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1211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라 (시 119:25-32)[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만이 모든 것의 해답]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8. 10:04

111211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라 ( 119:25~32)

성경본문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딸아이들이 유치원 정도 됐을 때의 일이니까 25 전인 같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대학원과정에서 공부를 원서를 정리해서 발표 해야 되는 시간에 쫓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아내와 애들을 처가에 보냈어요. 혼자서 빨리 과제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마침 여름이니까 친정에 가서 식구들끼리 재미있게 놀라고. 그리고는 열심히 과제를 했는데 의외로 풀려서 일찍 끝났어요. 하루 정도 시간이 남은 같아요. 기쁜 마음에 나도 모처럼 처가에 가야 되겠다.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해줘야 되겠다. 전화 안하고 그냥 갔습니다. 휴대폰이 없던 때죠.

처가가 철원인데 장인어른 문을 두드리니 문이 잠겨 있어요. 어디 같아요. 혹시 오늘 물놀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가까이 있는 큰처남 댁에 갔더니 거기도 잠겨있어요. ‘아이코 이거 큰일났구나.’ 신철원에서 동송 작은 처남댁에 갔더니 거기도 문이 잠겨 있어요. 큰일 났어요. 거예요. 물놀이를 거죠. ‘어디로 놀러 간다고 했는데.’ 세심하게 들었어야 되는 건데 그만 주의해서 듣질 않았죠. ‘어디로 간다고 했더라?’ 그래서 물어봤죠. “여기서는 어디로 놀러 가나요?” “‘담터라고 아주 좋은 데가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담터까지 가서 입구에서부터 개울을 따라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물놀이를 하는데 저는 땡볕아래서 우리 식구들이 도대체 어디에 있나 찾았어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라고요. 비슷한데 아니고 아니고. 끝도 없이 들어가는 거예요. 결국은 찾았어요. 세상에~. 밥도 굶고 말이죠, 처량하게. 그날 결국 허탕치고 서울로 왔어요. 얼마나 한심하든지 전화 하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전화 통화 안하고.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귀담아 들었으면 고생을 면했을 텐데. 아내, , 가족이건만 만나질 못했어요. 서울로 돌아오는데 스스로 얼마나 한심스럽던지.

여러분, 예수 믿고 산다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 진흙구덩이에 뒹굴고 있어요. 헤어 나오지를 못해요. 늪에 빠진 거예요. 늪에서는 몸부림칠수록 들어가는 거예요. 나는 안타까워서 몸부림치는데 되는 일은 없는 거예요. 겉보기에는 괜찮은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자기를 돌아보면 깊은 곳에서 양심이 얘기합니다. ‘이대로 살아서는 된다.’

오늘 성경이 말하죠.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 살려주세요하는 영의 탄식이 있어요.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아내립니다.’ ‘세상 근심으로 영이 바짝 말랐습니다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말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러분, 주님은 되게 살아라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건 약속이에요. 그건 우리의 권리에요. 그런데 그걸 잃어버린 거예요. 남의 것을 빼앗아 오겠다는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이 계획해두시고 약속해두신 것을 어디서 찾아야 할는지 잃어버렸단 말이에요.

시편 119편은 아주 길어요. 176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어떤 시편이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대한 축가라고 있어요. 176절까지 내려가는 모든 구절에는 말씀이라는 표현이 들어있어요. 말씀, 율례, 법도, , 규례, 증거, 계명...... 아주 치밀하게 만든 시에요. 히브리어 알파벳 22자가 있어요. 22자를 8절씩 176절을 만들었고 8절씩 단어 자에 똑같은 알파벳이 오도록 정교하게 만든 거예요. 이렇게까지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너무 귀하고 소중한 말씀이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시편 119편을 읽어보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살기에 행위가 온전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행위가 온전한 것은 물론 도덕적인 온전함을 말하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셰익스피어의 소설에서 말괄량이가 사랑에 빠지니까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는 너무나 아름답고 부드러운 여인이 것처럼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행위가 온전한 사람이 되게 되어 있어요. 

제가 주간 수련회 가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더라고요. 여러분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것은 책임입니다. 사람은 어쩔 없어요. 모델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좋은 모델을 만나면 좋은 신앙을 거저 배우는 거예요. 제대로 믿는 부모를 만나는 자녀는 말할 없는 복을 누리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신앙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는 부모를 만난 사람은 가시밭길을 걷는 거예요. 말로 필요가 없는 거예요.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길을 알았기에 하나님과 사랑에 빠질 밖에 없고 삶이 부드러워질 밖에 없고 그것이 귀한 알았기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거예요.

성경은 남자, 여자, 나이 사람, 젊은 사람, 유대인, 이방인을 가릴 없이 수많은 사례들이 가득 들어 있어요. 하나님을 만나서 성공한 사람들, 승리한 사람들. 하나님 말씀을 들으나 불순종하다가 망한 수많은 증거가 있어요. 하나님이 법도를 지켜라 율례를 지켜라 계명을 지켜라명령하시는데, 명령은 자기가 하기 싫어서 남을 시키는 명령이 아니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라 하듯이 사랑의 명령이에요. 안에 너를 위한 모든 복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명령이요, 안타깝기 때문에 하는 명령이에요.

여러분, ‘디지털치매라는 용어가 있어요.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까 잊어버렸어요. 그러다가 단말기 잃어버리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기계도 중요하지만 그럴수록 책을 읽어야 돼요.

디지털치매보다 엄청난 영적 치매에요. 성경에 인간의 구조를 영과 혼과 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물론 어떤 구절을 보면 영혼과 육체, 둘로 나눈 표현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과 혼과 ,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서 이해할 정확하게 이해할 있어요. 데살로니가전서 5 23절에 보면 너희의 영과 혼과 육을 하나님께서 강건하게 하시기를 원한다했어요. 우리에게 영이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있지만 절대 빼놓을 없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있는 영을 심어주셨어요. 그리고 혼이 있어요. 혼이라고 하는 것은 소위 우리가 자아또는 인격이라고 표현하죠. 인격하면 지성-생각하고, 감성-느끼고, 의지를 가지고 행하는 존재,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를 인격이라고 말하는데 그게 바로 자아예요.

하나님이 지어주신 영이 우리의 주인이에요. 혼은 영의 지배를 받는 청지기예요. 영은 혼을 통해서만 우리의 몸을 움직일 있어요.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말씀으로 지으실 하나님의 형상인 영을 심어 넣으시고 우리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셔서 너희는 만물들을 다스리라하셨는데 인간이 타락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아니하고 대적하면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깨어졌어요. 에베소서 2 1절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다이렇게 표현해요.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말은 영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도 여기에 있지만 서로 모르는 관계가 됐어요. 영적 어둠 가운데 있게 됐어요. 그러면서 혼이, 이성과 감정과 의지가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바로 타락이에요.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흘러 내려오면서 우리는 아예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사실조차 희미하게 알고 있어요.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 말씀하시면 영이 순종하고 우리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다스려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권세를 회복하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데,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요. 그게 우리의 실상이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회복할 거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올 가능한 것이죠. 오늘 말씀의 32절을 보면 주께서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 ‘주께서 마음을 넓히시면이것을 표준새번역에서는 깨달음을 주시면, 진리를 발견하게 하시면’,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라는 영어성경을 읽어보면 주님께서 마음을 자유케 하시면모든 얽매는 것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게 하시면, 뭐든지 바르게 자유함이 오잖아요.

고린도후서 3 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에요. 지식도 아니에요.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오늘 시간에 오셔서 말씀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성령은 말씀으로 말씀되게 하신다. 요한복음 6 63절에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세상에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고 그렇게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우리 영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성과 감정과 의지만 가지고 말씀을 판단하려 하니 마디도 이해할 없는 거예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모리아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걸음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고 무거운 걸음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정상에 올라간 순간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요.

하나님은 건너편에서 양을 끌고 올라오셨어요. 아브라함이 이쪽에서 자기 아들을 데리고 순종하며 올라갈 하나님은 정확하게 반대쪽에서 양을 끌고 올라오셨어요. 너머에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어요. 정상에 오르는 순간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예비하셨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만난 하나님을 인생의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고백했단 말이에요. 이름을 모리아, ‘모리아 분사형이에요. ‘준비되고 있는’, 현재분사에요. 아브라함이 깨달은 거예요. 그때부터 모리아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지나갈 때마다 산을 보면서 하나님은 지금도 나의 인생을 준비하신다.’ 남들이 때는 누구나 낳는 아들 하나를 얻지 못해서 쩔쩔 매던 아브라함에게 아들 하나를 주셨는데 그것은 그저 아들이 아니에요. 아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 있어요. 아들을 통해서 민족을 이루게 되고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흘러 넘쳐서 세계 만방 모든 사람들이 복을 누리게 되리라. 이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고 언약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믿음대로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죠. 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혼적인 판단이잖아요.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보여지는 , 들려지는 , 감각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주신 약속과 약속을 붙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죠.

예수를 확실하게 믿는 사람하고 친구하는 가장 예수 믿는 방법이에요. 실없는 소리나 하고 불평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고 밤낮 술이나 마시고 하는 사람하고 친구하면 무슨 재주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어요. 삶을 돌아보세요. 남은 인생이 날인지 헤아려 보세요. 남자들은 빨리 정신을 차려야 되요. 남자수명이 짧거든요. 평균 77세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내가 자기를 속이는 길에, 자기 만족에 빠져 있지 아니하고 성실한 진리의 길을 택하고 주님의 말씀을 앞에 두었나이다. 인생의 코너마다 말씀의 표지판을 보고 가겠습니다. 히브리서 4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이 어떤 검보다도 예리해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낱낱이 드러내어서 거짓된 것을 떨어버린단 말이에요. 수술하시겠단 말이에요.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우리가 이제 구체적으로 실천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하면서 들으세요.

예배에 5 먼저 와서 마음을 준비하고 말씀을 들으세요. 예배에 5분만 늦어도 정신이 혼란스럽잖아요. 얼마나 차이가 큽니까? 사람은 자세가 중요하잖아요. 이제까지 여러분이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다 할지라도 냉정하게 얘기하면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마세요. 부모도 이웃도 남편도 아내도 누구도 아니에요.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사인[sign]이에요.

이제 우리는 먼저 감사해야 돼요. 정직한 마음으로 감사한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생명의 길을 예비해놓으셨어요. 그러니 얼마나 감사해요. 이제는 결단합니다. 전심으로 주를 찾겠습니다. 찬송하고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어요. ‘돈을 즐거워하는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겠나이다.’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 직장 다니시는 분들 모두 기준을 여기에 두세요. 여러분, 돈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여러분 인생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요. 작은 소리로 주의 말씀을 읊조리겠습니다. 주여, 눈을 열어서 주님의 말씀 속에 놀라운 축복과 권세들을 보게 하소서. 없는 나그네 인생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나그네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한 천성을 향하여,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순례자의 인생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이 같지 아니하냐.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을 송두리째 태워버리는 같지 아니하냐. 말이 너희의 굳어진 바위 같은 마음을 깨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러분, 말씀을 성령께서 오늘 영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세요. 말씀을 붙들고 주간 기도하면서 깊이 마음에 새기세요. 말씀의 능력이 여러분을 살리고 여러분의 모든 더러운 것을 태우고 여러분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서 마땅히 보아야 영적인 실상과 하늘의 권능을 보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