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강) 청지기의 결산 보고서! (마 25:14-30)
마25장은 비유 셋이 나오는데 그 첫 번째 비유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예비하라'는 교훈인데 '깨어 있는 자와 기름을 준비한 자'만이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비유입니다.
두 번째 비유가 오늘 우리가 읽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충성심을 체크하는 그런 비유입니다. 우리가 머지 않아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청지기로서의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했는가?' 하는 결산 보고서를 올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청지기의 충성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어떤 주인이 먼 나라에 장기 출장을 가면서 자기 집 종들에게 장사하라고 자본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생각 없이 준 것이 아니고 종들의 지혜와 능력을 면밀히 살펴서 각자 가진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 씩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왜 그들에게 달란트를 주었습니까? 그 달란트로 많은 이윤을 남기라고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것으로 곧 장사를 시작하여 갑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나마 적은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출장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맡겼던 돈을 결산하는데, 그 결산보고서에 보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갑절의 이윤을 남겼으므로 그 주인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땅에 묻어둔 것을 그대로 갔다가 주었더니 주인이 대노하면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크게 책망하고는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주면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저주와 함께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할/
본문 속에 주인은 우리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이요, 먼 나라에 갔다고 한 것은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시 온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그 분이 가시면서 그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복음 운동의 사명과 책임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달란트는 재능입니다. 쉽게 말하면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많이 개발해서 복음운동에 많은 이윤을 남기라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믿/
분명한 것은 오늘 본문의 주인이 외국에 나갔다가 다시 와서 결산한 것처럼 우리 주님이 분명히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우리와 결산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비유 속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종으로서의 신분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우리는 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것을 관리하는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주인의 말대로 순종하는 존재가 종입니다.
또한 종은 '소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 물질, 자녀, 믿음과 직분, 은사까지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이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불평하지 말고 오직 감사하는 것이 종의 자세입니다.
둘째, 종으로서의 자세입니다. 종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성실함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바로 가서 일하여 남깁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묻어 둡니다. 이는 달란트의 귀중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물질 생활에 있어서 성실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벌고 제대로 써야 합니다. 죄악된 쾌락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늘에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멘!/
셋째, 종에게는 결산의 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의 심판은 없지만, 상급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 건강, 은사가 많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얼마큼 섬기며 충성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종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더 많은 것으로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잘못하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왕의 달란트를 받았지만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비참하게 인생을 마칩니다. 가룟유다도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종으로서, 종의 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섬기며 충성해서 주인 되신 하나님께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제목소개!▶
▶14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문의 시작인 14절에 보면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종들은 원래부터 소유가 없었고, 가질 수도 없는 그런 신분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종에게 맡김으로 이제는 주인의 소유를 맡고 있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바를 가지고 사는 존재입니다. /아멘!/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은 우리 주인이 부모라고 말하고, 남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믿/
우리는 그분 앞에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건강도 맡은 것입니다. 나의 생명도 임시로 맡은 잠간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거두시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도, 나의 재산, 재능, 명예, 지식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종으로서의 맡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잊을 때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믿/
달란트의 분배의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달란트는 본래 금속의 무게 단위였는데, 여기서는 화폐 단위입니다. 그 당시 한 달란트는 대략 6천 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니까 한 달란트는 아주 큰 액수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거의 20년 동안 꼬박 모아야 만질 수 있는 그란 큰돈입니다.
그러면 달란트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돈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에서 영어의 talent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재능 혹은 은사'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하나님이 각자의 인생에 허락하신 각종 재화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시간, 물질, 재능, 건강, 지위, 직분' 등입니다. /할/
달란트의 분배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여기 '각각 그 재능대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맡겼습니다. 얼굴 생김이 각각 다른 것처럼 성격도, 재능도 취미도 다른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를 주십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음악 분야의 재능을 더 주시고, 체육 하는 사람에게는 체육 분야를,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그 분야에 재능을 주시고, 또 과학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쪽으로의 재능대로 맡기십니다. /할/
주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각각 그 재능대로 맡기십니다. 달란트의 분배가 다섯, 둘, 하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다섯을 맡은 만한 사람에게는 다섯을 주셨고, 둘을 주셨고, 하나를 맡을 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갈무리 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달란트 분배의 원칙은 '주님의 뜻대로 이고, 각각 재능대로' 주십니다. /믿/
본문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고 떠났더니' 또 14절의 '타국에 갈제'라는 말은 하늘나라의 승천을 의미합니다.
▶여기 달란트는 신령한 의미에서 4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90세, 100세 사는 아주 긴 기간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70세 정도 살 수 있는 시간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30-40세 아니 20이하의 젊은 나이게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주 작은 단위의 단란트를 준 사람도 있습니다.
②재능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사람은 재능이 다 각각 다릅니다.
③은사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벧전4: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④기회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돈을 버는 기회,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장사할 수 있는 기회, 정치할 수 있는 기회, 이런 저런 기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달란트를 주십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충성을 다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고, 달란트 관리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16-17절 "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두 사람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가서' /할/ 17절을 보면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와 같이 하여'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망설일 필요 없이 달란트를 받자마자 즉시 장사하러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망서려서는 안됩니다. 우물쭈물해서도 안됩니다. 바로 즉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여기서 다섯, 두 달란트 받은 자들은 바로 가서 즉시 순종해서 갑절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할/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문제입니다.
▶18절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돈이 지하로 숨어드는 것을 지하경제라고 합니다. 떳떳치 못한 돈은 검은 돈입니다.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유통되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땅에 묻어 두면 돈의 유통의 문제가 생기게 되고 그 결과 경제질서가 흔들리게 됩니다. /아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가서' 달란트를 활용해야 합니다. /할/ 그 사람도 바로 가서 부지런히 장사하였더라면 한 달란트를 남겼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지런히 장사하면 이익이 남게되고 묻어두면 썩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훗날 쓰겠다고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사람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굉장한 달란트를 주인 마음에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곳에 써야 합니다. 바르게 써야 합니다. 왜 안됩니까? 19절을 보세요!
▶19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그렇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회계란 '계산해 본다'는 말씀이고 '결산해 본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썼는가? 바르게 사용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감사해 보는 것입니다. /할/
달란트 관리의 원칙은 '바로 가서' 즉시 순종하는 것이고, 이윤을 남겨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가진 자처럼 남겨야 합니다. 경제 용어로 말하면 손익 결산에서 흑자결산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긴다'는 것은 '이윤, 성과, 결과'를 의미합니다. 다섯을 남기고, 둘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남기지 못했습니다. 남기지 못했다는 말은 충성하지 못했다는 말이요, 남겼다는 말은 충성했다는 말입니다. /할/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받아 가지고 있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사용하였는가?'에 관심을 집중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맡겨진 일에 얼마나 충성했는가를 지켜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4:2절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아멘!/
이제 충성해서 갑절의 이윤을 남긴 다섯 달란트를 가진 자와, 두 달란트를 가진 자들에게 주인은 뭐라고 하십니까?
▶20-23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보세요! 하나님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와, 두 달란트를 남긴 자와 똑 같이 칭찬해 주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할/
①'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우리도 이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②'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군수도 충성했더니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도지사가 충성했더니 대권주자가 되어집니다. /할/
③'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면 우리가 더 수지 맞습니다. /아멘!/
여기서 보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나 똑같이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은 똑같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받은 달란트와 은사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충성자들이 받는 보응은 똑같습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세상의 평가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할/ 대개 세상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크기(Size)를 잽니다. 그리고 순위(ranking)을 매깁니다. 우리는 '나는 가수다'의 치열한 순위결정에 출연가수들의 희비가 갈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만일 이 비유에서 순위를 매긴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일등, 두 달란트 받은 자 이등, 한 달란트 받은 자 꼴찌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각각 장사해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로 불렸으니까 격차가 더 벌어졌지만, 동일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무엇을 보십니까? '최선을 다했느냐? 아니냐?' 그것만 따졌습니다. /아멘!/ 신앙생활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떻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4: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 '충성'은 '최선'이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런 평가 기준을 깨닫게 되면 비교 당하는 부담에서 해방됩니다. 동시에 건강한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여기 최선을 다한 충성자들의 보고를 보면 자신이 넘칩니다. '오 주인이여, 보소서, 내가 다섯을 남겼나이다. 둘을 남겼나이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는 언제나 자신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있는 자는 또한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믿/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설 때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회사 일도 자신이 있어야 하고, 자기 사업도 자신이 있어야 하고, 교회 생활에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자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여 자신 있게 보고하는 종에게 주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여기서 주인의 기쁨과 만족이 넘쳐 보입니다.
▶록펠러는 어마어마한 부자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최고 부자는 '빌 게이츠'라고 하는데 빌 게이츠가 번 돈을 다 합쳐도 록펠러가 번 돈의 반도 안 된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록펠러가 가장 신임했던 사람 중에 하나인 '아치볼드'라는 사람은 본래 스탠더드 오일의 말단 직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에 대한 성실과 열정으로 자기가 일하는 회사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며 일했습니다.
'아치볼드'는 출장 가서 호텔에 묵을 때면 숙박부에 자기 이름을 적고 그 옆에 '한 통에 4달러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문구를 빠뜨리지 않고 적습니다. 그의 동료들이 그의 이런 행동을 조롱했지만 그는 자신의 작은 이 일이 반드시 회사에 큰 도움을 주리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로 출장을 간 아치볼드는 밤이 늦어서야 방에 들어왔는데 숙박부에 이름만 쓰고 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려가 종업원에게 숙박부를 달라고 해서 '한 통에 4 달러 스탠더드 오일'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때 한 신사가 유심히 그의 행동을 보고는 물었습니다. '왜 그런 문구를 넣지요?' '저희 회사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한 달쯤 지나 아치볼드는 자신의 회사 회장에게 특별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회장이 바로 호텔에서 만났던 록펠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록펠러는 그의 열정을 칭찬하며 본사로 불러들였고, 아치볼드는 스탠더드 오일을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최선은 아름답습니다. /아멘!/
여러분,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 있게 보고하는 충성된 종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기서 우리도 다짐해야 합니다.
①착한 청지기가 됩시다. 모든 충성은 착한 인간에게 이루어지는 결실입니다. 착한 것은 내적이고 충성된 것은 외적인 것입니다. 착함은 동기이고 충성은 결과입니다. 착함은 나무뿌리요, 충성은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충성의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벧전4:10-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여기서 선한 청지기는 착한 청지기를 말합니다. 착한 사람은 마음이 순해서 남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인정한 착한 종은 주인의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이 청지기임을 알고 모든 것을 다 주인의 것으로 알고 소중히 여기는 자가 선한 청지기요 착한 사람입니다. /아멘입니까?/할/
②성경에서 요구하는 충성은 '작은 일에 대한 충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언급을 했습니다만 우리 주님은 눅16:10절에서도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일이나 맡겨주면 하지 작은 일은 시시해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럴듯한 자리와 큰 위치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이란 시시하고 사소한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이 맡겨주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
요셉을 보겠습니다. 노예로 팔려가서는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스럽게 주인을 섬겼습니다.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는데도 그곳에서는 맡겨진 일을 잘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대 애굽의 국무총리로 그를 세워 야곱의 일가를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아멘!/
③죽도록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계2: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사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끝까지 충성한다는 것은 퍽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잘 될 때는 충성하고 어려울 때는 소리 없이 물러나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표준에 따라서 충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우면 매달려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어려우면 철새처럼 날마다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죽도록 충성하는 자만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잘 새겨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멘!/
▶이제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보십시다. 사실 본문의 포커스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가 아니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들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할/
▶24-25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본문이 주는 중요한 의미는 '둘을 남겼느냐, 다섯을 남겼느냐' 하는 계수상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 다 똑같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각각 재능대로 달란트를 분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받은 것을 잘 활용해서 배의 이윤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해서 하나를 더 남겼다면 다섯이나 둘을 남긴 종과 똑같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할/
▶달란트 하나를 땅에 묻어 두었던 사람의 성격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①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그는 주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4절에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한 것을 보아 그는 한 마디로 주인을 '구두쇠, 노랑이, 수전노, 옹고집, 인색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불행한 편견입니다.
하나님을 참 좋으신 하나님이요, 자비와 긍휼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편견은 일을 망칩니다. 그리고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일을 그르치게 합니다.
②소극적인 사람입니다. 25절에 '두려워하여'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실패할까봐 두려웠다는 것이고, 실패한 후에 주인한테 문책을 당할까봐 두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극적은 사람은 큰일을 못합니다. 풍랑을 만나 쩔쩔매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담대 하라'고 명하십니다. 겁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큰 일을 해 낼 수 있습니다. /아멘!/
③핑계가 많은 사람입니다. 일을 잘하고 충성하는 사람은 핑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안 하는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고 말이 많습니다. 이 사람의 결정적인 것은 또 있습니다.
④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26).
▶26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한 가지로 그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도 남습니다. /아멘!/ 악하고 게으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왜 이 사람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했던 사람입니다. 한 달란트가 너무 적다고 가소롭게 평가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행여나 여러분들 가운데 적은 것 주었다고 가소롭게 여기신 분 있습니까?
하나님은 '각각 그 재능대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모를 때 불평합니다. '왜 나에게 큰 능력은 안 주시고 큰 직분도 안 주시고 큰 축복도 안 주십니까?'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세대가 자랄 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모가 삼 형제를 두고 살았습니다. 명절이 와서 고무신을 사주었는데 큰아들은 15문 짜리, 둘째 아들은 12문 짜리, 셋째 아들은 8문 짜리로 사주었습니다. 이때 셋째 아들이 자기 고무신을 보더니 '아버지는 나빠? 아버지는 형들 것만 큰 것을 사주고 내 것은 적어' 억지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아이는 15문 자리를, 둘째 아들은 12문 자리를, 셋째 아들은 8문이 맞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그대로 사주신 것입니다. /할/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농부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경마장에서 도박을 하였는데, 한번도 경마 표를 맞추지 못해서 계속 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기상천외로 경마 표가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 상금이 자그마치 2억불이나 되었습니다. 미국의 마사회는 당첨 발표 전에 상금을 받을 사람에 대하여 조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부에 대하여 조사해 본 결과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라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런 자에게 2억불을 건네 주면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전달해 주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에 그가 카톨릭 신자인 것을 알고 그가 다니는 성당 신부에게 알리고 그 돈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신부는 그 농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번에 경마 표를 사셨죠? 만일 일등으로 당첨되었다면 그 상급을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농부는 '신부님, 맞을 리가 있나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나서는 '만약 내가 당첨이 되어 2억불을 받게 되면 그 중에 1억불은 신부님에게 드리고...'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들은 신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그릇대로 재능을 주시고 은사를 주십니다. /아멘 입니까?/
②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이 다시 결산하러 온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땅에 묻었다는 것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습니다. 죽은 사람은 기억에서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리면 안됩니다. 이 사람은 주인이 다시 와서 회계할 것을 미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은 성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본문의 비유도 주님의 재림에 대한 그런 비유입니다. 주님 재림 시에는 '성도들의 충성심을 보시겠다'는 그런 비유입니다. /할/ 그에 대한 주님의 책망은 무엇인가?
▶27절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취리하는 자들'은 은행을 가리킵니다. '장사하기 싫으면 마땅히 그 돈을 은행에 두었다가 본전과 이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고 책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말 너희 주인이 그런 사람이라고 믿었다면 그 돈은 이자 놀이하는 사람에게 갖다 주어 이자라도 나올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할/
달란트 비유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승진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한 자에게 축복을 더하시고, 불충한 자에게는 오히려 빼앗고 강등시킵니다. 그런 내용이 28-30절의 내용입니다.
▶28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이것이 심판입니다.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골고루 주시는 분이 아니라 심은 대로 주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영적인 원리입니다. 우리는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있는 자는 더 있는 것이고, 없는 자는 더 없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더 큰 믿음을 주십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도와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안 하기로 결정하면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믿/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불충한 사람에게 주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에서 쫓겨남을 당합니다. 바깥 어두운 곳은 지옥입니다.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고통을 당합니다.
날마다 슬퍼합니다. '그때 내가 잘했으면 그때에 내가 충성했으면 그때 내가 그것을 했을걸' 하면서 슬퍼하며 너무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워서 이를 갑니다. 이것이 불 충성했던 자의 최후입니다.
여러분, 오늘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강조 점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즉 명색이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쭉정이와 같이 예수님으로부터 쫓김을 당하고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할/
여러분, 신앙생활을 두렵고 떨림으로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 것처럼 항상 그 끝이 떨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지남철의 바늘 끝이 떨고 있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 고민이요 갈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남철이 떨고 있는 한 그 나침반을 믿어도 되지만 반대로 바늘 끝 움직이지 않고 어느 한쪽에 고정되어 있으면 그 나침반은 고장 난 것이랍니다. 떨지 않는 바늘은 이미 자석의 힘을 잃어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할/
여러분, 바르게 북극을 가리키려는 그 버팀, 갈등, 떨림이 우리들의 삶에도 있는지요? 성경말씀 기준으로 살려고 할 때 세상적인 방법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럴 때 갈등합니다. 고민합니다. 떨림이 있습니다. 이 거룩한 떨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 충성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고 축복을 많이 받으시기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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