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109강)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들!② (마 24:15-2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47

(제109강)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들!② (마 24:15-28)

 

  마24-25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 위에 앉으셔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본 장은 세상 마지막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종말 장'이라고도 하고, '작은 계시록'이라고도 하고, 또 이 말씀을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하셨기에 '감람산의 강화'라고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보니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예루살렘이 굉장하게 비쳤습니다. 그 화려한 성전과 견고한 성곽에 매혹 당하고 그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예수님께 '이 성전을 보십시오, 굉장하지 않습니까?' 하면서 자랑을 합니다. 이 자랑 속에는 '이만하면 메시아의 나라가 될 만하지 않습니까? 메시아 왕국의 수도가 될 만하지 않습니까?' 이런 의도가 깊게 깔려 있었습니다. /할/
  제자들은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셔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그 시각까지 줄기차게 해 온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언제 당신의 나라가 임하십니까?' '그 날이 언제고 그때가 언제입니까? 지금입니까? 아침입니까? 저녁입니까? 내일입니까?'
  예수님의 제자 된 자로써 품을 수 있는 당연한 궁금증입니다. 성전은 화려하고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에 마땅한 장소라고 생각하고 또 다시 묻습니다.
  3절에서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 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큰 기대를 하고 물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절망적인 대답입니다. 그 화려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앞으로 재난이 있고, 핍박이 있고, 환란이 오고, 전쟁이 있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의 멸망이라고 하는 사건을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해서 역사의 끝에 있을 종말론적인 심판의 시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저 멀리 제상 끝을 바라보시고 본문의 말씀들을 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종말의 때와 징조가 궁금합니다. /할/


  ▶제자의 질문을 보면 대체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느 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요새도 심판이 어느 때에 있을지 궁금해하고 또 그릇되게 생각하여 사회전방에 문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세상 끝 날의 징조가 무엇입니까? 즉 세상 끝 날이 온다면 바로 그 끝 날의 징조는 어떻게 나타나는 것이냐? 다소 기회주의적인 질문 같습니다.
  그저 적당히 살다가 그 징조가 보이면 그때부터 열심히 믿겠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자꾸 시험 보는 날짜를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실컷 놀다가 시험 볼 때에 가거나 벼락치기 시험 보는 날짜를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실컷 놀다가 시험 볼 때에 가서나 벼락치기 공부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뭐 하려고 예수를 젊어서부터 믿습니까? 세상 좀 즐기다가 죽기 전에야 믿어야지!' 이런 사람들에게 꼭 해줄 말이 있습니다. '당신 언제 죽을지 압니까?'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째든 우리는 말세에 대하여 잘 준비해야 합니다. 일찍이 DL무디 목사는 '예수님께서 초림 하신다는 예언이 성취된 것은 앞으로 다시 세상에 재림하신다는 것을 이루어짐을 확실히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대조하여 볼 때 초림 예수님은 '농부가 농사를 지으러 온 것'과 같이 '네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시고 죄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 예수님은 추수하러 오신 분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잘라 놓습니다. /할/
  ▶말세에 대한 징조에 대하여 우리 성도라면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세란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 기간 중에 우리는 한밤을 보낼 때 '초저녁, 밤중, 새벽녘'으로 분별하듯, 이 시대가 주님이 오실 새벽녘입니다.
  사실 본24-25장은 참으로 해석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 시켜 왔고, 따라서 이단들이 교훈한 해석으로 인하여 교계가 혼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벧후1:20절에서 당부하기를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역사적으로, 영적으로, 신학적으로, 교훈적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할/

 

  ▶15-16절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본문의 말씀은 역사적인 사건을 인용한 예언입니다. 여기 '그러므로'는 앞에서 말한 '1-14절까지와 같은 복잡한 문제들이 있으므로'란 의미로 보면 이해가 쉽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지만 한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⑴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4-5, 11-1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많은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 자신이 자칭 그리스도라 말하기도 하고, 혹은 사람들을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드려 사람들을 진리의 곁길로 가도록 미혹할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만물이 처음 창조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의 약속을 잊게 하여' 육신의 정욕, 세상의 자랑을 좇아 살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벧후 3:2-3). 그러나 분명히 '주의 강림의 날이 도적과 같이 오리니 그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0,12)고 하시며, 거짓 교사들의 교훈에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할 것과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종말에 대하여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의 때에 대하여 자주 언급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 마24장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종말과 자신의 재림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때에 대하여는 말씀하시지 않고 징조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입니다(마24:36,42-44).
  거짓 교사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항상 배워야한다고 강조하지만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다만 자신들의 탐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거짓 교훈을 가지고 사람들을 농락할 뿐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 보다 자신의 지은 말을 강조합니다. ㈁돈을 위하여 복음을 이용합니다. ㈂도덕적으로 건전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혹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⑵삼가 두려워 말라(6-12). 사람들은 미래에 다가올 환란의 충격에 불안 해 합니다. 그러나 종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고 있는 자들에게 종말에 관한 말씀이야말로 소망과 평안과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24장을 주신 것은 성도들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갖게 하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완전히 폐하시고 성도들로 생명과 영원히 썩지 아니함을 입게 됨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성도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불러모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영생의 부활과 함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집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아 홍수 때에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홍수를 내리실 때에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 하셨던 것과 같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재가 되게 하실 때에 무법하고 음란한 자들과 함께 롯의 가정을 멸하지 아니하셨던 것과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성령으로 인 치신 자들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불러내실 것입니다(딤후 2:19).
  그리고 이때 이후로 예수님께서 구원 얻은 성도들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산 소망을 우리에게 안겨 주시려고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에 관한 말씀은 이 땅의 성도들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평안과 기쁨의 말씀입니다. /믿/아멘!/
  ⑶깨어 있으라(13-14). 종말 신앙을 가진 성도는 거룩한 생활을 늘 사모합니다. 거룩한 생활로 늘 깨어 있는 자입니다. 현재의 삶에서 늘 정직과 진실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스런 소망에 붙들려 생활하는 자입니다.
  '종말의 때에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종말의 신앙을 가진 자는 불법과 외식을 멀리합니다. 속임과 거짓과 방종을 멀리합니다. 선한 일을 힘쓸 뿐 아니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려 합니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범사에 유익한 경건, 즉 금생과 내생의 축복이 약속된 경건에 이르기를 힘씁니다. 경건의 생활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한 말씀을 성도들을 위한 경계의 목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의 때까지 성도들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지킬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분노와 다툼을 멀리하고 우리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힘써야겠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그리고 본 절에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는 단9:27, 11:31, 12:11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은 단11:31, 12:11절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그 내용들은 여호와께 경배와 관련된 말씀으로 '제사를 폐하고 우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즉 '성전을 더럽혔다'는 말입니다. 특히 구약적 관점에서 '가증한 것'은 여호와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신성 모독과 연관이 됩니다.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 것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밝힌 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설 때가 있었습니다.
  주전 175년-164년 사이에 수리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정신 나간 왕이 있었는데 그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와서 유대인을 멸절시키고 헬라 종교와 관습을 도입시키겠다고 장담하고 예루살렘을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또 할례도 받지 못하게 했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예언처럼 하나님의 성전에다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라고 했습니다.
  당시 독수리 상을 만들어 놓고 또 올림픽의 신인 제우스의 제단을 만들어 놓고 돼지를 잡아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들의 방과 성전 안에 작은 방들을 창기들을 불러다가 음탕한 짓을 했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유대의 영웅 마카비가 들고일어나서 나라를 구하고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다니엘의 예언을 상기시키면서 170년 전에 일어났던 그 무서운 사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예루살렘에서 다시 일어날 것을 아시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침공이었습니다. 당시 목격자로써 역사가였던 요세푸스에 의하면 디도 장군의 예루살렘 침공으로 인하여 그 성내는 무자비한 불법과 기근이 엄습했으며 굶어죽는 사람을 매장하려해도 힘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무정부상태였고, 디도장군이 최후에 공격시에는 약 백만이 목숨을 잃었고, 로마 군이 어느 집에 들어갔을 때에 자기 자식을 잡아서 불에 구워 먹다가 반쯤 남은 것을 로마 군에게 내어놓자 그들이 오히려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로마 군이 벽장문을 열 때에 굶어 죽은 사람의 시체가 가득한 것을 보고 어떤 물건에도 손 하나 대지 못하고 뛰어 나갔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때의 참상은 가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로마 디도장군의 침공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본문 16절 이하의 말씀은 당시의 상황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당시 로마 군이 침략 소식이 있자 그들은 산으로 도망하기는커녕 예루살렘 성이 견고하다고 하여 사방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몰려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상주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기근이 있게 되었고, 그토록 많은 사람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산으로 도망가라고 했습니까?' 역사가 흘러간 다음에야 사람들은 그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열심당원이라 불리는 유대교 광신자들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고 특별히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가서 피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환난이 닥치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막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110만 이상 죽었고, 잡혀간 사랑이 9만 7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그때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지 않고 산으로 갔습니다. 왜? 주님이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산에는 많은 은신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은 '펠라'라고 불리는 '베레아' 지방의 산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는 숨기에 적당한 돌로 된 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떤 광신자들은 말세에 거기에 가야 산다고 해서 피난처를 바로 '펠라'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산에다가 식량, 의류 등 생필품을 저장해 두고 마지막 종말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답니다.
  그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신 말씀은 산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도망가지 않고 다 산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주후 70년에 그랬던 것처럼 주님 재림 직전에 일어날 대 환란 때에도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그 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계룡산을 간다고 사는 것도 아니고 삼각산에 간다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꼭 '펠라'라고 하는 곳에 간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반석이시오, 요새이시오, 환난 날에 피할 큰 산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산입니다. /믿/
  본문에 '읽은 자는 깨달은 진저' 왜 이 말씀을 괄호 안에 넣었을까요? 이 괄호 안에 넣은 이유는 너무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긴박한 사건을 앞에 둔 예수님의 특별 당부이기 때문에 괄호 안에 넣었습니다.
  이 말씀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귀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들어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거룩하게 살아야 할 선택받은 그들이 우상과 세상에 짝하며 살아가므로 그들의 형벌과 이스라엘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성전부터 먼저 파괴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의 구약시대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심판과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이 우주와 역사의 종말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의 원리입니다. /할/

 

  ▶17-18절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적인 말씀입니다. 유대인의 집은 우리나라의 '스라브' 집과 비슷합니다. 난간을 만들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되어 있고, 그 지붕 위에다 곡식도 널고, 밧세바는 목욕을 지붕 위에서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유대나라 지붕은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행10).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후퇴하지 말고 더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롯의 처는 소돔 성을 나아갈 때에 천사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으나 그가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붕만큼 올라간 신앙'을 잘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생활을 하다가 세상 염려와 근심 때문에 내려가는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 신앙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는 올라갈 것입니다. /아멘!/
  눅9: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성도가 세상을 바라보고 명예와 재물만을 바라보면 신앙의 달음박질을 못합니다. 그것들은 다 뒤에 두고 푯대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만 향하여 달음박질을 해야 합니다. /믿/아멘!/
  그 다음에 밭은 성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마13:19). 성도의 마음은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마13: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 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그 옥토된 밭이 세상 부귀영화 바라보다가는 큰일납니다.
  여기 겉옷은 유대인들의 평상복으로써 이불도 되고 옷도 됩니다. 그래서 재산 목록의 제 1호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의를 서로 가지려고 제비를 뽑고 야단들이었습니다. 본문의 문학적인 해석은 '밭머리에 겉옷을 벗어두고 밭을 갈다가 환난의 소식이 들려오거든 밭머리에 있는 겉옷 가지러 가지말고 그냥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더 깊은 영적인 뜻은 세상 적인 것, 육신 적인 것을 생명을 위해서 과감하게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 되었다는 경고입니다. /할/

 

  ▶19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런 말씀들은 정말로 난해한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접근해 보면, 임신한 자들, 또는 아기 젖먹이는 자들의 관심의 대상은 오직 뱃속에 있는 자식이요, 어린아이에게 온통 정신이 빠져있습니다.
  환난이 오면 더더욱 하나님과 가깝게 살아야 되는데 온통 신경을 뱃속에 있은 아이에게 빼앗기니 불쌍한 영혼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신령한 영적인 의미로는 여기 '아이 밴자'는 욕심을 품고 있는 자를 의미하는데, 돈에 얽매이고, 세속에 얽매이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그 날에' 그러니까 심판의 날에 욕심에 끌려 있는 자, 세상 정욕과 쾌락에 얽매여 있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그런 당부의 말씀입니다. /할/
  그 당시 상황적으로 보면 당시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가장 타격을 받은 자들이 임신부요 젖먹이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여기 '화가 있으리로다'라는 말은 '저주 선언'이 아니라 '동정을 표시하는 탄식 문'입니다. 즉 '아! 안되었도다, 아 슬퍼다'라는 뜻입니다. /아멘!/

 

  ▶20절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겨울과 안식일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활동하는데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즉 겨울에는 비가 오는 계절이라서 땅이 질고, 식량 확보도 어려워 유대인들에게는 취약한 계절입니다.
  또 안식일에는 종교적 행사에 주력해야 함으로 율법적으로 1.8Km 이상 이동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산으로 오른다거나 피신하는 행위는 사실 불가능하게 됩니다.
  여기서 '도망하는 일'은 신앙의 달음박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겨울'은 만물이 얼어붙을 때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더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가서 2:11-13절까지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이 지났다는 것은 땅이 꽁꽁 얼어붙어서 초목이 자라지 못하던 그때가 지났다는 뜻입니다. 새 봄이 되어서 모든 얼었던 것이 녹고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 새소리 지저귀고 새 싹이 움트는 소망의 계절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영적인 신령한 뜻은, 겨울은 영적인 감동이 없을 때요, 봄은 성령의 감동이 충만한 은혜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산으로 도망가야할 환란의 때가 행여나 겨울 같이 심령의 감동이 없을 때 심령이 잠들어 있을 때 일어나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겨울과 같이 완악한 마음이 되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늘 성령의 충만함으로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해야 합니다. /믿/아멘!/

 

  ▶21절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여기서 '이는'라는 말의 원어는 '가르'란 말로,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앞 17-20절에 걸쳐 피난하라고 권면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환란'은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에 함락 때 환란을 말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닥칠 대 환란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주님 오시는 그때 전무후무한 대 환란이 옵니다.
  우리 모두는 말세에 영적인 대 환란이 올 것을 각오하고 거기에 대하여 늘 신앙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할/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다가 환란이 갑자기 닥치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미리 준비를 잘해 놓으면 어떤 환난이 와도 믿음으로 이길 수가 있습니다. /아멘!/
  인도인들은 영상 9도만 되어도 얼어죽은 사람이 상당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도사람이 추위에 연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환란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대 환란이 올 때에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 올 대 환난을 미리 예상하면서 지금부터 작은 환난을 잘 통과하고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롬5: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

 

  ▶22절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큰 위로와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굉장히 부담이 가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앞으로 7년 대 환란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7년 대 환란의 날은 아무도 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써는 구원을 받는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런데 여러분, 여기 '그러나'를 보세요! 여기서 '그러나' 이 접속사가 중요합니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은 감하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환란의 때에 일부를 감해준다는 말씀이요, 이기고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할/ 
  계시록을 보면 말세 주님 재림 때에 이 땅에 7년 대 환란이 있겠다고 했는데 말세에 성도가 대 환란은 다 받는 것이 아니라 전반기 3년 반 조금 지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됩니다. 그 나머지는 장해준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영적으로 신령한 뜻은 환란 중에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을 지켜 나가는 자는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큰 환란을 만나 풀무불 가운데 들어갔으나 예수님이 그 안에 오셔서 그 환란을 감해 주셨습니다. /아멘!/
  고전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할/

 

  ▶23-24절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말세에 징조들입니다. 말세에는 자칭 재림 예수가 많이 나타납니다. 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표적을 보이면서 참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거짓 그리스도'는 자칭 재림 주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또 직접 예수라고는 하지 않아도 '감람나무, 참 아버지, 태양 심판자'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선생들입니다. 요즘 성경을 아주 잘못 가르치는 이단들이 너무나 극성을 부립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큰복입니다. /믿/
  여기 또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로 미혹하게 하리라'는 말씀은 이단들의 전도방법을 가리킵니다. '여호와 증인, 구원파 등' 이단들은 다 기성 성도들을 미혹하는 집단입니다.
  여기 '미혹하게 하리라' 이 단어가 무섭습니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그들은 무섭게 접근합니다. 요즘 신천지라는 집단이 기성교회에 들어와 무섭게 접근해서 교회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집단에 넘어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멘!/ 

 

  ▶25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왜 주님이 미리 말씀해 주십니까?
  ⑴준비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⑵조심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⑶대비하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 더 큰 의미는 ⑷미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아멘!/

 

  ▶26절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여기 '광야'는 23절에서 '거짓 그리스도가 여기 저기 있을 것'이라고 말씀한 부분을 여기서 구체적인 장소로 '광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전통적인 유대관념에서 보면, 메시야 도래의 공개적인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가리켜 '광야에 외치는 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여기 '골방'은 좁은 밀폐된 비밀 장소를 의미합니다. 어떤 분은 '광야는 대중집회, 골방은 구역예배'로 말씀하신 분도 계십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와 '골방'을 좋아했을까요? '광야'는 그 당시 예언자들이 말씀을 전하는 곳으로써 유대인들이 예언자의 말을 듣기 위하여 가는 곳이며, '골방'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은밀하게 기도하는 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이 같은 특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할/

 

  ▶27절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인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사람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재하고 계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과 역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는 모두 다 사랑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 역시 사랑의 역사입니다. /할/
  그러나 모든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며 서편까지 번쩍이는 것처럼 천하가 다 알 수 있도록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단들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이쪽에서 오시면 저쪽은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행1:11절에서 '승천하실 때 본대로 구름 타고 다시 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올라가셨으므로 오실 때도 온 지구가 다 보실 수 있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미국에서 권투하고 일본에서 야구하는 것, 우리는 안방에서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능은 전무후무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28절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주검은 부패한 죄를 가르치고 독수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노아 시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신앙이 죽은 자들에게 미혹이 온다는 것입니다. 미혹에 넘어가면 지옥행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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