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112강) 열 처녀의 비유! (마 25:1-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49

(제112강)         열 처녀의 비유! (마 25:1-13)

 

  사람들은 내일 닥칠 일을 계획하고 미리 준비합니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준비하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함으로서 대학입시와 취직시험을 준비하며, 사업가는 각종 사고 예방과 사업 확충을 위해 계획하고 준비합니다.
  이렇듯 만사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군인에게는 전쟁준비, 신부에게는 혼인 준비가 있어야 하듯, 인생에게는 세상을 떠날 준비가 더욱 필요합니다. /믿/
  ▶한 부자에게 예수를 잘 믿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이 하인을 '천하 미련한 놈'이라고 책망하다가, 한 번은 지팡이를 주면서 '너보다 더 미련한 자를 만나거든 이 지팡이를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후 주인은 병석에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하인은 묻기를 '당신은 세상 떠나면 어디에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자 주인은 '아무 준비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받았던 그 주인에게 도로 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제일 미련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수일간 여행길을 떠날 때도 준비가 있는데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먼길을 가면서 아무 준비가 없으니 당신보다 더 미련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하면서 그 지팡이를 주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준비가 안된 사람은 심판 때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본 장은 '종말의 비유 장'입니다. 본 장에서는 비유 셋이 나옵니다.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 비유와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꼭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복음에 보면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학자는 비유를 오늘날 '예화'를 들어서 설교하는 것과 같다고도 합니다. 예화는 성도들에게 진리를 아주 쉽게 알려주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쉽게 이해하려면 먼저 유대인의 결혼 풍속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나라의 결혼제도는 우리보다 조금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세 단계를 거칩니다. 하나는 약혼(약속)이라는 단계를 거치고, 그 다음은 정혼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그 다음은 결혼의 삶이 이어집니다.
  먼저 약혼을 합니다. 그 후 양가 가족이 모여 정혼이라는 것을 합니다. 마태복음 초두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정혼은 결혼과 마찬가지지만 결혼생활은 하지 않습니다.
  정혼의 기간이 1년쯤 되는데 신랑이 신부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신랑과 신부가 살집을 마련하고 땅도 마련해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그런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정혼은 우리나라의 약혼보다 법적으로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만약의 경우 정혼을 한 다음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예를 들어서 부정한 일을 저지르거나 도무지 결혼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파혼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당시 율법대로 '돌로 쳐죽이는 방법'이 있었고, 또 하나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정식으로 이혼을 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따라서 이혼을 할 때는 이혼증서를 써 주어야 합니다. 맘에 안 든다고 슬그머니 그냥 파혼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정혼은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할/
  정혼 기간이 끝나고 결혼시기가 오면 잔치를 먼저 합니다. 우리나라는 결혼식을 먼저 거행하고 잔치를 배설하지만, 유대인들의 경우는 잔치를 먼저 하고 결혼예식을 합니다.
  요2장은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베푼 장소도 이 혼인 잔칫집입니다. 오는 손님들마다 먼저 극진하게 대접을 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결혼 예식을 거행하는데 그 예식은 흔히 밤에 거행합니다.
  밤에 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저녁이 되면서 하루가 시작되는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 문화와 다릅니다. 창1장을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유대인들은 저녁이 하루의 시작이 되고 해가 지면 다음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말고 유대인들이 밤에 결혼하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그 나라는 너무너무 덥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도저히 더워서 결혼예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해가 진 다음에는 습기가 없기 때문에 시원합니다. 그래서 밤에 예식을 거행합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낮에는 다 일터에서 일을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 양을 치는 사람, 사업을 하는 사람,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때문에 낮에는 바쁘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를 해도 올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처럼 교통이 좋은 것은 아니고 걸어 다녀야 할 그때에도 낮에 결혼식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밤에 결혼을 합니다.
  그 다음 결혼잔치는 하루뿐만 아니라 일주일씩 그 잔치가 계속됩니다. 신랑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오랜 시간을 즐기다가 한밤중쯤 되어 신부의 집으로 행진을 하고 신부는 신부의 친구들과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게 됩니다.
  마침내 신랑이 도착하게 되면 신부는 자기 친구들인 들러리들과 함께 나가 신랑을 영접하여 등불을 켜고 이제 신랑집으로 떠나는 연등행렬이 벌어집니다. /할/
  오늘 왜 우리 예수님이 이 비유를 주셨습니까? 비유를 하시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마24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는 이 물음에 주님께서 당신의 재림의 징조를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고 나서 말세의 결론적인 말씀으로 마24:44절에서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반드시 신랑은 오신다는 결론을 주신 것입니다. /믿/ 바로 이 말씀이 열 처녀 비유의 배경입니다. /할/

 

  ▶1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이 열 처녀의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천국이 언제 임할 것이냐?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 것이냐'에 대한 해답으로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어느 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즉 종말론적 심판의 때를 의미합니다. 여기 '그때에'란 어떤 구체적인 시간이나 시점을 나타내기보다는 대략적인 시간을 가리킬 때 사용한 말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만 약 90회나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천국은 마치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 신랑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랑이 왔다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는데, 오실 예수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먼저 열 처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대 결혼 풍속을 보면 신부가 자기 친구들을 초대해 신부의 들러리를 서게 합니다. 이들은 저녁 무렵부터 등을 들고 나가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그들 일행을 혼인 잔치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본문의 열 처녀에 대한 숫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깊이 숫자에 관심이 있으면 본문의 바른 뜻은 놓쳐 버리고 맙니다. 여기서 처녀의 수가 열 명이라는 상징은 10은 완전수로 예수님 당시 유대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의 인원이요 여러 종교집회에 필요로 한 정족수입니다.
  그 당시 유대의 풍속에서는 장례행렬이나 결혼 행렬의 들러리가 반드시 10명의 인원으로 채워졌다고 탈무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의 열 처녀는 모든 시대에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며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을 가리킵니다. /아멘!/
  본문의 신랑은 예수님이요, 우리는 그의 신부가 될 자입니다. 등을 들고 있다는 것은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와서 교인이 되었음을 의미함이요, 등불은 빛으로써 성도의 착하고 의로운 행실을 가리킵니다. /할/
  마5:14-16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빛은 믿는 자의 행실을 말합니다. 성도가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이 욕을 먹고 행실이 바르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바울은 엡5:8-9절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주안에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할/

 

  ▶2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이 열 처녀는 바로 교회의 성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믿음을 잘 지키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어리석은 성도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
  그런데 여기서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5:5로 양분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숫자에 대한 의미보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 가운데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있음을 가르쳐 주는 대목에 더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여기 '슬기롭다'의 원어는 '지혜롭고 준비성과 분별력이 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뭐니뭐니해도 준비하는 신앙이 귀하고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는 성도가 귀합니다. /할/
  또 '미련하다'의 원어적인 의미는 '우둔한, 얼빠진 자'라는 의미로 깨어 있지 못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준비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하고 분별력도 없는 그런 성도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안에 들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3-4절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기름을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못한 자의 차이입니다. 본문에 보면 열 처녀들은 모두 등을 들고 나왔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등을 들었다는 것은 전도 받아 성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등은 사람 앞에 구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나오고 봉사를 하고 기도를 하는 그런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면에서 누가 보아도 '저 사람 교회 가나보다, 행복한 교회 집사구먼!'하면서 알 수 있는 행위 그것이 바로 등입니다. /할/
  등은 누구나 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름입니다. 기름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마다 다 준비된 것이 아니라 오직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기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름은 무엇입니까? 등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 기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기름은 등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할/
  ①슬기로운 자는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깊은 교제를 하는 자,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성별 되었다는 뜻이요, 세상의 죄와 악으로부터 분리된 자며 인간 역사의 변화의 주도권을 쥔 자입니다. /믿/
  또 자기를 이기는 자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또 기름을 준비한 사람은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진리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입니다. /아멘!/
  ②기름을 준비 못한 미련한 자를 보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⑴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⑵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그 다음 ⑶신앙의 삶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자신 1:1의 신앙이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지,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믿음 충만하다고 들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할/
  ③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진리입니다. 잔칫집의 문이 닫혔습니다.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 수가 없습니다. 범사에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만사에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 내 인생의 기회의 문이 닫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6:2절에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④주님과의 만남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신앙으로 성장한 어린 소녀가 자기 엄마에게 '엄마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러는데 이 세상의 삶은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래요' '아이고, 기특도 하지!' 그때 어린 소녀가 엄마에게 다시 말하기를 '엄마는 작년에도 제주도에 가고 올해는 설악산에 가면서 열심히 준비하는데 왜 엄마는 천국 갈 준비는 안 해?'
  이 말에 엄마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준비합시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준비된 자의 이야기입니다. /할/

 

  ▶5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신랑이 더디 오므로'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그러면 그렇지 정말 예수가 다시 오실까' 하며 재림신앙이 식어져 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때 주님이 더디 오는 것 같지만 주님은 당신의 때에 분명히 오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아멘!/
  본문의 표현은 '심판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온다고 할 때가 늦어짐을 보고 제자들이 고대하는 바처럼 신속히 오시지 않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졸며 잘 새' 열 처녀 모두 졸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롬13:11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그리고 본문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을 만한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순간마다 깜박 깜박 조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는 졸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깨우지 않고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결심을 했다가도 풀어지고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도 졸고 잘하려고 하다가도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우리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다만 문제는 일시적으로 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히 잠들어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 '졸며'는 일시적으로 조는 것을 말하고, '잔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자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 누가 일시적으로 졸았으며 누가 계속적으로 잤겠습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일시적으로 졸았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계속적으로 신앙의 잠을 잤습니다. /할/

 

  ▶6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밤중에 신랑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밤에 이루어집니다. 여기서는 신랑이 도착할 시간을 훨씬 넘겨 열 처녀가 졸고 잘 때 온 것으로 보아 '한 밤중'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의 때가 한 밤중으로 표현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어떤 정해진 시각이나 예고가 없이 예상치 못했던 시점에 오신 것을 예고 한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한밤중은 혼란의 밤으로 비유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고 윤리가 무너지고 도덕이 짓밟히는 혼란의 때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이 아침마다 배드민턴 운동을 하는데 그곳에서 10년 간을 같이 운동을 한 회원이 보험금을 노리고 자기 부인을 어느 시골에 빈집으로 유인하여 목 졸라 죽이고 그 이튿날 태연히 나와 운동을 하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조사 결과 그 남편이 범인으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서운 암흑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준비하십시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멘!/

 

  ▶7절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여기 '다 일어나 등을 준비했다'는 말은, 외형적으로 볼 때 일어나 주를 맞이하려는 것은 미련한 자나 슬기로운 자나 모두 똑같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 공동체는 죽음과 잠에서 깨어 일어나 모두 주를 만나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까지는 아직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역시 주님 심판의 현장 때까지는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가 함께 구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마13장의 '알곡과 가라지가 똑같이 자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할/
  여기서 우리가 정검해 봐야 할 부분은 '내가 지금 깨어 있는가? 냐가 정말 알곡인가?'를 정감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멘!/ 

 

  ▶8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문학적으로 등불의 마른 심지가 공급되는 기름이 전혀 없으므로 밤은 연기를 뿜어내며 꺼져 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어리석은 처녀의 내면 영적 상태의 고갈을 의미합니다. '잠들어 버린 신앙, 병들어 버린 신앙, 은혜를 망각해 버린 신앙, 강퍅하고 마비된 양심, 죄가 죄인지를 모르고 범하는 화인 맞은 양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등불이 꺼져있다'는 말은 '내가 준비한 것이 다 드러나 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본색이 드러난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예수님을 잘 믿는 줄 알았는데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이 오시니까 그 믿음이 엉터리인 것이 증명이 된 것입니다. /할/
  '기름을 좀 나눠달라' 여기서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자들이 종말의 때에 겪는 당황한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심판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 놓은 은혜와 신앙의 기름을 타인에게 꾸어달라고 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로 심판 주 앞에서 심판의 평가는 자기 공로로 결정되는 것이지 남의 것을 빌려다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의 기준은 오직 자기가 쌓아 올린 신앙의 업적과 헌신과 충성대로 평가를 받습니다. /아멘!/ 그때에 충성한 자에게는 잘했다는 칭찬이 있을 것이고, 불충한 자에게는 바깥 어두운 때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감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선한 일이라도 꼭 해야 합니다. 평생 하나님을 단 한번만이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어떤 계기를 꼭 가져야 합니다. /아멘입니까?/할/

 

  ▶9절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기름을 꾸어 달라고 하는 미련한 자의 절박한 호소에 슬기로운 자의 대답은 아주 단호합니다.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어떻게 보면 '야! 사랑이 없다느니 인색하다느니' 이런 도덕적인 견지에서는 비평의 여지가 있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어떤 문제입니까? '내가 죽느냐 사느냐 구원이냐 심판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신앙적인 문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그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은혜 받는 문제는 절대로 양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은 성도들끼리 나눌 수 있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믿/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각자 받은 거룩한 은총입니다. 구원은 각각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성령과 은혜와 신앙에 의해 결정됩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 다른 사람의 구원까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구원을 받았다고 아들이 아버지 신앙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이 권사가 되었다고 치맛자락 붙들고 천국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본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에게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자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 하나는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신자들입니다.
  진실한 신자는 신앙의 형식과 내용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부실한 신자는 신앙의 형식은 갖추고 있는데 그 내용이 없습니다. 결국 믿음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 개인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할/ 우리 각 사람은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 각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아멘!/
  가룟 유다는 삼 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는 엄연히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죄인의 구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은 로마 제국을 쫓아내고 유대 나라를 세울 정치적인 메시아로 보았는데 십자가의 죽음을 이야기하니까 자기의 야망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자 돌변하여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30냥에 팔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냉정합니다.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십니다. 기름은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마13:44-46절을 보세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여기서 밭은 크게는 세상이요, 적게는 교회요,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요, 사람은 성도로써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한 성도가 그 진리에 감격하고 기뻐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주님을 자기 최고의 보화로 모시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아마 그 사람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과감하게 다 팔아 밭을 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 밭에 감추어진 보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연락이나 쾌락, 부질없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보다 더 훨씬 좋은 천국을 나의 소유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좋은 보화를 발견했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것으로 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천국도 자기의 소유로 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천국을 열심히 구하십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부질없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내어버리십시다. 그리하여 생수의 기쁨이 넘치는 천국백성들이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10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저희가 사러 갈 동안에' 때가 지났습니다.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봉사할 기회가 있고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게도 효도할 수 있는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부모가 영원히 항상 자식들 옆에 있지 못합니다. 때가 되면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실 때 효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본문의 이 미련한 처녀들은 그 밤에 신랑이 올 바로 그 시간에 그 자리를 비우고 또 이미 밤중이라 가게문이 모두 닫혀 살수도 없을 때 그것을 사려고 나왔습니다. 그때 신랑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누가 주님과 함께 들어왔습니까?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그렇습니다. 준비된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비된 자란 인내를 가지고 신랑이 더디 올 것에 대비하여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입니다.
  '닫힌지라' 이 단어는 이미 문이 굳게 닫혀버려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구원은 기회를 잃어버리면 끝장입니다. /믿/

 

  ▶11-12절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여기서 미련한 자들의 절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7:21-22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비유의 '크라이 막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허겁지겁 신자, 헐레벌떡 신자'를 보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항상 한 박자 늦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그런 대로 넘어갑니다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안 통합니다. 여러분, 가장 불상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가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로 갑니까? 지옥 음부에 떨어져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처참한 신세가 됩니다. /믿/아멘!/

 

  ▶13절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여러분,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어엿이 그 앞에 설 자신이 있으십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4:12)고 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생각할 것은 여기 열 처녀를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구분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구별합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나 미련한 다섯 처녀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슬기로운 다섯 처녀나 미련한 다섯 처녀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5절에 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가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같이 졸고 잤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일상의 삶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졸 수도 있고 같이 잘 수도 있습니다. 일상의 삶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슬기와 미련을 결정하는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등은 있지만 기름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련한 처녀였고, 등과 기름이 같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슬기로운 처녀였습니다. 여기서 '기름이 준비됐다는 말'은 성령 충만한 자로 '깨어 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할/
  ⑴'그런즉 깨어 있으라' 여기서 깨어 있는 자는 재림을 준비한 자요, 늘 깨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할/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호흡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는 '10년은 염려하는 것보다 차라리 10분간 기도하는 편이 좋다'고 했으며, '레날드 레보넬'은 '천만명의 군중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단 한 사람이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발트 바쳐'는 '슬픔과 고통으로 엎드려 있느냐? 기도할 것 밖에 없다. 핍박당하고 욕을 먹고 미움을 받느냐? 기도할 것 밖에 없다. 죽음이 너희 집안에 찾아왔느냐? 기도한 것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막9: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할/
  ⑵'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려면 자신의 믿음을 늘 확인해야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3: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13:11절에서는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드로 사도는 벧전4: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생활은 곧 기도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할/
  ⑶여기 '깨어 있으라'는 말은 '예비하고 있으라'와 동일한 말입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이 24장에서 4번이나 나옵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깨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종말의 신앙은 여기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하고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 돌아가는 증조들을 보면 정말 우리 주님이 오실 재림의 때가 임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깨어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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