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 강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롬 3:23―26)
죄인 된 우리 인간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지 우리가 지난 주일에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에 앞서서 주신 율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율법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일을 절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을 해봅니다. 방안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방이 어두울 때는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에 불이 환하게 켜지면 비로소 그 방이 얼마나 지저분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방 안이 아무리 환하게 비추어진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더러운 물건들이 치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방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청소를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하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그 자체에는 절대로 우리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 의는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그만큼 참되고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의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 하나님 앞에 감히 어엿이 설 수가 없습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이 의를 어떻게 받아 누릴 수 있느냐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의를 받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상이 우리가 지난 주일에 생각해본 말씀의 개요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일이, 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바뀌는 이 놀라운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편의상 세 대지로 나누어서 오늘 말씀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대지는 23절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의가 왜 온 인류에게 나타나야만 하는지 그 필연성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모습 그대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감히 이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아래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는 우리들에게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대지는 24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우리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나타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 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지는 25∼2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내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두 가지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고 싫어하시며,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잠시 묵상하면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적어도 30㎝의 여행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30㎝의 여행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머리와 가슴 사이는 불과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내용은 우리가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이 뜨겁지 않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30㎝의 여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우리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화목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깨달으면서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하고 감격하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왜 하나님의 의가 온 인류에게 나타나야 하는지 그 필연성을 살펴보겠습니다.
23절을 다같이 한목소리로 읽어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여기에 온 인류의 비극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말씀해주었습니다. 3:9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또 3:10 말씀을 보십시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넘어가서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모든 인류는 다 죄 아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떠한 성인 군자도 예외가 없습니다.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장로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에 봉사를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권사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서 존경받는 훌륭한 정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아주 재미있는 만화가 실렸습니다. 이명박 국회의원을 아시지요? 이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성난 모습의 국회의원이 빙 둘러서 있습니다. 손에는 큼지막한 돌멩이를 들고 있습니다. 드디어 재판관이 판결을 내립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무슨 뜻입니까? 남을 정죄하는 너희들도 결코 떳떳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기보다 태어날 때부터 아예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제가 물어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는 말은 현재형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까?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이것이 더욱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부정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정과거형이라는 것은 과거의 반복적인 행위가 아니라 단 한 번, 역사적으로 단회적인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죄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까? 5:12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서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죄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담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봅니다. 아까 장로님도 기도를 하셨지만 지난 목요일에 우리 교회는 가평수양관에 가서 전교인 체육대회를 성대하게 잘 마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셔서 감사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넘쳤습니다. 그때 각 교구별 계주 시합이 있었습니다. 선수들이 나와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렇다고 다 이긴 것은 아닙니다. 이긴 팀도 있고 진 팀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이겼다고 해서 절대로 선수들만 이긴 것이 아닙니다. 교구 전체가 이긴 것이지요. 반대로 진 팀은 선수들만 졌습니까? 그 교구 전체가 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수들은 그 교구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한 결과는 그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아담은 인류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범죄 행위로 말미암아 온 인류 전체가 죄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결과 어떻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현재형입니까? 과거형입니까? 이것은 현재형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결정적인 그 한 가지 사건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리에 감히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힘입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어엿이 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의가 어떠한 방법으로 나타났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24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두 가지 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 편에서 설명을 하고, 또 하나는 인간 편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편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행하셨습니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의롭게 하셨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구속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구”라고 하는 것은 구원하셨다는 뜻이고, “속”이라고 하는 것은 값을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속전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해서 감옥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으면 계속 감옥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가 그것을 보고 자기들의 전재산을 다 팔아서 아들 대신 빚을 갚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감옥에서 꺼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에 매여 종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풀려나려면 죄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여러분, 죄 값이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죄 값이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죽어야 죄 값이 지불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벌레만도 못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 값으로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4절 하반부에 보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모든 대가를 지불해주셨습니다. 나대신 죄 값을 다 지불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지불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어떤 청년이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짜로 그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청년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형제여, 형제님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회사의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지요? 그 버스를 탈 때마다 버스비를 냅니까?”
“아니오, 내지 않습니다.”
“왜 형제는 그 버스를 탈 때마다 버스비를 내지 않고 공짜로 타고 다닙니까?”
형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공짜로 타지만 이미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서 버스비를 다 지불했지요.”
목사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형제를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미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서는 형제를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신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구속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편에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저 십자가가 나를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나 때문에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머리로 짓는 죄 때문에 예수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셔야만 했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짓는 죄 때문에 예수님이 창에 허리를 상하셔야만 했습니다. 내가 손으로 짓는 죄 때문에 예수님의 손에 굵은 못이 박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발로 짓는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발에도 굵은 못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번째로,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25∼26절에서 그것을 우리들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25절 말씀을 제가 읽어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문장이 길게 되어 있습니다. 얼른 읽어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25절 상반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화목 제물의 역할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세우신 분이 누구입니까? 누가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셨습니까? 오늘 본문 25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 이 찬송을 부릅니다.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그렇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사실입니다. 가룟 유다가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이 사실입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얼마든지 예수님을 풀어줄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주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창으로 허리를 찌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신 분이 누구시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세우신 분이 누구시냐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벌레만도 못한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던 이 놀라운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서 우리의 눈시울을 적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과 죄로 인해 단절된 우리 인간의 사이를 잇기 위해서 화목 제물이 되셨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효과가 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이 보여줍니다. 한 가지는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셔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실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우리의 믿음이 합쳐질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로소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25절 하반부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또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 예수까지도 십자가에 못을 박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우리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5절 하반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라고 했습니다. 참고 또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당장 쏟아져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억누르고 참고 또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참으시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보고도 못 보신 척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눈감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보잘것없는 제물의 피를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꾹 참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의로우심을 나타내실 때까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실 때까지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는 중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6절을 보세요. “곧 이때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그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세우신 그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수지에 봇물 고이듯이 쌓이고 쌓였던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지금까지 참고 참으셨던 무서운 진노가 한꺼번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두 어깨 위에 완전히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겠습니까? 또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공의로우시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믿는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의롭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하고 오늘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옛날 러시아에 어떤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족을 다스리는 촌장은 인품이 훌륭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공명정대하게 백성을 잘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마을에 절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도적놈이 생겼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일이 발생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누구든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채찍으로 사정없이 열 대를 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적질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발생했습니다. 도적질이 있을 때마다 채찍질의 수도 늘어갔습니다. 급기야는 채찍질의 수가 40대까지 올라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채찍으로 40대를 친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40대의 채찍질을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범인이 잡혔습니다. 놀랍게도 도둑은 촌장의 연로한 어머니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조마조마하면서 촌장이 어떻게 결정을 내릴까 지켜보았습니다. 자기가 말한 법을 지키기 위해서 어머니를 죽게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말한 법을 어길 것인가? 조마조마하면서 촌장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촌장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대로 시행하라.” 집행관은 마을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가운데 사정없이 촌장의 어머니를 채찍으로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촌장은 자기 어머니를 뒤에서 꽉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대신 그 사나운 회초리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신 방법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아들까지라도 아낌없이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인간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고 싫어하셨으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박게 하셨을까?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파도처럼 밀물처럼 밀려오시기 바랍니다. 머리로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모두 30㎝의 여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가슴이 뜨겁고 우리 마음이 감격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지를 잘 깨달아 알아서 이제는 더 이상 죄를 가까이 하지 말고 늘 죄를 멀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미 의롭다 해주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불의의 병기로 쓰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의의 병기로 거룩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로마서강해/제16강 세 개의 질문(3:27-31) (0) | 2012.01.10 |
---|---|
[스크랩] 로마서강해/제17강 이 행복을 아십니까? (4:1-8) (0) | 2012.01.10 |
[스크랩] 로마서강해/제18강 믿음만은 붙들어야(4:9-12) (0) | 2012.01.10 |
[스크랩] 로마서강해/제19강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4:13-16) (0) | 2012.01.10 |
[스크랩] 로마서강해/제20강 믿음으로 승리합시다(4:17-25) (0) | 2012.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