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로마서강해/제19강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4:13-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 10. 10:48

제19강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4:13-16)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언뜻 읽어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 그렇다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이 조금도 실망하시거나 낙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보아서 쉽지 않은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누구세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 승동교회의 교인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조금만 노력하시면 아무리 어려운 본문이라도 다 이해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의 대 주제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들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또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에 있는 조항들을 힘써 지킨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값 없이 주는 은혜 너 거절 말아라." 이 찬송의 가사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 없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우리가 거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마을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농부에게는 하나의 자그마한 꿈이 있었습니다. 황소를 한 마리 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직접 힘들게 논과 밭을 갈려고 하니까 얼마나 수고스러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황소를 한 마리 사서 대신 논과 밭을 갈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돈을 쓰지않고 허리띠를 졸라 매고 계속해서 돈을 항아리에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이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이 되었을 때 그는 지금까지 모은 돈을 모두 들고 읍내 장터로 달려갔습니다. "야, 이제 드디어 나의 꿈이 성취되는구나!" 얼마나 기대가 부풀었겠습니까? 그러나 읍내 장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완전히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에 화폐개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옛날 돈을 새 돈으로 바꿔주는 기간도 바로 며칠 전에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은행으로 가서 사정을 해보았지만 이미 기한이 지났는데 은행이 돈을 바꿔줄 리가 만무합니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나의 이 안타까운 처지를 한번 대통령에게 하소연해 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농부는 글을 쓸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옆집에 있는 학생에게 부탁을 해서 자기가 부르는 대로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 자기의 안타까운 처지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처를 베풀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농부의 편지를 받아들고서 읽어보다가 마음에 동정심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농부에게 이렇게 답장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우리 정부로서도 당신의 옛 화폐를 새 돈으로 바꾸어줄 수는 없습니다. 이미 돈을 바꾸어 주는 기간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는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은 법대로 시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당신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서 성실하게 그 돈을 모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돈을 내 개인 구좌에서 내 돈으로 다 바꾸어주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 돈을 가지고 당신이 원하는 황소를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우고자 하는 우리의 선행이라든지, 할례, 또 율법을 지킨다든지 하는 인간적인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농부가 모아놓은 옛 화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 지향적인 방법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지향적인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값 없이 주는 은혜 너 거절 말아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 없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4장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해주었습니다.
처음 1∼8절까지 보면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자기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따지고 보면 육신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9∼12절까지 보면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할례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체의 할례를 받기 적어도 14년 전에 이미 아브라함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무엇으로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할례는 의롭다 하는 일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3∼16절까지를 보면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7∼25절까지를 보면 그러면 도대체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길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셨는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3∼16절까지에서는 아브라함은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줍니다. 편의상 우리가 이 부분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첫째 대지는, 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대 원칙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대지가 14∼15절입니다. 여기서는, 그러면 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이 율법으로는 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우리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14∼15절을 제가 읽어봅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율법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결코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세번째 대지가 1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은 믿음이라는 방법으로만 가능한가? 그 이유를 16절에서 설명을 합니다. 제가 16절을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언뜻 읽어서 이해가 되세요? 이해가 되시는 분들은 수준이 상당히 높으신 분들입니다. 이해가 안되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제가 드리는 말씀을 귀담아 잘 들으시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은 믿음의 의로 말미암는다는 대 원칙을 생각해봅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구약 성경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사이의 맺은 언약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맺은 언약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권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해주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떠한 약속을 주셨습니까? 대략 세 가지 정도로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나안을 일명 무슨 땅이라고 부릅니까? 약속의 땅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희 후손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저 바다의 모래알처럼, 저 땅의 티끌과 같이 창대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세번째가 복의 통로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서 천하 모든 만백성들이 복을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누구를 통해서 성취가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오신 그분,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약속, 첫째는, 무슨 약속 땅에 대한 약속, 두번째가 후손에 대한 약속, 세번째가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이 세 가지의 약속을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무슨 말로 묘사했습니까?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온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이 온 우주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이어받을 수 있는  후사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약속입니까?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후사가 무슨 뜻입니까? 후사는 대를 잇는 자식이라는, 상속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후사가 될 수 있습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선한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후사가 되는 것입니까? 자수성가하고, 내가 노력해서 재물을 많이 번 사람을 보고 후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고 상속해서 대를 이어가는 사람을 후사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후사가 될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 비결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면 가능합니까? 아들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똑똑하지도 못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아들이면 아버지의 재산은 그 아들에게 물려지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잇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13절 하반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그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까?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까?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잇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과연 아브라함이 율법의 조항들을 잘 지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아브라함은 율법을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이 언제 주어졌습니까?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때보다도 훨씬 이전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시대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 3:17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기 이미 사백삼십 년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언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은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기신 연고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저 영원한 하늘 나라를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기업으로 이을 사람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한 학자, 박사들이 저 영원한 하늘 나라를 기업으로 잇는 것입니까? 성인 군자들이 잇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들이,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되어서 장차 영원한 하늘 나라를 기업으로 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이 대 원칙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었습니다. 값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이 왜 율법으로는 안되는지 설명해주었습니다

14∼15절에 보면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이 왜 율법이라고 하는 방벙으로는 되지 않는지 그 이유가 세 가지로 나옵니다. 이 부분은 조금 더 어렵습니다. 14∼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첫째로, 믿음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헛것이 됩니다. 두번째로,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 폐하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세번째로, 15절에 보니까 율법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되려고 하다가 후사가 되기는커녕 율법은 무엇을 이루게 하고 맙니까?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라고 하는 것으로는 우리가 결코 하나님의 후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있는 조항들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후사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구태여 믿을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얼마든지 내 힘으로 하나님의 후가가 될 수가 있는데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후사가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자기 힘으로 율법에 있는 조항을 다 지킬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아무도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미 롬 3:20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만일에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약속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약속은 폐하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성취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우리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되려고 하다가 후사가 되기는커녕 15절에 보니까 도리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5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이 말씀을 한번역으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뜻이 됩니까? 율법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무엇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까? 범함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율법에 있는 조항들을 다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우리 인간은 부패했고 타락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법을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벌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은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는 말의 뜻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요즘은 미국에 갈 때 비행기를 타면 쉽게 갑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미국을 향해 이륙합니다. 그런데 몇 십년 전만 해도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했습니다. 한 달씩 걸려서 항해하는 긴 여행이었습니다. 한 유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 배표를 한 장 샀습니다. 오랫동안 항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마른 반찬도 정성스럽게 준비해주고 과일도 한 보따리 사주고, 또 미숫가루를 잘 볶아서 그것을 한 봉지 싸 주었습니다.
청년이 배를 탔습니다. 청년은 어떻게 하든지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으로 식당에 내려가서 음식을 사먹으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 달 동안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계속해서 컵에 미숫가루를 풀어서 그것을 마시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항해가 거의 끝나갑니다. 다음날이면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는 그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청년은 생각했습니다. 오늘 저녁만큼은 마지막으로 기념으로라도 식당으로 가서 맛있는 것을 사먹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짐을 다 챙겨놓은 다음 식당에 내려갔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었습니다. 배가 불렀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는 돈을 지불하기 위에 카운터로 갔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얼마입니까?" "얼마라니요?" "아니 제가 음식을 먹었으니까 값을 지불해야지요?" 그랬더니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이 먹은 음식값은 이미 배삯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배표 뒤에 다 적혀 있는데 그것을 읽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원통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한 달 동안 맛있게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놓쳐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웃으시지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 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위한 길이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저 영원한 하늘 나라를 상속으로 잇게 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의로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록해주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저 영원한 하늘 나라를 기업으로 잇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단순한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구원에 대한 값을 이미 누가 다 지불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미 다 지불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그 말(?)을 얼마든지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값 없이 주는 은혜 너 거절말아라." 믿음으로 받아 누릴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그러면 왜 믿음이라고 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한지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왜 믿음이라고 하는 방법으로만이 후사가 되는 것이 가능한지 사도 바울이 16절에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통과하셨어요. 16절은 조금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더욱 정신을 차리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16절 상반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후사가 되는 것이 무엇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은혜에 속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성립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만일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은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값 없이 베풀어주시는 사랑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해서 내 힘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봅니다. 어떤 사람이 땡볕에 나가서 하루종일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품삯을 받습니다. 그때 받는 품삯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한 대가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몸이 아파서 하루종일 일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내가 똑같은 품삯을 준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값 없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롬 4:5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여러분 왜 이 진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십니까? 또 4:6에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왜 이 행복을 기쁜 마음으로 쉽게 받아 누리지를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보다도 더 기쁘고 더 복되고 무슨 감격스러운 소식이라도 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값 없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거절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믿음으로 다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16절 계속해서 읽어봅니다.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약속을 후손에게 어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까? 굳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조금전에 우리가 생각해보았지요? 만일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약속을 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되는 것은 약속을 더욱더 굳게 세운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에 근거한 약속은 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더욱더 굳게 세워지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 영광스러운 후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혹시라도 잘못해서 이 영광스러운 후사의 자리에서 쫒겨나지는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은 내가 가진 자격조건으로,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값 없이 베풀어주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기만 하면 그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것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16절 끝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여기서 율법에 속한 자는 유대인은 지칭하는 말입니다. 또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는 율법은 없더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 때문에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만일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면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율법이 주어진, 율법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율법대로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율법이 있든지 없든지, 율법을 알든지 못하든지 간에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주기 때문에 믿음만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해준 요지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13∼16절 말씀을 한 번 읽어볼 테니까 오늘 설명을 들으신 만큼 이해하셨는지 스스로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13절은 원칙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그리고 14∼15절은 왜 후사가 되는 것이 율법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한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16절에는 반면에 믿음의 방법만으로 가능한 이유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다 죄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의로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되어서 저 영원한 하늘 나라를 기업으로 잇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 차이가 과연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간단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값 없이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으면 불신앙으로 거절하느냐?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텍사스 주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전부 총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소한 다툼 끝에 친구를 총으로 쏘아죽이는 일이 곧잘 생겼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주정부에서 는 엄한 범령을 제정했습니다. 누구든지 사사로이 사람을 죽일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이 제정되고 나서 어떤 청년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만 시비가 붙고 말았습니다.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권총을 빼들고 친구를 총으로 쏴죽었습니다. 청년은 감옥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청년은 본래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선량한 청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해마지 않는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을 아는 사람들이 그의 목숨이 아까워서 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구명 운동을 벌었습니다. 종이에다가 그를 살려주자고 전부 다 서명을 했습니다. 주지사에게 탄원서를 제출을 했습니다. 주지사가 그것을 받아보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까운 이 청년을 살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지사가 사면장을 작성해서 직접 감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간수를 통해서 그 청년에게 이러한 전달을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태어나서 세상에서 가장 기뻐할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나를 만나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놀랍지요? 감옥에 갇히고 난 후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난폭해졌습니다. 그렇게 착하던 사람이 성질이 포악해졌습니다. 그래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나는 어떠한 사람도 만나기 싫다. 어서 빨리 죽여라"고 악을 씁니다. 결국 주지사는 그 청년을 살리기 위해서 갔다가 청년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어쩔 수없이 그 청년은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서 마지막 순간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내가 죽는 것이 내가 내 친구를 살해했기 때문이 아니고 나를 살리기 위해서, 사면장이라고 하는 선물을 가지고 온 그분을 거절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역사의 끝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탄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저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 때문에 멸망당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값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본질적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수도 없이 범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되었습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가 길지 짧을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기간 동안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 주를 위해서 의의 병기로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하는 거룩한 결단이 새로워지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일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후사가 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이 이 시간 사랑하는 성도들 마음속에 파도처럼 밀물처럼 깊이 젖어드는 은혜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영광스럽고 귀한 신분을 우리가 든든히 부여잡고 이 세상을 힘 있게 떳떳하게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길은 율법의 방법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의 의로 된다고 하셨사오니, 사랑하는 우리 승동의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돈독해지고 날로날로 깊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여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주시고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크도록 역사해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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