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30127 내 얼굴을 찾으라(시27:1-10)[레미제라블][마틴 루터 킹 목사 1968년 암살]/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6. 3. 18:57

2013 1 27일 주일예배

내 얼굴을 찾으라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 27: 1~10)

요즘 한국에는 레미제라블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영화로 제작되어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고요, 원래 물론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아니겠습니까? 1985년 초연된 이후 27년 만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공인된 한국어판 레미제라블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데 용인을 거처 대구를 거처 이제 부산으로 해서 4월이면 서울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굉장히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여기 마침 인도네시아에도 얼마 전에 들어와서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레미제라블이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불어죠. ’빅토르 위고라고 하는 유명한 작가의 대표작입니다. 그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혼란기를 상황으로 하고 있습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지만,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왕정복고(王政復古), 왕정이 또 일어났다가 또 공화정으로 무너지고 하는 이 정치적 대혼란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대다수 사람들은 가난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그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쌍한 사람들 직공들 심지어는 창녀들 죄수이야기 또 그러한 사회의 그런 모순과 혼란에 대해 분개하며 개혁을 부르짖는 젊은 대학생들의 이야기들이 실려있습니다. 여러분 그 스토리는 어려서 동화로라도 읽지 않았겠습니까? 거기에 장발장 이라는 한 사람이 나오죠? 어린 굶주린 조카를 위해서 빵 한 조각을 훔치다가 그는 감옥에 들어가고 5년형을 받습니다. 그 말할 수 없는 그런 판결에 불복하고 몇 번 탈옥을 시도하다가 끝내 19년이나 복역을 하게 되는 것이고, 19년 만에 가석방 되는 것이죠. 그러나 가석방 되어가지고 어느 곳에 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냉대를 겪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한 주교를 만나게 되고 자기를 형제라 부르고 식사를 제공하고 그렇게 호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식기를 몰래 훔쳐 가지고 도망가다가 붙들려 끌려 왔을 때 오히려 자기를 변호하며 형제여 내가 자네에게 준 더 좋은 것을 잊어 버리고 갔는가 은촛대까지 자루에 담아주는 그 주교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그 인생을 바꾸게 되는 것이죠. ‘이에는 이자기를 무시하는 자에게는 적대적으로 대하던 그러한 삶의 패턴을 바꾸고 그 주교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더 이상 가석방된 죄수의 신분으로는 그 사회에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걸 다 찢어버리고 도망가는 거에요. 숨어버리는 거에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고 하는 얘기죠. 그래 세월이 또 한 십 년 지난 후에 그는 드디어 성공해서 어느 자그마한 시의 시장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그런 시장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나 그를 끝까지 추적하는 자베르라고 하는 경찰이 나옵니다. 그 두 사람의 만남과 그 갈등이 그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죠. 또 거기에 보면 장발장이 도망가다가 만나게 되는 그 한 불쌍한 여인과 또 그의 딸 코제트’. 그리고 나중에 코젯을 돌보며 살아가다가 코젯이 자라나서 아름다운 처녀가 되고 마리우스라고 하는 청년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거기에 흘러내려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일상 속에 겪는 그대로의 상황이 200년 전 프랑스 그들의 삶 속에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거기에 있어요. 그러나 놀랍게도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고 느낀 바 있어서 예전에 보았던 DVD를 다 꺼내 가지고 다시 꼼꼼하게 들여다 보니, 저는 이번 한주간 말이에요, 이 영화를 몇 번 반복해 보면서 성경을 완전히 통독한 느낌이에요. 구약부터 신약 끝까지 성경을 일독했구나 그런 느낌이 듭니다. 장발장은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에요. 은총을 입고 은총을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이에요. 반면에 끝까지 그를 추적하는 자베르라고 하는 형사는 그냥 못된 형사가 아니라 성경에 말하는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의 전형이에요.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자베르가 하나님께 노래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무질서한 이 세상, 이 가난과 범죄와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가 그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자기도 가난 속에 태어났고 자기도 굶주림 속에 빈민굴에서 이렇게 자라났지만, 자기가 판단하기에 이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법, 죄를 범한 자에게는 용서 없이 심판을 해야만 이 사회가 바로 잡힌다 라고 하는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노래해요. ‘! 하나님 나에게는 신성한 사명을 주신 하나님. 저 밤하늘의 별들. 이 어둠 속에 별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빛남으로 이 질서를 지키고 있듯이 이 어둠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나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들고 범죄한 자들을 끝까지 추적하면서 저들을 심판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겠나이다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던 그 자베르가 장발장과의 몇 번의 만남, 그리고 특별히 그가 죽게 되었을 때, 장발장의 손에 메여 있을 때 장발장이 용서합니다. 그 은총을 경험하고 그가 또 다시 노래를 부르죠. 내가 이제까지 알아왔던 이 세계관과 이 모든 것 이것이 그 사람이 나를 용서해줌으로 말미암아 다 무너졌는데 나는 더 이상 무너진 세상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자베르의 세상이 아닌 장발장의 세상에서는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으니 나는 내가 선택 할 길은 오직 이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고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는 대목이 나옵니다. 제 설명을 잘 들으시고 한국어 자막으로 된 걸 한번 잘 보시고 그 다음에 영화관에 가서 한번 보세요. 음향은 역시 영화관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노래가 나오는데요. 장발장이 이 자베르가 자기를 추적하는데 코밑까지 왔는데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시장님이 그 도망간 장발장인줄 알고 내가 다 조사해 봤더니 아! 마침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장발장이 붙잡혀서, 지금 재판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오인 한 것이죠. 그 대목을 듣고 장발장 혼자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노래합니다. ‘Who Am I?’ ‘내가 누구냐?’ ‘나는 누구입니까?’ 지금 저 사람이 내 대신 장발장이 되어서 재판을 받는데 내가 지금 말한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장발장으로 드러나서 비난을 받겠지만 내가 지금 입을 다문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진실 앞에서 내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 ‘Who Am I?’ ‘나는 누구입니까?’ 마치 성경에 첫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이 물어보시잖아요. “네가 어디에 있느냐?” ‘Who Am I?’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는 누구냐?’ 묻는 것과 똑같아요. 그리고 그 혁명전야에 사랑과 시련을 겪는 사람들, 또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들, 그들을 진압하려는 사람들, 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다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릅니다. ‘One Day More’ ‘내일이 오면사랑하는 사람들은 아! 내일이면 우리는 헤어지게 될 거야. 실연한 사람은 아! 내일은 나는 절망이야. 또 데모를 준비하고 개혁을 준비하는 사람은 내일이 오면 드디어 이 민중의 뜨거운 피는 희망의 역사가 될 거야.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하는데 놀랍게도 이 합창이 감동이에요. 내일이 오면 다 자기의 상황과 형편으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내일이 오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될 거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셨는지 내일이 오면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되리라.

 오늘 성경 읽은 본문에서 다윗이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것이죠. 다윗의 상황을 보세요. 원수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군대가 몰려와서 그를 잡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말씀을 읽어보면 단순히 적과의 싸움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숨은 적이 있어요. ‘위증자라는 표현을 썼어요. 거짓 증거자들 이라는 말이에요. 이거는 세속적인 신앙을 말하는 거에요.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아예 신학적인 무신론자죠.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신학과 어떤 판단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지만,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실제적 무신론자에요.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그러면 세속에 떠내려 갈 수 밖에 없어요. 죽은 물고기 같이 배를 뒤집고 그냥 물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어요.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 다윗이 얘기하는 대적자 가운데에는 단순히 적군만이 아니고 신앙을 말하나 신앙을 부인하는 자들을 말하는 거에요. 그들을 향해서 다윗이 기도합니다. ! 하나님 하나님의 성전에서 온전히 예배하게 하소서 그래서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주의 얼굴을 대하게 하시고 환란 가운데 있는 나를 건져주시고 나로 하여금 승리의 찬송을 부르게 하소서 내가 전심으로 주님의 얼굴을 찾겠습니다 나의 부모는 나를 버렸을지라도 나의 부모는 알지 못하고 능력이 없어 어찌 할 수 없어서 나를 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아니할 것을 내가 믿습니다. 

우리가 올해 성경 읽는다고 얘기했는데 제가 미쳐 여러분이 읽는지 안 읽는지 조사를 못했어요. 곧 조사를 하겠지만, 성경읽기의 의도는 뭐냐? 많이 읽고, 부지런히 읽고, 빨리 읽고 다 좋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페이지 페이지마다, 사건 사건마다, 인물마다 그거 다 죽은 사람들 얘기에요. 오늘 그 성경을 읽는 의도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오늘은 내 때에 하나님이 나를 만나시려고 성경을 내 손에 들려주시고 그것이 기록되고 보존되고 해석되고 오늘 내 입술에 담기게 한 거에요. 그 성경을 읽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하나님이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죠. 주님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것이죠. 그리하여 우리가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이게 내 고백이 되도록 하는 것이죠. 강하고 담대하게 내가 하나님을, 이 환란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기다리겠노라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성경읽기의 목적이잖아요.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설교자로 스펄전 목사가 있습니다. 그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두가 종교개혁자 루터를 입을 모아 칭찬하지만, 루터같이 그렇게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여러분, 오바바 대통령이 2008년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잖아요. 저는 사실 정말 전율이 흘렀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대통령에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 즉위하기 정확하게 40년 전 1968년에 흑인들의 그 비참한 생활 이런 것에 안타까워하며 흑인 인권회복을 위하여 부르짖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거에요. 40년 전에. 그런 피 흘림이 있었기에 한 세대 40년 후에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 거에요. 만약에 루터가 지금 세상이 복잡하니 이 때 나서지 말고 우린 좀 잠잠히 있자 세상이 좀 조용해지고 반듯해진 다음에 우리가 다시 나오자 한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이 39에 총에 맞아 죽는 그런 위기를, 수 많은 협박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피 흘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미국의 이런 역사의 변화가 있었겠습니까? 오늘 씨를 뿌려야 되요. 우리 한 세대 우리 부모 세대들이 그만큼 신앙의 씨를 뿌렸기 때문에 그나마 믿음 없는 우리들이 오늘 이렇게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할 수 있는 거에요. 오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는 불 보듯 뻔한 거에요. 우리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입을 모아 기도하고 꿈 꾸고 있습니다. 오늘은 갈보리 십자가를 향하는 길이지만, 그 길이 내일은 우리를 향한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날이에요.

레미제라블의 참 감동적인 장면이 ‘One Day More’ ‘내일이 오면’,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처지에서 부르던 노래가 나중엔 웅장한 합창이 되요. 내일이 오면 하나님이 이 절박하고 기막힌 상황 속에 무엇을 준비하셨는지 우리가 보게 되리라. 강하게 담대하게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부르심과 우리의 직분과 우리의 은사를 따라 우리가 올 한해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의 얼굴을 찾으면서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우리가 보면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함께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