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은희야 미안하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4. 6. 08:11

3월의 묵상

  사람을 죄짓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 화가 있다. 범죄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으나, 유혹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마 18:7-

 

저는 중등교원양성소라는 곳을 나왔는데 해방 직후 중등학교에 과학‧수학 교사가 부족하여 이 교사들을 보충하기 위해 생긴 학교로 후에 이것은 초급 사대로 되었다가 다시 사범대학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때는 휴전협정이 있기 전이어서 전시연합대학이라고 서울에 있는 대학생들은 부산에 피난 가서 공부하던 그런 때여서 퍽 어수산한 때였습니다. 입학하고 보니 이 양성소는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용도 폐기로 없어질 그런 2년제 대학의 마지막 학생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몇 사람 안 되는 여학생을 희롱하기도 하고 방과 후에는 막걸리 통을 놓고 배구시합도 하고, 졸업 때는 교지를 만들어 졸업을 기념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우리 반에는 은희라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머리를 한 줄로 묵어 뒤로 내리고 있어 ‘복조리’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목사님이셨는데 인공 때 인민재판을 받고 돌아가시고 저소득 모자 가족을 돕는 ‘모자원’이라는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전혀 말이 없는 학생으로 제가 몇 번 편지를 해도 회답이 없어 돌을 던지면 ‘안압지’도 ‘둠벙’ 소리를 낸다는데 묵묵부답이라고 놀린 적이 있습니다. 혹 열렬히 구애하는 편지를 쓰면 가부간 답이 있지 않을까 하고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 회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영화를 보자고 유혹하는 등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글로 답장은 안 썼지만 그런 무리한 부탁은 잘 들어 준 편이었습니다. 우리는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공원에도 갔습니다. 계속 나는 지껄이고 그녀는 듣고만 있는 일방통행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젊은 대학생들이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를 무척 따르던 때였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어서 만나면 마구 불을 뿜고 기독교를 비난했습니다.

신은 없다. 인간은 신과는 상관없이 그저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다. 실존이 본질을 선행한다. 나는 던져진 자리에서 행동으로 나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하며 나는 행동의 주체며, 선택의 주체며, 책임의 주체다. 나는 모든 답이 없는 난제를 신에게 돌리는 안일한 기독교인을 싫어한다. 생기가 넘치는 인간을 죄인이라는 족쇄로 얽어매어 길들인 가금(家禽)의 무리로 만든 것이 기독교인이다.

졸업 후 저는 결혼을 하고 우연히 길에서 대학의 동창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제가 은희와 결혼하자 않은 것이 좀 놀라운 것 같았습니다. 자기는 은희를 무척 좋아 했는데 나 때문에 청혼도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몰랐어? 걔는 모교인 미션학교에서 그렇게 와 달라고 사정하고 또 모친이 아버지를 위해서도 그곳으로 가라고 했는데도 이를 뿌리치고 일반 중학교로 가서 선생으로 있잖니?”

저는 그때야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화를 당해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뒤늦게 참회 했습니다. 저는 속칭 마귀 노릇을 한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제가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은 은희 때문인데 그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께서 성도의 견인으로 은희를 보존하고 지켜 주십시오. 아멘.

 

                                                      산유화와 매화꽃 보러 가기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