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로마서강해/제20강 믿음으로 승리합시다(4:17-2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 10. 10:48

제20강 믿음으로 승리합시다(4:17-25)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이 원리를 우리들에게 계속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은 그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그가 할례를 받았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는 그가 율법에 있는 조항들을 잘 지켜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을 것임을 계속해서 강조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질문이 생기는 줄 압니다. 도대체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길래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 한 가지를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셨을까요?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했는데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믿음을 신념과 혼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꾸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줍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뭐든지 할 수 있어." 이와 같이 자기 암시적인 신념과 믿음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념과 믿음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념에는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믿음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버스를 탈 때 안심하고 탑니다. 왜냐하면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를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면 이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률, 통계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사고가 나지 않을 확률이 사고가 날 확률보다 통계적으로 많기 때문에 우리가 안심하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지, 그 운전기사를 믿기 때문에 우리가 안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에는 어떤 요소가 있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그것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믿음의 대상입니다. 아브라함이 누구를 믿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어떠한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우리가 먼저 이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믿음의 근거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는데 어떠한 근거에서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신비한 체험이라도 하게 해주셨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이상한 표적이라도 보여주셨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가운데도 바라고 믿었는데, 과연 어떠한 근거에서 하나님을 믿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믿음의 승리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고, 또 믿음의 근거가 확실하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제나 우리들에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는 찬송처럼 분명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늘 크신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 가지, 믿음의 대상, 믿음의 근거와 믿음의 승리를 함께 생각하면서 잠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음의 대상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아브라함이 누구를 믿었습니까? 자기의 힘을 의지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친척을 믿었습니까? 자기의 친구를 믿었습니까?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을 믿었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상반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는데 과연 어떠하신 하나님을 믿었는지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7절을 계속 보시기 바랍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첫째로, "죽은 자를 살리시며," 둘째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넘어가서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었습니까? 첫째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둘째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세번째로, 약속하신 것을 또한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겠노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지금 현실이 어떠합니까? 19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여기에 죽은 것 같다는 말이 헬라어 원어에서는 현재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산능력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사라의 태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아들을 낳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분명히 믿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누구를 바라보았습니까? 믿음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견고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뒤에 성취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현실이라고 하는 깊은 계속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바라보지 마세요. 나를 마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을 바라보지도 아니하고, 현실을 바라보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눈을들어서 믿음의 대상이 되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뒤에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너의 독자 이삭을 내게 제물로 바쳐라."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그의 아들 이삭을 통해서 많은 자손이 번창해야 하는데 이삭은 결혼하기 이전입니다. 자식이 없습니다. 그런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면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상상이나 가는 일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이 신앙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브라함이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엡 2:1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도 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완전히 죽었던 상태였습니다. 그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살려주시고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은 또 어떠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까?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말씀이 창세기 1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시기 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날 아브라함을 장막 밖으로 인도해내셨습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별들을 가리키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저 뭇별들을 셀 수 있나 보아라. 너의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제가 물어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라함에게 뭇별과 같이 창대하리라고 약속하신 그의 후손이 과연 누구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가 바로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때 아직 태어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가리키면서 "아브라함아, 장차 너의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로,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또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21절 말씀입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제가 또 물어보겠습니다.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약속을 한 당사자가 신실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의사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원한다 할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식언치 아니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이 과연 어떠하신 하나님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하나님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크지도 않고 작은 어려운 일이 생기기만 해도 낙심하고 좌절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 1:17이하를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제목이 나옵니다. 제일 먼저 기도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사."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첫번째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어떠하신 하나님인지 분명히 알고 믿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나아갈 때 우리 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믿음의 근거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는데 과연 어떠한 근거에서 하나님을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의 감정을 믿었습니까? 자기의 체험입니까? 신비한 표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말씀대로"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또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이라는 말에 또 밑줄을 그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섰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 신앙이었고,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는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무엇을 보시고 그에게 의로 여기셨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신앙,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선 신앙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려분, 창 12:1을 다 함께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자기가 있는 자리에게 떠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4절 상반절 말씀을 보세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말씀을 좇아 갔고"에 밑줄을 그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올바른 반응을 보이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삶, 이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4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예민한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라함의 조카 룻이 아브라함과 함께 갔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지금 롯은 누구를 좇아갔습니까? 자기 삼촌 아브라함을 좇아갔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거기에 대해서 올바른 반응을 보이고 말씀을 좇아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감히 하나님 말씀에 거역할 사람이 어디 있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셔도 나는 분명히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이 설교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인간의 말로 듣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마 5: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딤후 3:16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신구약 성경 66권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무엇이라고 부르짖었습니까? "오직 성경! 오직 성경!"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속해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만 근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말씀 사이에 다른 것이 개입되면 안됩니다. 나의 감정이 개입되도 안되고, 체험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무슨 기사와 표적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우리 믿음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주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믿음의 승리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고 믿음의 근거가 확실할 때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분명한 증거를 가져다줍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기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현실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자기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아니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지 아니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며,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그의 약함이 바뀌어서 견고함이 되었습니다. 절망이 바뀌어서 소망이 되었습니다. 의심이 바뀌어서 확신이 되고 두려움이 바뀌어서 기쁨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승리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20절 말씀을 보세요.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전 10:31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하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까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면 이와 같은 중요한 신앙생활을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영광 받으시기 바랍니다.제가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영광 받아주시옵소서." 주문을 외우듯이 말한다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그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제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야, 너는 방주를 예비해라. 내가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 그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할 때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그대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크신 영광을 나타내게 되신 것입니다.
여기에 보니까 믿음의 공식이 나타나지요? 믿음에 단계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무엇이 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 다음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거기에 큰 증거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해서 제일 나중에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믿음의 제일 클라이맥스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또 예를 들어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야, 너와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돌고 돌아라. 내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리라." 그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리할 때 말씀 그대로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영광을 나타내시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말씀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이 순종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약속 그대로 그의 영적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증거를 보여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바울이 아브라함의 이야기르 한 의도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말씀대로 잘 믿고 순종해서 하나님께 복받고 아들 딸 낳고 잘먹고 잘살았더라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의도는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도 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에스겔 서에 나오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우리들이었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용서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된다는 사실은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엄청난 일을 우리들을 위해서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어떠한 연고에서입니까? 24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브라함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보니까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그 이유가 25절 상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25절 하반부를 읽어봅니다.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분명하게 증언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현실이 어렵습니까? 헌실을 바라보지 마세요. 그러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마세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며,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우리가 나아갈 때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 어떠한 어려운 시련도 다 극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아브라함이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선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언제나 말씀 위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놀라운 말씀 위에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분명히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약함이 변해서 견고함이 됩니다. 절망이 바뀌어서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바뀌어서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심이 바뀌어서 확신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하나님은 우리의 이 믿음을 통해서 놀라운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도 내일도 믿음을 붙들고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승리해서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제가 되고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저희들에게 깨닫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오, 또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저희들에게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축소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용서해주시고 더욱더 굳센 믿음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날마다 밝히 드러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낼 수 있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 모두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그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복된 삶이 우리 승동의 모든 가족들에게 다 있도록 주여 붙들어주시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오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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