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의를 부어주리라[하나님의절대주권,사생아용재오닐의성공비밀]/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7:25

080831 의를 부어주리라 (이사야 45: 7-13)

성경본문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서 들으셨겠습니다. 며칠 전에 필리핀에 선교여행차 갔던 목사님 일행 열명이 빗길에 차가 전복되어 현장에서 다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봉천동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보다 더 좋은 영어 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필리핀을 다녀보다가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 부부, 부목사 부부, 또 다른 부목사. 제가 그 교회의 오늘 예배가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그 교회 식구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뉴스에서는 그저 단순한 교통사고로 잠깐 짤막하게 보도되고 또 우리들도 직접 대면해서 알지 못하는 관계로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그 뉴스를 들었던 그날 낮에 한국에서 온 선배 목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후배 목사가 몇 년 전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떡해요? 젊은 분이었고 참으로 일을 잘하는 분이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서 무슨 일로 그렇게 돌아가셨는가 물었습니다.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더 생생한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되었습니다.

공자를 따르던 제자는 3천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공자가 가장 인정하고 아꼈던 수제자가 안회 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잘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가 서른한 살로 요절했을 때 공자는 크게 탄식 합니다.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그 제자의 죽음을 그토록 애달파 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가족을 잃을 때, 또 가까운 사람을 잃을 때, 더구나 사고나 고통스런 병으로 잃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죠.

오늘 말씀에 진흙이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에게 나를 왜 이런 막사발로 만들었느냐고 물을 수 있겠느냐. 감히 물을 수 없다. 아주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 합니다마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많은 단계가 생략된 거죠. 그렇게 단호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은 애절하게 묻고 또 묻는 그런 의문이 있었던 까닭이죠. 그러니 이건 아주 역설적인 표현이죠. 물을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합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그 가운데 생명을 부으셔서 우리로 태어나게 하시고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원래 이 본문은 바벨론에 포로로 붙들려가서 그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바사)고레스 라고 하는 인물을 일으켜 세우셔서 바벨론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새로운 정책을 펴서 포로 되었던 모든 사람들을 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죠.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해방과 자유를 주신 거예요.

오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비록 나를 알지 못할찌라도, 고레스는 이방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가 하나님을 알겠어요? 그가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내가 그를 들어서 오늘 이 일을 이루었노라. 역사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시는 거죠.

벤 카슨이라고 하는 샴쌍둥이 분리수술의 권위자인 의사가 있습니다. 1994년에 많은 의학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쌍둥이 분리 수술을 했는데 실패합니다. 왜 이런 일을 나에게 맡기셔서 내 눈 앞에서 환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하시고 인간의 무력함을 직면하게 하십니까? 그 일 까닭에 오랫동안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삼 년 후에 그가 다른 쌍둥이 수술에 성공합니다. 최고의 성공적인 수술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때 그가 이전에 내가 처절하게 실패하면서 얻었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생에 그저 한번으로 그치지 않거든요. 또 다시 세월이 흘러서 또 다른 쌍둥이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스물아홉 살 된 자매인데 머리가 붙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아주 밝게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대학공부도 했어요. 변호사 자격도 땄어요. 그런데 이제는 수술을 해 달라는 거예요. 당신들이 수술을 하려고 할 때 죽을 확률은 50%가 넘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수술이 잘못되어 죽어도 좋습니다. 수술해 주십시오. 왜 그랬느냐, 둘의 꿈이 달랐기 때문이에요. 공부해 보니까 나는 이 길로 너는 저 길로 자기 나름의 꿈을 이루고 싶은 거예요. 더 이상은 붙어 다닐 수 없는 거예요. 그 수술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주위에 있는 많은 의사들이 말합니다. 이제까지 쌓았던 당신의 명성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너무나 위험합니다. 성공할 확률이 너무나 희박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위험 속에서도 환자들의 강력한 열망을 이기지 못해서 다시 한 번 수술에 도전합니다. 53시간에 걸친 수술이었습니다만 수술 도중에 과다출혈이 일어나서 그만 죽게 됩니다. 그들은 죽었어요. 이 사람은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한가지를 붙듭니다. 분명히 답은 있다. 다만 지금 모를 뿐이다. 장차 언젠가 이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오늘의 실패와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훗날 다른 사람을 건강하게 고칠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의 희생은 고귀한 희생이 될 것이다.

여러분, 오늘 모른다고 아니라고 부정하지 마세요. 항상 답은 있는 거예요. 다만 오늘 내가 모를 뿐이에요.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사야 55 8-9절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의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생각은 너의 생각보다 높으며 내 길은 너의 길보다 높으니라. 그래서 최고의 지혜자였다고 하는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일이 어떻게 될는지 하나님이 우리로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일을 행하셔요. 비록 오늘 그것을 우리 앞에 다 보이지 않으셨어요. 그러나 분명한 뜻을 가지고 일을 행하신 거예요.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씀하고 계셔요.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 일을 행하노라. 오늘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나와 내 가족과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높은 생각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 일이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언더우드, 우리나라에 최초로 온 선교사의 전기를 다시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1885 4 5일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가 우리나라에 왔어요.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무질서 했어요. 그래서 언더우드의 기도가 있죠. 하나님,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산천초목만 황량한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마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는지 가늠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시작해야 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기도로 표현했습니다.

<언더우드>, 그 책을 보면, 그 고귀한 뜻을 가지고 이름도 생소한 조선이라는 나라에 들어왔던 선교사들 가운데는 그래도 언더우드 같이 30여 년 이 땅에서 선교한 분들도 있었지만 잠깐 스쳐 지나간 분들도 있었어요. 호주 선교사로 데이비스라고 하는 사람이 1889년 여름에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자기의 일터를 부산으로 정하고 내려가다가 유행하던 천연두에 결려요. 그 병든 몸을 끌고 부산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다음해 4월에 죽었어요. 세상을 떠났어요. 그야말로 말뚝 하나 꽂지도 못하고 죽었어요. 또 캐나다인으로 메켄지라고 하는 선교사가 왔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후원도 못 받고 YMCA 친구들의 후원 약속을 받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어요. 언더우드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가 있다는 황해도 소래에 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과 똑같이 먹고 한복을 입고 초가집에서 함께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병에 걸려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다가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해서 권총 자살을 했어요. 한국에 들어와서 채 2년도 넘기지 못하고 서른넷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어요. 그러나 이 소식이 캐나다에 들려지면서 캐나다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한국을 위한 선교회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 선교를 지원하게 돼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어요. 호주 선교사 데이비스의 죽음도 호주에 알려지면서 호주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선교사로 지원하게 돼요.

그저 짧게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1, 2년 뜻하지 않게 목숨을 잃고 생을 마감했어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 손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 땅을 향하게 했어요. 그래서 언더우드가 들어온지 4년 만에 예수를 믿는 사람 100명이 생겨났어요. 이건 엄청난 일이에요. 20년 만에 6만 명의 크리스찬들이 일어나게 됐어요.

저는 메캔지데이비스 선교사의 짧은 삶과 안타까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운동회에서 잘 뛰어보겠다고 달렸는데 글쎄 발에 걸려서 넘어지고만 어린아이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는 좋고도 싫은 날이었습니다. 우선 수업을 안 하니까 그게 참 좋고, 도시락에 계란이라도 더 얹혀지고 용돈이라도 받아서 오징어 다리라도 사먹을 수 있는 날이지만, 문제는 100미터를 뛰어야 되거든요. 저는 영 달리기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8명이 뛰면 8등 아니면 잘하면 7등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서 하려니 이 얼마나 괴롭겠어요?

어느 날인가는 7등을 했어요. 내심 용기를 내어 어머니에게 얘기했어요. 기뻐하시더라고요. 밤낮 8등만 하다가 7등 했다니까. 그래, 잘했어. 누가 그렇게 얘기하겠어요? 내 어머니니까 그렇게 얘기 하시죠. 그저 저를 낳을 때 온전히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낳았다고 늘 아쉬워하던 분이었기에 7등 했다고 하니까 얼굴이 환해지면서 아이고, 잘했다 하시는 거예요.

뛰다가 넘어질 수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은 못했다, 졌다고 할는지 몰라도 엄마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 같이 안타까워할 거예요.

선교사들의 전기를 읽는 동안에는 밤에 잘 때 행복했어요. 마음에 감동을 안고 잠자리에 드는 거예요. , 이젠 내 차례다. 짧게 살았건 길게 살았건 큰 일을 했건 못했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하던 그들이 이제는 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으로 갔구나. 이제는 내 차례다. 저들은 그런 고통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픔 속에서 살아야 했는데 도대체 나는 무엇이길래 오늘이 평안함 속에서 살게 하시는가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 주무실 때 책 한 페이지 읽고 주무세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책을 읽고 주무세요. 뒤숭숭하게 드라마 이상한 거 보고 주무시지 마세요. 잠자리 흉합니다. 감동을 가지고 주무세요. 그러면 새벽에 일어날 때 몸이 달라요. 감동을 안고 자면 아침에 일어날 때 벌떡 일어나요. 감사함으로 일어나요. 하루 온종일 피곤해 있었을지라도 적어도 자기 전 짧은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세요. 나를 살리는 길이에요.

오늘 하나님이 놀라운 말씀을 하셔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는 우리에게 그 말씀을 해석하셔요.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우리는 모르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에요.

남이 장군 이야기 아시죠? 조선 세조 때 남이 장군은 원래 왕족이었어요, 총명했어요, 용맹했고요. 두만강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세조가 병조판서 즉 국방부 장관을 삼았어요. 그때 나이가 스물 다섯이에요. 너무 잘나가면 뒤에서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도 헐뜯어서 할 수 없이 세조가 직을 물렸어요. 세조의 아들이, 나중에 예종이 되었는데 남이가 너무 잘나가니까 걱정이 됐어요.

 드디어 그가 왕이 됐어요. 남이를 모함하는 이야기가 들어왔어요. 남이를 국문하는 거예요. 문초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는 그 고통을 견딥니다. 그러다가 그만 고문이 지나쳐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장수가 다리가 부러졌으니 어떡해요?  그때 남이가 그만 포기 합니다.  꿈이 깨졌어요. 좌절해요. 말도 안 되는 모함에 자기 죄를 자백합니다. 내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왕 옆에 영의정 강순이 서 있었는데 그런데 한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 강순도 함께 역모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정이 펄쩍 뜁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합니다. 임금이 믿으려 하지 않았는데 남이가 다시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도 함께 역모에 가담했습니다. 임금 옆에서 죄인을 문초하던 영의정이 이번에는 자기가 묶여서 매를 맞는 거예요. 팔십 노인이 매를 맞으니 어떻게 견디겠어요? 매가 괴로워서 그만 내가 그렇게 했습니다. 억지자백을 하게 돼요. 함께 감옥에 갇혔어요. 이제 사형당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영의정이 하도 기가 막혀서 남이에게 말합니다. 이 놈아, 무슨 원수를 졌길래 나를 끌고 들어가는 거냐. 남이가 말합니다. 내가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당신이 버젓이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어찌 죄가 아니란 말이오. 같이 죽었어요.

여러분, 역사를 보면 이렇게 원통한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무당들이 남이의 혼을 부르는 거 아니에요. 원통한 사람의 한을 풀어 주겠다고. 그러나 원통한 걸로 얘기하면 예수님같이 병자를 고치고 이적을 베풀고 했는데도 십자가에 못박히는 상황만큼 원통한 상황이 어딨어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에게는 그 원통한 상황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어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어요. 부어주시는 사랑이 있었어요. 그것이 있었기에 못박는 자들을 향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들이 지금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게 진정한 열쇠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계셔요. 그 하나님의 뜻은 사랑이라고 하는 렌즈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어요. 오늘 내가 다 낱낱이 밝히고 헤쳐가지고 진실을 밝히리라 하지 마세요. 그럴 자격도 없고요,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 사랑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도 리차드 용재 오닐 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예요. 지금 30세예요. 비올리스트구요, 줄리어드 음대를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했고 그로 인해서 비올라의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는 사람인데 놀랍게도 그의 인생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요. 그의 어머니는 6.25 전쟁 고아였어요. 그래서 5살에 미국의 오닐씨 부부에게 입양되어 왔어요. 얼마 있지 않아서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고 언어장애가 왔고 정신지체가 됐어요. 그런데도 그 부모들이 그를 따뜻하게 품어 주었어요. 길러 주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처녀때 누구에겐가 휘둘려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용재 오닐이에요. 사생아죠. 그러나 오닐 부부는 복순이라고 하는 처녀가 어디서 덜렁 임신해 가지고 왔음에도 따뜻하게 사랑으로 기른 거예요. 그 조부모가 음악을 들려 주고 음악을 가르쳐 줍니다.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가 혼자서 어린 용재 오닐을 차에 태워 레슨을 데리고 다니면서 늘 얘기합니다. 열심히 해라. 네가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너를 도우신다. 네가 열심히 해야 네 어머니를 지켜줄 수 있을 것 아니냐.

드디어 용재 오닐은 열다섯에 독립을 하고 뉴욕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오늘의 성공을 이룹니다. 왜 그라고 의문이 없겠어요. 왜 갈등이 없겠어요.  그러나 그 모든 역경을 사랑으로 이겨요. 피부 빛도 다른 그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 입어서 그 모든 것을 다 이겨요. 그가 한국에 오게 되었을 때 이렇게 얘기합니다. 입양과 장애와 미혼모 등등 이렇게 거칠고 힘든 삶을 살아온 어머니에게 큰 선물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혈육을 찾아서 어머니에게 혈육의 기쁨을 드리고 싶다. 이 얼마나 건강해요. 하나님의 뜻을 사랑으로 이루어 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 입니다.

지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이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먹을 수 있고 오늘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이다. 이런 은총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마음이 눌리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한다고 했건만 응답이 없어 답답하고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