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4. 6. 08:13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히3:1-

 

저는 이 성경구절은 읽은 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눈을 감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깊이 생각하는 것인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 때문에 앞에 나오는 두 구절(2:17,18)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예수)는 모든 점에서 그의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생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살과 피로 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하기 위해 살과 피를 입고 오셨다. 그분은 우리처럼 고난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유혹을 받으셨으며 눈물을 흘리고 열정과 동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죽음’이라는 마귀의 권세를 허락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삼 일만에 부활하시어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내 안에 그분이 성령으로 사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해 주시고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신다. 경건의 훈련으로 우리를 매일 성화시키시며 드디어는 영광의 하늘 보좌로 우리를 불러주실 영화의 소망을 주신다.

이만큼 생각하니 이제는 눈을 감고도 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히브리 기자는 예수님이 사도요 제사장이라고 강조한 것일까 하는 것 때문에 또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요5:24)라고 생각 되었지만 제사장은 모호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은 회중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었는데 제사 때마다 제물을 받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단번에 사하시는 제사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동물의 피를 흘려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인 동시에 제물일 수는 없는데 왜 제물이 된 예수를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분은 이 천년 전에 살았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살았으며 지금 우리가 그를 아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인데 성경은 또 성령을 통해 기록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를 알려면 육신이 아닌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하나님, 마음의 눈으로 숨겨진 예수님의 비밀한 세상을 보게 해 주십시오. 아멘.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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