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드 챔버스 366일 묵상집(영한)

0429 THE GRACIOUSNESS OF UNCERTAINTY=불확실성이라는 은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4. 14. 11:33

THE GRACIOUSNESS OF UNCERTAINTY

“It doth not yet appear what we shall be.”

                              1 John 3:2

 

Naturally, we are inclined to be so mathematical and calculating that we look upon uncertainty as a bad thing. We imagine that we have to reach some end, but that is not the nature of spiritual life. The nature of spiritual life is that we are certain in our uncertainty, consequently we do not make our nests anywhere. Common sense says—“Well, supposing I were in that condition . . .” We cannot suppose ourselves in any condition we have never been in.

Certainty is the mark of the common-sense life: gracious uncertainty is the mark of the spiritual life. To be certain of God means that we are uncertain in all our ways, we do not know what a day may bring forth. This is generally said with a sigh of sadness; it should be rather an expression of breathless expectation. We are uncertain of the next step, but we are certain of God. Immediately we abandon to God, and do the duty that lies nearest, He packs our life with surprises all the time. When we become advocates of a creed, something dies; we do not believe God, we only believe our belief about Him. Jesus said Except ye . . . become as little children. Spiritual life is the life of a child. We are not uncertain of God, but uncertain of what He is going to do next. If we are only certain in our beliefs, we get dignified and severe and have the ban of finality about our views; but when we are rightly related to God, life is full of spontaneous, joyful uncertainty and expectancy.

Believe also in Me, said Jesus, not—“Believe certain things about Me.” Leave the whole thing to Him, it is gloriously uncertain how He will come in, but He will come. Remain loyal to Him.

 

Lord, I adore Thee for the past session. How many

Thou hast allowed me to see enter gloriously into a

right relationship with Thee! It is too wonderful for me

to praise Thee adequately.

 

APRIL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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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라는 은혜

장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요한일서 3:2

 

당연히, 우리는 수학적이고 계산하길 좋아하는 성향이 있으므로 불확실성을 나쁜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어떤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 삶의 본질이 아니다. 영적 삶의 본질은 우리의 불확실성 안에서 확신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어디에도 우리의 둥지를 틀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내가그러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고 가정해봐.”라고 상식은 말한다. 우리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어떠한 환경에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모습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확실성은 상식적인 삶의 기준입니다. 은혜가 되는 불확실성은 영적 삶의 기준이다. 하나님을 확신을 가지고 믿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모든 방법들로는 불확실하여 우리가 불안하고, 하루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슬픔의 탄식과 함께 언급되는 내용이다. 그것은 차라리 숨막히는 기대의 표현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음 단계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다. 우리가 자아를 하나님께 내맡기고 가장 가까이 놓여있는 의무를 수행하는 즉시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삶을 경이로운 일들로 가득 채우신다. 우리가 어떤 신조의 옹호자가 될 때 무엇인가는 죽어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신앙을 우리가 믿는데 불과하다. “너희가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18:3)라고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영적 삶은 어린아이의 삶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다음에 무엇을 행하실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만일 우리들의 신앙 안에서 확신할 뿐이라면 우리는 위엄을 갖추고 신랄하게 되어 우리들의 견해에 관한 부정적인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을 때는 삶은 무의식중에 기쁨으로 충만한 불확실성과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진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또한 믿으라,”고 이르셨지 나에 관한 신조들을 믿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전부를 주님에게 맡기라,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방법이 불확실한 것은 오히려 은혜로운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은 재림하실 것이다. 주님에게 계속 충성하라.

 

주님, 지난 세월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으로 은혜롭게 들어가도록 주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요! 너무 놀라울 정도의 은혜인지라

제가 주님을 충분히 찬양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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