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30210 설과 유월절(출19:1-6)[성막의 구조 및 의의]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6. 4. 08:03

130210  설과 유월절 ( 19:1~6)

성경본문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개월이 되던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여러분 마침 오늘이 우리 설입니다. 새해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설에는 새로운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적인 의미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라고 하신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생활 때까지는 유목민족이었지만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게 되고 농경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농경민족이기 때문에 사람들이나 우리들이나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삶의 패턴이 같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설은 유월절하고 대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추석은 성경에 나와 있는 초막절하고 그대로 대응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추석을 지킬 그들은 정확하게 초막절을 지킵니다. 우리가 지금 설인데요, 다만 이스라엘 하고 차이는 어디에 있냐 하면 차이가 나는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2 대보름이 유월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월대보름도 명절 중에 하나잖아요. 의미는 같아요.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새해의 달이요, 시작이 되는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설로 새롭게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의 의미가 단순히 하나의 농경생활 속에 새로운 새해의 달이라고 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경에서 배운바 유월절의 의미가 거기에 담겨져 있는 것이죠.

유월절이라고 하는 것은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던 저들을 하나님이 구원해내시는 구원사건이 거기에 담겨져 있지 않습니까? 유월절을 일으키시는 그날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하게 되죠. 구원을 경험하게 되고 홍해를 건너게 되고, 하나님의 이적이죠. 광야에 들어와서도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물을 얻는 연이은 이적 가운데 사는 거죠. 여러분, 우리 중에 이적 중의 이적은 뭡니까? 오늘 살아서 쉬는 , 이상의 이적은 없어요. 생명이 이적이에요. 우리 생명의 원리를 우리가 몰라요. 내가 숨쉬고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라요. 의학적으로 밝혀진 많이 있지만, 이제까지 발견한 모든 의학을 합하면 생명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그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조금 발견한 뿐이죠. 은총으로 사는 거예요. 아마도 죽는 그날까지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가, 내가 어떻게 이렇게 의학적으로 살고 있는가? , 속에 태어나서 자라나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마지막 날까지의 나의 삶의 모든 일들을 정작 살아가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나의 과거와 미래와 오늘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아시기에 인도하시고 동행하시고 지키신다고 하는 것이죠.

유월절의 이적과 홍해 이적과 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물을 얻는 이적의 목적은 뭐냐? 오늘 본문말씀을 읽어보니까 출애굽한지 만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앞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실 그랬잖아요. 네가 가서 민족을 이끌어내어 시내산에 다시 이것이 모든 일을 내가 것이라고 하는 증거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드디어 시내산 앞으로 백성을 부르시고 모세를 불러 올리셔서 만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제 내가 너희를 백성 삼으려고 이런 일들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언약을 지키면 이제 너희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십계명 돌판을 주셨어요. 언약을 맺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예배하라고 하셨어요.

우리 삶에 예배가 있고 생활이 있습니다. 가지 중요해요. 우리 신앙에 가지 전통이 있어요. 하나는 제사장 전통이 있고 하나는 선지자 전통이 있는 거예요. 구약을 읽어보면 그렇잖아요. 제사장은 예배를 맡는 사람들이에요. 선지자는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 삶이 온전치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세우셨어요. 똑바로 살아라 하는 거죠.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서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어떻게 사는 모양이냐? 우리가 부끄럽게도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러나 그것은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더더욱 예배를 온전히 드림으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덧입고 힘으로 하나님의 가운데 살아가라고 하는 거예요. 절대로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온전히 없어요. 하나님이 그것을 아셔요. 서로 사랑하라. 이게 윤리 중에 윤리죠. 그러나 남편도 아내도 서로 사랑할 능력이 없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덧입고야, 사랑에 충만하고야 남편도 사랑하고 아내도 사랑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있는 거죠. 예배가 중요해요.

이제 출애굽기, 레위기에 들어가면 예배에 관한 대목이 나와요. 이미 크리스천들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교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 성경이 창세기래요. 그럴까요? 새해 날이 되면 올해는 성경을 읽어야지 하면서 창세기를 읽는 거예요. 번째로 많이 읽는 성경은 출애굽기래요. 그래도 출애굽기까지는 가는 거예요. 홍해도 있고 만나, 메추라기도 있으니까. 그런데 제일 읽는 성경이 어디냐 하면 레위기래요. 제사 지내는 얘기, 자세한 설명들이 있는데 이건 도저히 모르겠어. 그런데 벌써 어디서부터 숨이 막히느냐 하면 출애굽기 25장에 오면 하나님이 성막을 이렇게 지어라 하고 모세에게 가르쳐주는 복잡한 내용이 있고, 다음에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불신앙에 빠진 백성들을 심판한 다음에 이제는 모세가 산에 올라가면 짓을 할까봐 아예 이제는 산에 올라가고 밖에다 회막을 임시로 짓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요. 모세가 떠나가면 불안하니까. 그리고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장막 짓는 얘기가 나오다가 마지막에 짓고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하는 출애굽기의 끝이에요.

우리가 성경을 그토록 읽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는 현실이에요. 제가 지난 주에 <성막>이라고 하는 책을 나눠드렸죠. 가서 읽어오신 분들은 우등생이에요. 아주 만들어진 책이에요. 읽으면 명확하게 이해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출애굽기 26장부터 나오는 성막 본문을 읽으면서 맞춰 읽은 사람들은 완전 하버드대학생들과 똑같아요. 아주 훌륭한 분들이에요. 그런데 아직 뚜껑도 열은 분들이 계셔서 도와드리려고 해요. 성막은 300 정도 되는 넓이에요. 그리고 높이가 2.25미터 되는 하얀 세마포 막으로 이렇게 둘러 처져 있습니다. 기둥은 모두 60개이고 이쪽이 동쪽입니다. 그러니까 동쪽으로 자꾸 가면 성전에서 멀어지고 성막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에덴의 동쪽이란 말은 그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동쪽은 멋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여기 문이 있고 들어가면 짐승을 가지고 와서 조각을 내어서 번제단에서 태워서 향이 하나님에게 올라가게 하는 번제단이 있죠. 뒤에는 물두멍, 물그릇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여기에서 몸을 씻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성막이죠. 여기게 덮개가 있는데 덮개는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평면도입니다. 성막이란 뜻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막이라는 뜻이에요. 재료로 말하면 이것은 장막이에요. 회막이란 표현을 써요. 하나님이 여기서 우리를 만나신다. 만난다는 뜻으로 회막이라 했어요. 그러나 다른 말로는 증거막이라고 얘기합니다. 증거막이라고 하는 것은 법궤를 증거궤라고 있어요. 안에 십계명 돌판이 있어요. 이것은 증거판이에요. 하나님의 언약을 담은 언약궤가 안에 있기 때문에 뜻을 살려서 증거막이라고 있죠. 입구로 들어가면 놋제단이 있고 여기서 온갖 짐승들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성소가 있는데 성소는 모두 18 됩니다. 둘로 나누면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 안에는 떡상이 있고 등잔대, 촛대가 있고 향을 피우는 향단이 있고 안에 들어가 지성소에는 법궤와 속죄소로 되어 있습니다. 놋제단은 아카시아나무로 틀을 만들고 놋으로 씌운 것입니다. 그것은 분리형으로 되어 있어서 철판이 있지요. 사람들이 다양한 짐승들을 가지고 나와서 제사를 지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다음에 물두멍이 있죠. 물두멍도 분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막이나 성막은 성전같이 고정된 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면 걷어서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분리형으로 되어 있는 거죠. 이것은 성소입니다. 성소의 넓이는 모두 18평이에요. 18평의 성소를 다시 분리하면 앞에 성소가 있고 뒤에 지성소가 있어요. 지극히 거룩한 곳이라는 지성소가 있어요.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이 담겨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남편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신부가 되는 거죠. 신랑 신부가 같은 방에 사는데, 이게 신방이라고 얘기할 있는데, 성소는 사람이 해야 ,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구분되어 있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떡을 준비하는 거죠. 떡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거두었습니다 라고 하는 우리의 수확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라고 하는 등잔이 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향이 있는 것입니다. 모습을 보시면 휘장이 있고 기둥이 앞에 성소는 5, 지성소는 4개로 되어 있습니다. 옆에 벽은 기둥 널판으로 되어 있고 널판은 은받침으로 받쳐 놨고요, 이렇게 궤를 만들어서 꿰어서 쓰러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성소의 내부 모습, 성소의 기둥 모양, 기둥을 분리하면 안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고 금으로 덧씌우고 지붕머리를 세웠다는 것이죠. 지성소에는 천사의 형상, 그룹(체루빔) 형상화 휘장으로 막혀 있고, 지성소의 기둥을 분해해보니 나무와 금으로 씌웠다는 것이죠. 뒤에 벽을 세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벽이 넘어지지 않도록 고리를 걸었고 널판 가운데를 뚫어가지고 안에 보이지 않게 하나 기둥을 세운 것이죠. 성소의 지붕은 겹의 덮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베실로 것이고 여기에 그룹, 천사의 형상을 새겼습니다. 다음은 염소털로 만든 것이고 다음은 숫양털로 만든 것이고 마지막은 고래가죽으로 만들어서 겹의 덮개로 되어 있습니다. 다음에 중요한 것은 성소 내부에는 떡상이 있어요. 열두 덩어리의 떡을 올려 놓게 되어 있어요. 줄로 올려 놓습니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양식을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삽니다. 여기에는 포도주가 담겨 있는 잔이 있어요. 포도주와 떡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하죠. 다음에는 등잔대가 있습니다. 줄기가 있고 옆에 갈래의 가지가 있어서 모두 일곱 개의 등잔이 있어요. 일곱은 완전하다는 의미에요. 빛은 생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완전한 생명이요 하나로 생명입니다 라고 하는 뜻이에요. 다음은 향단입니다. 여기에 날마다 향을 피우죠. 원래 떡은 안식일마다 열두 덩어리의 떡을 새롭게 올려 드리고 묵은 떡은 물러내어서 제사장들이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향단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향을 피우므로 모든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지성소 바로 앞에 있는 향단이기에 성소 안에 제사장들이 들어가서 섬길 때에 자칫 잘못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흠집 내지 않도록 향을 피우는 것이죠. 성도들이 기도할 향과 함께 올라간다고 하는 의미는 우리가 온전한 기도를 드리지 못할 때에 향과 함께 드리므로 우리의 허물과 잘못됨을 가리우려고 하는 거죠.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와 속죄소의 모양입니다. 아랫부분이 법궤이고 뚜껑부터 시작해서 속죄소입니다. 속죄소의 모양은 천사, 날개를 천사의 형상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법궤는 뚜껑이 없이 비어있습니다. 안에는 십계명 돌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이 지팡이를 여기에 두게 되어 있죠. 법궤는 항상 언제든지 이동할 있게 채를 꿰어서 놓았습니다. 법궤 위에 뚜껑으로 속죄소를 덮는 것입니다. 뚜껑은 날개를 천사의 형상을 뚜껑과 함께 하나로 일체형으로 만든 것이죠. 속죄소 뚜껑에다가 년에 차례 대제사장이 가서 백성의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피를 뿌리게 되는 겁니다. 대제사장이 지금 향불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깜깜하니까. 다행히 성소에는 등대를 켜놓게 되어 있으니까 아래에서 제사장들이 움직이지만 지성소는 깜깜하니까 대제사장이 향불을 가지고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가장 온전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년에 들어갈 베로 속옷을 입고 청색의 에봇 받침을 입고 앞치마 같은 에봇을 입고 가슴에는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보석을 박고 흉패 받침은 겹으로 되어 있어서 안이 주머니같이 되어 있어요. 안에 우림과 둠밈이라고 하는 가지가 들어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하면 오늘날에 보기엔 이상하지만 치듯이 중에 손에 잡히는 하나를 끄집어 내는데 우림이 나오면 이것은 yes로구나 판단을 했던 것이죠. 대제사장의 모습이에요. 머리에 관을 쓰고 금테로 장식을 했죠. 여기에는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써있습니다. 향불을 가지고 년에 차례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여기에 방울이 달려 있어요. 그래서 대제사장일지라도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하나님 앞에 흠이 되면 자리에서 죽거든요. 그러면 사람을 누가 끄집어 내겠어요? 아무도 들어가죠. 허리에 끈을 묶고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의미는 뭐냐? 이제까지 성소와 지성소를 설명했습니다. 예배하라고 하는 것이죠. 예배는 뭐냐? 우리 예배는 재미있게, 흥겹게가 아니고, 하나님과 나와의 언약을 기억하는 거예요. 우리가 항상 예배를 드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는 것이죠. 십계명 돌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라고 하는 증거를 새긴 돌판이 있고 그것을 담은 법궤, 증거궤가 있고 그리고 그것을 덮어싸고 있는 증거막이 있죠. 언약이에요. 그래서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어요. 성소에서 제사장들은 떡을 드려요. 하나님께 우리가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등잔대는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생명이요 하나님이 주셨기에 영원한 생명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허물을 감추어 주십시오, 덮어주시고 정결히 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우리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죠. 지성소에 법궤가 있고 년에 제사장이 들어가서 피를 뿌리는 속죄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말합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과 언약이에요. 그리고 년에 차례 대제사장이 가서 피를 뿌리는 장면을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는 뭐라고 말하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서 피로 하나님 앞에 드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하는 백성들이에요. 성소와 지성소를 보면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다. 하나님의 임재를 말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성막이 구름으로 덮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러나 동시에 성소는 일반 백성들이 나갈 없는 제한이 있었어요. 일반 백성들은 번제하는 뜰까지만 있었어요. 그리고 제사장들은 물두멍에 몸을 씻고 성소에까지 들어가서 성소에서 떡을 바치기도 하는 제한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성소는 년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있었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엄격한 규율이 있었어요. 구분이 있었어요. 거룩했어요. 우리가 예배를 드릴 나와서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고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찬송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하고 온전히 해야 되는 거죠.

구약시대에는 장애인은 제사장을 없었어요. 구약적인 사고이긴 하지만 당시 그들 생각에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가장 온전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어야 되고 가장 것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얻은 수확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것을 드리는 거예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거예요. 예전에야 가난하니까 목사도 일반사람도 가난하니까 교회 살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죠. 그래서만, 가난하니까 가난을 돕기 위해서 목사에게 가정에서 이것저것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고 성경적인 의미를 보면 가장 귀하고 가장 것은 제사장에게 드린다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사고방식이었어요. 오늘날 우리는 그런 것은 달라졌죠. 장애가 있어도 얼마든지 목사를 있죠. 흠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이제는 겉으로 나타난 육신적인 흠을 찾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정결히 하고 생각을 정결히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온갖 이적을 통해서 구원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언약을 지키고 백성이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라. 우리 온전히 예배 드려야 돼요. 온전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오늘 속에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때에 우리는 밖에 나가서도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섬기고 자녀들을 사랑하고 우리의 일터를 하나님의 뜻대로 섬겨 나갈 수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설을 맞이해서 떡을 먹고 만두국을 먹고 새롭게 살자고 하는 새로움의 진정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