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30203 참 좋았더라(창1:26-31)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6. 3. 19:22

 

130203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지면의 맺는 모든 채소와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26-31)

 

올해 우리 달력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 주제로 그림들을 실어놓고 있습니다. 마침 이번 2월달 그림은 <갈릴리 호수의 폭풍우>라고 하는 그림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호수를 건너갈 때에 풍랑을 만나는 그림이죠. 풍랑에 흔들리는 배와 놀란 제자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림은 사선으로 불안정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갈래로 흩어져서 한쪽은 돛을 붙들고 어떻게 하든지 안정시켜보려고 애를 쓰는 반면 무리의 제자들은 예수님 주위에 몰려들어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는지 주시하며 지켜보는 그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룹을 빛과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보려고 안간힘을 써보려는 사람에게는 빛을 비춰주고 예수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어둠 가운데 그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다 하는 우리들의 실상을 표현하고 있구나. 우리가 현실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우리가 알고 배운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주시하며 오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만 어둠 가운데 있는 같이 아직도 확연하게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1장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건을 선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주 일방적이고 엄숙한 왕의 선포에요. ‘어떻게라고 하는 우리의 물음을 허용하지 않아요. 이것을 받아들임으로 우리의 믿음은 출발하는 것이죠. 그런데 창세기 1장의 말씀을 읽어보면 천지창조의 질서가 있어요. 첫째 빛이 있으라하시매 어둠 가운데 빛이 있었고, 둘째 한가운데 궁창이 있으라하시매 궁창이 들어와서 물이 나뉘고 궁창을 하늘이라 했다. 그리고 궁창 아래 물이 곳에 모이라하므로 이번에는 뭍이 드러나기에 땅이 되었고 모인 물은 바다가 되었다. 천지창조 마지막은 안식일이니까 빼놓고 6일은 3, 3 나누어서 하나님이 무대를 만드셨어요. 그리고 4일에는 빛과 어둠으로 나뉜 그곳에 광명체를 두어서 , , 별을 지으시고 하늘과 물로 나뉜 곳에는 하늘에는 새가 날게 하시고 물에는 물고기가 살게 하시고 마지막, 셋째 바다와 땅으로 나뉜 곳에는 짐승과 가축과 기는 것과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다. 질서가 있어요. 창조의 하이라이트는 사람을 지으신 있습니다. 오늘 1 27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그리고 지으신 인간을 향해 2 1절에 보면 복을 주셔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유대인들은 결혼 하는 가장 죄에요. 자식을 낳는 것이 가장 죄에요. 말씀에 어그러진다고 얘기해요. 땅을 정복하라. 그리고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라. 그런 것을 이루시고 마지막 31절에 보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좋았더라. ‘ 좋았더라 하이라이트는 하나님의 지음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만물을 다스리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보시면서 좋았다 하셨어요.

여기 사람을 지으실 하나님의 형상대로, ‘in the image of God’,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많은 해석이 있습니다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므로 빛을 두신 하나님의 놀라운 권세를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주셨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 5절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 1 7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도 가운데 행하면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가운데 행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자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자가 되죠. 만물이라는 것은 바깥에 있는 것을 말하는 아니라 만물의 시작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마음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스리는 것이죠. 생각을 하나님의 빛과 지혜를 받아 올바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이죠. 저도 수십 대학생 , 유년 주일학교 교사를 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일저녁 예배에 제가 혼자 나와서 아이들을 가르쳤었어요. 수요일 저녁 예배에도 제가 아이들을 혼자 가르쳤었어요. 율동도 하고 가르쳤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시편 119 105 말씀, ‘주의 말씀은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니이다.’

여러분, ‘빛이 있으라.’ 마음에 빛이 있습니까?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라고 평가를 받는 독일의 바르트라고 하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어요. ‘ 손에는 성경을, 손에는 신문을.’ 말씀을 보고 세상을 이해하고, 반대로 다시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오늘의 말씀을 이해하고. 오늘 우리들에게는 손에는 성경을, 손에는 TV이라고 해야겠죠. 제가 사실 며칠 전에 위기를 맞는 부부들을 상담하는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저는 아이들만 그런 것을 하는 알았더니 그게 아니에요. 거기에 예가 나오는데, 재혼한 10년이 부부인데 위기가 거예요. 그런데 관심을 끄는 것은 아주 성실한 크리스천들이에요. 그만 사람 결혼에 실패했어요. 얼마나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되었는지 상처에서 헤어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제 용기를 내어서 다시 신앙 안에서 새롭게 출발하고자 사람이 만난 것이죠. 그리고 결혼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이제까지 우리의 어려움을 딛고 오히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자. 장면 뒷배경에 나오는 것을 보니까 우리 눈에 익숙한 책들이 많이 보여요. 제자훈련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어요. 사람들이 굉장히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로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왔어요. 너무나 심각한 갈등이에요. 남편과 부인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깊은 갈등 속에 있어요. 답답함을 해결하려고 교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남자는 착하게 생겼어요. 생긴 것만 착한 아니라 가만히 보니 착하긴 착하더라고요. “나는 나를 알아. 그러나 당신은 당신을 몰라.” 그러면서 보통 중년이 넘어가면 여자가 공격하고 남자들은 방어하잖아요. 남편이 너무너무 속이 타서 억울해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교회에서 안내위원을 하는데 아내가 남편은 여자들에게 너무 친절해요. 도대체 저러는 거야. 그래서 집에 와서 따지는 거예요. “아니 성경말씀에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내가 여자들에게만 친절한 아니고 남자들에게도 친절하고.” 여자가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갈등이 깊어서 드디어 이혼의 위기를 맞게 거예요. 정말 이혼하고 싶지 않은데 이상 길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TV 신청을 하게 거예요. 사람들을 불러다가 전문가들이 상담을 합니다. 요즘 쓰고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서 미술치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마음이 그림 장에 들어가요. 심리극도 하잖아요. 그런데 심리극을 통해서 놀라운 것을 발견해요. 아내도 모르던 아내의 마음 안에 있는 깊은 상처, 아내도 알지 못했던 과거가 드러난 거예요. 사람이 다시 재혼하려고 했을 과연 우리가 다시 만나서 성공할 있을까 하는 두려움 가운데 서로 용기를 내어 이야기하잖아요. 남자가 이야기합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책임져줄게요.” 여자에게 남편과의 자녀가 둘이 있는데 아이들도 챙겨준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서 결혼하기로 뜻을 모으고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실이라는 것은 녹녹치 않으니까 아이들을 데려올 상황이 되지 못했던 거예요. 없이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겨두고 자기만 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여자에게는 너무너무 깊은 상처가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과연 아이들을 이렇게 떼어 놓으면서까지 결혼하는 것이 과연 일일까 하는 깊은 불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여기까지 것을 이상 되돌리기 어려워서 결혼한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일을 통해서 재혼과 동시에 남자에 대한 신뢰감에 금이 거예요. 거기에 깊은 상처가 있었던 거예요. 남편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거예요. 이제까지 중년 아내의 반란, 무섭잖아요. 뒤집어 엎으면 어떻게 해요. 그거 감당 못하거든요. 도대체 이러는지 이해할 없어. 나도 이제까지 나가서 빠지게 일하고 고생하고 나도 힘들고 어려운데 이러는 거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에게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런 깊은 아픔이 있었구나. 사자 같던 중년 아내가 세찬 비에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리 , 그리고 날개를 퍼덕거리는 모습을 보게 거예요. 그게 전환점이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날 굉장히 은혜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결혼 30년인데 제가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해달라고 빌었어요. 마음으로 무릎 꿇고. 예전에는 저도 논리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게 아니고 논리가 아니고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

여러분, 소와 사자가 사랑했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소와 사자가 사랑했대요. 그래서 소는 정성껏 싱싱한 풀을 날마다 뜯어다가 사자에게, 사자도 정성을 다해서 사냥을 해서 고기를 소에게. 둘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랑할수록 말라갔대요. 견딜 없어서 이혼했대요. 이혼하면서 둘이 마디 했대요. 진정 사랑했는데.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면 안돼요. 그럼 상대가 말라요.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려 여인이 있었잖아요. 사람들이 말하죠.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여야 합니다. 선생님 뭐라고 겁니까?” 그때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하셔요. 땅에 엎드려 무엇인가를 쓰셨다. 사람들이 재촉하는데 묵묵히 계시던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조용히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씀하셔요. “너희 가운데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러자 나이 사람부터 젊은이까지 사람 사람 양심의 가책을 받아 돌을 내려 놓고 돌아갔어요.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어요. 예수님이 여인에게 묻습니다. “여인이여,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어디 갔느냐?” “주님,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니 돌아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사건이 있은 직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셔요. “내가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율법을 가지고, 논리와 합리를 가지고 따지려 하지 마세요.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여인이 겪는 수치와 고통과 이럴 밖에 없었던 상황, 아픔에 예수님이 공감하셨어요.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 충분히 정죄할 자격이 있는 예수님이건만 아픔에 공감하셨어요.

빌립보서 2 6절과 8절에서 하나님과 같은 분이었던 예수님께서는 종의 모습으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그것도 낮은 자리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복종시키셨다. 하물며 허물이 있는 우리가. 아니요, 성육신 하셨어요. 예수님이 사건, 말씀을 하신 후에 요한복음 8 3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말에 거하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 36,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어떤 권세를 주셨느냐 하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실 빛이 생겼던 같이, 오직 만물 가운데 언어를 우리 인간에게 주셨어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순간, 눈이 열리는 순간,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자유를 선포하는 순간, 아내가, 남편이, 가족이, 자유함을 얻는 거예요. 자유부인이 사람 생겨난 거죠.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습니까? 창세기를 읽으신 분도 많이 계실 것이고 지금 읽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 창세기를 읽는 동안 읽기 위해서 읽기도 하지만 말씀을 읽다가 생명의 빛이 우리의 영혼을 비추고 우리의 허물이 드러나고,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 행복. ‘만물을 다스리라.’ 그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을 읽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응원하시고 격려하시고  사랑하시고 우리 인생을 책임져주시는 놀라운 사실에 우리 눈이 열려서 우리 영혼이 뜨여져서 우리의 삶이 빛을 받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