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그만이 아는 계획[멕시코100년이민사,바벨론포로하나님의섭리]/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7:37

080817 그만이 아는 계획

성경본문(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29:10-14)

 

2005 515일은 멕시코이민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약 백 년 전에 배 한 척에 1,033명의 남자, 여자, 아이들이 한국을 떠나 멕시코에 도착한 날이죠. 그들은 멕시코에 에네깽 농장에 일하러 간 것입니다. 너무나 가난했기에 멕시코라고 하는 그 낯선 나라에 새로운 삶을 꿈꾸며 떠나간 겁니다. 그러나 하와이 이주민과는 달리 그들은 단 한 척의 배로 간 그 공동체 그것을 끝났습니다. 계속해서 이주해 가지 못했어요. 일본사람들의 방해로. 그들은 고립된 것이죠. 그래서 그 에네깽 농장의 계약 노동자로 갔습니다마는 가서 겪는 현실은 너무나 처참했어요. 그들의 고통이 전해져서 당시 한국의 황성신문에 보도되기를 하와이 수수농장이 지옥이라고 하지만 멕시코 에네깽 농장에 비하면 천국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어려웠는가. 또 마침 그때 멕시코를 비롯해서 중남미 사회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사회가 혼란하니까 이들이 갈 데가 없었어요.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그대로 농장에 머무르게 되고 일부 사람들은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소설가 김영하 <검은 꽃>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멕시코 이주민들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그 중에 멕시코 이웃나라 과테말라가 혁명에 휘말렸을 때 한인 40명이 우리가 좀 저기 가서 삶을 찾아보자고 해서 용병으로 가요. 그래서 그들에게 약속한 돈을 받으면 그것을 가지고 잘 살아보자. 그런데 들리는 고국의 소문은 이미 우리나라는 망했습니다. 돌아갈 고국도 없어요. 우리가 이 돈을 받으면 이 밀림 한 복판에다가 우리끼리 나라를 세우자. 이름도 정했어요. 신 대한이라고. 얼마나 간절하면서도 그 얼마나 비현실적인 꿈입니까. 그 전쟁터에서 돈도 못 받고 한 사람 한 사람 총맞고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멕시코에 간 이주민들은 간혹 고국의 소식을 듣지만 돌아갈 수도 없고 돈도 없고 또 남의 나라에 빼앗긴 땅에 갈수도 없었던 거예요.

세월이 흘러서 드디어 그들은 멕시코 사회에 파고들어가 혼혈을 이루면서 이제까지 한국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한 3만 명 정도 되고 그 독특한 끈기와 억척스러움을 가지고 다 중류이상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백 년 만에 드디어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루고 부흥을 이루어서 한국의 기업들이 멕시코에 진출합니다. 그러면서 2005년에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서 그 역사를 추적하는 다큐멘타리를 찍기 위해서 갔어요. 제가 그걸 보고 참 감격스러운 장면이 있었어요. 그 취재진이 한 증인을 만났어요. 나이가 백세였어요. 1905년 그 배에서 옮긴 이주민 중에서 첫 태어난 아이였어요. 그가 벌써 백살 할아버지가 된 거예요. 그를 만났어요. 그의 백 년 인생 속에 멕시코 이주민 백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거죠. 그런데 놀란건요, 그가 한국말을 아주 잘해요. 글도 잘 읽어요. 이게 왠 일인가 했더니 그 분이 아주 낡은 성경 하나를 보여 줍니다. 이건 우리 어머니가 쓰시던 성경이요, 내게 물려준 성경인데 내가 어려서부터 우리 어머니는 항상 찬송을 부르며 나에게 성경을 읽게 했고 신앙을 가지게 했습니다. 저는 그 무명의 그의 어머니, 그 분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교회를 자기의 이익의 수단과 발판으로 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정직과 진실을 찾는 분이시라면 이름도 남겨 놓지 못하였지만 그 어머니야말로 생명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분이죠. 한인 공동체와 그들의 중심에 놓여 있는 한인교회, 그들이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서 좌우를 알지 못하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그들에게 등불같이 교회가 있었고 그곳에 예배가 있었고 말씀이 있었어요. 그들은 고국에 돌아갈 수 없었지만 고국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서 그 없는 돈을 모아가지고 조국의 독립운동에 써달라고 돈을 모아 보내기도 했어요.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한복판에 교회가 있었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 보면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갑니다. 세 차례에 걸쳐서 끌려가요.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서 여호야김왕 때 왕이 포로로 끌려가요. 그리고 다시 유다 사람들이 여호야긴이라는 어린 왕을 세웠는데 느부갓네살이 마음에 안들었던지 군대를 데리고 다시 와가지고 왕을 세운지 40일만에 왕과 함께 왕족들을 다 포로로 잡아서 끌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임의로 한 사람을 왕으로 세웠어요. 시드기야라고 하는 왕을 세웠어요. 그런데 이 왕도 11년 동안 어떻게 하든지 바벨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다가 끝내는 느부갓네살의 마지막 침략을 당해서 두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는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 나라가 이렇게 됐으니 유대백성들이 어떻게 했겠어요. 성전에 모여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죠.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던 하나님, 우리에게도 이 위기 속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셔요. 내가 너희를 직접 공격하리라. 느부갓네살이 와서 너희를 치는 것은 그 배후에 저를 움직이는 내 손이 있다고 말씀하셔요. 내가 너희를 염병과 전쟁과 기근으로 치겠노라. 그리고 너희를 무자비하게 다루겠노라. 그리고 너희를 포로로 끌어 가겠노라.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과 고난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고 돌아서는 듯했다가 또 좀 살만하면 헛된 우상을 좇고 세상의 욕망을 좇는 너희를 고치기 위하여 그 병을 고치기 위하여 더 이상 반창고 바르는 것으로는 안되겠다는 것이죠. 너희를 데리고 가서 포로생활 속에서 수술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 그러니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는 예레미야의 고통이 있어요. , 한나라의 선지자라면 적이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하는 이 간절한 백성들의 기도를 대변해서 하나님께 외치고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가지고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정 그게 안 이루어지고 망하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 그게 선지자일 텐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저 백성들에게 말하라. 바벨론에게 대적하지 말아라.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라고 하니 매국노 아니에요. 예레미야는 매국노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매국노라고 욕을 했어요.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심지어는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님이 나를 속이셨습니다. 나는 여기가 사는 길 인줄 알고 따라왔더니 알고 보니 우리를 이렇게 다 망하게 하시니 나를 속이신 것 아닙니까. 내가 도망가고 싶지만 주님이 너무 강하셔서 나를 꺾어 부러뜨리시고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지금 끌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유다 백성 사이에 끼어가지고 고통 당하는 자기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무화과 환상을 보여주셔요. 무화과가 잘 열매를 맺었어요. 그런데 다른 한 쪽을 보니까 다 썩어가고 있어요. 썩어가는 냄새가 나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기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다.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은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남아서 끝까지 버티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다. ,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에. 포로로 끌어가서 너희의 마음을 완전히 내가 새롭게 하겠다. 그래서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게 하겠다. 이게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바벨론에 벌써 포로로 끌려간 왕과 유다 백성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너희는 그 곳에 가서 정착하라. 과수원도 가꾸고 시집장가도 가고 그 도시가 잘 되기를 함께 힘 쓰고 그 도시가 평안하기를 기도하라. 너희가 오늘 울부짖으며 기도하지만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70년 후에 너희를 반드시 돌아오게 하리라. 70년 후면은 간 사람들은 죽어야 올 거 아니에요. 너희들은 다 죽고 너희 다음 세대에 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회복시킨 다음에 너희를 불러드릴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셔요. 이거는 은혜로운 약속이다. 이거는 재앙이 아니고 번영이다. 여기에 새로운 소망이 있다. 그곳에서 너희가 진정으로 나를 찾게 되고 그리고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 이해되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계획이 있다. 그러므로 나를 믿고 따르라.

제가 좀 부끄러운 기억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교사를 했을 때 집하고 학교 거리가 좀 애매해요. 버스도 불편했고 한번 걸어가 보니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바쁜 아침에는 안되겠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몇 년을 다녔어요. 그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런데 사람은 얼마나 간사한지 주위에 있는 선생님들이 오토바이로 갈아타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갈등이 생겼어요.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얘기도 하고 하던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휙 가버리더라고요. 아니야, 나도 이제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야 하겠지. 했는데 그때 마침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이 지방에 내려가게 되었는데 자기가 타던 오토바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가겠다는 그 풍문을 제가 들었어요. 그래서 안 된다는 우리 집사람을 못살게 굴어서 드디어는 그 중고 오토바이를 제가 넘겨 받았습니다. 그거 몰고 학교 가니까 얼마나 빨리 가는지 신나더라고요.

그런데요, 그 재미도 얼마 안가요. 그 다음에 어떤 위기를 느꼈느냐 하면 확실히 오토바이는 위험하더라고요. 아차차하고 신호를 지나칠 때가 여러 번 있었어요. 슬슬 걱정이 오더라고요.

드디어 그 해 제가 오토바이를 구입하고 석 달 반이나 됐는가 그 해 마지막 날입니다. 1231, 그때는 제가 교회 집사로 봉사하고 있었거든요. 찬양대 총무를 했어요. 신년 예배를 드리기 전에 찬양 대원들이 대장님 집에서 모이니까 그날 송년회도 할 겸 선물을 잔뜩 박스에 넣고 오토바이 뒤에 끈으로 묶어서 그 자리에 가는데 큰 사거리에서 제가 그만 아차 하고 빨간 불인데 그냥 직진을 했어요. 다행히 다른 차들이 가만히 있었기 다행이지 식은 땀이 주욱 나면서 진짜 후회가 되더라고요. 깜깜한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데 아차 하니까 그냥 지나가는구나. 내가 오토바이 괜히 샀구나. 그 대장님 댁에 가서 일을 다 마치고 신년예배를 가야 하니까 얼른 서둘려 나갑시다 하고 나와 보니까 오토바이가 없어 졌어요. 도둑이 가져간 거예요. 그 도둑도 이상해요. 헬멧을 두고 오토바이만 가져 갔어요. 그런데 그 마음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하나님이 날 살려 주셨구나. 물건 잃어 버리고 그렇게 기뻐하기는 또 처음이에요. 내 고집대로 하면 때로는 하나님이 너무 막무가내니까 들어주시기는 해요. 그러나 그걸로 반드시 한번은 코 깨집니다.

우리의 생각은 정말 너무 짧아요. 금방 벌여놓고 돌아서면 후회 할 것을 그 순간에는 욕심에 매여가지고 반드시 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런 어리석음.

제가 장신대 신대원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는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지 제가 가고자 했던 대학의 총장이 우리 교회에 오시는 일이 생겼고 그 분을 만나는 일이 생겼고 그분이 오라고 했고 모든 순서가 척척 이루어 졌어요. 드디어 교회에 사임 인사도 하고 짐도 다 나누고 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했는데 거부됐어요. 깜짝 놀랐어요. 그때까지 비자 거부된 사람을 못 들어 봤거든요. 부랴부랴 다시 정리해서 또 냈어요. 또 거부 됐어요. 하나님께서 꽉 막으셨어요.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시간이 있었어요. 갑자기 잘 섬기던 교회를 사직을 하고 몇 달 비어 있으니 매주 교회 나가는 거 보통 고민이 아니더라고요. 이번 주에는 영락 교회를 갈까 하는데 두 번은 못 갑니다. 친구 전도사들이 줄줄이 서있기 때문에 두 번 가면은 또 물어봐요. 왜 또 왔냐고.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한국에 자주 나가시는 분들은 그 주간 교회 나가기 쉽지 않겠구나. 목사, 전도사도 외지에 가서는 교회 찾아가기 힘든 게 현실인데 그래서 제가 여러분 마음을 알아요.

몇 달을 고생하다가 결국에는 제가 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단독목회를 하게 됐고요, 참 어려움이 많았는데 세월이 지나서 제가 뭘 깨달았냐 하면 역시 하나님은 정확하시다. , 이것은 안성맞춤의 은혜였구나. 여러분, 안성맞춤 아세요? 안성은 원래 유기, 놋그릇으로 유명하잖아요. 양반들이 주문을 하면 그 주문에 맞게 딱 맞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하나님께서 안성맞춤으로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나를 이끌어 가셨구나. 그걸 모르는 나는 내 꿈이 깨졌다라고 원망하고 힘들어 하고 괴로워했지만 알고 보면 아니에요, 하나님은 너무나 정확하세요. 우리를 아셔요.

<뜻밖의 선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하시는 홍석환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그는 충청도 시골 사람이더라고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났어요. 그러나 너무 가난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때 부흥회에 오신 목사님이 로버트 슐러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 여러분 아세요? 예전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 일어날 때 한창 유행했던 복음이죠. 적극적 사고방식 여기에 도전을 받았어요. 나도 저렇게 돼야지. 그리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철도 고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철도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간 대학을 다니고 드디어는 신학 대학원을 다니고 그리고는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박사과정 공부를 했어요. 그 어려운 고비고비를 넘어서 박사 학위를 땄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목회를 하게 됐어요. 그거 다 하나님이 도우셨지만 그러나 그 분의 기억에 추운 겨울날 차를 몰고 어디를 가다가 차에 카세트를 하나 틀었는데 자기 아이들이 듣는 카세트였대요. 들어 보니까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저 외로운 응달에 서서 그 동요 같은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펑펑 나더래요.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내 야망을 이루려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싸인을 들은 것이죠. 그럴 수 있어요. 교회에서 열심히 할 수 있는데 정말 내 동기를 한번 잘 살펴 보세요. 누구를 위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만 이분에게 열여섯 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놀랍게도 뼈암, 악성 뼈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한달 밖에는 못산다는 판정을 받은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됐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거죠. 그의 첫 기도는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은 것 같애요. 응답이 없어요. 그러니까 기도가 바뀝니다.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목사 일을 더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내 아들을 고쳐 주십시오. 그래도 응답이 없는 거예요. 이제는 하나님께 의문의 항의를 하는 거죠. 내가 잘못했는데 왜 내 아들을 치십니까? 하나님. 내가 벌을 받아야 된다면 나에게 주시지 왜 내 아들을 치십니까? 드디어 팔 개월 만에 아들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그 팔 개월 투병과 그리고 그 이후에 몇 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맨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하나 듣게 됩니다. 왜 하필 이런 고통이 나에게 있습니까? 라고 묻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 너는 아니어야 한다고 말을 하느냐 왜 네 아들은 병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느냐, 또 말씀하셔요. 내가 그를 데리고 있을 터인데 네가 왜 걱정하느냐. 그가 깨닫습니다. 우리 인생은 마치 퀼트를 하는데 뒤에서 보는 것과 같아요. 한창 자수를 만드는 거 뒤에서 보세요. 뭔지 아무것도 몰라요. 시커먼 것뿐이에요. 그러나 그 앞에서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우리 짧은 인생을 가지고 영원을 보려고 할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영원 속에서 오늘 우리를 바라볼 때에만 올바로 보이고 그것이 믿음이에요.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잠깐 맡겨두신 선물이었구나, 이게 은혜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돼요.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이 죄인이 불행을 모르고 사는 것이야 말로 참된 불행이구나. 비로소 고난의 은총을 알게 돼요. 그리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눈을 열게 됩니다.

그 교인 중에 이제 막 미국에 이민 온 젊은 신혼 부부가 있었어요. 말도 불편하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러니 목사님만 붙드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급하게 온 거예요. 목사님, 빨리 와 주세요. 아내가 분만을 해야 되는데 의료보험도 없고 대책이 없는 거예요. 목사님을 끌고 다니는 거예요. 다 도와줬습니다. 어떡하든지 최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 도와줬어요. 분만실에 들어가는데 그들이 말하는 거예요. 목사님이 같이 들어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안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목사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내 아내가 분만할 때도 안 들어갔는데 왜 남의 여자 분만하는데 내가 들어가야 되느냐.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두 사람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끌려들어 가서 그 손을 붙들면서 도와줬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 끝난 다음에 나와서 복도에 주저 앉았다는 거예요. 힘이 다 빠져가지고. 그런데 그 일이 끝난 다음에 그 분들이 편지를 보냈어요. 목사님, 우리는 미국 와서 처음으로 교회를 와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뭔지도 잘 모릅니다마는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적어도 목사님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을 통해서 어려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미신 거죠.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에요. 그 노래 모르세요? 있을 때 잘하라고. 사랑하기도 짧은 세월이에요. 한번 오늘의 이 갈등을 십 년 후에 내가 어떻게 생각할까 돌아 보세요. 다 잊어 버리죠. 성경이 말합니다.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으면

그 호스피스.. 퀴블러 여사가 있습니다. 그 분이 임종을 맞게 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 본 결과 공통점이 있었어요. 살아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하루하루를 충만한 기쁨으로 살고 싶다. 여러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래서 정작 퀴블러 여사는 2004 8월에 78세로 죽게 되었는데 그는 유언하기를 나는 이제 여러분을 떠나 은하수로 가서 마음껏 춤추고 놀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장례식 순서 가운데 자녀들이 자그마한 상자를 여는 순서가 있었어요. 거기에 호랑나비가 나와서 막 날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조객들에게 준 작은 봉투가 있었는데 그 시간에 같이 열어 달라고 해서 같이 열었더니 수 많은 나비들이 쏟아져서. 죽음은 끝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현실이에요.

교회는 그저 내 문제를 하나님을 불러서 해결 받는 곳이 아니에요. 그것을 넘어서서 종말론적인 신앙고백을 가지고 사는 거예요. 오늘의 이 고통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은혜가 있다고 하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거예요. 다윗이 고백했듯이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영원토록 여호와의 집에 거하리로다. 이런 신앙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기도

믿는다 하지만 늘 그 기도와 그 고백이 너무나도 때묻고 욕심덩어리였음을 고백합니다. 말씀하셔도 끝내 듣지 못하기에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계획으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고통을 주시고 아픔을 주셔서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시고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 영원한 소망을 발견하게 하시니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