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30113 말씀하신 대로(창21:1-7)[성경읽기표]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6. 3. 16:49

130113  말씀하신 대로 ( 21:1~7)

성경본문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아들 이삭이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제가 예전에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학생 중에 이름이 문아폴로라는 학생이 있었어요. IQ테스트 하겠습니다. 학생은 생일까요? 머리에 기름칠 해야 되겠죠? 1969 생이죠. 최초로 인류가 달에 착륙했던 1969 721, 암스트롱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날에 태어났단 말이죠. 아빠가 너무나 흥분해가지고 태어난 예쁜 아기를 그래 너는 문씨니까 이왕이면 아폴로라고 하자.” 그런데 제가 보기엔 걔가 놀림을 많이 당했던 같아요. 이름 때문에. 아빠의 생각이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지금쯤은 아마 40 초반의 주부이리라 생각합니다.

걸음이 중요하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위대한 인물이다. 그런 아니고, 성경은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행했다, 그것도 아니에요. 남들은 심지어 결혼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는데, 결혼하고서도 아이를 낳아서 100세에 하나 얻은 것을 가지고 이렇게 난리를 치겠어요. 의미가 어디 있어요? 첫걸음. 하나님을 따라 사는 신앙생활의 원리를 모델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브라함의 삶에도 시행착오가 많았죠. 인류의 유적을 100 유적이니 이렇게 저렇게 많이 얘기하고 가보면 역시 놀랍습니다만 그러나 중에 하나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한나절 가서 봤는데 !~” 감탄만 하다가 왔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분명 한나절 감탄하고 돌아왔는데 타고 돌아오니까 벌써 기억이 잊혀진 같아요. 뭔가 보기는 봤는데 뭐라고 어떻게 머릿속에 하나도 정리가 되어 있어요. 눈으로는 봤는데 하나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아요. 그래서 며칠 후에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 책방에 가서 그랜드 캐년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까 사진화보집 해서 다양한 책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넘겨 보니까 다양한 사진, 그것이 내가 보았던 것과 서로 연합이 되면서 그게 어떤 모습이었구나 하는 것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아무리 놀라운 것을 경험했더라도 우리 머릿속에 정리가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것이 정말 내가 것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내가 납득하고 이해하는 데는 정확한 안내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걸음 가는 거예요. 우리가 뷔페에 가는 좋아하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뷔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인간을 욕심덩어리로 만들고. 다녀봐야 점잖아 져서 먹을 것만 먹지, 처음에 가는 사람은 이만한 것을 감당도 못하게 접시씩 먹지 않습니까? 시행착오에요. 걸음씩. 아무리 놀라운 체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러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과연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셔요. 그런데 말씀이 들린다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물론 성경을 덮고서야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겠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에는 빠지지 않고 나갔지만 성경을 읽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어요. 그랬더니 문제에 부딪히면 해결할 길이 없는 거예요. 불안하고. 성경을 읽어야 돼요. 우리가 사람도 말해보고 말이 통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세요? 합니다. 하나님도 말씀해주셨는데 알아듣고 말이 통하면 어떻게 하시냐 하면 하나님도 인격이시기 때문에 다음에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들리는 거에요. 사실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느냐?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마음에 양심 가운데 말씀하신다. 이게 가장 정확한 답이에요. 간혹 그래도 알아듣는 사람, 아니면 사람의 상황이 도저히 방법으로 되겠다 때는 꿈을 통해서도 보여주시고 여러 가지 교통사고라든지 부도가 난다든지 병이 온다든지 어떤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세요. 그런데 들린다는 거예요. ? 말씀하셨을 듣지 않으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여러분 정말 순종합니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고 순종한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건만 순종하지 않은 사람도 제법 많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다음에는 별로 말씀하시지 않으셔요. 끝까지 말씀을 들으면 사실은 내치셔요.

말씀하시면 순종하는가? 자세가 중요해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에요. 창세기 12 1절에서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이제 너를 이끌어서 너에게 복을 주고 네가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겠다새로운 인생을 약속하셨어요. 그런데 일인지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갔다고 했어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어요. 순종했어요. 그러나 기근이 옵니다. 그러니까 아이고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되나, 땅에 기근이 왔는데.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에 가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시련을 당하다가 하나님이 구원해주셔서 겨우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가나안에 소돔과 고모라 전쟁이 일어났어요. 내전이 일어났을 거기에 휘말려서 아주 고통을 겪었습니다. 마음에 불안이 있어요. 내가 지금 제대로 오는 것일까? 그럴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고 내가 너의 상급이 되리라 내가 네게 아들을 주리라.’ 아니 지난 번에도 약속하셨는데 아직도 애를 주시니까 아브라함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 그만 두십시오. 그저 전쟁의 위기 속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만으로 만족하겠고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내가 아들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 중에 제일 똑똑한 엘리에셀이라는 종을 상속자 삼아서 모든 것을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리셔요. ‘아니다 몸에서 자가 상속자가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창세기 15 6절에 보면 일인지 날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했어요. 전에도 듣고 들었는데 오늘은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주신 말씀이었는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믿었다. 그랬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의롭다 여기셨다. 했다고 하셨어요. 기뻐하셨어요.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듣고 있지만 귓전을 때리고 지나가는 말씀인데 날은 말씀이 마음에 부딪혀와서 말씀을 붙들었어요. 믿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잘했다고 하셨어요. 그게 의롭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행실이 바르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원초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었다. 그런데 받아들인 말씀의 핵심은 뭐냐?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약속대로 이루신다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믿음이에요. 그런 분이시기에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이 너무 기뻐가지고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의 이것을 아주 마음에 깊이 새겨 놓으시려고 짐승을 가져오라고 해요. 그래서 짐승을 둘로 갈랐어요. 그리고 환상 가운데 하나님이 불이 되셔서 짐승을 지나가셨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중동 사람들은 서로 언약, 계약을 맺을 양이나 염소를 그냥 쪽을 내는 거예요. 언약을 깨뜨리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피로 맺은 언약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짐승을 쪼개시고 자기가 지나가셔요. 이름을 걸고 너와 약속한다는 거예요. 아주 일방적인 약속이에요. 아브라함은 그것을 지킬 자신도 없어요. 하긴 아브라함이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거예요. 자기 이름을 걸고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주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 불이 되셔가지고 지나가시는 환상을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몸에서 낳을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는구나 하는 것은 분명히 믿게 됐어요.

그러나 다음에 방법이에요.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까 사라가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지난 번에 애굽에 내려갔다가 얻은 몸종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서 아이을 얻으라. 아무리 기다려도 애가 없으니. 그래서 하갈을 첩으로 삼아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어떻게 거예요?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듣고 듣다가 말씀이 마음에 부딪혀 오면서 믿음으로 붙들고 믿음을 따라서 순종하게 됩니다. 거죠.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방법을 정확히 몰라서 실수할 때가 있죠. 주로 약속의 말씀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 언제인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혼동할 때가 많은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 성취되느냐, 때는 언제이냐? 말씀을 읽어보면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어요. 100세에 아들을 낳게 하실 하나님이 임박한 때에 다시 나타나신 거죠.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그러므로 너는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라.” 여기서도 완전하게 행하라는 말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이전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라는 말이에요.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시니까. 이것이 창세기 17 1절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하나님이 자기를 소개하는 거예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믿으라.

그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뭐냐? 하나님이 행하실 새로운 일이 이루어지도록 준비하라.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십니다. 준비하느냐? 이름부터 고쳐라. 아브람, 나의 아버지는 위대하시다라는 말이에요. 이름도 좋지만 아브라함이라 하라. 모든 민족의 조상이라고 이름을 고쳐라. 그리고 아내는 사래, 여주인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사라로 고쳐라. 모든 민족의 어머니라고 이름을 고쳐라. 아니, 애도 없는데 이름부터 고치래요. 모든 민족의 조상, 모든 민족의 어머니. 우습지 않아요? 정체성이에요. 신앙은 성경을 읽어보면 행하라는 전에 먼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믿으라, 이게 먼저에요.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너희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음을 믿으라. 너희를 이제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로 여길지어다. 여기서 신앙은 시작되는 거예요. 이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에요.

그리고 나서 이름을 고치고 할례를 행하라. 할례가 뭔지 알죠? 남자들 포경수술이 할례잖아요. 포경수술을 하는 나라가 유대뿐만이 아니에요. 블레셋 사람들은 포경수술을 했지만 어지간한 민족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위생적으로 그게 좋으니까 포경수술을 행했어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거기에다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느냐 하면 그렇게 해서 피가 나는데 피는 생명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저 하나의 의학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내가 맺은 생명의 언약이다. 그래서 모든 유대인 남자아이는 태어난 8 만에 포경수술을 하는 거예요. 그때 K라고 하는 원소가 나와서 지혈작용이 가장 활발하대요. 그때가 가장 안전하다는 거예요. 의학적으로도 너무 신기하죠. 할례를 행하라. 몸에 새겨 넣어 약속을 기억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말씀을 통해 믿고 가졌다면 다음에는 우리가 실천해야 되는 거예요. 잘하고 못하고는 묻지 마세요. 실천해야 되는 거예요. 예배 드리고 말씀을 읽고 같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형편을 아셔요. 유창한 기도를 원하시는 아니에요. 우리의 중심을 원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몸으로 실천해야 돼요.

아브라함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자기가 하면서도 너무나 우스워요. 그래서 웃음이 거예요. 하나님이 그러시잖아요. “ 웃느냐?” 사라도 결국 장막 뒤에서 얘기를 듣다가 웃잖아요. 구십이 말라 비틀어진 나에게 아기가 생기다니 세상에 하며 웃었잖아요. 웃느냐 그랬더니 아니요, 웃었습니다.” 이럴 밖에 없었죠. 하나님이 얼마나 유머러스하신지 아들을 낳거든 이름을 웃음이고라 해라.” 이삭은 웃음이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실없는 일을 하시네하며 실없는 웃음을 지었던 부부에게 정말 아들을 주시고 환한 기쁨의 웃음을 부부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려고 이름을 웃음이라 하라고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 여기 세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남자가 세에 아이를 낳을 있겠어요? 낳잖아요. 오십이라면 혹시 가능할는지도 몰라요. 어떤 분은 칠십이라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으니까. 그런데 칠십도 넘기고 남자 몸도 완전히 비틀어져가지고 마른 지팡이나 똑같든지 아니면 지팡이 보다 말라 비틀어지게 만든 세에 아들을 주시는 이유는 이것이 사람이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소식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도록, 그래서 세에요. 우리가 순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제 응답하시느냐?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고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고 했지만 , 이건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 하는 바로 경계를 이루는 시간에 하나님은 응답하신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모세 이야기를 아시잖아요. 모세가 태어날 상황은 어땠습니까?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 버려야 했어요. ?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들을 중노동 시키면서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남자아이들은 강에 던지라고 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나 보세요. 모세가 태어났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된 아니에요. 모세가 자라나서 사십이 개혁을 이루어보려고 했습니다만 실패했어요. 그것은 모세의 방법이었어요. 모세의 생각이었어요. 하나님은 애굽 왕궁에서 사십 훈련 받은 모세를 광야로 보내셨어요. 사십 년을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게 하셨어요. 아무것도 없는 광야, ‘ 바르에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나이 팔십이 돼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왔어요. 팔십 동안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되었겠어요?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었죠. 때로 하루도 견딜 없는 그런 고통일지라도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으면 팔십 년도 기다리셔요.

여기 세라는 것을 그저 기계적인 시간으로 생각하면 돼요. 성경에 사십 년이 나오니까 기다리면 사십 년인가 보다.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뜻을 따라갈 하나님은 기간을 단축하셔요. 그랬잖아요. 종말에 무시무시한 심판과 재난이 있으리라.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날을 줄이셨다, 그런 말이죠. 그러니까 결국 우리의 준비, 우리의 기도의 분량이 하나님이 응답하셔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하나님이 응답하셔요.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다음 주면 10주년이잖아요.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얘기할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생각해요. 말씀이 차지 않았는데 말씀에 오버해서 외형을 키우면 나중에 교회가 무너집니다. 가끔 안타까운 얘기를 들어요. 목사님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어지러운 교회 얘기를 듣다 보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저렇게 될까? 차라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굉장히 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싸우는 싸움은 굉장히 무서운 싸움이 돼요. 우리가 인격이 성숙해야 돼요. 말씀으로 다져지고요 기도가 차야 돼요. 그리고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건강한 교회에요. 그게 아름다운 교회에요. 우리가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도 정말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시간은 기계적으로 정해진 시간이 아니에요. 우리가 준비하며 기다려야 돼요. 그래서 말하지 않습니까? 기대하며 기도하며 기다리라.

여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있어요. 오늘 본문 1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우리보고 지켜라 말씀하시지만 그렇게 말씀하시기 전에 가장 말씀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요.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돌보셔요. 그리고 약속대로 일을 행하셔요. 거기에 기초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시고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시고 말씀하신 시간에 아들을 낳게 하셨으므로 모든 일을 주님이 이렇게 이루시는 것이죠. 그럼 우린 어떻게 해요? 전적으로 마음을 낮추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하와이에서 목회를 하는 웨인 코데이로라고 하는 목사님의 글을 읽어봤어요. 그가 30 초반에 하와이에 가서 목회를 하는데 너무 어려운 거예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러다가 그분이 자기보다 150 전에 하와이에 먼저 들어와서 원주민을 선교했다는 타이터스 코헌이라고 하는 선교사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분은 벌써 고인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책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찾았더니 벌써 책은 너무나 소중한 책이 되가지고 고문서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거예요. 함부로 열람할 없는 거예요. 대출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서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서 지하 문서보관실에 안내를 받아 갔습니다. 그리고 책을 꺼냈어요. 포장이 되어 있는 책을 벗깁니다. 사서가 말합니다. “함부로 다루지 마십시오.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다가는 함부로 연필로 낙서를 해서는 됩니다.” 아주 신신당부를 하고는 사서가 떠나갔어요. 글에 너무 재미있는 표현이 있어요.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이제 방에는 늙은 타이터스 코헌과 젊은 웨인 코데이로 사람만 남았다.’ 어떻게 여기서 목회 해야 할까, 어떻게 여기에서 부흥을 이루었던가 하는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고인이 되었던 사람의 경험담을 그가 남긴 낡아빠진 권을 소중히 넘기면서 그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읽으면서 대화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목회를 이루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이 나와 대화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찍 오신 분들은 보셨겠습니다만 드디어 예고한대로 벌써 게시판에 성경읽기표가 붙었어요. 구역별로 부서별로 열심히 읽으시라고 마치 어린 아이들같이, 흥겹게 읽으시라고, 서로 격려하면서 읽자고. 그렇게 읽는 가운데 그저 물가에서 물장구치고 노는 아이들만 같이 그러지 말고 수영할 있는 사람은 멀리까지 수영하면서 나아가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우리가 함께 맛보자고. 여러분, 이제 우리 다같이 이렇게 고백해야 것입니다. 사무엘이 어렸지만 하나님을 만날 때에 이렇게 말하잖아요. “하나님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