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04 기도의 골방 (단 6:10-16)
성경본문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관해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30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에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여러분, 드라마 <이산>을 기억하십니까? 정조의 이야기인데요, 18세기 백 년은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아주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그 이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비하면 기록문화, 문서들이 풍성해졌기 때문에 실상을 알 수 있죠. 우리가 드라마를 봐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는 별로 근거가 없는 거예요. 그러기에 작가의 창의력이 가득 넘치는 것이죠. 조선시대쯤 오면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많은 기록이 있기 때문이죠.
조선시대에는 27명의 왕과 519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과 순종 때까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단 한 사람도 그냥 지나갈 대목이 없어요. 다 드라마로 만들만한 충분한 소재와 가치가 있어요. 만드는 사람의 능력이 문제죠. 그 중에서도 영조와 정조시대는 많이 드라마화 되고 이야기 되었습니다.
영조와 정조는 할아버지와 손자죠. 영조가 죽은 다음에 정조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 사이에 이빨이 빠지듯이 한 대목이 빠졌죠. 사도세자가 있죠.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이며 정조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흔히 사도세자 이야기를 비극이라고 말합니다. 왜? 영조가 자기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서 8일만에 뜨거운 햇볕 아래 죽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렇게 아버지가 아들을 죽게 만들었을까요? 영조는 52년간 왕위에 있었어요. 나이 서른에 왕위에 올라서 여든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위에 있었습니다만 영조 역시 왕이 되기 전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속에 있었어요.
조선시대 왕들을 보면 대략 20세 전후로 해서 왕이 됩니다. 대개 오십이 채 못 돼서 세상을 떠납니다. 궁궐에서 태어나고 궁궐에서 죽습니다. 왕이 한 번 밖으로 행차하려면 이게 보통 복잡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제한된 궁궐 속에 사람의 장막에 갇혀서 자라나고 거기서 살게 되는 거죠. 과연 그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하게 정치를 했을 것 같습니까. 왕도 미숙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신하들의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 간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죠.
흔히 인현왕후와 장희빈 이야기를 합니다만, 여자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이야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요, 그 배후에는 조선 후기의 두 개의 큰 당파가 있습니다. 인현왕후 등 뒤에는 서인이라고 하는 그룹이 있어요. 유학의 원리에 보다 더 철저한 사람들, 이념주의자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반면에 장희빈 뒤에는 남인이 있어요. 남인은 현실적이고 융통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인 색깔일 뿐이지 권력을 잡고자 하는 데 있어서는 똑같아요. 그런 권력의 앞잡이로 여자들을 왕에게 붙여 놓는 거예요. 그래서 왕의 사랑과 신임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서 권력이 바뀌었던 것이죠. 숙종에게 여러 여자 중 인현왕후가 있었고 장희빈이 있었습니다. 숙종의 사랑이 인현왕후에서 장희빈으로 옮겨 가면서 남인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죠. 그러다가 서인의 공세와 음모 속에 결국 장희빈은 사약을 먹고 죽지 않습니까. 그러나 숙종이 죽으면서 그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경종인데 장희빈의 아들이에요. 그가 왕이 되면서 판세가 뒤집어졌어요. 남인 세상이 됐어요. 그 동안에 날뛰던 서인들은 이제 파리 목숨이 된 거예요. 서인들이 후에 영조가 되는 사람을 지지하는 거죠. 그러니까 영조는 완전히 언제 죽을는지 모르는 위기 속에 있게 되었지요. 경종이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갑자기 죽습니다. 또 판세가 뒤집어졌어요. 영조가 서인 중에서도 노론이라고 하는 강경파의 지지를 얻어가지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왕과 신하들의 이해관계가 또 달라요. 왕은 보다 더 많은 권력을 원하고 신하들은 왕을 앞에 내세웠을 뿐 조선을 양반의 나라로, 유학자의 나라로 이끌어가려고 하기에 서로 깊은 갈등을 가지게 되죠. 영조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어요. 후사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왕조사회에 있어서는 가장 불안한 요소에요. 정치가 안정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다가 마흔한 살에 아들을 하나 얻습니다. 그 아들이 사도세자에요. 그 아들이 열다섯 되었을 때에 영조는 이미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아들에게 대리청정, 정무를 맡기죠. 정치를 배워 흔들림이 없이 나라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도세자가 열다섯 살에 정무를 보면서 일당독재를 하는 노론 강경파에 맞서게 되는 거예요. 그러자 노론 강경파는 당론으로 결정을 해요. 사도세자를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 거기에 음모와 음모가 겹쳐서 결국은 사도세자는 스물여섯에 아버지와 부딪치고 노론과 부딪치면서 뒤주에 갇혀서 죽게 된 것이죠. 왕이라도 맘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나중에 영조가 팔십이 넘어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았을 때에 왕위를 사도세자의 아들인 이산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거죠. 노론이 그것을 막으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끝내는 왕이 죽으면서 유언을 합니다. 그를 왕으로 세우라고. 또 뒤집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정조에요. 정조가 이십여 년 동안 남인세력을 기르면서 노론과 맞서다가 마지막에 정조도 죽잖아요. 정조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스테리죠.
숙종, 경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에 이르기까지 120년 동안 단 하루도 나라가 평안할 날이 없었어요. 왕들도 늘 위기 속에 있었고 왕이 휘두르는 칼날 아래 하루 아침에 판세가 뒤집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피바다를 이루었어요. 이성계 시대부터 마지막 날까지 아주 피가 철철 흘러요.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 기적이에요. 졸더라도 알고 조세요. 정말 기적이에요, 은총이에요. 도저히 이럴 수가 없어요. 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해요. 어떻게 이런 은총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다니엘의 상황이 이런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높은 지위를 맡고 나라를 섬기던 다니엘이 하루 아침에 바벨론이 무너지고 메대와 바사 연합왕국에 의해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는데 거기서도 중용됩니다. 메대의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얼마나 지혜롭고 성실하고 똑똑한 지 그를 120개 주로 나뉘어져 있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세 명의 총리 중에서도 수석총리를 삼으려고 하는 거죠. 그러자 반대파들이 연합을 해서 다니엘을 죽이기로 작정을 한 것이죠. 이런 위기 속에 있는 거예요. 대개 영락없이 죽어요. 헤어나올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어보니 놀랍게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거예요. 성경은 그가 탁월한 정치가여서 정치적 감각으로 그 문제를 풀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아는 비밀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거예요.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놀라운 소통의 길이 있다는 거죠.
오늘 6장 10절에 보니까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다니엘이 알고도, 기도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했다고 하는 것이죠. 그는 고대 왕국의 전제군주제 하에서 사람들의 죽고 사는 것을 좌지우지 하는 왕의 무시무시한 권력보다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또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을 맛본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이죠.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이게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축복이에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정말 그분을 인정하고 그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는다면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 없어요.
다니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그런 말이에요. 하나님만이 내 삶의 기준이시다. 여러분, 삶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이 삶의 기준인 사람이 대부분이죠. 아니면 먹고 사는데 매여가지고 사장님이 내 기준이 된 사람도 있겠죠. 다니엘은 하나님만이 내 삶의 재판장이시고 내 기준이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만 따라가리라. 그렇게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은 응답하셔요.
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윗방에 올라가서 기도했다.’ 아마 거기가 다니엘이 기도하는 기도방, 즉 골방이었던 거예요. 정해진 장소가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나와서 앉아서 예배를 드릴 때 사람들마다 즐겨 앉는 자리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 자리에 앉으면 얼른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잖아요. 낯선 자리에 앉으면 아무래도 어수선하잖아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어디 멀리 출타해서 다른 교회를 나가면 여기가 내가 앉아도 될 자리인지 돌아보게 되잖아요. 그렇게 늘 내 마음을 실어놓는 자리가 중요해요. 참 중요해요. 하나 더 말씀드린다면 앞자리가 좋은 거예요. 옛날부터 그랬잖아요. 앞자리는 금자리다.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그래요. 자세가 중요한 것이죠.
여러분의 기도장소는 어딥니까? 아침에 출근하는 차 안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익숙한 자리니까. 그 시간에 일터로 나가시면서 기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께서 그날 나의 모든 생각을 정리해주시고 마음에 안정을 주시고 평안을 주심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게 해주시죠. 예루살렘 방향으로 창문을 열고. 여러분, 여기 회교도들이 기도하는 것 아시죠? 메카를 향해서 기도하잖아요. 회교사원은 말할 것도 없고 호텔방에도 ‘kiblat’이라고 메카 방향 표시가 있잖아요. 그 방향을 향해서 기도하라는 것이죠.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예루살렘을 향하여 문을 열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다니엘이 윗방 ‘창문을 열고 기도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뜨일텐데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려면 때로는 사람을 의식하게 될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조금 더 용기를 내세요. 바로 그 때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찾으시는 거예요. 그 때 기도하세요. 그런 생각이 나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우리에게 일으켜주신 거예요. 그 때 사람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세요.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다.’ 오늘 갑자기 기도한 게 아니에요. 습관이에요. 거룩한 습관이에요. 그런데 거룩한 습관은 중독이 되지 않더라고요. 못된 습관은 중독이 되는데 거룩한 습관은 아무리 은혜 받고 좋아도 그 다음 날 쉬면 벌써 다 옛날로 돌아가는 거예요. 참 희한하죠. 좋은 것은 절대 중독이 되지 않아요. 그건 항상 얻기를 힘써야 돼요. 우리가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있는 대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대로 하지 말고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 격려하면서 더 열심히 나아가라.
며칠 전 뉴스를 보니까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남자는 77세고, 여자는 84세 라고 하는 것 같아요. 남자보다 7년을 더 산다고 해요. 평균이고 확률이지만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나? 여러분 며칠 안 남았어요. 이제 남은 것은 뭐냐?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 외에 다 치워도 돼요.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책을 다 치워버렸어요. 성경만 하나 딱 하나 놔두고 계셔요.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을? 책이 다 유익하고 좋은 것이지만 이제 성경 외에 뭐가 더 내게 필요하리요. 그래서 치웠다고 해요. 그 의미가 굉장히 큰 겁니다. 다른 책은 다 열어놨는데 성경만 덮고 계신 분 계시나요? 그것 완전 인생 거꾸로 사는 거예요.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하루 세 번씩 기도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얘기예요. 어떤 일이든지 하루에 세 번 하려고 해보세요. 다른 것 다 못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우선 순위 넘버원이라는 말이죠.
지난 번에 박지성이 인터뷰하는 걸 보니까 박지성은 운동할 때만이 아니라 자나깨나 축구만 생각한대요. 하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최고의 팀에 가서 좋은 실력을 내겠어요. 그러나 자나깨나 축구만 생각하니까 모든 명예와 물질이 따라오는 거예요. 원리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우리가 자나깨나 하나님 말씀과 기도에 젖어들기로 작정하고 내 환경을 바꾸면 모든 게 따라오는 거예요. 남편의 건강도 기업도 자녀들의 학업도 인생의 진로도 결혼 문제도 다 따라오는 거예요. 그 안에 다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결혼한 일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계산대로라면 오늘의 남편과 아내를 만날 수 있어요? 만날 수 없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허물도 예뻐 보여요. 하나님이 눈 멀게 하신 거죠. 그것이 인생의 원리에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야 연약한 그를 사랑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요. 내 시퍼런 이성으로 보면 그의 허물은 나에게 뼈 아픈 가시에요. 사도 바울도 말했죠. 이렇게 평생 헌신하며 전도하는데 병으로 인해서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주님, 이 병을 제발 고쳐주십시오. 남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도 바울이 힘을 다해서 기도하는데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이미 충분하다. 네 몸에 고쳐지지 않는 질병을 준 것은 너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도록 내가 심어놓은 안전장치다’ 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남편 아내가 안전장치에요. 왜? 조금만 잘되면 교만한 게 인생이거든요. 조금만 잘 되면 하나님 떠나는 게 인생이거든요. 그러니까 영원히 떠나지 않도록 한 방에서 같이 사는 사람에게 안전장치를 심어 두신 거예요. 그거 믿음으로 받으세요. 남편 때문에 못 살겠다,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고 얘기한다면 아직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에요.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기도로만 가능한 거죠.
지금은 우리가 보통 앉아서 기도합니다만 사실은 우리가 너무 높아진 거예요. 여기 회교도들 기도하는 것 보세요. 완전히 엎드러져 이마를 땅에 대고. 그게 유대인들의 기도법이에요. 혹 조용히 기도하고 싶으실 때 한 번 방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보세요. 마음이 달라지죠. 자세가 마음을 바꿔요. 마음이 변해야 자세가 바뀌기도 하지만 자세를 낮춤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죠.
보세요. 아직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았습니다만 다니엘은 벌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고 감사를 드려요. 감사야말로 최고의 신앙 표현이에요. 입에서 비판이 나오는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에요. 어려움이 있는데도 그게 감사로 받아들여지는 사람. 왜? 결국에는 하나님이 자기의 선한 뜻을 이루실 것을 믿기에 그 믿음을 가지고 선포하는 것이죠. 감사하는 사람. 빌립보서 4장 6-7절에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사람들의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게 바로 다니엘의 비밀이었어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주시는 삶의 비밀이에요. 삶의 열쇠에요.
벌써 12월입니다. 올해만큼 참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올해는 한국 사람이 이 나라에 선교하러 들어온 지 만 40년, 1971년 9월에 첫 선교사가 왔단 말이에요. 성경에서 40년은 한 세대를 말해요.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되겠다. 250가정의 한인선교사들이 매년 수련회를 하는데 이번 수련회만큼은 40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40년을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하면 좋겠다 하는 열망이 있었어요. 2년 전부터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막 주시는 거예요.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 아시죠? 하나님이 ‘그래? 그럼 네가 해라.’ 그래서 저에게 총무를 맡기셨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계속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잖아요. 새벽마다 수요일마다 기도하고. 지난 6월에 있었던 40주년 기념 행사와 선교사 수련회는, 이제까지 20여 년 동안 해온 수련회의 패턴을 완전히 바꿨어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일방적인 전달에서 상호간의 소통으로 완전히 바꿨어요. 어른들의 모임에서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의 모임으로 바꿨어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어요. 누가 똑똑해서 한 게 아니에요. 계속 기도하면서 자꾸 하나님이 새로운 생각을 주셨고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엮어주셔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 1972년 7월 첫 주일에 한인연합교회가 시작되었어요. 내년이 40주년이에요. 한인교회가 이제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지만 앞으로 새로운 40년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 5월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간다리아 쇼핑몰에서 연합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초청을 받아서 갔어요. 그날 순서 첫머리에 동영상이 있었는데 30년 전 한국 중보기도회의 횃불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할는지 젊은이가 길을 찾아 헤매는 장면에서 마지막에 ‘아, 그래.인도네시아다!’ 하고는 인도네시아로 뛰어오는 장면이 마지막인데, 동영상이 끝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집회장 뒤편에서 한 사람이 횃불을 들고 들어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순서가 있었던 거예요. 그걸 한국 사람이 맡아야 된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은 오늘 당신밖에 없으니까 당신이 맡으라고 저보고 갑자기 부탁을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그 화면에 나온 20대 청년이 이제 30년 지났으니까 나하고 딱 맞는구나.’ 그래서 제가 횃불을 들고 들어갔는데요, 그날 그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천천히 중앙통로로 올라가서 인도네시아 대표에게 그 봉화를 전해주었어요. 한국에서 붙은 성령의 불이 오늘 인도네시아에 왔다고 하는 것을 상징하는 뜻으로 제가 전달했어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참, 하나님은 연출도 잘 하셔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쓰십니다. 홍해를 가르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 다시 40년이 지난 후에 이번에는 요단강을 가르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요. ‘너희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 내가 내일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을 행하리라’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 앞에 서서 요단으로 들어가라. 지금 은혜 받고 기도한다는 우리들이 다 제사장이에요. 하나님이 말씀을 붙들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라. 그때 강물이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같이 손에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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