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세상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밝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통찰력은 무지합니다. 이 일에 우리가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한 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고민하고, 땀 흘리며 괴로워하는 몸부림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멘!/

 

  ▶4절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꾸짖고 있습니다. 여기 '약하다'는 말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입니다. 또 '음란하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육적인 음란과 영적으로 음란'이 있습니다.
  영적인 음란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들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자기 신랑만을 사랑하고 신랑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신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 신랑이외 다른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이고, 아세라 목상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우상들을 섬김으로 저들은 신앙의 정조를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면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습니다. 그러시면서 너희들이 표적을 요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도,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니고, 하늘로부터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들과 불 마차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라,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할/
  요나의 표적이란 구약의 선지자들로 예언된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이미 구약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성경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거나 고난과 시험이 을 때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세 번 시험을 받으실 때도 성경말씀을 인용하셨고, 수많은 기적을 베풀었지만 결정적일 때에는 말씀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위기 앞에 섰을 때에도 주님은 말씀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요나의 표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십자가의 표적입니다. 기적 중에 기적은 십자가입니다. 능력 중에 능력은 십자가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말미암아 기적은 나의 영혼을 구원하는 기적입니다. /아멘!/
  마12:39-40절을 읽어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요나의 사건에 많은 의미가 있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한 가지만 택해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즉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삼일을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 동안 땅에 묻히시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이것이 표적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치료입니다. 십자가는 화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창에 찔리시고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죽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것은 세계적인 승리의 개선가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할/
  '저희를 떠나가시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서 예수님은 떠나가시고 말았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들은 '이제 구제 받는 길도, 구원받은 길도' 절망적인 상태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5-7절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쌔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여기 떡이 나오고 누룩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떡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고, 예수님은 누룩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떡은 육적인 것이요, 누룩은 영적인 진리입니다. 조금 전에 바리새인들에게도 영적인 무지를 보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에게서도 영적인 무지를 보고 계십니다. 오직 제자들은 먹는 떡에 대한 관심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온통 떡뿐입니다. 돈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도 그 어떤 일의 가치를 논하기 전에 '얼마 준대, 얼마나 남는 거야'로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 누구 집은 몇 평이고, 현 시가가 얼마짜리고 온통 그런 것이 더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롬14: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할/ 
  최초의 범죄가 무엇입니까? 먹는 것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있음에도 먹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의 깨버립니다. 그리고 그 과일 하나 따먹고는 죽음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우리 주님의 사역의 처음과 마지막 모습을 살펴봅시다. 주님의 첫 등장은 굶주리시는 주님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마4:2).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사역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말씀 중 하나가 목마름입니다(요19:28). 주님은 먹고 마시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뛰어넘으시면서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통 먹는 떡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제자들에게 누룩의 비유를 또 들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여기서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 그들의 가르침, 그들의 가치관을 왜 누룩이라고 하셨을까요?
  누룩의 의미는 13장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것이 가루 속에 들어가서 서서히 눈에 보이지 않게 활동을 하면 반죽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누룩의 특징은 누룩이 들어간 가루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고전5:6절에서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또한 갈5:9절에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할/
  이 누룩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는 13장처럼 천국의 비유에서 긍정적인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경 전체에서 죄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로 주님이 사용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어리석음이고, 또 하나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영적 교훈을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께서 다시 설명해 주셔서 깨달았다는 것(8-11)입니다.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지금 영의 눈이 어두워진 재자들은 예수께서 가르친 교훈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실수로 빚어진 현상적인 문제에 집착하여 떡이 없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5-11절까지를 보면 영적인 무지가 어떻게 오는가를 몇 가지 측면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①영적인 무지는 떡을 너무 깊이 생각하는데서 옵니다(7). 우리는 떡을 물질로 생각합니다. 물질은 중요합니다. 하루 세끼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떡을 얻는 일에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떡만을 위해 물질만을 위해 살 때는 영적인 어두움에 빠지게 됩니다. 먹은 것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은 오늘 밥을 먹고 나면 '내일은 무엇을 먹을까'를 염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관심은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린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여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란 '잘못된 진리, 잘못된 교훈'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가득 찬 생각은 빵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진리와 교훈을 가진 사람들의 위험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누룩은 무엇을 뜻합니까? 한마디로 '그들의 부패된 신앙과 행위를 의미'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형식과 독선과 자기 아집에 빠져있는 잘못된 전통주의적 신앙과 위선적 신앙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것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두개인의 누룩은 '현세의 영화와 부귀를 추구하는 현실 타협적인 합리주의 신앙과 세속주의적인 신앙'을 의미입니다.
  여기 예수님은 '누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누룩은 부정하고 해롭고 악한 영향력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룩은 가루 서 말속에 들어가면 그것을 전부 부풀게 하는 것처럼 이 악한 영향력이 사람들 속에 들어가면 그 세대 전부가 악하고 음란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조심하라는 말 앞에 '삼가'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두 번 강조하는 의미이며, 계속적으로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은 떡의 문제만 집착했을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②영적 어두움과 영적인 무지 속에 헤매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한데서 옵니다.

  ▶8절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이들이 떡 문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이 생각나고 물질이 생각납니다.
  마13:58절을 보면 예수님이 고향에서 기적을 베풀지 않을 까닭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자랐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자 예수님은 고향에서는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또 마8:23절 이하에 보면, 제자들이 바다에서 광풍을 만났을 때 그들은 방황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제자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일어나 광풍을 잠잠케 하시고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환경이 무서워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광풍이 무섭고 죽음이 두려워진 것입니다.
  또 마14장을 보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베드로가 '나를 물 위로 걸어 오라 명하소서!' 예수님이 '오라'고 하시니 베드로가 당당하게 물 위로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파도를 보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순간 물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를 건져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영적인 세계가 느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유는 의심 때문입니다. 의심은 사탄으로부터 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만 하나님은 보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을 닫아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믿음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적인 지혜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추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물질 중심의 사고를 질타(叱咤)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도록 인도하시려는 주님의 의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할/


  ③우리가 영적인 무지에 빠지게 되는 세 번째 이유는 9-10절입니다.

  ▶9-10절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치 못하느냐"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여기 깨달음이란 이성적 깨달음 또는 지적인 깨달음을 가리킨 말로, 이는 곧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베푸신 교훈과 각종 이적을 접하고서도 아직 이성적 지식으로 완전히 수납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영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직접 본 제자들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망각에서 오는 영적 무지를 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도 지금도 하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4천 년 전에 하나님의 기적은 지금도 기억하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유월절 행사를 잘 지키면서도 그 어린양이 예수님인지를 모르고 지키고 있습니다. 엄청남 영적인 무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이 많은 기적과 이적을 체험했으면서도 그 사건들은 쉽게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홍해를 건넜던 그들이 이번에는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망각은 영적인 무지로 인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끝까지 간직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④깨닫지 못하는데서 오는 영적인 무지입니다.

  ▶11-12절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거듭해서 제자들의 잘못된 인식과 무지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이미 주어진 수많은 증거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인위적인 표적만을 구했기 때문에 그들의 '교훈'을 질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사와 이적을 믿지 않는 바로 그러한 불 신앙적 태도에 두 급식 사건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다시 기억하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할/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여러분, 이 말씀이 없었다면 얼마나 큰 비극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의 신앙의 분기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역시 제자들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할/
  신앙은 말씀을 바로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잘못된 그 자체보다 더 잘못된 것은 잘못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깨달으면 은혜가 됩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하게 됩니다. 그러나 죄를 끝까지 고집하면 결국 심판에 걸리고 맙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영적인 무지가 어디서 왔습니까?
  ⑴떡을 너무 깊이 생각했습니다.
  ⑵믿음이 없는데서 옵니다.
  ⑶망각에서 옵니다.
  ⑷깨닫지 못하는데서 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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